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질기게 궁금해본 사람만 만날 수 있는 사진이 있다고 믿는다. 한편 혼자 들어섰다가, 먼 곳의 누군가와 얼떨결에 함께 돌아오고 마는 광경도 있다. 이 책에는 둘 모두 있다.
김겨울의 사진기는 발이 가볍다. 편견 없으며 호기심으로 반짝인다. 거리를 오가며 찍은 이미지이므로 아마도 그는 날렵하게 촬영했을 것이다. 빠르게 담긴 피사체가 한자리에 오래 머문 듯한 누군가를 떠올리게 만드는 건 왜인지. 남았기 때문에 점점 더 빨라지는 자들과 시간을 끝까지 쪼개느라 정지해버린 대상을, 김겨울이 찍은 사진 사이에서 생각한다.
작가가 쓴 문장은 보폭이 크다. 그런데 정교하고 탄력적이어서 이미지에 밀착하게 된다. 읽다 보면 언제든 뻗는 쪽으로 촉발될 수 있을 것 같다. 몸을 끌어당기지만 동시에 자유롭게 놓아주기도 하는 종류의 악력. 김겨울이 쓴 문장에서 느껴지는 힘이다.
우리에게 사진 읽기는 ? 특히 산문이 수반된 사진집은 ? 이인삼각과 비슷하다.
이인삼각은 두 사람이 자기 왼발과 옆사람의 오른발을 묶은 뒤, 동시에 앞으로 나아가는 경주다. 한쪽이 너무 빨리 이동하면 무게중심이 쏠려 이탈하고 만다.
사진산문집에서 움직임을 주도하는 건 사진이다. 그리고 거기, 오른발을 묶은 선수는 사진을 읽는 인간이다. 그러니까 이미지만큼 중요한 건, 자기 반대편 발과 망막을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자, 곧 독자다. 읽는 주체가 걷기로 하는 만큼만 사진은 이동한다. 그 둘을 묶는 끈은 산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사진산문집의 균형은 어렵다. 사진이, 산문이, 또는 독자가 자신에게 편한 방식으로만 이동할 때 셋은 쉽게 헐거워진다. 끊어져 뿔뿔이 흩어지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텍스트 때문에 실패하는 이미지를, 이미지 때문에 좁아지는 텍스트를 자주 목격해왔다. 나 또한 이런 고민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김겨울 작가와 정재완 디자이너는 이 책에서 그 어려운 일을 해낸다. 다른 시기 다른 도시에서 포착된 인간들, 비인간들이 그리하여 표면 너머로 나아간다. 여러 쌍의 의미로 태어난다. 사진 때문에 문장이 선연해지고 문장들 때문에 사진이 넓어지는 것. 사진산문이라는 장르를 채택했기 때문에, 이 책은 두 언어 중 하나만 남을 때 갖기 힘든 속도와 부피를 갖게 되었다.
주목할 점은, 김겨울의 시각 언어와 활자 언어가 이어 쓴 문장처럼 읽힌다는 것이다. 그 둘은 번갈아가며 또 때때로 유기적으로 몸을 섞으며 우리로 하여금 빛을, 기다림을, 집요한 지도를, 두려움과 경이를, 이해할 수 없어서 잘라 보관하는 믿음을, 믿게 한다. 두 다리를 믿게 한다.
이 이인삼각이 끝나지 않길 바라며 페이지를 넘겼다. 좋은 문학이 또 다른 문학을 불러일으키듯, 김겨울의 사진산문은 우리가 모르는 경주들로 이어질 것이다. 발 묶은 주자가 많아질 거다. 『모르는 채로 두기』를 읽는 내내 경기장으로 들어서고 싶은 마음 때문에 수차례 내가 움찔하고 또 차올랐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