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 제 1 부 | 해상왕, 서해바닷길을 열어젖히다
장보고의 흔적을 찾아서 | 중국땅에 고구려를 세우려 했던 이정기 장군 | 재당 신라인들의 생활 | 왜 청해진인가 | 닝보의 고려사관 | 중국의 심청 설화 | 보타산과 의상대사 | 구화산의 지장보살, 김교각 | 최치원을 기리는 중국 양저우 | 대각국사 의천과 고려사 | 동방의 마르코 폴로, 최부 | 김대건 신부가 상하이로 간 까닭 | 제 2 부 | 망국의 설움, 독립의 꿈 고종과 홍삼 1만근 | 홍종우는 왜 김옥균을 쏘았나 | 상하이로 밀려든 나라 잃은 사람들 | 백범의 뜻을 잇다 | 임시정부의 흔적을 따라 | 김구와 처녀 뱃사공의 사랑 | 이광수와 역사의 아이러니 | 윤봉길 그리고 잊혀간 혁명가 | 상하이의 아나키스트 김원봉 | 중국인이 사랑하는 조선 음악가, 정율성 | 상하이의 영화 황제, 김염 | 조선공산당 이동휘 | 아! 불쌍한 ‘상하이 위안부들’ | 해방과 상하이의 조선인 | 상하이 초대 특파원 신언준 | 제 3 부 | 중국은 기회의 땅인가 상하이가 뜬다 | 베이징 vs. 상하이 | 푸둥과 새만금 | 상하이 반일시위의 이면 | ‘장보고의 현신’ 앙드레 김 | 상하이에 부는 한류 열풍 |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바꾸다 | ‘보아’의 힘 | 한류는 계속될 수 있을까 | 다시 상하이로 가는 한국인 | 터줏대감들에게 듣는다 | 제2의 ‘강남 신화’를 꿈꾸는 사람들 | ‘인생 새 출발, 상하이에서’ | 상하이 드림의 성공 사례 | 쇄도하는 한국 유학생 | 상하이에서 ‘망하는’ 법 | 김우중과 중국땅 | 중국은 기회의 땅인가 |
李宇卓
이우탁의 다른 상품
|
일 백정기에게 어찌 됐든 출입증이 주어졌다면 그날 폭탄 투척은 그가 먼저 했을 것이다. 그러면 매년 4월 29일은 ‘윤봉길 의거 기념일’이 아닌 ‘백정기 의거 기념일’이 되지 않았을까. 역사는 ‘성공한’ 윤봉길만을 기억하는 것인가. 백정기는 그의 활약상에 비해 너무 쉽게 묻혀버린 존재가 되었다.
-p. 139 ‘윤봉길 그리고 잊혀간 혁명가’ 중에서 |
|
중국에 진출하는 사람들은 “중국에서는 관시關係가 중요하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실제로 중국에서 살다 보면 ‘안 되는 것도 없고, 그렇다고 꼭 되는 것도 없는’ 상황이 많이 연출된다. 워낙 해당 규정이 모호하거나 담당 공무원에 따라 재량권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상적인 방법보다 중국 친구들과의 관시를 통해 장사를 하거나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하지만 막연한 관시 의존은 이제 큰 낭패를 초래한다. 어쩌면 ‘관시 비즈니스’가 오히려 투자기업에 약보다 독이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요즘 현실이다. 중국 기업은 더이상 외국기업에 대해 관대하지 않다. 예전에는 없는 것 같았던 법 규정을 들어 기업활동을 제약해오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p. 269 ‘중국은 기회의 땅인가’ 중에서 |
|
상하이 속 한국인, 그 역사와 전망을 살핀 ‘인문학적’ 취재기
초대 상하이 특파원인 이우탁이 기자가 취재한 상하이 속 한국인의 과거, 현재, 미래를 들여다본다. 1200년 전 해상왕 장보고에서 출발해 임시정부 시절 김구 선생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인물들 그리고 오늘의 ‘한류’를 대표하는 앙드레 김과 한국 기업인들까지, 중국땅을 물들인 ‘우리’의 얼굴을 재발견할 수 있다. 책의 제목인 ‘장보고, 김구, 앙드레 김’은 각 시대를 대표하는 한국인과 그 역사를 상징한다. 강력한 해상 권력을 바탕으로 중국땅을 경략한 장보고는 지금으로 치면 ‘세계화 마인드’로 무장한 위대한 CEO에 다름 아니며, 김구는 나라 잃은 설움을 지닌 조선인들에게 ‘독립’의 열망을 실현하고자 한 인물로 당시 국외에서 애국의 꿈을 일군 사람들을 대표한다. 또한 앙드레 김은 지금 중국에 거세게 부는 ‘한류 열풍’의 중심에 선 인물로, 저자의 표현을 빌자면 ‘백색의 갑옷을 입은’ 장보고 장군의 현신이다. 우리 역사 속 상하이는 ‘알면 보인다’라는 말에서 그치지 않는다. ‘알면 찾게 되고, 찾아가 보면 더 깊이 느끼게 된다’라는 말이 저절로 새겨지는 곳이 중국이다. 서해바닷길을 열어젖히고 중국땅에 상륙한 장보고를 비롯한 선조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그리고 현재 중국에 진출한 한국인들과 기업들의 실태를 살펴보며, 현재와 미래의 한국인들이 중국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알 수 있다. 숨은 일화를 읽는 재미, 가슴 저릿한 긍지와 아픔까지 느낄 수 있는 책 중국 닝보(영파寧波) 저우산시는 심청을 기리는 심청공원 건립 계획에 한창이다. 