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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며] · 4
나의 무대는 끝나지 않았다 - 배정혜, 그날 1부 예언된 춤의 아이 1장 삼방의 약수터, 예언된 춤의 아이 · 15 명당 기운을 받고 태어난 17 운명을 예비한 서른여섯 개의 망토 24 세 살, 생생한 예언 같은 꿈 27 밤길을 걷는 작은 무용수 29 여섯 살, 파랑새의 운명적 비상 31 피난길과 홍릉의 가난 34 장추화 연구소에서 보낸 어린 날들 39 장추화 연구소의 레퍼토리들 43 전쟁과 함께 시작된 일곱 살 여름 47 내 이름을 건 첫 무용 발표회 54 다시 서울로, 종로 3가 58 운명처럼 만난 김백봉 선생님, 천재라 불린 소녀 61 낙원동 연구소 64 제1회 전국 무용 콩쿠르 67 키우려는 사람, 살리려는 사람 70 군용트럭, 흙먼지로 들어가던 열 살 74 열 살이 넘어선 계단 한 칸 77 2장 천재 소녀, 본격적인 춤 인생 · 81 폐허 위에서 배운 발레 83 가장 깊은 흔적을 남긴 황진이 86 시공관에 내린 작은 별 하나 90 길 위의 삶 95 무대가 집이던 시절 100 촛불 아래에서도 계속된 춤 102 논산훈련소 공연 104 어머니의 손길과 여관의 아침 풍경 106 묻지 못한 시간, 남겨진 춤 108 사랑받았다는 증거 110 3장 벼랑 끝에서 움켜쥔 나만의 길 · 113 운명이 손을 내밀었다 115 입학서류 대신 무대 위에 선 아이 118 발표회가 맺어준 인연 124 책상보다 무대가 먼저였던 나날 128 처음으로 혼자가 된, 일본에서 8개월 131 미카도, 나를 증명한 무대 135 붙잡는 손, 돌아가는 마음 139 내려놓는 토슈즈, 시작된 길 143 돌아왔으나, 아무 데도 속하지 못했던 나날 145 스물두 살, 고등학교 2학년 149 책가방과 개인 지도 152 지각한 시험, 지각하지 않은 운명 155 본격적인 안무를 시작하다 159 큰삼촌이라는 운명 162 새 이름, 새 마음, 배숙자에서 배정혜로 165 4장 무너진 자리에서 열린 문 · 169 군산에서 만든 꿈 171 3회 발표회, 무대 위 각설이와 혼령 174 배정혜라는 이름을 처음 건넨 날 177 체육과 대학원, 시련과 인내의 시간 182 창작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 187 박수 소리가 잦아든 자리, 남겨진 공허 190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태어나는 시간 193 울면서 나온 문 앞에서 196 선화로 향한 문 하나 199 5장 선화에서 시작된 두 번째 춤 인생 · 201 가르침이라는 새로운 춤 203 혼자서는 불가능했던 일 206 결혼식마저 미루게 한 열정 209 몸의 문법을 만들다, 바기본의 탄생 212 바기본이라는 이름 216 시험대에 오른 바기본 219 바기본을 둘러싼 소문 222 사람으로 세운 학교 225 발등에 꽂힌 바라, 위기 속에 핀 사제 간 227 인생의 나침반이 된 사건 230 결핍 속에 타오른 불꽃, ‘타고 남은 재’ 그건 나였다 232 반대 속에서 지켜낸 춤 235 음악이라는 동반자, 황병기라는 이름 238 운명을 통과해야만 태어나는 작품 240 리허설 없는 밤, 삶으로 준비된 무대 243 눈을 뚫고 온 관객들 245 비로소, 나의 예술이 된 순간 247 |
裵丁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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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참 특별한 아이였단다.”
어머니의 이 한마디는 긴 세월을 지나 내 삶 전체를 관통하는 예언이 되었다. 내가 태어난 1943년 2월 21일, 세상은 지독한 꽃샘추위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내가 태어나던 그 순간, 맹위를 떨치던 추위가 언제 그랬냐는 듯 사그라들었다고 한다. “남들은 추위에 어깨를 움츠릴 때도 너는 팔을 위로 뻗었단다. 마치 얼어붙은 세상을 향해 춤을 길어 올리는 아이처럼.” --- p.17 선생님은 놀란 표정으로 내 동작을 지켜보셨다.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얘는… 천재예요.” 그 말은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보다도 더 선명하게 내 귀에 꽂혔다. 춤을 추기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들은 단어였다. ‘천재.’ 그 단어는 그날 이후, 오랫동안 나를 이끌고 다녔다. 나 는 한 달 배울 것을 이삼일 만에 배워버렸다. 큰삼촌은 그저 놀 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곳에서 춤이 나를 이 세상 어디 든 데려갈 것이라는 기대가 생겼다. 나는 한 번만 보고도 동작 을 정확하게 따라 할 수 있었다. --- p.62 1961년 6월, 한국 땅을 다시 밟았을 때, 나는 내가 떠났던 자리로 그대로 돌아올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사이, 전혀 다른 얼굴이 되어 있었다. 5·16 이후 학교는 달라져 있었다. 출석 일수는 예전처럼 더 이상 ‘봐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교장이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문교부에서 서류를 직접 들여다보는 시대가 된 것이다. 교장도, 학교도, 누구 하나 내 편이 되어줄 수 없었다. 고등학교 2학년으로 다시 다니라는 통보를 받았을 때, 나는 말문이 막혔다. --- p.145 배숙자라는 이름으로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고, 대학에도 가지 못했지만 그 이름이 너무 많이 알려진 탓에, 큰삼촌도 감히 이름을 바꿀 엄두를 내지 못하셨다. 나는 혼자 틈만 나면 작명소를 찾아다녔다. 