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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폭군 올가미 돌이킬 수 없는 일들 돈 호사다마 이상한 동거 꿩 먹고 알 먹고 죄와 벌 돌아오는 사람들 작가 인터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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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댁은 오 남매를 데리고 전쟁 때 과부가 아닌 과부가 되었다. 전쟁이 터지자 남편은 재화, 재희, 재순, 재준, 재성 다섯 남매를 남겨 둔 채 호랭이 같은 청주댁 눈을 피해 슬금슬금 드나들던 막걸리집 작부의 손을 잡고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전쟁통에 남편 없이 다섯 남매를 데리고 살아가는 것은 죽느니만 못한 일이었다.
--- p.11 세 식구는 밥상에 앉을 때나 얼굴을 마주 대했지만 마치 벙어리들처럼 밥만 꾸역꾸역 먹을 뿐 한마디 대화도 오가지 않았다. 재순은 컴컴한 방에서 재화 생각이 날 때마다 울었다. 그리고 재준은 도통 일에 집중하지 못했다. 그럴수록 주인의 폭언은 점점 더 거칠어졌다. --- p.47 그렇게 세영은 버려졌던 자신의 삶을 끌어올려 자신만을 오롯이 사랑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가야 한다며 스스로 되뇌었다. 그렇게 청주와 연결되어 있던 올가미를 한 줄 한 줄 끊어 내며 어두운 국도를 달렸다. 그러나 그곳에는 더 어두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 p.69 가끔 시장에 장을 보러 나갈 때 사람들이 “택시!” 하며 큰 소리로 부르는 모습을 볼 때마다, 자신도 언제쯤 한 번 타 볼 수 있을까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했던 택시였다. 세영은 “택시…” 하고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부르며 손을 들어 보였다. 세영의 삶은 그렇게 자신의 의지와 아무 상관없이 타인이 던진 윷가락처럼 공중으로 던져졌다. 도가 나올지 모가 나올지 무엇이 되어 떨어질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 p.86 이렇게 인생이 꼬여 가고 있는데, 주변에서는 조금씩 조금씩 사는 모습들이 달라지고 있었다. 신작로 옆에는 재제소도 들어오고 정미소도 생겨 기계 소리가 크게 울렸으며, 시장도 점점 활기를 띠며 커져 갔다. 하지만 집을 사고 땅을 샀음에도 마음은 가볍지 않았다. 오히려 그 돈으로 인해 자신이 덫에 걸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 p.105 그해 겨울은 너무도 추워 술이 취해 얼어 죽거나 갈 곳 없는 거지들이 많이 얼어 죽었다. 손님들이 어디서 사람이 얼어 죽었다는 말을 할 때면 재준은 가슴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혹시 재성이 어딘가 떠돌아다니다 굶고 얼어 죽은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고통스러웠다. 이 고통의 시간이 영원히 끝나지 않고 이어질 것 같은 생각에 몸서리가 쳐졌다. --- p.130 사람은 나이가 들면 철이 들고 변한다고 하지만 그런 말은 그저 세상에 떠 도는 헛소리일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들면 이런저런 듣는 말도 있고 세상 물정을 알아 자신의 본성을 교묘히 숨기며 살다 죽는 사람들도 있지만 수원댁처럼 자신의 본성을 그대로 지닌 채 세상이 자기를 외면한다는 피해 의식에 싸여 혼자 괴롭고 외롭게 살다 가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 p.156 밤이 깊어서야 그들은 잠자리에 들었다. 이제 그들은 더 이상 춥지 않고 두렵지 않고 가슴이 답답하지도 않았다. 새로운 날이 밝아 오고 있었다. 나무에 새순이 돋고 꽃이 피듯 이제 그들은 전쟁으로 황폐해진 폐허 속에서 가난과 굶주림을 딛고 힘차게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것이다. --- p.214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하는 것은 제가 새로 태어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 같은 경이로움이더군요. 이 세상은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보물찾기처럼 숨겨져 있는 것 같아요. 아름다운 옷을 짓듯 보물 같은 글을 써보고 싶었습니다. ---「작가 인터뷰」중에서 전쟁 직후의 삶은 가난하고 비참했지만, 그 속에는 욕심 없이 사랑하고 용서하던 아름다움이 있었어요. 저 역시 때로는 화려한 타인의 삶이 부러울 때도 있어요. 하지만 가난해도 매일 최선을 다해 달려온 제 삶 역시 넉넉하고 찬란하게 빛났다고 제 자신에게 가만히 속삭여주고 싶었습니다. ---「작가 인터뷰」중에서 요즘 세계정세도 참 불안정하고 모두가 참으로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묵묵히 견뎌온 그 시리고 아팠던 보릿고개의 기억을 다시금 마음에 새겨보면 어떨까요. 그 끈질기고 강인한 생명력을 기억하며, 우리 대한민국이 세계 속에 우뚝 서서 또 다른 100년을 향해 힘차게 달려 나갈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작가 인터뷰」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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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폐허 속 ‘거적대기’ 하나에 의지해 생을 버텨내던 소녀가 반세기의 세월을 건너 미국의 화려한 ‘드레스 디자이너’가 되어, 바늘 대신 펜을 쥐고 시대의 증언자로 나섰다. 김선 작가의 『잊혀진 날들』은 굶주림과 뼈저린 가난이 인간의 밑바닥을 얼마나 참혹하게 무너뜨리는지, 그럼에도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어떻게 끝내 서로를 껴안고 용서하게 되는지를 묵직한 리얼리즘으로 엮어낸 소설이다.
풍요로운 선진국 대한민국만을 보고 자란 오늘날의 독자들에게 이 책은 그저 지나간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피눈물 나는 헌신으로 오늘의 기적을 일궈낸 윗세대의 숭고한 회복기이자, 잊어선 안 될 우리의 단단한 뿌리를 확인하는 시간이다. 세대와 세대를 잇는 가슴 뭉클한 이해와 화해의 장을 마주하고 싶다면, 작가가 한 땀 한 땀 정성껏 지어 올린 이 뜨겁고 애틋한 시대의 기록을 기꺼이 펼쳐보길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