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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aiku 하이쿠 俳句 II 오노 유조, 산문 「라파엘 로젠달의 하이쿠를 자유율 하이쿠의 정통 후계라고 하자」 정새벽, 옮긴이의 말 「세 줄 안에서, 일상의 말로」 |
Rafael Rozenda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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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y chair
wondering if i’m sitting too much 의자에 앉아 나 지금 너무 앉아 있나 自分の椅子にいて思う 僕はちょっと 座りすぎかなって --- p.107 fuck the syllables this is a haiku 음절 따위 엿 이거 하이쿠임 音数なんてクソくらえ これが 俳句だ --- p.135 can’t sleep tried everything still can’t sleep 잠 안 옴 다 해 봄 그래도 안 옴 眠れない なんでも試してみた まだ眠れない --- p.143 the plural of haiku is haiku 하이쿠 복수형 도 하이쿠 俳句の 複数形は 俳句 --- p.261 라파엘 로젠달은 하이쿠를 정말 많이 쓴다. 하이쿠를 깊이 사랑한다. 그리고 아마, 하이쿠가 아주 현대적인 어떤 것을 표현해 낼 수 있는 도구라고 믿고 있는 듯하다. 이런 점에서 그는 하이쿠를 누구보다도 진지하게 다룬다. --- p.313, 오노 유조, 「라파엘 로젠달의 하이쿠를 자유율 하이쿠의 정통 후계라고 하자 산문」 중에서 시란 말로 쓰이지만, 시에는 언제나 말 너머로 가고자 하는 욕망이 숨어 있다. 하이쿠는 그 욕망을 아주 극단적인 방식으로 드러낸다. 하이쿠의 짧음은 거의 말의 부재에 가깝고, 때로는 말의 부정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바로 그 방식으로, 역설적으로, ‘말 너머의 말’을 성취한다. --- p.317, 오노 유조, 산문 「라파엘 로젠달의 하이쿠를 자유율 하이쿠의 정통 후계라고 하자 산문」 중에서 그래, 라파엘은 호사이와 산토카의 정통 계승자이며, 동시에 이들이 남긴 유산을 새롭게 발전시키고 개발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본다면, 전 세계 하이쿠 시인들의 지평은 어떻게 달라질까. 어떤 생각들이 가능해질까. 그 새 지평에서 어떤 하이쿠들이 태어날까. --- p.325, 오노 유조, 「라파엘 로젠달의 하이쿠를 자유율 하이쿠의 정통 후계라고 하자 산문」 중에서 얼마나 ‘하이쿠답게’ 보이느냐보다, 얼마나 짧은 말로 오래 남는가. 얼마나 가벼운 말로 깊은 흔들림을 남기는가. --- p.331, 정새벽, 옮긴이의 말 「세 줄 안에서, 일상의 말로」 중에서 이런 시들을 한국어로 옮길 때 나는 가능한 한 일상의 말투를 지키고 싶었다. “-음”으로 툭 끝나는 종결, 가끔은 장난처럼 들리는 리듬, 너무 설명하지 않는 생략, 그리고 문장이라기보다 호흡에 가까운 세 줄. 하이쿠의 깊이는 고상한 어휘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말이 어느 순간 낯설어지는 데서 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선불교와 가까운 하이쿠의 전통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큰 진리는 큰 문장으로 오지 않는다. 오히려 사소한 사물, 짧은 체념, 우스운 깨달음, 별것 아닌 메모를 통해 슬며시 다가온다. --- p.335, 정새벽, 옮긴이의 말 「세 줄 안에서, 일상의 말로」 중에서 좋은 하이쿠는 다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건드린다. 아주 조금 밀어 주고, 그다음은 읽는 이의 몫으로 남긴다. 로젠달의 하이쿠 역시 그렇다. 화면 위에 잠깐 떴다가 사라지는 알림처럼 가볍고, 농담처럼 건조하고, 메모처럼 무심한데, 이상하게도 그 뒤에 남는 여운은 길다. --- p.337, 정새벽, 옮긴이의 말 「세 줄 안에서, 일상의 말로」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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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시
everything you see is in the past 네가 보는 건 전부 과거 あなたが見る すべては 過去のこと (25쪽) 하이쿠라는 시의 가장 직관적인 매력은 길이가 짧다는 점에 있다. 짧은 말이 작은 말이 되어 가볍게 움직이고, 그만큼 멀리 갈 수 있어 보인다. 이러한 작음은 하이쿠라는 시가 계속 쓰일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원동력이 되면서, 더불어 시의 효율성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하이쿠의 경우 특히 짧으면서 즉흥적으로 쓰인다는 점이 그 효율성을 극대화한다고도 여겨진다. 2024년 오노 유조와 나눈 인터뷰에서 라파엘 로젠달은 자신은 항상 “단순한 것”을 좋아하며, 자신에게 하이쿠는 “즉흥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현대 사회의 필수 도구로 자리 잡은 휴대전화로 시를 쓰는 그에게 이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감각과 닮아 있다. 이러한 단순성과 짧음 그리고 즉흥적인 태도와 접근을, 최소한의 분량과 제약 아래 작업을 무한히 구동하는 효율적인 방식으로 읽어 보면 어떨까? 단순하게 효율적으로 움직여 가기 위해, 라파엘 로젠달의 하이쿠는 형식상 ‘세 줄’이라는 제약만을 받아들인다. 그러면서 마찬가지로 하이쿠의 일반 규칙을 내려놓았던 일본의 자유율 하이쿠 시인들이 “끝까지 붙들었던 (...) 딱 하나, 짧음”(317쪽)의 급진적인 실험을 자연스럽게 이어 간다. 최소한의 시로 여겨지는 하이쿠의 기존 제약마저 최소화한 상태에서 일상 속에서 조금 달라 보이는 지점이나 다른 생각이 스치는 순간을 포착해 거기에 “21세기의 가벼움, 경쾌함, 혹은 ‘팝’함”(323쪽)을 더해 가는데, 이 지점에서 라파엘 로젠달 고유의 위트가 빛나며, 짧은 시가 촉발한 긴 여운이 그 뒤를 잇는다. oh no forgot to buy avocados 아이고 아보카도 안 샀음 なんてこった 買うのを忘れたよ アボガドを (163쪽) explaining art is like explaining jokes 예술 설명은 농담 설명이랑 비슷함 アートを説明するのは 冗談を説明するのに 似ている (213쪽) 시가 될 수 있는 재료를 일상에서 발견하며, 그것을 최소한의 틀 안에서 즉흥적으로 다루는 가운데 리듬이 생성되고 변주되며 계속해서 만들어지는 이 ‘작은 시’는 자신의 몸체를 최소화하면서 이후의 생각을 위한 여백을 남겨 둔다. 간결하기에 더욱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고, 가볍기에 계속 맴돌게 되는, 읽는 이를 어딘가로 움직이게 하는 출발점으로서의 시. 작은 시는 이렇게 자신을 넘어선다. 오늘날 라파엘 로젠달의 하이쿠가 품을 수 있는 여러 잠재성을 살피며, 언어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도록 이끄는지를, 최소한의 말을 통해 언어를 넘어서려는 시가 다시금 비추게 되는 삶을 생각한다. perhaps everything is perfect 아마 모든 게 완벽 たぶん すべては 完璧 (217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