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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소개

디스크

CD 1

  • 01 슈만 : 피아노 협주곡 A 단조 op.54
  • 02 클라라 슈만 : 릴커트 시에 의한 2객의 리트
  • 03 브람스 : 첼로 소나타 1번
  • 04 브람스 : 랩소디 op.79

아티스트 소개 5

노래Anne Sofie von O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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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네 소피 폰 오터

성악가 (메조소프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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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Helene Grima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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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렌 그리모

프랑스의 클래식 피아니스트이자 뉴욕 사우스 세일럼에있는 Wolf Conservation Center의 설립자. 엘렌 그리모는 고향인 액상 프로방스에서 음악공부를 시작했고 마르세이유 음악원에서 삐에르 발비제에게 피아노를 배웠으며 12살에 파리 콩세르바트와 국립 음악원에서는 자끄 뤼비에르, 레온 플라이셔, 죄르지 산도르에게 사사했다. 1987년은 그녀의 음악 생활에 있어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엘렌은 깐느 미뎀 (MIDEM : 국제 음반 박람회)클래식상을 수상했고 , 그 연주의 라이브 방송을 들은 다니엘 바렌보임은 즉시 그녀에게 오디션을 제의했다. 이후 파리 오케스트라
프랑스의 클래식 피아니스트이자 뉴욕 사우스 세일럼에있는 Wolf Conservation Center의 설립자.

엘렌 그리모는 고향인 액상 프로방스에서 음악공부를 시작했고 마르세이유 음악원에서 삐에르 발비제에게 피아노를 배웠으며 12살에 파리 콩세르바트와 국립 음악원에서는 자끄 뤼비에르, 레온 플라이셔, 죄르지 산도르에게 사사했다.

1987년은 그녀의 음악 생활에 있어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엘렌은 깐느 미뎀 (MIDEM : 국제 음반 박람회)클래식상을 수상했고 , 그 연주의 라이브 방송을 들은 다니엘 바렌보임은 즉시 그녀에게 오디션을 제의했다. 이후 파리 오케스트라의 협연 초청과 라로끄 당떼롱 피아노 페스티벌에서의 초연을 포함한 높은 수준의 공연 요청이 이어졌고, 도쿄에서도 연주 데뷔를 하게 되었다. 이후 엘렌 그리모는 영국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NHK 심포니, 그리고 뮌헨 필하모닉 등 손꼽히는 오케스트라와 연주하게 된다. 미국에서는 동부에서 서부에 이르기까지 뉴욕 필하모닉,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그리고 워싱턴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과 협연했다.

음악 생활 초기부터 그리모는 샤이, 게르기에프, 하이팅크, 아쉬케나지, 살로넨, 테미르카노프, 진만 등 수준 높은 지휘자와 함께 했다. 2008년 10월 BBC 프롬스의 마지막 날 연주에서 그녀는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에서 함께 투어 했던 블라디미르 유로프스키가 지휘하는 런던 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협연했고, 다니엘 하딩이 지휘하는 말러 체임버와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연주했고, 필립 조단이 지휘하는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 오케스트라와 연주했다. 2009년 봄에 그녀는 바흐의 피아노 콘체르토 D 단조와 실베스트로프의 소품으로 바이에른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유럽 투어를 했다. 열정적인 실내악 음악가이자 독주 연주자로서 엘렌은 토마스 크바스토프와 외르크 비트만, 크리스틴 쉐퍼, 르노 카푸숑 등과 함께 일류의 음악 페스티벌에 참여하고 음악의 중심지에서 연주하게 된다.

2002년 엘렌 그리모는 독일 그라모폰 레이블과 독점적인 음반 계약을 맺고, 바흐 음악과 솔로작품들, 라이브 녹음음반, 그리고 D 마이너 콘체르토를 발매했고, 브레멘 도이치 캄머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키보드 작업을 디렉팅했다. DGG 이전의 음반으로는 블라디미르 유로프스키가 지휘하는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와 협연한 베토벤 피아노 콘체르토 5번이 있었다. 이후 DGG에서 발매한 음반으로 요하네스 브람스와 로베르토, 클라라 슈만의 작품을 연주한 '리플렉션' 음반과 베토벤과 페르트의 작품을 에사 페카 살로넨이 지휘하는 스웨덴 라디오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한 '크레도' 와 쇼팽과 라흐마니노프 독주 음반, 피에르 볼레즈가 지휘하는 런던 심포니와 함께 녹음한 바르토크의 피아노 콘체르토 3번 등이 있다. 15세부터 음반을 발매한 연주자로서 그녀의 초기 작업들로는 리스트, 라벨, 라흐마니노프, 슈트라우스, 거쉬인 등이 있다.

