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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은 손가락으로 쓰다
루게릭병 환자 이원규 박사의 한국판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이원규
동아일보사 2005.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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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저자 소개 1

1960년 충남 예산에서 1남4녀 중 막내로 태어난 이씨는 삽교초교, 예산 오가초교, 보령 대남초교, 보령 대명중, 예산고를 거쳐 고려대 국문학과와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향학열이 남달랐던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한국방송통신대 국문학과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불문학과까지 수학했다. 또 한국외국어대 교육대학원에서 영어교육전공 석사과정, 성균관대 대학원 국문학과 국문학전공 석사과정을 졸업했으며, 2004년에는 성균관대 대학원 국문학과에서 현대문학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땄다. 20여년 동안 모두 7개의 학위를 받았다. 1985년 3월부터 2004년 11월까지 20년간을 서울 혜화동
1960년 충남 예산에서 1남4녀 중 막내로 태어난 이씨는 삽교초교, 예산 오가초교, 보령 대남초교, 보령 대명중, 예산고를 거쳐 고려대 국문학과와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향학열이 남달랐던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한국방송통신대 국문학과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불문학과까지 수학했다. 또 한국외국어대 교육대학원에서 영어교육전공 석사과정, 성균관대 대학원 국문학과 국문학전공 석사과정을 졸업했으며, 2004년에는 성균관대 대학원 국문학과에서 현대문학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땄다. 20여년 동안 모두 7개의 학위를 받았다.

1985년 3월부터 2004년 11월까지 20년간을 서울 혜화동 동성고에서 영어교사로 재직했으며, 루게릭병 발병전까지는 3학년 담임을 9년이나 맡을 정도로 열정이 강한 선생이었다. 담임반 급훈은 늘 ‘이웃 사랑’이었고, 스스로 모범을 보였다. 언제나 유머가 넘치고 자상했지만 ‘등교시간 지각’ ‘학생간 폭력행위’ ‘시험중 부정행위’만은 절대로 용납하지 않아 학생들 사이에스는 ‘피바다’와 ‘람바다’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1993년 박재삼 시인 추천으로 문예지에 ‘매미’ ‘강물이 어두워져’ 등의 시를 발표하여 시단에 데뷔한...이후 ‘내일의 시’ 동인 등으로 활동했다. 현재 ‘한국루게릭병연구소’와 인터넷카페 ‘루게릭병 네트워크’사이트를 운영하면서 같은 루게릭병 환자들을 돕는 일에 열정적으로 나서고 있다. 몸이 허락하는 한 정기적으로 병문안, 환자가족을 위한 정기간담회도 마련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 계속해서 ‘한국ALS협회’(http://www.kalsa.org)와 연계하여 루게릭병 홍보활동과 ‘중증장애인연금법’ 추진 등 장애인복지를 위해 활동하기를 바라고 있다.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05년 12월 21일
쪽수, 무게, 크기
279쪽 | 506g | 152*220*20mm
ISBN13
9788970904450

