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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목차 본문 copyrights (참고) 분량: 약 7.3 만자 (종이책 기준 약 118 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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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문장] "마음과 물질은 서로 연결된 용어이며, 이 점에서 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많은 현대 사상가들보다 훨씬 더 진리에 가까웠다고 굳게 믿는다." [한줄로 요약하면] 마음과 물질은 분리 불가능하게 연결된 상관 개념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질료론이 이 진리를 가장 잘 포착했다. [문장 출처] 이로부터 마음은 불완전한 존재이며, 어떤 종류의 물질에 적용해야만 실현될 수 있는 형태와 같다는 특이한 결과가 뒤따른다. 감각이 더 이상 지각되지 않는 후에도 계속 존재하고 살아 움직임을 일으키는 것으로 상상할 수 있다. 대상 없이 존재하는 의식, 지각할 대상이 없는 지각, 초점이 없는 주의, 바라는 것이 없는 공허한 소망, 즉 작용할 물질 없이 작용하는 정신 활동, 더 간단히 말해 물질 없는 마음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음과 물질은 서로 연결된 용어이며, 이 점에서 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많은 현대 사상가들보다 훨씬 더 진리에 가까웠다고 굳게 믿는다. [이 문장의 뜻은] 비네는 책의 마지막 장에서 아리스토텔레스를 소환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질료론이 마음-물질 관계를 가장 정확하게 포착했다는 것이다. 형상(영혼, 마음)은 질료(물질, 몸) 없이 실현될 수 없다. 질료는 형상 없이 구체적 개체가 될 수 없다. 둘은 분리될 수 없이 연결된 상관 개념이다. 비네는 이것을 현대적 맥락에서 재확인한다. 물질 없는 마음도, 마음 없이 알려지는 물질도 없다. 200년의 근대 철학이 이 고대의 통찰에서 멀어졌다가 다시 돌아온다. 데카르트의 이원론, 유물론, 관념론의 우회로를 지나 비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통찰로 귀환한다. [그때, 비네는 이렇게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상(morphe)과 질료(hyle)의 구분을 제시했다. 영혼은 몸의 형상이며 몸 없이 존재할 수 없다. 이것이 질형론(hylomorphism)이다. 이 관점은 플라톤적 이원론, 즉 영혼이 몸에 갇힌 불멸 실체라는 생각과 구분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몸 통일성은 데카르트 이원론에 의해 근대 초에 폐기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비네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옳았다고 선언한다. 마음은 물질 안에서만, 물질과 함께만 실현된다. 20세기 후반 철학과 신경과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적 질형론의 재부상은 비네의 판단을 지지한다. [논변을 정리하면] 비네의 주장: 마음과 물질은 분리 불가능한 상관 개념이다. 이것을 아리스토텔레스가 근대 철학자들보다 더 명확하게 이해했다. 그가 이렇게 말한 이유: 물질 없는 마음의 예를 들어보라. 대상 없는 의식, 내용 없는 기억, 감각 없는 감정?이것들은 이해 가능한가? 아니다. 마음은 항상 무언가에 관여한다. 그 무언가는 물질이다. 역으로 마음 없이 알려지는 물질은? 의식이 개입하지 않는 물질 지식은 불가능하다. 물질을 아는 것은 항상 의식을 통해서다. 이 상호 의존이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질료 관계다. 형상(마음)은 질료(물질) 없이 실현될 수 없고, 질료는 형상 없이 구체적 존재가 될 수 없다. 그 결론은: 마음-물질 이원론을 극복하는 길은 분리가 아니라 통합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질형론이 이 통합의 고전적 모델이다. [다른 의견] 반론: 아리스토텔레스는 신경과학을 몰랐다. 현대 뇌 연구와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을 연결하는 것은 시대착오가 아닌가? 비네의 답변 혹은 한계: 정확한 지적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물학과 심리학은 현대적 시각에서 많은 오류를 포함한다. 비네가 찬사를 보내는 것은 구체적인 생리학이 아니라 형이상학적 통찰?형상과 질료의 분리 불가능성?이다. 이 통찰이 현대 신경과학의 발견과 공명한다. 뇌와 마음이 분리 불가능하게 연결된다는 것. 비네는 아리스토텔레스를 고대의 권위로 인용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통찰의 정확성에 경의를 표한다. 이 구분이 중요하다. [지금 우리에게 적용한다면] 현대 철학에서 질형론의 부활이 진행 중이다. 루스 밀리칸, 피터 고드프리-스미스 등이 아리스토텔레스적 접근을 현대 생물학과 인지과학에 적용한다. 신경현상학(neurophenomenology)도 뇌 과정과 주관적 경험을 통합하려는 시도로, 아리스토텔레스적 방향을 취한다. 프란시스코 바렐라의 ‘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 이론은 인지가 뇌-몸-환경의 분리 불가능한 상호작용에서 생겨난다고 주장한다. 마음과 물질의 연결성이 비네가 예견한 방향으로 현대 과학에서 확인되고 있다. [하나의 짧은 이야기] 앤토니오 다마지오는 2000년 『느낌의 진화(The Feeling of What Happens)』에서 의식이 몸과 뇌의 통합에서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몸 없는 뇌는 의식을 생성하지 못한다. 신체 상태가 의식의 기반이다. 이것은 비네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형상-질료 통일성의 현대 신경과학적 표현이다. 100여 년의 간격에도 불구하고 비네의 결론과 다마지오의 결론이 수렴한다. 마음은 물질 속에서, 물질과 함께만 실현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통찰이 현대 신경과학에서 확인된다. [세 줄 요약] 마음과 물질은 분리 불가능한 상관 개념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질료론이 이를 가장 정확히 포착했다. 현대 질형론의 부활과 체화된 인지 이론이 비네의 결론을 철학적·과학적으로 발전시킨다. 다마지오의 신체화 의식 이론은 비네가 예견한 마음-물질 통합을 신경과학으로 확인한다. <추천평> "생각은 어디에 존재하는가? 누군가는 뇌 속에 있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마음이라는 별도의 영역이 있다고 주장한다. 현대의 뇌과학과 인공지능 연구가 눈부시게 발전한 지금도 이 질문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놀랍게도 알프레드 비네는 100여 년 전 이미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었다. 오늘날 비네는 지능검사의 창시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의 진짜 관심은 인간 정신 그 자체였다. 그는 마음을 하나의 신비로운 실체로 받아들이지도 않았고, 반대로 단순한 물질 현상으로 환원하지도 않았다. 대신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는 의식, 기억, 주의, 지각 같은 현상들을 세심하게 관찰하며 마음과 물질의 관계를 다시 정의하려 했다. 이 책은 그런 비네의 사유를 30개의 핵심 문장을 통해 따라간다. 각각의 문장은 하나의 작은 철학 실험이다. 독자는 문장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자신이 믿고 있던 상식들을 다시 점검하게 된다. 내가 보는 세계는 실제 세계와 같은가? 기억은 과거를 저장하는 것인가, 아니면 현재가 재구성하는 것인가? 정신과 뇌는 하나인가, 둘인가? 흥미로운 점은 비네가 독단적인 결론보다 탐구의 태도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사실이다. 그는 거대한 이론을 세우기보다, 먼저 관찰하고 의심하고 분석하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 책은 특정 학설을 배우는 책이라기보다 생각하는 방법을 배우는 책에 가깝다." - 위즈덤커넥트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