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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5
국회와 최고인민회의 15 [I. 국회 편 1948. 5. 31.~8. 15.] 1. 국회의 개원 21 하나님에 대한 기도로 시작한 국회 25 2. 대한민국 헌법의 심의와 제정 31 1 | 헌법안의 기초 과정 33 2 | 헌법안 심의 39 전문 39 제1장 총강 41 제2장 국민의 권리·의무 69 제3장 국회 104 제4장 정부 120 제5장 법원 157 제6장 경제 164 제7장 재정 184 제8장 지방자치 191 제9장 헌법 개정 193 제10장 부칙 194 3 | 헌법의 제정 199 [부록] 1948년 7월 17일 공포 대한민국 헌법 201 3.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 217 1 | 정부의 조직 219 2 | 초대 정부의 구성 225 대통령과 부통령의 선거 225 국무총리 인준과 재인준 229 국무위원 인선 논란 252 남북통일 특별위원회 문제 261 반민족행위처벌법 특별위원회 문제 265 민국 기원인가 단군 기원인가 271 [Ⅱ. 최고인민회의 편 1948. 9. 2.~9. 10.] 1. 최고인민회의의 개회 281 1 | 첫 회의 283 2 | 대의원 자격심사위원회 보고 291 2.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의 심의와 제정 303 1 | 헌법안의 기초 과정 307 2 | 헌법안 심의 325 ① 헌법안 토론(제1독회) 326 상공업과 노동 326 토지와 농민 340 공민의 권리와 의무 344 정치와 외교 351 대한민국 헌법 비판 360 토론에 대한 결론 373 ② 헌법안 축조 심의(제2·3독회) 377 제1장 근본 원칙 378 제2장 공민의 기본적 권리 및 의무 381 제3장 최고주권기관 385 제4장 국가중앙집행기관 391 제5장 지방주권기관 395 제6장 재판소 및 검찰소 398 제7장 국가 예산 401 제8장 민족 보위 402 제9장 국장(國章) 국기 및 수부(首府) 402 제10장 헌법 수정의 절차 402 3.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의 수립 407 1 |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선출 409 2 | 정권의 이양 411 3 | 정부의 구성 417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정강 423 소련 정부와 북미합중국 정부에 보내는 조선최고인민회의의 요청서 431 1948년 헌법으로 보는 남북 국가 체제 비교 4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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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이 분단을 잠정적 상태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거니와 이는 두 속기록에서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회의 내내 통일 문제는 반복적으로 언급되었고, 각각의 정부 수립 역시 궁극적으로는 한반도 전체를 대표하는 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이라는 인식이 공유되어 있었다. 이처럼 ‘두 국가’는 하나의 국가를 지향한다는 인식 속에서 탄생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서로 의식적으로 이질성을 강화해 나가는 모습으로 귀결되었다. 정치적 정통성과 체제 우월성 경쟁 속에서 상대 체제와의 차별성을 점차 제도적·이념적으로 확대해 나간 결과였다.
