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 Peter Berger, John Ber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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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진보적인 지성, 현존하는 영국 출신 작가 중 가장 깊고 넓은 자기 세계를 가지고 있으면서, 가장 광범한 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작가, 여든을 넘긴 노구로 지금도 농사와 글쓰기를 병행하고 있는 작가, 그리고 미술평론가, 소설가, 다큐멘터리 작가, 사회비평가로 다양한 영역에서 글쓰기를 하고 있는 존 버거(John Berger, 1926- )의 유일한 시집 『아픔의 기록(Pages of the Wound)』이 출간되었다. 「시 소묘 사진 1956-1996」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시집은 산문과 소설 영역에서 주된 활동을 했던 그가 사십여 년 동안 은밀하게 해 온 시 작업을, 직접 그리고 찍은 소묘, 사진 작품과 함께 모아 엮은 아름다운 책이다.
자신의 거의 모든 책에 자신의 시를 슬그머니 끼워 넣고는, 시인으로서의 모습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았던 존 버거. 그의 주된 집필 활동은 산문을 통해 이루어져 왔지만, 무력감이라는 또 다른 불가항력에 의해 씌어진 시들은 그 고유의 의미와 무게를 지닌다. 그의 시를 번역한 문학평론가 장경렬은 이렇게 말한다. 「그가 자신의 산문 여기저기서 선보이고 있는 시들은 정녕코 산문에 덧붙인 장식품으로 여겨질 성질의 것들이 아니다. 내가『아픔의 기록』번역 작업에 온 마음으로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시인」으로서의 버거에 대한 나의 이같은 믿음이 어느 때도 흔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른 즈음, 새로운 봄을 기다리는 자연, 그 끝없는 순환의 원리를 노래한 「남은 것들」(1956)에서부터, 일흔이 되던 해 알프스 산록에 함께 살던 이웃의 죽음을 애도한 「로베르 조라」(1996)에 이르기까지, 이 시집에는 사십 년 동안 그가 체험하고 만난 어떤 장소, 시간, 그리고 존재에 대한 지극히 내밀한 쉰여 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1918년 일차대전이 끝나고 팔 년 뒤 태어난 존 버거는, 「자화상 1914-1918」(1970)에서 전쟁 당시 유럽 서부 전선에 삼 년 간 보병 장교로 참전했던 아버지의 시간에 자신의 자화상을 투영한다. 또한 한 여인이 어느 남성에게 전하는 사랑의 노래인 「르모리앙에서」 시편들에서는, 니스(Nice)의 북쪽 산간 마을인 르모리앙(Remaurian)을 물리적 공간으로서 표면에 내세우고 있으나, 그는 그곳에 실제가 아닌 오직 시적 상상 속에서만 살았다. 이처럼 존 버거는 직접 겪지 않은 시간과 공간을, 자신의 혈육이나 친구를 통해, 때로는 상상의 힘을 빌려 자기의 체험으로 생생하게 끌어낸다. 이러한 기법은 그의 산문에서도 역시 발견되나, 보다 더 완전한 자유로움이 허락되는 시에서 그 가로지름의 크기는 어리둥절하리만큼 과감하다. 한편, 프랑스 남부 바닷가 염전의 풍경을 한폭의 그림처럼 펼쳐 보이는 「시」(1972)나, 시골 마을의 정겨운 목로 주점에서 있을 법한 따뜻한 정경을 담고 있는 「먼 마을」(1986) 등에서처럼, 존 버거는 자연의 섭리, 그리고 그 안에서 순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아름다운 언어로 포착한다. 이러한 시편들에는 중년 이후 프랑스로 이주해 알프스 산록에서 농사꾼으로 살고 있는 존 버거의 삶의 태도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또한 도시화로 인해 뿌리뽑힌 이민자들의 보잘것없고 고단한 삶의 기록(「이별」 1985, 「이민의 시, 여덟 편」 1984), 피폐한 도시 풍경에 대한 비판적 시선(「트로이에서 온 엽서」 1990) 등, 산문을 통해 일관되게 대변했던 억압받는 자들의 이야기를, 사랑과 연민으로 가슴깊이 내면화한 시어로 표현한다. 하지만 존 버거는 이같은 현실의 온갖 모순 앞에서 시는 힘이 없다고 고백한다. 「시는 사실(事實) 앞에서 무력하다. 무력하지만 인내력을 잃은 채 무력한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이 시에 저항하기 때문이다. 시는 결과에 어울리는 이름을 찾지, 결정에 어울리는 이름을 찾지 않는다.」 그가 만났거나 상상하는 누군가의 아픔과 상처를 기록한 이 모든 시편들은, 그 아픔의 주인들에게 바치는 존 버거의 내밀한 연가(戀歌)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읽는 우리는, 모든 인간이 공유하고 있는 보편적 정서와 시적 상상을 통해, 시간과 공간의 지평을 넘어 그들의 상처를 끌어안고 끝내 삶을 긍정하는 황홀한 전이(轉移)를 「지금 이곳」에서 체험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