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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42011년? 이 음식이 어디서 오셨는가식탁에 앉으면 세상이 보인다 12민주주의는 장소다 15식량에도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18군식구와 상상력 21작품, 작업, 작가 252012년? 오지 않은 봄이 가고 있다텃밭이 진짜 강의실이다 30관계의 재발견, 이야기의 탄생 34‘붉은 악마’와 녹색 정치 38민주주의는 ‘마음’이다 41두 시간 동안의 ‘충격’ 44붓이 얼마나 더 있어야 하나 48누가 단골집을 빼앗아가나 51선진국은 농업국가다 55우리는 시가 더 필요하다 59잉크가 마르는 시간 622013년? 우리는 ‘나’를 빼앗겼다우리는 ‘무의식’이다 66고향 땅 위에 서서 69‘꾸러미’ 오는 날 72내가 나를 쓰는 시간 75화려한 커피숍, 쓸쓸한 1인 가구 79‘방사능 괴담’과 ‘광우병 괴담’ 82대재난을 응시하라 85차라리 아버지가 행복했다 89돈, 돈, 돈…… 100% 돈 932014년? 우리는 원래 호모센티멘털리스였고좋은 이야기가 좋은 미래다 98농민을 공무원급으로 102도로명주소와 기억상실증 106세번째는 마지막이다 109가해자가 없는 사회 113관광객과 여행자 117머리맡을 되찾자 121그룬트비와 『삶을 위한 학교』 125누가 ‘감정’을 무시하는가 129도시는 누가 만드는가 133예술은 무엇을 더 할 수 있는가 1372015년? 내 얼굴은 나를 향하지 못한다‘노인을 위한 나라’는 어디에 있는가 142독거 청년과 ‘무중력 사회’ 146아주 낯선 낯익은 이야기 150자기를 소개하는 시간 154‘몇 번 환자’와 ‘자가 격리’ 158‘두 마리 늑대’와 대학의 미래 162손 안 대고 신고 벗으니…… 166‘노후화 기술’이라는 신기술 170누가 ‘허슬러’가 아닌가 174‘혼밥’과 시의 마음 1782016년? 행복의 반대말은 불행이 아니고 ‘의미 없음’이라고때론 뒷걸음질로 걸어야 하는 이유 184낯설고 불편한 여행이 추방당했다 188‘두번째 생일’이 없다면 192‘나중에 오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196살고 싶은 집, 살고 싶은 마을 200‘워크숍’에 대해 얼마나 아십니까 204사람과 사람 사이에 법만 있다면 208분노한 다음날이 더 중요하다 212누가 호스피스이고, 누가 산파인가 216‘어서 오라, 2017. 준비됐다’ 2202017년? 손으로 생각하기다니엘 블레이크와 ‘물고기 잡는 법’ 226장미가 촛불을 꺼버린 것인가 230길보다 길이 만든 사람이 더 많다 234누가 운전석에 앉아 있는가 238매미 소리에 관한 명상 242교육 3.0, 학습혁명, 교학상장 246개포주공 1단지, 나무 1만 그루 250남들이 내려올 때 올라갔다 254흔들의자 모임, 캠프 오마바, 공론 조사 258‘멋진 사람’과 함께하는 송구영신 262손이 손을 잡을 때 기적이 일어난다 2662018년? 늙어감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내 몸에게 말 걸기 272이듬해 서울서 만나기로 했는데 276일상 속에서 ‘일상 탈출’하기 280남북정상회담과 주례사 285‘주여, 때가 왔습니다’ 289아파트 문은 누가 여는 것인가 293우리도 더 좋은 일을 하자 297어제보다 조금 더 3012019년? ‘시를 쓰게 만드는 시를 쓰는’찻잎을 깨우듯이 306‘흙밥’ 먹는 청춘과 레바논 소년 310‘빨간’ 지구와 ‘파란’ 마음 314잘 쓴 시간, 다디단 시간 318무엇을 물려줄 것인가 322‘배려 탁구’ 326콩국수 한 그릇, 스님의 한 말씀 330읽지 말고 이젠 쓰세요 334그레타 툰베리와 ‘대마 심기’ 338‘세번째 개인’과 새로운 장소 342국립대 도서관에서 1박 2일 346김장에 관한 한 생각 350화내지 않고 화내는 법 3542020년? 모든 사람은 예술가로 태어난다‘이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360또다른 기도, 버킷 리스트 364‘방역 주체’에서 ‘전환 주체’로 368“위기를 낭비하는 것은 범죄다” 372심청이 아빠에게 한 말 376장기적이고 포괄적이며 심층적인가 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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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文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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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배추는 누가 키웠을까,이 고등어는 누가 잡았을까,이 쇠고기는 어디서 왔을까 그의 93편의 산문 중 가장 먼저 소개되는 글은 우리가 매일 이용할 수밖에 없는 그곳, 「식탁에 앉으면 세상이 보인다」이다. 식탁에 앉은 아이들은 저마다 젓가락 잡는 법도, 앉은 자세도 다 다르다. 다양한 사람이 모이는 곳,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사람이 가장 자주 앉는 자리가 식탁이다. “누구나 하루에 두세 번은 앉는 식탁. 하지만 식탁은 어디에도 없는 것 같았다.” 식탁은 어디에 있는가. 식탁에 무엇이 오르고, 식탁에는 누가 앉는가. 시인이 어렸던 때 그에게 주방은 부엌이었으며 식탁은 밥상이었다. 때론 훈육 시간이 되기도 했지만, 밥상에 앉은 저마다가 주인공이 되어 하루의 이야기를 나누는 장소였다. 장소는 공간과 다르다. 인문지리학에 따르면, 공간을 인간화하고 사회화한 곳이 장소다. 그러니 그에게, 우리에게 식탁은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이야기가 전승되는 장소였던 셈이다. 장소는 인간과 사회, 인간과 지구의 관계가 형성되는 곳이다. 