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청년패스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유쾌한 정신장애인들의 공동체 '베델의 집' 이야기
삼인 2006.01.05.
베스트
휴먼 에세이 top20 1주
가격
10,000
10 9,000
YES포인트?
500원 (5%)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해외배송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가능

이 상품의 태그

책소개

목차

한국의 독자들에게
옮긴이의 말

흙을 파먹다

마사루의 환청
공동 주거
관리가 아니라
베델의 얼굴
고민하는 교회
그대로도 괜찮다
겐짱의 전화
장사를 하자
'베델의 집'의 생명

터를 닦다

마을로
‘베델의 집’의 책
지금의 행복
SST
떨어져볼까?
고생이 가득 차 있다
즐거운 분열병

등불을 밝히다

마성의 여자
병에 대한 센스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는 일
고고한 전사
분열병의 진실
절망에서

후기
주석

저자 소개

저자 : 사이토 미치오
1947년 야마나시(山梨) 현에서 태어났다. TBS 텔레비전 기자로 국제 보도나 원폭 투하를 둘러싼 역사 인식의 문제, 첨단 의료와 생명 윤리 문제 등을 다룬 프로그램을 제작해왔다. 1997년 이래 정신장애 문제를 취재하고 있다. 정신장애인 공동체 ‘베델의 집’에 대한 기록을 필생의 사업으로 생각하고 우라카와 현지와 도쿄 사이를 오가게 되었다. 소수자나 사회 주변의 시선이 다수자나 주류 사회의 일상 의식을 탈구축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저서로 『원폭 신화 50년』(中公新書, 1995), 『또 하나의 수화(手話)』(晶文社, 1999), 『희망의 암 치료』(集英社新書, 2004) 등이 있다.
역자 : 송태욱
연세대학교 국문과와 같은 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6년에 도쿄외국어대학 연구원을 지냈으며, 현재 연세대에 출강하고 있다. 『르네상스인 김승옥』(공저) 등의 저서와 「김승옥과 ‘고백’의 문학」 등의 논문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탐구 1』, 『형태의 탄생』, 『윤리 21』, 『근대 일본의 비평』, 『현대 일본의 비평』, 『포스트콜로니얼』, 『일본정신의 기원』, 『천천히 읽기를 권함』, 『번역과 번역가들』, 『움베르토 에코를 둘러싼 번역이야기』, 『연애의 불가능성에 대하여』, 『은빛 송어』, 『트랜스크리틱』, 『소리의 자본주의』 등이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6년 01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290쪽 | 374g | 150*210*20mm
ISBN13
9788991097353

출판사 리뷰

회사 창업이라는 모험으로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열어간다

홋카이도 우라카와라는 작은 바닷가 동네에 ‘베델의 집’이 있다. ‘신의 집’이라는 의미의 이 공동 주거는, 1979년 우라카와 적십자병원에 근무하는 사회복지사인 무카이야치 씨가 낡은 교회 건물에 살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병이나 생활의 어려움을 안고 살아가던 사람들이 한 지붕 아래 모여, 관리되거나 지배받지 않고 살게 된 지 25년. ‘베델의 집’을 만난 후 밑바닥에서 끝났다고 생각한 인생은 진정한 인생의 서막에 지나지 않았다.

그동안 마을에서 문제를 일으켜 나가달라는 말을 들으며 순찰차나 구급차 신세도 져왔지만, 그 와중에 실패를 거듭하면서 장사를 시작해 장사의 노하우를 쌓으며 조금씩 마을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베델의 집’ 사람들 스스로 공동 주거와 작업장, ‘유한회사 복지숍 베델’이라는 회사를 만들어 특산품인 다시마를 비롯해 다양한 상품을 만들어서 팔고, 다채롭고 독특한 활동을 펼쳐왔다.

“‘베델의 집’이 회사를 설립한다는 것은 실로 무모하고 세상 사람들의 상식과 동떨어진 사건”이었다. ‘의료’나 ‘복지’, ‘행정’의 틀 안에 있는 한 그들은 항상 병자, 즉 치료받아야 할 사람들이고 ‘장애인’, 곧 사회에 복귀해야 하는 미완의 존재였다. 그런데 거기서 한 발짝 나아가 장사의 세계로 들어가자, 의료 세계에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만남과 연대가 생겼다.

그 모토는 “마음 놓고 땡땡이칠 수 있는” 회사이며, “일할 수 없는 사람은 자도 좋다”는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정신’이다. 이러한 ‘베델의 집’의 불평등한 시스템을 일반 사회는 허용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다가는 망할 것이 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나 ‘베델의 집’은 그 결과로 망하기는커녕 상상 이상의 이익을 낳았다. 흑자를 보았을 뿐만 아니라, 관리를 없애고 서로의 약함을 인정하며 사는 나날에서 각자 자기 삶의 방식을 찾고 신비스럽게 편안한 ‘자리’를 만들어왔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기엔 참으로 말로는 다하지 못할 고생이 있었다. “병을 앓으면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하는 고민과 고생이 가득 차 있었다.


분열병과 함께 살며, 자기 자신과 화해하는 사람들

어떻게 이렇게 사는 것이 가능했을까? 작은 마을에서 살아가며 정신병이라는 현실에 직면하고, 인간으로 태어나 정말 행복하구나 하는 데 다다르기 위해서는 도대체 어떤 조건이 필요했을까. 저자는 ‘베델의 집’의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며, ‘베델의 집’을 가능케 한 것은 무엇인지 물어간다. “그들의 이 ‘살아가는 힘’은 어디서 온 것일까?”라는 의문 속에 그것을 묻기 시작한 저자를 기다린 것은, 더욱 큰 정신의 표류와 놀람, 감동이었다.

