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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 한 장의 사진에 십 년을 머문 적이 있다.
096 나는 오랫동안 쌓이고 뒤엉킨 시간 뭉치 129 개인적이고 특수한 빛의 뿌리들 137 새 공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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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공중은 이토록 닮고도 멀어서 들리지 않는다.
--- p.99 눈 감았다 뜨면 모르는 세계의 입구. 내가 들리나요? --- p.101 공사장 여름과 미웠던 소도시의 냄새를 구분하지 못해서 뿌리가 자라 공중이 되었다. 공중이 내려앉아 뿌리가 되었다. --- p.109 나를 만들고서 나를 떠나가는 작은 죽음의 목록을 소리 내어 읽는다. --- p.120 공중과 뿌리는 전부 같은 땅에서 시작되고 나만 아는 거짓말이 늘어난다. --- p.125 사진 가장 어두운 부분에는 무엇이 될지 기다리는 사물과 사람이 머문다. 나에게 블랙은 아직 결정되지 않은 것들의 자리다. --- p.132 사과 껍질처럼 얇은 어둠이 만드는 뉘앙스. 그 앞에서 신중해질 때마다 나는 이 자리가, 시를 대하는 태도를 불러온다고 느꼈다. 원하는 언어를 가장 정확하게 성취하기 위해 같은 문장으로 돌아가는 시인의 자리 같다고. --- p.133 ‘공중 뿌리’는 공중에 걸고 키우는 식물, 공기뿌리의 또 다른 말이다. 땅을 딛지 않고도 자란다. 언제든 탈락하고 어디로든 뻗을 수 있다. 무게 중심이 계속 달라져서 취약하기도 하다. 이게 집을 둘러싼 나의 오래된 입장이다. --- p.139 우리는 잘려 나간 주변부와 움켜쥔 중심부의 합이다. 기억의 일부는 커다랗게 부풀려 내 안에 보관된다. 어떤 사건은 통째로 지워진다. 한 사람이 몸에 지니는 시간의 목차는 계속해서 편집되는 중이다. 깨진 유리같이 우리는 파편들로 기억된다. --- p.140 「공중 뿌리』는 살기 위해 공중에서 손 뻗는 행위이자 의지다. 접촉면을 확인하며 반응해 온 한 개인의 기록인 동시에 저마다 분투해온 집단의 증언이기도 하다. --- p.1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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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에 떠도는 존재를 향한 눈짓과 손짓
때로 총에 비유될 정도로 카메라는 공격성을 지닌 도구다. 눈에 띄지 않고 몰래 피사체에 다가가는 몸짓, 다른 이들보다 더 재빠르게 프레이밍하는 몸짓, 셔터 찬스가 제대로 명중했는지 확인하는 몸짓, 이러한 몸짓은 저격수와 유사하다. 그런 탓인지 때로 수줍던 이마저 카메라를 들면 저돌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일단 카메라를 잡으면 적진으로 뛰어들어 원하는 이미지를 훔쳐 오는 것이다. 그 쾌감이 비록 우리의 시선을 윤리적으로 무디게 만들지라도, 그 에너지가 없었다면 이미 사진은 푸석하게 말라비틀어졌을 것이다. 더 높이, 더 멀리, 더 가까이, 더 빠르게 (훔쳐)보려는 의지가 결국 사진이라는 거대한 눈덩이를 굴린 원동력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훤의 카메라는 어느 순간, 어떤 장면에서도 몰래 재빠르게 안으로 치고 들어가지 않는다. 그의 사진 주변에는 ‘선뜻 치고 들어갈 수 없음’의 분위기가 맴돈다. 가까이보다는 조금 거리를 두고, 피사체를 불러 세우기보다는 그 주변을 계속 서성이며, 앞을 마주하기보다는 뒤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자꾸만 주변부를 더듬는다. 이는 카메라를 들고 있지만 바라본다는 의식에만 몰입하기에 앞서 이미 나 자신이 먼저 보일 거라고 알아채기 때문일 것이다. 언제나 타자일 수밖에 없는 존재들은 아무리 숨기려 애써도 결국 드러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낯선 땅에서 주류와는 다른 얼굴, 중심과는 다른 말투를 지녔다는 그 이유만으로도. 안으로 더 안으로 치고 들어갈 수 없던 이훤의 눈과 입은 바라봄과 보여짐 사이에서, 모국어와 외국어 사이에서 밖으로 또 밖으로 밀려난다. 그 눈과 입은 나의 얼굴을 닮은 형상을 나의 말투와 닮은 단어를 쫓는다. 이방인의 얼굴과 말투처럼 주류에 속할 수 없고 중심에 머물 수 없는 그 형상과 단어들은 서로 뒤섞여 공중을 떠다닌다. 이훤은 자신을 포함해 땅에 정착하지 못하는 모두가 함께 머물 곳을 찾아 헤맨다. 이 여정의 파편들이 때로는 사진으로, 때로는 시와 산문으로 드러나는 순간을 책 『공중 뿌리』에서 마주할 수 있다. 계속 자꾸만 ‘무언가로부터 이탈하는 동안’ 바라보았거나 적었던 사진과 글에는 주변부에서 떠도는 존재들을 다정하게 호명하는 이훤의 눈짓과 손짓이 깃들어 있다. 이제 그의 눈은 자신과 닮은 그들이 떠다니는 몸짓 너머의 공중을 바라본다. 이제 그의 입은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함이란 어쩌면 어디든 가 닿을 수 있는 자유를 뜻하는 게 아닐까 중얼거리기 시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