장소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이 곧 타자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능력이며, 장소가 없으면 감수성도 없을 것이라, 장소가 없으면 타자의 고통을 이해할 수 없다고 시인은 생각한다.그러나 개수대가 싱크대로, 밥상이 식탁으로 바뀌는 한 세대 사이, 그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시인의 가족이 땀흘려 가꾼 식재료로 만들었기에 원산지를 궁금해할 필요가 없었을 과거와 달리, 요즘의 식탁 풍경은 사뭇 다르다. 식탁에 앉아 다양한 나라에서 출발했을 식재료들을 살펴보면 우리 식탁에 오르는 이 음식들이 에너지 고갈, 기후변화, 토양 및 해양 오염 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유난히 입이 짧은 막내아들에게 사찰의 공양게송을 응용해 이 배추는 누가 키웠을까, 이 고등어는 누가 잡았을까, 이 쇠고기는 어디서 왔을까 하고 물으면 아이는 식탁에 지구 전체가 올라오고 있으며, 들과 산과 바다에서 시작해 우리 식탁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 산업문명 시스템이 개입돼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이는 기업형 화학농이나 과거의 산업문명을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의 의도는 단순하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는 존재라는, 그리하여 우리는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엄연한 사실을 일깨워주고 싶었다.” 먹지 않고 살아갈 수 없는 우리. 너무도 중요한 음식의 U턴 지점인 ‘식탁’에서 시인은 식탁이 더이상 일과 일 사이에 있는 경유지에 불과하지 않기를, 다시금 우리의 이야기가 빚어지는 삶의 자리가 되기를 바라본다. “우리가 밥 한술을 들면서 햇빛과 땅과 비와 바람과 바다를 떠올릴 수 있다면, 우리에게는 아직 희망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시가 필요하다내 안에, 우리 사이에 시가 많아져야 한다 고대 중국인들은 보이되, 잘 보이지 않는 코를 자기 자신이라 여겼고 그렇게 우리의 ‘코’는 스스로 자自 자의 기원이 되었다.(「아주 낯선 낯익은 이야기」)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눈으로 코에 초점을 맞출 수 없듯 우리는 자신 안의 ‘수많은 나’를 장악하기 어렵다. 이야기가 빚어지는 ‘식탁’이 사라진 세대(「식탁에 앉으면 세상이 보인다」), ‘식량 문제’를 배제하는 사회(「식량에도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대면하지 않는 현실(「가해자가 없는 사회」) 등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바라보고, 그 안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그것으로부터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낼 기회를 잃고 있다. 시인은 민주주의를 바라보면서도 투표장에서만 실감 가능한 민주주의를 바라지는 않는다. 그가 바라는 민주주의는 과연 무엇일까. 승패를 가르는 스포츠 경기와 선거는 분명히 다름에도 어째서 정치가 어느새 스포츠화된 것인지 시인은 묻는다.(「‘붉은 악마’와 녹색 정치」) 그가 사는 아파트 동대표 후보 공약에는 사람이 없고 경제 논리만 존재했다. 시인이 후보라면 어떤 공약을 내세웠을까? “주말마다 벼룩시장을 열겠습니다, 텃밭을 만들겠습니다, 경로당에서 옛날 얘기 듣는 밤 행사를 갖겠습니다……”(「민주주의는 ‘마음’이다」) 그러다보면 서로 마음을 열고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가 단절되었던 ‘아파트’에서도 마을을 위한 창의적인 이야기가 샘솟을 것이라 시인은 믿는다. 티비 프로그램 속 할머니는 죽어가는 소에 대한 보상은 필요 없으니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내는 심정’으로 도우라고 말한다. 시인은 할머니가 백석 못지않은 시인이라고 믿는다. 시는 감수성이고, 우리가 감수성을 회복하지 않는 한, 이 무지막지한 돈의 논리에서 벗어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테니. “그래서 우리는 시가 필요하다. 내 안에, 우리 사이에 시가 많아져야 한다.”(「우리는 시가 더 필요하다」) 좋은 삶이란 과연 무엇인가, 내 삶이 바람직하지 않다면 그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이 같은 질문을 부여잡고 삶과 사회, 정치와 국가를 돌아본다. 문제는 이야기다. 이웃과 더불어 자기(들)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창의성이다. 이 같은 창의성이 공포와 분노, 무기력을 건강한 에너지로 승화시킨다.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자기 정치, 즉 삶의 정치의 출발점이다. 도시 곳곳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내자. 연극, 노래, 춤, 책읽기, 글쓰기, 걷기 등 어느 것이든 좋다. 이야기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좋은 이야기를 빚어내자. 좋은 이야기가 좋은 미래다._「좋은 이야기가 좋은 미래다」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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