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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4
1부 발터 벤야민이 꾼 꿈 이야기 11 왜 ‘분노하라’인가? 15 알레포 알레포 19 잊혀진 전쟁과 자본주의의 어떤 불길한 표정 25 고골의 「외투」를 읽는 2012년 12월 31 한 시대에 대한 ‘농담’ 39 백 밀리언 유로 남자 45 선택할 수 없는 것들 51 상징의 여러 얼굴 55 수염을 단 여성 61 2부 ‘수메르 문명’이라는 것 69 외국에서의 꿈, 혹은 산책 73 흑백사진 한 장 83 인천공항의 추어탕 89 이야기를 쓰는 마음, 읽는 마음 93 손삽 97 어느 날의 시작 메모 103 시인됨의 곤욕을 함께 이끌면서 107 새 이웃 113 바쿠는 오늘도 오지 않고 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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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간은 한 사회 속에서 억압받는 소수자이면서도 억압하는 대다수가 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소수자가 아닌 줄 알고 살았는데 어느 순간, 인생의 어느 시기에 소수자로 몰릴 가능성도 있다. 특히 어떤 사회가 터부를 많이 가질 때 그 사회는 수많은 소수자를 만들어낸다. 결국 억압받는 소수자의 숫자가 커지면 커질수록 그들은 억압받는 다수자가 될 것이고 그 억압받는 다수자가 소수자로서의 구석지를 박차고 빛 속으로 나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할 때 무엇이 올지 우리 모두는 안다.
---「발터 벤야민이 꾼 꿈 이야기」 중에서 아마도 그 원인은 알레포가 가진 지정학적인 위치에 있을 것이다. 알레포는 인도와 유프라테스, 티그리스 지역과 북쪽으로는 아나톨리아 지방을 연결하고 남쪽으로는 다마스쿠스를 연결하는 중요한 상업 도로들이 교차하는 한복판에 놓여 있었다. 인간들은 그들의 도시를 살기 가장 좋은 곳이라고 판단되는 곳에 건설한다. 그러나 살기 가장 좋은 곳은 다른 인간들이 노리는 곳이 되기 십상이다. 이것이 한 도시의 운명이며 더 나아가서는 ‘문명’이라는 것의 더러운 얼굴이기도 하다. ---「알레포 알레포」 중에서 손도 눈도 혀도 없어서 그 바다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 모든 것을 나는 “아는 사람 집”에 다 두고 온 것이다. 바다는 검고 깊어서 그 안에는 수많은 시어가 출렁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나 나는 단 하나의 시어도 내 것으로 만들지 못했다. 아니면 시가 되지 못했던 시간들이, 아니면 여러 시적 자아들이 그도 아니면 수많은 이미지가 시 자체의 무의식이 모여 그 바다는 출렁이고 있었다. ---「외국에서의 꿈, 혹은 산책」 중에서 땅을 잘 잘라야만 발굴 자리가 깨끗하게 드러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래서 날까지 시퍼렇게 갈았지만 흙과 삽날 사이에 낑겨 무참히 잘려진 기억들은 살아 숨쉬는 생명처럼 아렸다. 이러다가는 발굴을 집어치워야 할 것 같은 두려움이 솟아나서 식은땀이 흐르기도 했다. 그래서 삽을 꽃삽이라고 조금은 덜 무참한 이름으로 오랫동안 불렀다. ---「손삽」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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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천천히 천천히 하자, 돌아올 거다, 다시 나에게로, 나의 시가
그 꿈속에서는 아주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바다가 보였다 어느 날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는 시인은 아주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바다를 보았다. 독일로 와서 그는 바다로 갈 기회가 없었다. 바다는 너무나 오랜만이었다. 그는 그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들어갈 수 없었다. 그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기에. 손도 눈도 혀도 없어서 그 바다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 모든 것을 시인은 “아는 사람 집”에 다 두고 왔기에. “바다는 검고 깊어서 그 안에는 수많은 시어가 출렁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나 나는 단 하나의 시어도 내 것으로 만들지 못했다. 아니면 시가 되지 못했던 시간들이, 아니면 여러 시적 자아들이 그도 아니면 수많은 이미지가 시 자체의 무의식이 모여 그 바다는 출렁이고 있었다.”(「외국에서의 꿈, 혹은 산책」) “바다가 안기지 못하고 서성인다 돌아선다/가지 마라 가지 마라 하고 싶다/혀가 없다 그 어디인가/아는 사람 집 그 집에 다 두고 왔다”(「바다가」,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잠에서 깨어 종이에다 꿈을 옮겨 적고 난 뒤 드디어 시인은 알게 되었다. 