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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인생의 계절들
어느 날, 한 나무를 만났다 천 년의 노래, 바람과 함께 춤을 epilogu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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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늦은 봄날이었던가.
햇살이 따스하고 바람이 가슴을 술렁이게 했던 날. 운전하며 가던 중 길가의 가로수가 봄볕을 받으며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았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 반짝반짝 빛나는 잎사귀들이 사르랑사르랑 소리를 내며 바람결에 파르르 떨고, 자유롭게 흔들리는 모습들이 내게는 ‘생명’ 그 자체로 보였다. --- p.32 그 나무는 내가 지난 30여 년 동안 그린 나무 그림들의 결정체를 보는 듯했다. 무려 1300여 년이 넘는 수령을 지닌 반계리의 은행나무였다. 긴긴 세월을 살아낸 그 나무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는 내내 고맙고 가슴 벅차고 왠지 모를 힘이 솟아났다. 나는 순간 그 나무의 사계절 모습을 현장에서 직접 그려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그 느낌들을 일기처럼 기록으로 남겼다. --- p.46 현장에서 살아 있는 대상과 마주 앉아 그림을 그리면 늘 생각지 못한 문제들이 발생한다. 변덕스런 날씨로 인한 빛의 현란한 변화가 그 첫 번째다. 변화하는 빛을 좇아 그리려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고 부질없는 짓인지 금세 알아차린다. 한순간도 제자리에 머물지 않는 빛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 실내에서 데생을 할 때의 명암 개념으로는 도저히 그림을 제대로 그릴 수 없다. 바람으로 수없이 흔들리는 대상의 색은 또 어떠한가. 현장은 이처럼 해결하기 힘든 문제투성이다. 그걸 해결하자 덤비면 그림은 관념적으로 치닫는다. 그러할 때 그림에 진실이 담길 수 있겠는가. 그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순간순간 느낌대로 바람과 함께 춤을 추다 보면 어느새 문제는 다 사라지고 생기 넘치는 붓질과 색채의 향연이 고스란히 화폭에 전해진다. --- p.82 잔설이 내려앉은 고목과 새해 첫날을 함께 했다. 간간히 옅은 햇살이 남은 눈을 녹여 준다. 셰익스피어는 ‘눈이 녹으면 그 흰 빛은 어디로 가는가?’라고 했는데. 눈에 젖은 거대한 몸집을 겨울 햇살에 말리는 나무의 빛깔이 꽤나 다채롭게 보인다. 흰빛이 제빛이 되어. 은행나무는 가지가 제멋대로 뻗어 있다. 그 가지를 보면서 새삼 ‘자유’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한 몸체에서 난 가지들이 어찌 저리도 자유롭게 피어날 수 있단 말인가. --- p.104 사생을 하는 동안에는 나도 모르게 붓질이 진행되는데 한순간 몰입하고 뒤로 나와서 보면 내가 한 것이 아니라 나무가 나를 그렸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를 비운다는 게 이런 건가. 나무가 그린 나. 그간의 은행나무 작업은 나에게 나를 바꾸는 시도였다. 예전 나의 작업은 대상을 바꾸면서 나를 표현하는 작업이었다면 5년간의 반계리 은행나무 작업은 대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같은 대상을 놓고 나를 관찰하고 그로 인해 내가 변화하는 작업이었다.. (…) 이 책은 내가 이러한 생각과 의지를 가진 예술가로 살아온 내 삶의 흔적을 엮은 책이다. 부끄럽지만 내 나름의 기록을 가감 없이 담았다. --- p.114, 「epilogue」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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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를 몰입시키는 그림 명상
"삶의 사계절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시간" 텍사스의 마크 로스코 채플,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의 모네 수련 연작, 국립중앙박물관의 사유의 방과 달항아리. 여기에는 공통점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가 하루 종일 작품 앞에 서서 시간을 보내다 눈물을 흘리고 돌아온다는 점이다. 최선길의 은행나무도 그렇다. 천 년 넘는 세월을 살아낸 거대한 나무의 그림을 본 사람들은 감동과 전율에 휩싸인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이 느껴지는 듯, 금방이라도 가지가 흔들 듯하다. 이 나무 그림 앞에 오랜 시간 서서 사람들은 천 년 넘게 산 나무의 삶이 아니라 자신의 지나온 삶을 반추한다. 바람에 나부끼는 잎새들은 볼 때마다 새로운 감상을 불러온다. 보는 이의 마음이 투영되는 까닭이다. 자연 그리고 인간에 대한 깊은 사색과 철학 화가 최선길의 글과 그림 한 가지 일에 몰두한 장인의 삶은 궁극적으로 깨달음에 가 닿는다고 한다. 화가의 삶도 마찬가지다. 40여 년간 그림을 그리며 작가가 천착한 것은 존재에 대한 성찰이다. 그 대상은 자연이기도 하고, 인간이기도 하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인 동시에 그 모든 것이 결국 ‘나’라는 하나의 우주로 귀결된다. 최선길 화가의 그림은 아름답고 편안하지만, 동시에 우직하고 묵직한 무게감이 있다. 작가의 철학이 주는 단단한 중심과 깊이 때문이다. 그의 첫책 《어느 날, 한 나무를 보았다》는 최근작만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작가가 반계리 은행나무라는 정점에 가 닿았는지 그 전체 과정을 보여 준다. 산에서 숲으로, 숲에서 나무로,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가 바라보는 화가의 시선을 따라 가다 보면, 왜 그가 5년간 매일 은행나무를 찾아가 현장에서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었는지가 느껴진다. 남해의봄날이 선보이는 ‘화가의 책’ 시리즈 오래도록 정겨운 구멍가게를 그려온 이미경 화가, 캐나다의 국민화가라 불리는 모드 루이스, 깊고 다채로운 통영 바다를 담은 작품으로 감동을 준 김재신 화가 그리고 천 년 거목을 그려온 최선길 화가의 첫 책까지, 남해의봄날은 꾸준히 국내외 주목할 만한 ‘화가의 책’을 선보여 왔다. 단순히 화가의 작품만 옮겨 담은 것이 아니라, 화가가 직접 쓴 글과 함께 엮어 작가의 삶과 생각, 작품 세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시리즈의 특별한 점이다. 또한 작품을 감상하기에 적합한 큰 판형에 오랜 소장에 알맞은 양장 제책으로 그림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꾸준한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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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사유와 철학이 담긴 최선길 작가의 글과 그림.
그의 생명력 넘치는 천 년 나무 앞에 서면 누구든 겸허해진다. - 유홍림 (서울대 총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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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가 그리는 궁극의 세상은 자연이다. 사람도, 땅도, 하늘도, 진리도 모두 자연으로 귀결된다.
도법자연(道法自然), 노자가 그리는 우주의 문양과 화가의 문양이 만나는 접점이다. - 박재희 (인문학공부마을 석천학당 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