---p.7 국회와 최고인민회의는 분단의 상처를 안은 채로 남북한 각각에서 국가를 탄생시키는 주역의 소임을 맡았다. 국가의 수립 과정에서 국회와 최고인민회의가 수행한 역할은 본문에서 반복적으로 검토하게 될 세 가지 기준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국가의 수립을 담당할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서 의회는 반드시 전 국민의 선거로 구성되어야 한다. 둘째, 의회는 국가의 기본 체제와 국가 운영의 기본 원칙을 규정한 헌법과 기타 법령을 제정해야 한다. 셋째, 의회는 헌법에 규정된 정치체제에 따라 행정과 사법을 집행할 국가 기관을 조직해야 한다. ---p.17 1948년 5월 10일 총선이 끝나자 국회는 6월 1일 제2차 본회의를 열고 헌법 초안을 작성할 헌법기초위원회를 구성했다. 위원장은 서상일 의원이고, 원외에서 헌법안을 작성한 유진오도 이 위원회에 전문위원으로 참가했다. 헌법기초위원회는 6월 3일부터 22일까지 16회의 회의를 거쳐 본회의에 제출할 헌법 초안을 기초했다. ---p.31 † 대한과 조선: 냉전이 낳은 분단국가 가운데 분단 양측이 자국어의 민족 칭호를 달리한 곳은 남북한뿐이다. 중국, 베트남, 독일의 분단 양측은 영문뿐 아니라 자국어 표기에서도 中華, Việt Nam, Deutschland를 공유했다. 남한이 내세운 대한은 1897년 고종이 황제국을 선포할 때 창안했고, 북한이 내세운 조선은 한국사상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남북한 건국의 주역들이 통일을 지향한다면서도 민족 칭호를 공유하려는 노력마저 결여한 채 분단을 맞이한 것은 후대에 해결해야 할 난제로 남았다. ---p.42 제2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발한다. ‡ 제28차 본회의에서 ‘발한다’를 ‘나온다’로 수정했다. 1972년 유신헌법은 제1조 2항에서 이 조문을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국민은 그 대표자나 국민투표에 의하여 주권을 행사한다”라고 바꿨다. 절대 권력을 가진 대통령의 의도대로 이루어지는 간접 선거나 국민투표로만 국민의 주권 행사를 제한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유신 독재를 계승했다는 평가를 받는 제5공화국조차 헌법에서 이 독소 조항을 삭제하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제헌헌법의 조항을 부활시켰다. ---p.51 제3장(제30~49조)의 핵심 쟁점은 초안에서 국회를 양원제가 아닌 단원제로 한 이유와 문제점이었다. 원칙적으로 양원제가 나은 제도이나 정부 수립 초기의 특수성을 고려해 단원제를 채택한다는 논의가 주를 이루고 있다. 정부 수립 80년이 가까운 2026년 현재까지 여전히 단원제로 운영되고 있는 국회와 관련해서도 충분히 참고할 만한 논의라고 판단된다. 특히 제39조에 규정된 대통령의 법률안 재의 요구권(거부권)을 둘러싸고 벌어진 치열한 논쟁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내각제 국가에서도 국가원수의 자격이 부여된 대통령이나 군주가 국회를 통과한 법안에 대해 형식적이나마 거부권을 갖는 사례가 있다. 그러나 국회의 다수 세력이 행정부를 조직하는 내각제에서는 기본적으로 국회의 결정이 존중된다. 반면 대통령제에서는 국회와 대통령을 별개의 선거로 선출하므로 국회 다수 세력과 대통령이 당을 달리하는 사례가 종종 나타난다. 그때 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법안에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여야 간에 극한 대립이 나타날 수 있다. ---p.104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광복 3주년인 1948년 8월 15일에 맞춰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선포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정부 구성의 원칙을 규정한 정부조직법의 초안 작성은 애당초 헌법기초위원회가 병행하기로 되어 있었다. 7월 12일 헌법 제정을 완료한 국회는 정부조직법 초안의 독회를 언제 시작할 것인가를 놓고 격론을 벌였다. 헌법기초위원회의 서상일 기초위원장은 준비가 덜 되었으므로 7월 15일에 초안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보고했다. 그러나 이승만 의장을 비롯한 의원들의 재촉에 따라 이틀 후인 7월 14일 초안을 제출하고 그날부터 독회를 개최할 것을 결정했다. 그에 따라 14일부터 16일까지 사흘간 정부조직법 초안을 심의해 최종안을 확정했다. ---p.217 북한에서는 해방 후 전국에서 출현한 인민위원회를 최초의 주권기관으로 본다. 북한의 각 지방 인민위원회를 통솔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는 최초의 중앙 주권기관으로 입법뿐 아니라 행정적, 사법적 집행까지 겸하고 있었다. 