세계적으로 무수한 수상 경력도 있는 엘렌 그리모는 고향인 프랑스에서도 높이 평가 되었다. 2002년 프랑스 문화부 장관이 수여하는 예술문학훈장을 수상했고, 2008년에는 국가공로훈장 기사장을 수여했다. 2005년에는 에코 음악상의 ‘올해의 연주자’부문을 수상했다. 그리모는 '야생의 변주' 와 '특별 수업' 두 권의 책을 써서 로베르 라퐁에서 출판했다. '야생의 변주' 는 영어를 비롯해 각국으로 변역 출간되었다. 두 책은 프랑스와 독일에서 대중적으로 성공했고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지속적으로 늑대 보호운동을 해오던 엘렌 그리모는 1999년 늑대 보호센터를 설립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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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Truls M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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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룰스 뫼르크

첼로 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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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Esa-Pekka Salon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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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사 페카 살로넨

오케스트라Staatskapelle Dres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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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Sachsische Staatskapelle Dresden

독일 동부의 드레스덴을 본거지로 하는 악단으로, 정식 명칭은 드레스덴 작센 국립 관현악단(Sachsische Staatskapelle Dresden)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관현악단 중 하나로 유명하다. 1548년 9월 22일에 설립된 작센 선제후 모리츠의 궁정 악단이 시초이며, 초대 악장(Kapellmeister)으로 요한 발터가 임명되었다. 발터 이후에는 르 메스트르, 스칸델로, 피넬리, 미하엘 등이 카펠마이스터 직위를 계승했으며, 하인리히 쉬츠는 최초로 궁정악장(Hofkapellmeister)을 역임했다. 18세기를 거치면서 편성도 확대되었고, 종교 의식이나 궁정극
독일 동부의 드레스덴을 본거지로 하는 악단으로, 정식 명칭은 드레스덴 작센 국립 관현악단(Sachsische Staatskapelle Dresden)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관현악단 중 하나로 유명하다.

1548년 9월 22일에 설립된 작센 선제후 모리츠의 궁정 악단이 시초이며, 초대 악장(Kapellmeister)으로 요한 발터가 임명되었다. 발터 이후에는 르 메스트르, 스칸델로, 피넬리, 미하엘 등이 카펠마이스터 직위를 계승했으며, 하인리히 쉬츠는 최초로 궁정악장(Hofkapellmeister)을 역임했다. 18세기를 거치면서 편성도 확대되었고, 종교 의식이나 궁정극장에서 상연되던 오페라 등 무대 작품 공연에도 동원되었다.

베버와 바그너도 궁정악장을 역임했으며, 1841년에는 고트프리트 젬퍼의 설계로 건립된 작센 국립오페라극장(통칭 젬퍼오퍼)의 상주 악단이 되었다. 19세기 후반에는 율리우스 리츠나 프란츠 뷜너, 에른스트 폰 슈흐 등 근대 지휘법의 기초를 닦은 명사들이 활동했다. 슈흐의 후임으로는 프리츠 라이너와 프리츠 부슈, 칼 뵘 등이 활동했으며, 제3제국 시대에도 제국 관현악단의 일원으로 존속했다. 그러나 1944년에 괴벨스의 총동원령에 의해 활동이 정지되었으며, 1945년 미국과 영국 공군의 드레스덴 대공습으로 인해 상주 공연장이었던 국립오페라극장이 전소되었다.

