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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풍류론
2. 술과 풍류 3. 술에 관련된 의식 기록 4. 금 주 5. 우리나라의 주점 발전사 6. 한국의 음주문화 변천사 7. 알코올로그래피(Alcoolographie) 8. 음주문화의 유형 9. 술잔과 술에 관한 기록 10. 외국의 음주문화 11. 영화 속의 음주문화 12. 시 · 문 속의 음주문화 13. 동 · 서양 주당들의 풍류세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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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페의 유통이 중지된 후로 양반층은 여전히 집에서 술을 빚어 마셨고, 일반 대중은 절에서 빚은 술을 사먹게 되었다. 볼래 사원에서는 음주는 물론 술.누룩의 제조, 판매 등이 금지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의 판매는 물론이고 사채놀이까지 하여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기도 하였다. 당시 고려의 사원은 왕실귀족과 밀착되어 있어 전답과 노비를 가지고 있어서 면세.면역의 특혜까지 입고 있었다. 그들의 횡포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이어서 스님들의 행동을 금지시켜 달라는 상소까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려사지』에 의하면 "현종 원년에 중과 여승이 술을 빚는 것을 금하였다."고 하니 미루어 보아 사원에서의 주조업이 얼마만큼 성행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고려시대의 스님들은 절을 여관과 같이 여겨 실제로 숙박업을 겸하고 이것을 계기로 술을 만들어 팔게 되었던 것이다. 현종 때 스님들에게 술 양조 금지령이 내리기도 하였으나 연등회나 팔관회 등의 행사로 절에서는 술이 떨어지는 일이 없었다. 이렇게 되자 절에 대한 주조 금지령은 유명무실하게 되고 산 속의 유명한 절일 수록 술맛 또한 일품이었다고 한다. 고려 문종 때는 나라의 의식용 술을 빚는 양온서라는 직제를 처음으로 두었다. 후에 장례식.사온서로 이름이 바뀌어 조선시대에는 태조가 고려제도를 그대로 계승하여 사온서로 이름이 남게 되었다가 내자사로 합쳐졌다. 문화.역사가 자연스럽게 흘러가듯이 주점의 형태도 차츰 특색 있는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해서 조선말에는 술을 판매하는 것이 정착화 되어 있었다. 술의 대부분이 각 가정에서 빚어지고 있었고 술을 판매하고 있는 곳에서는 소량씩 빚어 일반인에게 판매하는데, 빚는 사람에 따라 술의 질도 천차만별이었고 그 만큼 좋은 술도 많았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내자사에서 누룩 만드는 일과 술 담글 때 쓰는 정제한 곡식, 좋은 물 등을 관장하여 서민의 술과는 달리 양반들만을 위한 고급주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 사실로 볼 때 당시의 반상격차가 어느 정도였는지 가히 짐작할 수 있다. --- p.125~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