그렇게 통합되어 있던 주권기관과 집행기관을 분리한 최초의 형태가 바로 1947년 2월 탄생한 북조선인민회의와 북조선인민위원회였다. ---p.281 집행기관인 내각의 구성에서는 수상인 김일성, 부수상인 박헌영을 비롯해 북로당과 남로당 출신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권력의 무게 중심이 최고인민회의보다는 내각에 쏠려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북로당 출신이 남로당 출신을 압도해 김일성이 확고한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북로당과 남로당은 북한 정부 수립 후인 1949년 6월 조선노동당으로 합당했다. ---p.291 정치체제 설계에서는 남북 헌법이 뚜렷한 차이를 보였지만, 사회경제 영역에서는 주목할 만한 유사성이 나타난다. 대한민국 헌법은 사유재산 보장을 원칙으로 하면서도 공공의 필요에 따른 국가 개입 가능성을 명시했고(제15조, 제84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은 국가 주도의 계획 경제를 지향하면서도 개인 소유와 중소 상공업 활동을 일정한 범위에서 인정했다(제8~10조, 제19조). 주요 자원과 산업에 대한 국가 관리, 대외무역 통제, 토지개혁 추진 등에서도 양측은 상당 부분 공통된 인식을 보였다(대한민국 헌법 제85~89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 제5~7조). ---p.4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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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그날, 그들은 무슨 말을 했을까?”
남북 제헌의회 속기록으로 되짚는 분단국가 탄생의 기원 『분단의 시간』은 두 개의 국가를 수립하는 과정인 동시에, 하나의 국가를 염두에 둔 정치적 실험의 기록이었던 남북의 속기록을 원활하게 읽히도록 재구성함으로써, 두 속기록 속에 담겨 있던 분단국가의 출발점이면서 통일 지향 흔적이 공존하는 현장을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초기 ‘두 국가’의 탄생 과정을 이해하고, 현재의 ‘두 국가’ 논의와 남북관계 및 한반도의 미래를 구상하는 데 매우 중요한 나침반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 신종대 지금, 1948년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 북한이 대한민국을 자신과 국경을 맞댄‘외국’으로 선언한 지금, 우리는 1948년으로 돌아가 보아야 한다. 북한이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자 한국에서도 ‘평화적 두 국가론’ 등 다양한 대응 구상이 쏟아지고 있다. 한반도의 남과 북의 관계는 통일을 추구하는 잠정적 특수관계인가,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는 일반관계인가? 이 논쟁의 뿌리를 찾으려면 남북이 ‘두 국가’로 탄생한 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분단의 시간: 남북 제헌의회 속기록으로 본 ‘두 국가’의 탄생』(이하 ‘『분단의 시간』’)은 1948년 남북이 각기 국가를 수립하기 위해 개최한 제헌의회의 첫 번째 회의록을 정면으로 들여다본다. 대한민국 국회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두 의회 기관이 헌법을 만들고 정부를 조직하던 그 현장의 목소리를 오늘의 독자에게 처음으로 생생하게 전하는 것이다. 속기록은 국민의 대표들이 헌법을 심의하고 정부를 조직하기 위해 논쟁을 벌이는 ‘그 순간’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 문헌이다. 『분단의 시간』이 원본으로 삼은 제헌국회 회의록에는 발언의 망설임, 중단, 반박과 개입, 감정의 고조까지 현장의 모든 것이 날것 그대로 담겨 있다. 최고인민회의 제1기 제1차회의 회의록은 상대적으로 정제된 원고 낭독의 비중이 크지만, 회의 진행 과정과 대의원들의 동정, 즉석 질의응답 등 토론 과정을 그대로 싣고 있어 속기록에 준하는 자료이다. 