정신분열병은 친구들이 생기는 병이라는 자칭 ‘즐거운 분열병 환자’, ‘자, 빨리 밥 먹어’라는 말에 몸이 몇 시간씩 굳어지는 사람, 망상에서 오는 ‘상상 임신’ 소동이나 열렬한 연애와 파국 등의 에피소드들, ‘치료할 수 있는 의사’를 목표로 하다가 고치지 않으려는 의사를 지향하며 병과 어떻게 사귈지 알려주는 의사, 엄청난 좌절과 휘둘림 앞에서 절망이라는 광맥을 파냈다고 감개에 빠지는 사회복지사. ‘베델의 집’ 사람들은 예전에 누구보다도 자신에 대해 엄격한 태도를 취하고 인간관계에서 고통을 겪으며, 가혹한 생활환경에서도 필사적으로 살아왔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병’이 찾아온 것이다.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환청과 망상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이 ‘베델의 집’ 사람들과 의사, 목사, 지역 주민이 만들어가는 만남과 충돌, 교류는 실로 감동적이다.

‘베델의 집’에서는 효율을 우선시하는 현대사회와는 색다른 원칙이 있다. 무리는 하지 않아도 된다. 병을 고쳐야지 하고 초조해할 필요는 없다. “그대로 있어도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정신병이라는 ‘무거운 사실’을 안고 그 사실과 마주하고 그 아래에서 살아가는 자신을 응시하면서,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계속 묻는 일이다. 자신의 생활 방식을 “파고들고 파고들어” 그 고민을 ‘말’로 해 사람들 앞에 나아가며, 충돌과 만남을 거듭하는 생활 방식이다. 거기에서 의료라는 차원을 넘어선, 치료라는 틀에서는 결코 평가받을 수 없는 풍요로움이 생긴다.


고민하는 힘으로, 약함을 유대로 인생의 달인이 된다

저자는 이러한 ‘베델’식의 삶을 보면서, “돌아보면 지금 우리 사회는 정신장애인이 그러한 고생을 할 수 있게 해주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정신장애인은 병이나 인간관계 등으로 엄청난 고생을 짊어지면서도, 보호나 보살핌 등의 이름 아래 병원에 갇혀서, 고생에 직면하는 자유, ‘고민하는 힘’을 계속 빼앗겨왔다”는 것이다.

병으로 인해 사회에서 내몰리고 관계에서 배제당한, 발병한 지 30, 40년 된 ‘베테랑’ 정신병 환자들. 그 약함을 유대로 한 사람들이 약함을 드러내놓고 서로 인정해주며 살기 시작했을 때, 그곳에서는 “저 밑바닥에서부터 빛을 찾아내고 영혼의 평온함을 얻는” 사람들의 힘이 자라났다. 그 바탕 위에서 정직하게 자기 자신을 마주하는 데에서 찾아간 생활방식.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바로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던 ‘고민하는 힘’이었다. ‘고민하는 힘’으로 병을 고민하고, 병과 함께 살아가는 인생을 고민하며, 살아가는 것의 풍요로움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자가 바라보는 ‘베델의 집’은 ‘베델의 집’ 사람들의 ‘장애성’이 아니라, 삶의 근원적인 풍요로움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바로 그 공간이다.(이 책의 원서 제목이 ??고민하는 힘??이다.)

“고민하는 힘을 가지고 ‘더불어 산다.’ 문제가 있으면 그 문제와 ‘서로 부딪치고 만나고 하면서’ 해결해나간다. 살기 힘든 것과 약함을 스스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찾아나가는 진정한 유대야말로 인간 회복을 가져온다”는 베델의 집 사람들의 메시지는 사람들에게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물으며, 삶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근원적인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렇게 정신장애를 치료하려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 우선 살아 보자’라고 생각한 데서 정신의료 세계의 새로운 지평이 열린 것이다.

우리는 ‘고민’이나 ‘병’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지만 거기서 벗어나려고 애써 외면하면 할수록 ‘고민’도 ‘병’도 우리를 놓아주지 않는다. 베델의 집 사람들이 보여주는 것은 오히려 ‘고민’과 ‘병’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사귐으로써, ‘고민’이나 ‘병’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고민’이나 ‘병’과 자유로운 관계를 맺는 방식이다.

‘베델의 집’에 찾아간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 ‘베델의 집’ 사람들 앞에 있을 때, “가면을 쓰고 체면 차리는 일에 열심이며, 주변의 평가에 신경 쓰며 안달하고 분투하며 사는 ‘우스꽝스러운’ 자신을 본다”고 한다. 난리와 싸움, 병과 발작과 혼란, 문제투성이인 ‘베델의 집’이지만, 이 책에서 느껴지는 편안함과 안도감의 근원은 이러한 적극적인 삶의 방식에 있다. 이 책은 여러 의미에서 놀라움의 연속이지만, ‘정신장애인’을 이해하는 데에서 나아가 자신의 약한 부분이 받아들여지는 데서 오는 위로와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불가사의한 희망을 느끼게 한다.

‘베델의 집’ 사람들은 베델에 오면 병이 생긴다고 한다. 이 병이란 희망의 또 다른 이름일 것이다.

리뷰/한줄평5

리뷰

8.6 리뷰 총점

한줄평

9.0 한줄평 총점

클린봇이 부적절한 글을 감지 중입니다.

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