책 속으로

어릴 적부터 들어온 어른들 말씀 중에 “아홉수를 조심하라.”는 말이 있다. 예를 들어 집안 식구 중에 스물아홉 살, 서른아홉 살, 예순아홉 살 등 아홉수에 든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 개인적으로나 집안에 안 좋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물론 나는 이것이 미신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아홉수가 세 개나 들어간 1999년. 우울하고 암울한 세기말 데카당스(decadence, 퇴폐주의) 분위기의 어수선함도 누그러져가던 그해 12월 말. 도대체 나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그해 12월 20일 오후 2시 40분경이었다. 집 근처 풍납동 서울중앙병원(현 서울아산병원) 원내약국 대기실 의자에 앉아 있던 나는 방금 약국에서 받은 약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약들은 먼저와 다름없이 몇몇 비타민제와 ‘리루텍(Rilutek)’이라는 하얀 알약이 전부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리루텍을 예전과 달리 종이로 된 갑 속에 들어 있는 채로 받았다. 나는 그 갑을 열고 내용물을 확인하다가 무심코 안에 들어 있는 설명서를 꺼내 읽어보았다. 그런데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이 약은 수년 내에 사망하는 ALS 환자에게 수명 연장이나 기관절개를 늦춰주는 미국 FDA(식품의약국)에서 인정한 유일한 약으로…….’
이 무슨 날벼락 같은 말인가. ‘수년 내에 사망’은 뭐고, 또 ‘ALS’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방금 전 신경과 진료실에서 의사선생님은 먼젓번 찍은 머리 MRI(자기공명영상촬영장치) 사진에는 별 이상이 없다며 다른 말씀은 없지 않았는가. 나는 몹시 놀랍고 두려운 마음으로 그 글을 읽고 또 읽어보았다. 그러고는 곧 정신을 가다듬고 생각해보았다.
그렇다! 그해 8월 서울대병원 신경과에 가서 처음 진료를 받았을 때부터 나는 내 몸의 병명도 모른 채 의사가 처방해준 이 약을 먹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의사선생님은 빨리 입원해서 정밀검사를 받아보자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내가 무슨 불치병에라도 걸렸단 말인가. 이렇게 건강한 내가 그럴 리가 없지!
나는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병원 문을 나섰다. 그러고는 집과 병원 사이에 있는 성내천 제방 둑길을 따라서 천천히 걸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따라 성내천에는 초겨울 찬바람이 강하게 몰아치고 있었고 두 손을 바바리코트 호주머니 안에 깊게 넣은 나는 흐르는 콧물을 닦으려 손을 꺼내는 것조차 귀찮아 연신 콧물을 훌쩍거리며 걸었다. 그날만큼 그 둑길이 그렇게 길고 아득하게 느껴진 적도 아마 없었을 것이다.

--- p.25