마치 생중계를 지켜보듯이 ‘두 국가’가 탄생하던 순간을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 ‘해석’이 아닌 생생한 ‘발화’로 읽어 보자는 것이 『분단의 시간』의 출발점이다. 속기록의 생생함을 넘어 ‘읽히는 역사’로 『분단의 시간』은 남북의 헌법 제정과 정부 수립 과정에서 생산된 방대한 의회 속기록을 정리하고 재구성한 결과물이다. 국가의 출발점에서 이루어진 논쟁을 박제된 결론이 아니라 살아 있는 과정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기존의 역사서나 해설서와는 분명한 차별성을 지닌다. 원본 속기록은 그 방만한 성격상 잘 읽히지 않는다. 『분단의 시간』의 가장 큰 특징은 그처럼 방만하고 방대한 속기록을 ‘읽히는 역사’로 정리하고 재구성했다는 점에 있다. 무엇보다 당시 정치인들의 발언을 가능한 한 ‘날것 그대로’ 살리면서도, 독자가 읽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적절한 편집을 가해 생생함과 가독성을 동시에 확보했다. 원본 속기록의 토론 기록은 날짜별로 이루어져 같은 주제의 논의가 여러 곳에 흩어져 있거나 중복된 사례가 많다. 하나의 의제를 놓고 토론이 진행되는 도중에 다른 문제가 끼어들거나 감정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분단의 시간』은 독자가 혼란을 초래하지 않도록, 헌법 조항과 국가 운영의 핵심 쟁점을 중심으로 발언들을 재배열함으로써, 독자가 논쟁의 흐름과 구조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 각 논의가 등장하게 된 역사적 맥락과 그것이 갖는 현실적 의미를 짚어주는 해설과 주석을 촘촘히 배치했다. 이로써 남북 제헌의회 속기록에 관한 단순한 자료집을 넘어 그것을 ‘읽히는 역사’로 재구성했다. 속기록 속 목소리들 - 우리가 몰랐던 분단의 속사정 지금껏 분단의 역사는 주로 강대국의 외교 무대, 정치세력의 이합집산, 미소공동위원회의 결렬 같은 ‘속기록 바깥의 이야기’로 채워져 왔다. 그러나 정작 새 나라를 만드는 의회 안에서 의원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분단의 시간』은 그 공백을 충분히 채우고도 남는다. 현대 국가의 탄생 과정은 대부분 다음 세 단계의 과정을 거친다. 첫째, 전 국민 선거를 통해 국민의 대표기관인 의회를 구성한다. 둘째, 의회는 국가의 기본 틀을 규정한 헌법과 기타 법령을 제정한다. 셋째, 그 헌법에 따라 의회는 행정과 사법을 집행하는 국가 기관을 조직한다. 따라서 1948년 국회와 최고인민회의의 속기록을 읽지 않고는 해방된 한반도가 ‘두 국가’로 분단된 속사정을 알 수 없다. 국가의 이름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 봉건과 식민지의 질곡에서 벗어나기 위해 토지는 어떻게 분배할 것이며 상공업은 어떻게 진흥할 것인가, 새로운 독립 국가의 정치체제는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자유민주주의인가, 인민민주주의인가? 권력의 집중인가, 삼권 분립인가? 새 나라의 밑그림을 두고 벌어진 진지하고 때로는 격렬한 토론이 『분단의 시간』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가장 놀라운 발견 - 남북 헌법은 닮아 있었다 무엇보다 『분단의 시간』이 드러내는 가장 뜻밖의 사실은, 극단적으로 다를 것 같은 남북의 제헌 헌법이 중요한 지점에서 놀라울 만큼 수렴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남북의 제헌 헌법은 정치체제에서는 국제정치의 영향과 지향하는 이념의 차이 때문에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대한민국 헌법이 미국의 영향을 받아 입법·행정·사법 삼권의 분립을 명시한 반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은 소련의 영향을 받아 최고인민회의를 주권 기관으로 하는 유일 주권 체제를 지향한다. 그러나 사회경제 부문으로 가면 사정이 달라진다. 토지개혁, 주요 산업의 국가 관리, 대외무역 통제, 중소 상공업 보호 등의 조항들에서 남북 헌법은 이념의 차이를 뛰어넘어 공통된 목소리를 낸다. 식민지 경제 구조를 청산하고 국가 주도로 경제를 재건해야 한다는 시대적 과제를 남북 제헌의회가 함께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해방된 한반도가 ‘두 국가’ 아닌 하나의 나라로 독립했어야 하는 이유를 역사적으로 정확히 보여준다. 