좋은 이름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 운명처럼 새 이름이 정해졌다. 정혜. 1969년, 나는 배정혜로 다시 태어났다. 이름이 바뀐 순간, 마음속 깊은 곳에서도 무언가 조용히 변하고 있었다. 배숙자였던 시절이 가고 배정혜가 된 나는, 그 이름만으로도 새롭게 숨을 쉬는 기분이었다. --- p.166 그해 가을,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거대한 막이 오르기 직전, 나는 무대 뒤 어둠 속에서 거칠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켜야 했다. 발령받은 그해에 바로 예술제를 올린다는 것, 그것도 고작 중학교 1학년과 2학년뿐인 어린아이 120명을 데리고 국립극장이라는 대무대를 채운다는 것은 무모함에 가까운 도전이었다. 사실 그때 나는 인생의 중대사인 결혼 날짜를 받아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는 오직 아이들의 동선과 춤사위뿐이었다. 120명 전원이 한국 무용부였던 시절, 그 아이들 하나하나를 무대 위에서 빛나게 하려면 내 온 신경을 그곳에만 쏟아야 했다. 결국 나는 결혼식을 포기했다. 남들에겐 일생일대의 사건이었을 결혼식을 미루고 나는 연습실 바닥에 앉아 아이들의 땀방울을 지켜보는 쪽을 택했다. --- pp.209-210 비로소, 나의 예술이 된 순간 한 해가 마무리되어 갈 즈음,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다. 〈타고 남은 재〉가 그해 최고의 무용 작품으로 선정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동아일보를 비롯한 여러 지면에 작품명이 실렸고, 무용을 넘어 한국 창작예술사에서도 최우수작으로 꼽혔다는 평이 이어졌다. 그 모든 기록을 제대로 남겨두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그때 나는 자료를 모아두는 법도, 역사를 정리하는 법도 몰랐다. --- p.247 “한국무용의 양식 정착과 무대화 성공은 큰 수확. 배정혜 씨의 〈타고 남은 재〉는 한국무용 의식화 및 무대화 작업에 성공한 예술정신이 깃들어진 올해의 큰 수확이다.” (1977. 12. 중앙일보 박금옥 기자) --- p.249 “배정혜 예술은 멋의 차원이 아닌 방법론에 있다. 이는 한국춤 고전미학에의 도전 같으면서도 이를 보완, 발전시키는 새 해석으로 보는 것이 옳다. 그리하여 앞으로 제2, 제3의 방법론이 나타날 것이 자명한 일이며, 우리춤의 미래상의 방향이 발레적 안경만을 통해서 보아온 우리춤의 현대화로부터 돌려질 수 있다는 훌륭한 증거를 보인 것이다.” (1978. 11. 신동아 조동화) --- p.2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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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종 묻는다.
무대는 언제 끝나는가. 막이 내려오면 끝나는가, 박수가 멎으면 끝나는가, 아니면 더 이상 몸이 예전처럼 움직이지 않을 때 끝나는가. 내 대답은 언제나 같다. 나의 무대는 끝나지 않았다. 무대는 내가 살아온 시간 그 자체였다. 내가 숨 쉬며 버텨온 자리였고, 나를 나로 만들었던 유일한 언어였다. 나는 춤으로 태어났다. 말을 배우기 전에 몸이 먼저 세상을 기억했다. 기쁨보다 먼저 고통을 몸으로 배웠다. 사랑보다 먼저 인내를 몸으로 익혔다. 춤은 나에게 직업이기 이전에 생존이었고, 예술이기 이전에 삶의 방식이었다.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나는 법을 가르쳐준 것도 춤이었고, 길을 잃을 때마다 나를 다시 불러 세운 것도 춤이었다. 이 책은 성공담이 아니다. 찬란한 기록만을 모아놓은 연대기도 아니다. 오히려 수없이 흔들리고, 의심하고, 버티며,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에 대해 조곤조곤 이야기하고 있는 것에 가깝다. 누군가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던 시간, 내 방식이 틀렸다고 손가락질받던 순간들, 세상이 나를 밀어낼 때 끝까지 나를 붙잡고 있었던 단 하나의 끈, 그 모든 이야기가 여기에 있다. 나는 오래도록 한 길을 걸어왔다. 그 길은 늘 환하게 열려 있지 않았다. 때로는 눈보라 속이었고, 때로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외길이었다. 그 길 위에서 나는 나만의 질문을 던졌고, 나만의 답을 몸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태어난 것이 ‘바기본’이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모든 무대가 나의 춤이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늘 경계에 서 있었다. 전통과 창작 사이에서, 교육과 예술 사이에서, 한국과 세계 사이에서, 여자로서의 삶과 무용가로 사는 삶 사이에서. 어느 한쪽을 버리지 못해 늘 불편했지만, 바로 그 불편함이 나를 앞으로 밀어냈다. 나는 타협하는 대신 질문했다. 멈추는 대신 몸을 던졌다. 이해받기보다는 끝까지 밀고 나갔다. 나는 안다. 춤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무대에서 내려와도, 극장을 떠나도, 국경을 건너도, 춤은 몸 안에 남아 또 다른 무대를 만든다는 것을. 지금, 이 글을 쓰는 이 순간도, 나는 여전히 춤을 추고 있다. 다만 동작이 문장이 되었고, 호흡이 기억되었을 뿐이다. 이 책은 내 인생의 무대 기록이다. 빛났던 순간만이 아니라, 빛을 견뎌야 했던 순간들까지 포함한 무대. 그럼에도 끝내 춤을 선택했던 한 인간의 이야기다. 춤은 나의 영원한 고향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나는 오늘도, 조용히 무대 위에 서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