일 년 전 가을 이곳 설악산을 다녀간 바로 이튿날부터 엊그제 이곳에 다시 올 때까지 꼬박 일 년 동안 나는 이 책을 썼다. 아내가 아침에 출근하기 전에 나를 컴퓨터 의자에 앉혀놓으면 나는 아내가 퇴근할 때까지 하염없이 아내를 기다리며 컴퓨터 앞에 매달려 있었다. 온몸이 거의 마비된 나는 혼자의 힘으로는 의자에서 스스로 일어설 수도 없기 때문에 아내가 올 때까지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꼼짝없이 앉아 있어야 했다. 그 시간 동안 마우스 위에 힘없이 올려진 오른쪽 가운뎃손가락 한 개만을 사용하여 화상 키보드로 글을 쓰고 인터넷 검색을 하고 그러다가 지치면 고개를 앞쪽으로 바짝 떨어뜨린 채 낮잠을 잤다.
한여름에 어쩌다 모기나 파리가 달려들어도 나는 두 눈만 속절없이 끔벅거리며 그들이 내 몸에 싫증을 내고 사라질 때까지 무작정 기다려야 했다. 가려운 데가 있어도 긁지 못하고 땀이 흘러도 닦지 못하며 눈에 뭐가 들어가도 비빌 수 없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생각은 머릿속에 넘쳐흐르는데 그것을 그때마다 제대로 표현하거나 기록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손가락 한 개로 마우스를 조작하여 화상 키보드를 하나씩 찍어서 글을 작성하려니 이제 비장애인들이 10분이면 쓸 수 있는 분량을 나는 2~3시간 정도 걸려야 했다. 그러나 같은 방법으로 먼젓번 박사학위 논문에 이어 이번에 책 한 권 분량의 글을 완성하게 된 것이다.
스티븐 킹(Stephen Edwin King)은 "빨리 읽고 빨리 써야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지 않더라도 나의 '글쓰기 작업'은 어쩌면 애초부터 대단히 무모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난 일 년 동안 만큼은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하여 글을 쓰는가?'라는 의문과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하여 사는가?'라는 의문을 동일시하는 작가정신에 잠시라도 치열해지고 싶었다.
산의 정상을 올라가 봐야만 꼭 그 산의 진면목을 아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동안 설악산에 열 번 넘게 와봤지만 최고봉이라는 대청봉에 나는 올라가 본 적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이곳에 올 때마다 등산은커녕 산의 어귀인 소공원에서만 서성이다가 돌아서는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휠체어에 오래 앉아 있어서인지 목덜미와 등허리가 저려왔다. 소공원을 나와 설악을 뒤로하고 달리는 차 안에서 나는 '내년 가을에도 이곳에 올 수 있을까'라는 짧은 상념에 빠졌다. 그러나 그 상념은 "내년에는 건강을 꼭 되찾아서 대청봉까지 같이 손잡고 등반해요."라는 아내의 말에 화들짝 놀라며 사라졌다.
차가 영동고속도로로 접어들자 햇살이 앞 유리창 정면으로 강하게 쏟아져 들어왔다. 일찌감치 서쪽 멀리 자리 잡은 태양은 같은 쪽을 향하여 길게 뻗어 있는 고속도로 위로 아직도 강렬한 햇살을 필사적으로 쏟아내고 있었다. 아내가 나의 얼굴에 선글라스를 끼워주었다. 아내는 운전 도중 가끔씩 나를 보며 미소를 보냈다. 나는 그때마다 나의 짙은 선글라스 유리알 위로 반복하며 떴다가 사라지는 '강철로 된 무지개'를 분명히 볼 수 있었다. 강철처럼 강하고 확고하며 영원한 희망을.