이제 아주 괴로운 날들이 오리라는 것을. 독일이라는 곳에서 살고 공부하면서 그는 많은 것을 얻었는데 정작 자신의 시를 서서히 잃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독일에서 육 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정작 시를 쓸 수 있는 모든 기관과 마음은 아직 그곳에 두고 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 꿈 뒤에 알게 된 것. “모든 것을 다 두고 온 “아는 사람 집”을 내 속에서 짓지 않는 한 나는 나는 쓸 수가 없으리라는 것을.” 그런데 도대체, 이 독일 도시에는 없는 나의 “아는 사람 집”은 어떻게 생겼을까? 아님 이 독일 도시에 이미 “아는 사람 집”이 있는데도 그는 보지 못하고 있을까? 도무지, 시의 일생을 끌고 나갈 그 “아는 사람의 집”은 어디에 있을까? 그는 옥수수 밭을 오래 바라보며 진짜 고독은 이제 시작되었다는 것을 뼛속까지 짐작했다. 그 고독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아는 사람 집”은 아직 시인의 속에서 보이지 않고 그는 이 대학 도시에서 계속 산책중이다. 나는 이 글을 통하여 문학의 윤리성을 강조할 생각이 전혀 없다. 다만 문학이 한 사회의 다양한 소수자의 전통을 끌어안을 수밖에 없는 필연성, 같은 것만이 떠오를 뿐이다. “유대인들은 역사적으로 뚜렷하게 소수자로 구분이 되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문제는 소수자의 경계가 그렇게 분명하고 뚜렷하지 않은 시간 속에 우리는 산다는 것.” 발터 벤야민의 꿈속에서 괴테는 쓰기를 멈추고 고대의 꽃병 하나를 벤야민에게 선물했다. 식사를 마치고 벤야민이 괴테의 팔을 살짝 건드렸을 때 벤야민은 울기 시작했다. 꽃병이 아마도 괴테와 벤야민이 공통으로 지니고 있는 유럽문명을 관통하는 전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벤야민은 어쩌면 나치 독일 사회 속에서 전대미문의 핍박을 당할 유대인의 운명을 예감한 것은 아닐까.(「발터 벤야민이 꾼 꿈 이야기」) 2013년 콘치타 부르스트가 오스트리아를 대표해서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참여하는 것이 발표되자 오스트리아는 술렁거렸다. 드래그 퀸의 모습이 방송에 중계될 경우 청소년의 성적 지향에 영향을 끼치고 성 문란을 조성할 것이라는 이유로. 콘치타 부르스트는 묻는다, 만일 당신이 나처럼 태어났다면, 당신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시인은 말한다. “자신의 정체성이 다수에 속해 있으므로 내 정체성은 자연이고 소수자의 정체성은 죄악이라는 태도는 언젠가는 조직적인 폭력으로 나아갈 것이다. 나치처럼, 수많은 소수를 죽음으로 몰았던 어떤 역사처럼.”(「수염을 단 여성」) 시리아의 두번째로 큰 도시인 알레포. 인간의 역사에서는 그곳이 잠깐 전쟁 휴지기였던 시기 시인은 그곳에 방문한 적이 있다. 시인은 도시의 낭만에 자신을 잠수시킬 수 있었고 저녁이 오자 그 도시의 노을에 기대어 멀리 있는 이들을 그리워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 도시 근교를 어슬렁거리는 양들은 울면서 도시의 노을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사랑하는 사람들이여, 내가 그 도시에 머물 때 나는 십여 년 뒤에 이 도시가 다시 전쟁에 휩쓸릴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알레포 알레포」) 한 인간이 93세가 되면 무슨 말을 후학들에게 할 수 있을까. 레지스탕스에 참여한 스테판 에셀은 분노하라고 말한다. 잿더미만 남은 이차대전 직후보다 지금이 더 풍요로운데 왜, 그때는 모두가 동의하던, 그리고 정열로 밀고 나가던 그 프로그램들이 지금, 우리는 왜 위기에 처해 있는가. 그래서 그는 말한다. 분노하라고, 젊은 당신들이여, 분노하라고, 분노에서 저항은 나온다고.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낙담이야말로 이 세상을 이렇게 지속하게 만드는 거라고.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것은 저항을 하는 것. 저항의 의미는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것”이기에.(「왜 ‘분노하라’인가?」) 작가의 말 섞이자. 말은, 한 인간의 말은 아주 순수하고도 순수하니 순수한 제 말만이 있다, 라는 철조망을 넘어버리자. 조금이라도 벗어나자. 스민 말들이 짜놓은 세계의 양탄자 위에 미끄럼틀을 놓고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가자, 야호! 다시 내려오자, 야호! 우리가 순수한 말이 있다는 믿음으로부터 자유롭다면 어떤 경계는 풀려 말은 우리로부터 자유로우리. 우리도 말에게서 자유로우리. 어떤 말도 순수 혈통이 아니며 단일하지 않으며 우리에게는 지킬 말이 있는 게 아니라 경계를 열어 받아들일 말만이 있으리. 낯선 말들을 받아들이자. 섞이자. 2013년 가을 허수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