저우산시 앞바다는 ‘인당수’로 불리고 있으며 항구 이름도 ‘심가들의 항구(沈家門港)’다. 거기에 전해 내려오는 심청 설화는 백제와 중국 진나라 간의 교류 흔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전라남도 곡성에서 전해지는 심청 설화 또한 중국의 그것과 흡사한 점이 많다는 점이다. 중국 상인들과 교류했던 시대상을 비춰볼 때, 심청은 중국 대륙과 한반도를 연결한 하나의 모티브로 해석된다. 이러한 영향 관계는 낙산사의 관음상과 중국 보타산의 관음상의 풍경에서 보이는 유사점, 구화산에서 지장보살로 받들어지는 김교각 대사의 예에서도 찾을 수 있다. 나아가 양저우의 최치원 기념관, 한국 천태종의 시조인 대각국사 의천을 모셔놓은 중국 천태산의 사찰, 동방의 마르코 폴로라 불리며 중국 학계에서 더욱 인정받는 『표해록』의 저자 최부의 흔적 들은 중국 속 한국인의 위대한 발자취를 새삼 확인시켜준다. 우리의 근현대사에서 상하이가 의미 있는 것은 그곳이 일제 치하 당시 독립운동의 근거지였기 때문이다. 조선인들이 나라 잃은 설움을 안고 건너간 땅이자 대한민국임시정부청사로 유명한 상하이. 임시정부는 상하이뿐만 아니라 항저우, 자싱, 전장, 창사, 류저우, 치장, 충칭에 이르기까지 1만 3000리의 피난길을 거쳤으며 아직도 현지에서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백범 김구의 삶이 기려지고 있다. 기자는 광복 60년을 맞은 2005년에 김구의 손자 김양이 대한민국 상하이 총영사로 부임한 것을 취재하면서 백범의 뜻과 함께한 독립 투사들의 유적이 더욱 잘 보존, 발굴될 것에 대한 기대감을 보인다. 또 중국 작가 샤녠성의 글을 통해 김구와 중국 처녀 뱃사공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독립운동가의 인간적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한편, 이미 저자가 기사를 통해 그 존재를 알린 ‘세계 최초이자 대규모 위안소’였던 상하이 위안소 건물들을 취재한 내용은 다시금 충격과 울분으로 다가온다. 머지 않아 상하이에 세워질 ‘위안부 자료관’은 상하이에 살았던 한국인의 뼈아픈 자취로 남을 것이다. 중국은 기회의 땅인가 ― 풍부한 사례를 통한 분석과 제언 지금 상하이는 쇄도하는 한국인들로 들썩이고 있다. 거기서는 벌써 ‘10억을 벌었다’는 소문도, 반대로 ‘10억을 날린’ 한탄도 들려온다. 한국과 중국이 수교한 지 13년, 그 세월을 함께한 이른바 상하이 터줏대감들의 경험담과 조언을 통해 중국 진출의 첫 단추를 꿰어볼 수 있다. 또 ‘제2의 강남 신화’라 불리는 상하이에서의 부동산 투자 열기를 들여다보고, ‘상하이 드림’의 성공 사례를 현지 법인장의 목소리를 통해 직접 듣는다. 요즘 한창 ‘뜨는’ 유학 천국으로서 중국 속 유학생들의 현황도 빠뜨릴 수 없다. 한국 학생들이 갈 수 있는 학교와 그곳의 장단점을 진단하고, 유학생의 적응과 탈선의 문제까지 살폈다. 소수의 성공 신화만 믿고 중국행을 결심한 이들에게 실패의 사례는 좋은 약이 된다. 어떤 기업인의 말처럼 ‘중국 진출이 활발한 지금이 한국의 위기’가 될 수도 있으며 중국은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홍콩을 영국에 넘겨준 과거의 경험을 통해 중국은 ‘외국인 직접투자’의 효과를 제대로 배운 셈이다. 따라서 우리가 확실한 전략 없이 자칫 잘못하다가는, 핵심 산업을 중국에 다 넘겨주고 껍데기만 남은 대만과 같은 처지에 빠질 위험도 있다. ‘우리가 꼭 깨야 할 중국에 대한 편견’ 세 가지. 첫째, 중국에서는 무조건 인간관계(관시關係)가 최고다? : 이제 중국에서 막연하게 사람만 믿었다가는 큰 낭패를 본다. 중국 기업은 더 이상 외국 기업에 관대하지 않을뿐더러 법 규정을 까다롭게 적용해 제약하는 일이 많아졌다. 둘째, 중국 인건비와 기술력은 한국에 한참 뒤떨어져 있다? : 중국의 임금 수준은 매우 빠르게 상승하고 있으며, 주요 산업에서 한국과 중국의 기술 격차 역시 조선 부문(7년)을 제외하곤 1~3년으로 좁혀져 있다. 셋째, 중국은 자본주의 체제를 적극 수용하고 있다? : 그러나 여전히 사회주의 국가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익단체나 시민단체의 개입 없이 언제든 정책을 수립해 추진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이미 한국과 중국은 뗄 수 없는 운명적 관계다. 특히 문화적 유대감과 지리적 위치, 우호 관계 등을 고려할 때 다른 어떤 나라보다 한국인과 한국 기업이 중국과 맺어진 관계는 긴밀하다. 중국인의 역사와 정서, 사회체제 등에 대한 철저한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만의 것’을 창의적으로 개발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1200년 전, 중국과 일본에서 생각하지 못한 3각 무역을 통해 해상왕이 된 장보고의 창의력이 오늘, 우리에게도 유효한 가르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