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프롤로그/ 걷는다는 것은 오래된 이야기를 다시 만나는 일이다
1장/ 동로와의 만남 동로를 향한 마음 산과 물이 빚은 동로 동로의 사계 2장/ 동로를 느끼다 동로면 간송리를 걷다 동로면 노은리를 걷다 동로면 명전리를 걷다 동로면 석항리를 걷다 동로면 수평리를 걷다 동로면 인곡리를 걷다 동로면 적성리를 걷다 동로면 마광리를 걷다 동로면 생달리를 걷다 3장/ 동로의 시간을 걷다 품앗이하며 살던 마을 땅의 이름이 바뀌던 시절 인구감소라는 이름의 산촌풍경 4장/ 동로사색 동로사색의 탄생 첫 번째 색, 붉은 사과 두 번째 색, 진홍색 오미자 세 번째 색, 검붉은 복분자 네 번째 색, 주항색 둥시감 동로사색과 현대적 품앗이 에필로그/ 동로의 시간을 지금도 걷고 있다 |
김용만의 다른 상품
|
이 책은 인문학적 관점으로 동로를 기록한다. 마을 구석구석을 두 발로 걸으며 지역의 역사, 자연환경, 생태, 역사와 문화의 흔적을 찾았다. 언젠가 이 책을 든 채 동로면의 산길을 걷고 물가를 따라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사과·오미자·복분자·감의 향을 들이마시는 순간이 오기를 바란다. 역사·문화·자연환경이라는 자산 위에 농경·문학·공동체의 삶이 겹쳐지며 천천히 지속되는 모습을 꿈꾸며, 동로사색(東魯四色)을 시작한다.
---「프롤로그, 걷는다는 것은 오래된 이야기를 다시 만나는 일이다」 중에서 천주사의 역사에서 가장 선명하고도 아픈 사건은 1906년에 일어났다. 기록과 전승에 따르면, 당시 의병을 숨겨주었다는 이유로 일제의 탄압이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사찰은 불타 사라졌으며 주지 스님 또한 목숨을 잃었다고 전해진다. 그날 이후 천주사의 터는 오랜 세월 논과 밭으로 쓰였다. 그러나 절이 사라졌다고 해서 그 자리가 지닌 의미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사찰이 사라진 뒤에도 마음이 고단하고 힘들 때면 사람들은 천주사지를 찾았다. ---「동로면 간송리를 걷다」 중에서 이름에 쓰인 ‘로(魯)’ 자는 단순히 방위를 나타내는 기호를 넘어선다. 이는 공자의 고향이자 유교 문화의 본산인 노나라를 상징하는 글자로,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예절과 학문이 밝은 곳을 일컬어 ‘동방의 노나라’라는 뜻의 ‘동로’라 칭송하곤 했다. 험준한 산세에 가로막혀 고립된 오지가 아니라, 오히려 그 깊은 산자락 속에서도 선비의 고결한 기품을 지키며 학문과 예법을 숭상하며 살아온 이들의 자긍심이 ‘동로’라는 이름 안에 오롯이 새겨져 있는 것이다. ---「동로면 노은리를 걷다」 중에서 단양에서 동로면 방향 산길을 따라 명전리 문안골로 깊숙이 들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 산의 분위기가 달라짐을 느낀다. 풀잎과 바람이 빚어낸 원시의 풍경 위로 세월의 흔적이 밴 돌담이 있음을 깨닫는 순간, 비로소 작성산성(鵲城山城)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은 우리를 과거로 안내하는 관문처럼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동로면 명전리를 걷다」 중에서 산줄기 아래에는 ‘끝없는 골짜기’라는 뜻의 무진골(無盡谷)이 있다. 이 마을 한복판 돌 틈에서는 우물이 솟아났는데, 물이 아주 맑고 물맛이 뛰어났다고 전해진다. 수량의 변화가 거의 없이 늘 흘러넘쳤기에 마을 주민들은 이 물이 마르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그 믿음 속에서 마을은 무진골이라 불리기도 하고, 수진계리 또는 수진동이라 불리기도 했다. ---「동로면 석항리를 걷다」 중에서 아름다운 풍경과 신비한 이야기가 깃든 경천호는 물이 맑고 수심이 깊어, 마치 광활한 바다처럼 보이기도 한다. 봄에는 호수 테두리를 따라 화사한 벚꽃길이 이어지고, 여름에는 부서지는 햇살이 수면 위로 흐드러지게 퍼진다. 가을에는 붉은 단풍과 달콤한 사과 향이 골짜기를 가득 채우며, 겨울에는 은백색 눈꽃과 얼어붙은 호수 위에서 즐기는 빙어 낚시가 백미를 이룬다. ---「동로면 수평리를 걷다」 중에서 그 인식의 중심에는 오래전부터 ‘돌문’, 혹은 ‘석문(石門)’이라 불려온 바위가 있다. 오늘날 물 위에 남아 있는 경천호의 ‘돌문섬’이 바로 그것이다. 경천호로 마을이 수몰되기 전, 돌문섬의 이름은 황두산이었다. 황두산 아래에는 마을이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선돌문(立石門)을 기준으로 문 안쪽은 ‘돌문안’, 밖은 ‘돌문밖’이라 불렸다. 조선 시대 이곳에는 아홉 대에 걸쳐 동지(同知) 벼슬을 지낸 이씨 가문이 있었고 여덟 대를 연이어 천석꾼으로 살았을 만큼 번창했다고 전해진다. 마을의 상징이었던 선돌문은 신작로가 개설되며 큰 느티나무 옆에 묻혀 있다가 경천댐이 축조되면서 결국 수몰되었다. ---「동로면 인곡리를 걷다」 중에서 마총 곁에는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소나무의 이름은 ‘무송대(舞松臺)’. 바람이 불면 나무는 가만히 흔들리다 어느 순간 크게 몸을 틀며 춤을 추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춤추는 소나무 아래서 바람은 멈추지 않고 말무덤은 말없이 시간을 견딘다. 