종전 후 요제프 카일베르트를 카펠마이스터로 맞아들여 활동을 재개했으며, 이어 루돌프 켐페와 프란츠 콘비츠니, 로브로 폰 마타치치 등이 직위를 이어받았다. 1985년에 젬퍼오퍼의 복구 공사가 완료되자 상주 악단으로 다시 들어갔으며, 오페라 공연 때는 드레스덴 국립오페라극장 관현악단이라는 명칭으로 출연하고 있다. 2012년부터는 독일 출신의 크리스티안 틸레만이 카펠마이스터로 부임해 현재까지 재직 중이다.

역사가 굉장히 오래된 악단인 만큼, 독일 음악사에 끼친 영향도 대단히 크다. 초기에는 주로 이탈리아 출신 음악가들을 악장으로 초빙해 독일에 이탈리아 음악을 유입시키는 역할을 자주 수행했고, 19세기 초반에는 베버와 바그너에 의해 독일 낭만주의 오페라가 기틀을 닦는 데 이바지하기도 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도 자신의 오페라와 교향시를 직접 지휘해 자주 공연했으며, 뵘과 켐페, 콘비츠니는 오페라 외에 콘서트 활동에 주력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녹음 활동도 1930년대부터 활발하게 진행했으며, 전후 도이체 그라모폰과 EMI에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관현악 작품을 중심으로 여러 장의 음반들을 발매했다. 냉전 시대에는 동독 국영 음반사인 도이체 샬플라텐에서 대부분의 녹음을 제작했으며, 특히 블롬슈테트가 남긴 베토벤 교향곡 전집과 브루크너 교향곡들이 유명하다. 시노폴리도 도이체 그라모폰에 로베르트 슈만과 브루크너, 슈트라우스 작품 등을 취입했으며, 루이시도 소니 클래시컬에 슈트라우스의 교향시를 녹음하고 있다. 최근에는 정명훈이 일본 바이올리니스트 가시모토 다이신과 소니 클래시컬에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을 녹음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보수적인 악단이라 현대 작품의 공연은 많지 않지만, 독일 음악의 연주에 있어서는 가장 정통적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이는 사회주의 체제 때에도 마찬가지였으며, 지금도 어느 지휘자와 상관 없이 고풍스러운 음향을 유지하고 있다. 주로 중부독일 방송국(MDR)에서 연주회와 오페라 공연을 중계하고 있으며, 단원들의 실내악 연주회와 프라우엔 교회에서 진행하는 종교음악 연주회도 개최하고 있다.

1914년부터 임명된 상임 지휘자들은 공식적으로 카펠마이스터(kapellmeister)의 직함도 동시에 수여받고 있다. 이외에 정명훈이 2012년 이 악단 역사상 최초의 수석객원지휘자로 임명되어 말러 교향곡 사이클을 진행하고 유럽과 아시아 투어를 수행하는 등 틸레만의 업무를 분담하면서 성공적으로 직책을 수행하고 있으며, 현재도 그 직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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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매일
2006년 01월 12일
시간/무게/크기
100g | 크기확인중

전문가 리뷰

머리말: 엘렌 그리모
Nancy B. Reich / 번역: 정준호
엄밀히 말하면 사랑은 실존하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너'와 '나' 사이의 그리고 그들의 유일무일함에 대한 열정을 드러내는 두 존재 간의 역학 관계이다. 정확한 의미로 사랑은 우리에게 적용되는 존재의 법칙에 따라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는 개념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사랑이 - 극심한 고통의 토로나 완벽한 기쁨의 전조가 아닌 열병과도 같은 계시이다 - 가장 강력한 정신적인 경험이자, 가장 심오한 지식이며, 경험을 통해서 나타나는 투명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리는 아무리 미로와 같거나 폭풍이 몰아 치더라도 막다른 길에 있는 사람처럼 행동하게 된다. "사랑한다"는 것이 욕망을 담아 세상을 새롭게 만드는 축복 속으로 스스로를 몰아가는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겠는가? 그리고 이런 진입을 통해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유한한 공간 속에 무한한 꿈을 실재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대와 함께라면" - 이 구절은 로베르트 슈만과 클라라 슈만, 요하네스 브람스가 그들의 음악에서 표현했던 사랑에 대한 인상을 떠오르게 한다. 로베르트는 그의 아내가 음악 그 자체이기를 바랐고, 마찬가지로 클라라도 요하네스가 음악이기를 원했다. 브람스는 그의 두 친구가 그들의 음표와 인상을 통해 나타나듯이 그런 존재이길 바랐다. 이것이 바로 완전히 정복되기를 바라는 모든 이야기처럼 러브스토리가 가진 독특한 징표이다. 내면에서 엄청나게 큰 세계를 다루고 있는 음악가들을 통해 우리는 사랑이 틀림없는 선물이며, 한 사람이 다른 누군가에게 향하는 가장 친밀한 자유임을 알게 된다. 그러한 법칙의 비밀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 〈레퀴엠〉에 잘 드러나 있다.