--- p.247

출판사 리뷰

저자는 왜 굳은 손가락으로 이 글을 썼는가
서울 동성고 영어교사로 20년 동안 조금의 흔들림 없이 스승의 길을 걸었던 이원규 박사가 루게릭병(ALS) 이라는 치명적인 도전 앞에 마주선 것은 1999년 말이었다. 당시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새로운 세기를 눈앞에 두고 들떠있던 그는 이 청천벽력같은 선고 앞에 하나씩 삶의 기력을 잃어갔다. 처음엔 혀가 굳고, 다리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으며, 온 몸 구석구석이 마비되어 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절망은 짧았다. 루게릭병이라는 최종 선고를 받고 서울대 병원길을 내려오면서 그는 다리가 후들거려 잘 걷지를 못할 정도였다. 그 순간 나무를 붙잡고 사형대로 끌려가는 죄수가 마지막 환한 햇살을 올려다보며 짧은 상념에 젖는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겨울나무 사이로 내비치는 햇살을 올려다보며 그는 단호하게 속삭였다.
“그래, 생명이 있는 한 희망은 있는 거야. 절망하기엔 아직 너무 일러. 이대로 가만히 죽음을 기다릴 순 없어.”
평소 건강체질이었던 그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든 3학년 담임을 연이어 7년째 맡고 있었고, 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 졸업반이었으며, 성균관대 대학원 석사 과정에도 다니고 있었다. 삶의 의욕이 충만했던 그였기에 루게릭병 발병으로 인한 충격은 그만큼 더 컸다.
루게릭병은 원인을 명확히 알 수 없고 완치용 치료제가 딱히 없어 보통 발병 뒤 2~3년 안에 죽고 마는 희귀병이다. 전신마비가 진행되는 가운데도 환자의 지적 기능과 감각은 그대로 살아 있어 자신이 죽어가는 것을 생생하게 봐야 하는 아주 ‘잔인한’ 병이다.
그럼에도 이박사는, ALS에 걸려서도 팬들 앞에서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 말한 미국의 전설적인 야구스타 헨리 게릭 선수(루게릭병은 이 사람 이름에서 따옴)처럼, 혹은 “루게릭병을 20년째 즐기고 있다”고 말한 일본의 루게릭병 환자 하시모토처럼 강인한 의지로 투병 의지를 다졌다. 주변 사람들에게 발병 사실을 숨기고 성균관대 박사과정에 등록해 향학열을 불태웠고, 명의로 소문난 이들을 찾아다니는 한편 루게릭병과 관련된 다양한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박사 논문을 마무리해야 했던 2004년에는 온 몸에 마비가 급격하게 진행돼 손가락도 거의 움직일 수 없었다. 그래서 자료를 방바닥에 펼쳐놓고 발로 책장을 넘기며 읽거나 누가 옆에 앉아서 책장을 넘겨주어야 했다. 논문은, 컴퓨터 모니터에 화상 키보드를 설치해 굳어버렸지만 힘을 줄 수 있는 오른쪽 가운뎃손가락으로 한 자 한 자 채워나갔다. 논문을 지도한 지도교수가 꼼꼼한 이씨의 논문에 혀를 내둘렀을 정도로 이씨는 최선을 다했다.
한편으로는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루게릭병에 관련된 다양한 자료를 모으고, 재활의지를 다지는 환우들을 돕기 위해 ‘한국루게릭병연구소’(http://www.alsfree.org)와 인터넷카페 ‘루게릭병 네트워크’(http://cafe.daum.net/alsfree) 사이트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제 그의 홈페이지는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는 루게릭병 환자들의 소중한 창이 되고 있다.
이 박사는, 침몰하는 배의 갑판 위에서 논문을 썼다면 이 책은 이미 침몰해버린 배를 떠나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쓴 필사적인 것이라고 밝혔다. 남들이 10분이면 쓸 수 있는 분량을 3시간 이상 걸려 써나가야 하는 답답한 상황이었지만 그는 1년동안 거의 매일 8시간씩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이 책을 쓰는 데 매달렸다. 아내가 출근하기 전 그를 컴퓨터 앞에 앉혀놓으면 그는 아내의 퇴근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이 글을 썼다. 혼자서는 일어설 수도,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고, 모기가 와서 피를 빨아먹어도 어쩌지 못하고 가만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시시때때로 끔찍한 고문과도 같은 어마어마한 고통을 느껴 ‘지금 죽어도 좋으니 고통만 면하게 해달라’고 기도한 적도 있을 만큼 힘들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정작 몸이 건강하고 자유로울 때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글쓰기 작업을 ‘육체의 감옥’에 갇히고 나서야 이룰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씨에게 아내는 세상과 통하게 하는 소중한 끈이다.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되면 아내 이희엽씨가 그의 입 모양에 시선을 맞추고, 한 음절 한 음절 웅웅거리는 ‘외계의 언어’ 같은 그의 목소리를 ‘해석’해서 전해준다. 남편은 학위수여식에서 발표한 소감문에도 “사랑하는 아내가 없이는 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아님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고 적어 아내를 울렸다. 89년 결혼해 16년 동안 함께 살아온 두 사람에게 루게릭병은 잠시 왔다 가는 시련일 뿐이다.
이 박사의 다음 목표는 학교로 돌아가는 것. 스티븐 호킹 박사가 사용하고 있는 음성변환장치만 있다면 아주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우리 돈으로 8000만원대인 이 장치를 마련할 방법이 지금은 없지만 그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그는 저자 후기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일찍이 19세기 영국의 로맨티스트 워즈워스 시인은 그의 시 ‘무지개’에서 “무지개를 보면 내 가슴은 뛰누나. 내 인생이 시작할 때도 그랬고 어른이 된 지금도 그러하노니”라고 노래했다. 나 또한 이렇게 노래한다. “무지개를 보면 내 가슴은 뛰누나.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다. 내 가슴속에 각인된 강철 무지개는 생명을 향한 희망의 고동소리를 오늘도 쉴 틈 없이 내뿜는다.”라고.
생명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 그리고 희망이 있는 한 그 희망을 향해 해야 할 일은 반드시 존재한다. 그러므로 어떠한 고난이 닥치더라도 하루하루 내게 주어진 삶에 감사하며 오늘도 열심히 살아가야겠다. 생명이 있는 한 고통 또한 있다. 이 땅의 모든 고통받는 분들께 ‘강철 무지개’를 하나씩 선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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