냉전의 경직된 틀로 1948년을 보려고 하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남북 제헌의회 속기록을 펼치면 비로소 눈에 들어온다. 또 하나의 발견 - ‘두 국가’는 통일을 꿈꾸며 탄생했다 남북 제헌의회의 회기 내내 통일은 반복적으로 언급되었다. 각자의 정부 수립이 궁극적으로 한반도 전체를 대표하는 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이라는 인식은 남북이 공유하고 있었다. 국회는 헌법에서 한반도 전역을 대한민국 영토로 규정하고, 통일을 추진하는 특별위원회의 설치 문제를 진지하게 토론했다. 최고인민회의는 헌법에서 북한 지역에 이은 남한 지역의 토지개혁 실시를 규정하고, 서울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부(수도)로 명시했다. 이처럼 ‘두 국가’는 하나의 국가를 지향하는 인식 속에서 탄생했다. 남북 모두 통일을 추구하면서 분단국가로 수립된 이 역설이 『분단의 시간』의 핵심 메시지 가운데 하나이다. 1948년 제헌의회의 토론을 따라가다가 보면, 오늘날 ‘두 국가론’을 둘러싼 논쟁이 전혀 새로운 문제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분단의 시간』은 남북한 체제의 출발점에서 어떤 선택과 논쟁이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드러냄으로써, 분단이 하나의 ‘결과’가 아니라 수많은 선택과 갈등이 축적된 ‘과정’이었음을 보여준다. 이 점에서 『분단의 시간』은 분단의 과거를 기록하는 동시에 현재를 이해하고 통일의 미래를 고민하게 하는 ‘분단’과 ‘통일’의 참고서라 할 수 있다. 제헌의회 속기록은 현재의 거울 1948년의 남북 제헌의회 속기록은 오늘의 남북한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다. 제헌의회의 논의들에 지금까지도 반복되고 있는 문제들의 원형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제헌국회 속기록을 보자. 사유재산을 어디까지 보장할 것인가, 공공복리를 위해 개인의 자유를 어떻게 제한할 것인가 하는 문제의 토론은 지금도 대한민국이 고민하고 있는 의제이다. 나아가 노동자의 경영 참여나 지분 배분과 같은, 지금 생각해도 급진적인 경제 민주화 구상까지도 제헌국회는 논의하고 있었다. 대통령제와 내각제의 선택, 양원제와 단원제의 선택, 대통령의 임기와 선출 방식, 계엄령과 같은 대통령 비상대권의 범위, 사법부의 독립 문제 등 권력 구조를 둘러싼 쟁점 역시 현재의 개헌 논의나 국민적 의제와 놀라울 정도로 맞닿아 있다. 제헌국회 속기록은 한국 사회가 반복적으로 마주하는 문제들의 ‘초기 설계도’인 셈이다. 최고인민회의 속기록은 어떤가? 북한의 제헌 과정은 남한과는 전혀 다른 정치 원리를 보여준다. 삼권 분립을 부정하고 인민의 유일 주권을 강조하는 북한의 정치 구조는 권력 분산과 견제를 전제로 한 남한의 체제와 뚜렷이 대비된다. 선거에 대한 인식에서도 차이가 분명하다. 남북의 선거를 인상적으로 비교해 보면, 전자는 리얼리티 쇼에 가깝고 후자는 기획 드라마에 가깝다. 전자가 일정한 조건만 설정한 채 결과는 행위자의 자유에 맡겨 놓는다면, 후자는 최대한의 합의를 끌어내는 완벽한 사전 시나리오를 요구한다. 헌법에 대한 이해 역시 다르다. 대한민국 헌법이 장차 수립될 국가 체제의 기초에 관한 규범과 법규를 제시한 측면이 강했다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은 이미 시행되고 있던 민주개혁의 성과와 구성원 간에 확인된 국가 체제를 법적으로 공고화하는 성격을 띠었다. 이 같은 초기 북한의 특징들은 주체사상의 전면화를 거치며 변화해 온 오늘날의 북한을 이해하는 데에도 기본적인 통찰을 제공할 것이다. 이처럼 남북 제헌의회 속기록에 담긴 모든 논쟁은 대부분 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두 국가’ 논란과 함께 국제정세의 커다란 변화를 마주하면서 개헌 논의가 거세게 일고 있는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분단의 시간』은 이 모든 문제를 역사적으로 성찰하게 하는 중요한 준거를 제공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