연주패옥의 명당은 이제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이야기는 여전히 이 땅을 지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이어지고 있다. ---「동로면 적성리를 걷다」 중에서 전승에 따르면 이 일대에는 아주 이른 시기부터 사람이 터를 잡고 살았으며, 5세기 무렵 단양에서 건너온 우 진사가 이곳에 정착했다는 설이 전해진다. 그로부터 수백 년의 시간이 흐른 뒤 경주 손씨가 들어와 집성촌을 이루었고 마을의 터전은 점차 공고해졌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는 비록 문헌으로 명확히 확인되지는 않으나 마광리를 유구한 삶의 자리로 소중히 여겨 온 마을 사람들의 인식을 잘 보여 준다. 이러한 전승을 입증하듯 마광리 곳곳에는 조선시대 양식의 건축물들이 남아 있다. 여양정사(礪陽精舍), 연산정(延山亭), 고산재(高山齋), 그리고 여양헌(礪陽軒) 사당이 바로 그것이다. ---「동로면 마광리를 걷다」 중에서 차갓재라는 이름에는 ‘막힌 것을 차고 나간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실제로 이 고개는 가파르고 험해 짐을 진 이들의 숨이 턱턱 막히던 곳이었다. 이 능선길은 생달리와 명전리를 이어 주던 절박한 삶의 통로였다. 지명에 관한 또 다른 전승도 있다. ‘차갓’이 왕을 뜻하여 선화공주가 다녔던 길이라는 설과 차돌이 많아 붙여졌다는 이야기가 함께 전해진다. ---「동로면 생달리를 걷다」 중에서 남아 있는 사람과 새로 찾아오는 사람이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농촌에도 비전 있는 일자리와 좋은 교육 환경, 그리고 풍요로운 문화 시설이 존재할 수 있음을 어떻게 증명해 낼 것인가. 우리는 다시금 본질적인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이 땅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인구감소라는 이름의 산촌풍경」 중에서 동로 농산물의 진정한 가치를 더 많은 사람이 알기를 바랐고, 그 속에 담긴 동로의 이야기도 함께 전해지길 원했다. 그런 간절한 마음들이 모여 ‘동로사색(東魯四色)’이라는 이름을 만들게 되었다. ‘동로사색’은 동로를 상징하는 네 가지 열매를 뜻한다. 감홍색 사과, 선명한 붉은빛의 오미자, 주황색 감, 그리고 자줏빛 복분자가 그것이다. 이 네 가지 색은 동로라는 땅이 품어온 감정의 색이자 사람들이 일궈온 삶의 방식을 상징하는 마음의 색이기도 하다. ---「동로사색의 탄생」 중에서 오미자, 사과, 둥시감, 복분자로 이어지는 농업의 결. 축제와 인문학이 만나는 문화의 결. 그리고 품앗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공동의 실천이 미래의 동로를 빚어낼 것이다. 이러한 마음이 모인다면 동로는 단순한 농촌을 넘어 사람과 자연, 문화와 생태가 촘촘히 연결된 미래형 산촌의 선구적인 품앗이경영모델이 될 것이다. ---「동로사색과 현대적 품앗이」 중에서 |
|
“서로에게 기꺼이 어깨를 내어주는 사람의 마음”
생태건축가 김용만이 걷고 기록한 문경 동로면의 인문학적 사색 오늘날 도시는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편리하지만 그 속의 인간은 갈수록 고립되고 마음 쉴 공간을 잃어간다. 반면 지방의 작은 농촌 마을들은 인구소멸이라는 거대한 위기 앞에 서 있다. 『동로사색(東魯四色)』은 이러한 시대적 결핍 속에서 결코 놓쳐서는 안 될 우리의 소중한 정신적 자산이 어디에 살아 숨 쉬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저자인 생태건축가 김용만은 자연과 함께하는 집을 짓고, 집을 다 지으면 사람과 자연의 이야기를 담은 ‘우리집소개서’를 만든다. 정다운 이들과 함께 살아갈 마을을 꿈꾸던 중 우연히 문경시 동로면과 인연을 맺게 된 그는, 사라져 가는 마을의 역사와 문화를 기록하기 위해 기꺼이 동로의 서포터이자 기록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이 책에서 특별히 다루는 지점은 ‘품앗이’라는 오래된 정서를 현대적인 가치로 부활시켰다는 점이다. 저자는 조선시대 동로의 척박한 산비탈 농사부터 오늘날의 일손 돕기까지의 과정을 촘촘히 추적하며, 품앗이가 단순한 노동의 교환이 아니라 ‘서로의 고단한 삶을 깊이 이해하는 가장 따뜻한 관계’임을 역설한다. 이 오래된 공동체 문화 속에서는 흔히 말하는 시골의 텃세 대신 이웃의 짐을 함께 나누어지는 호혜적 연대만이 가득하다. 나아가 저자는 이 품앗이 정신을 바탕으로 도시와 농촌이 상생하는 유기적인 협력 모델을 제시한다. 도시와 농촌이 서로의 지식과 경험을 교류하는 ‘새로운 차원의 품앗이’다. 농경과 문학, 서로 함께 하는 ‘정 문화’가 겹쳐지며 천천히 지속되는 동로의 모습은 소멸해 가는 우리 농촌이 나아가야 할 미래의 선구적인 이정표가 되어준다. 바쁜 걸음을 멈추고 삶의 본질을 되찾고 싶은 모든 독자에게, 지혜롭고 정겨운 온기를 전하는 이 책을 기쁜 마음으로 추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