...

뭔가 문제가 있다면 이것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불러낼 수 있는 모든 내면의 자유를 가지고는

사랑의 자유를 늘릴 수 없다는 것.

우리는 사랑 안에서 이것만 연습하면 된다.

각자의 길을 가도록 두는 것...



***********************************************************



로베르트 슈만과 클라라 슈만, 요하네스 브람스의 관계는 음악사에서도 독특하다. 그리고 그 관계는 그들의 작품에 잘 드러난다.

로베르트 슈만과 클라라 비크는 슈만이 클라라의 아버지이자 스승인 프리드리히 비크에게 피아노를 배우던 시절 처음 만났다. 슈만은 비크의 집에 하숙하면서, 그 가정의 활력과 지성을 경험했고, 어린 신동 클라라와 그녀의 두 남동생은 그를 무척 좋아했다. 슈만은 불행히 손가락 부상을 당하자 어린 클라라에게 자기 작품을 연주해 달라고 청한다. "너는 내 오른손이야"라고 그는 그녀에게 편지했다. 클라라는 열세 살 때부터 사적인 연주회와 콘서트 홀에서 슈만의 작품을 평단과 음악 애호가에게 소개하기 시작했고, 여생동안 이 일을 사명으로 삼았다.

그 시대의 다른 모든 피아니스트처럼 클라라도 작곡을 했고, 그녀의 작품은 열한 살 때 가진 첫 독주회 프로그램에도 들어 있다. 열네 살 때 그녀는 "콘서트 악장"을 작곡했고, 이것이 〈피아노 협주곡 A단조, Op 7〉의 3악장이 되었다. 그녀는 슈만에게 이 곡을 오케스트레이션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스스로 다른 두 악장을 완성해 오케스트레이션하고 전체 작품을 열여섯 살 되던 해에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초연했다. 로베르트 슈만은 결혼한 지 5년째 되면 1845년에 자신의 〈피아노 협주곡 A단조, Op 54〉를 완성했다. 여기에는 클라라의 많은 생각이 녹아 있었다. 그녀는 그 해 12월 4일 드레스덴에서 호프카펠레(바로 이 음반 녹음에 참여한 악단으로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슈타츠카펠레로 이름을 바꿨다)와 이 곡을 초연했다. 이후 그녀는 긴 콘서트 이력 동안 유럽과 영국을 돌며 50차례 이상 이 곡을 연주했다.
두 사람의 가곡도 물론 긴밀한 연관이 있다. 결혼 전부터 두 작곡가는 함께 쓰는 공책에 곡을 붙일 시를 적어 두었다. 그는 그녀의 작곡 능력에 큰 신뢰를 가지고 있었기에 1839년 다음과 같이 적었다. "우리는 우리 두 사람의 이름으로 많은 작품을 출판할 것입니다. 후손들은 한마음 한뜻이 된 우리의 작품 중 어느 것이 내 것이고 어느 것이 당신 것인지 알지 못할 겁니다.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요." 1840년 9월 결혼하자마자 슈만은 프리드리히 뤼케르트의 『사랑의 봄』 중 많은 시에 곡을 붙일 마음을 먹고 클라라와 함께 작업한다. 이 노래들은 - 그가 작곡한 〈Op 37〉과 그녀의 〈Op 12〉 - 작곡가를 표시하지 않고 출판되었다. 놀랍게도 "왜 다른 사람에게 물으려 하는지 Warum willst du and're fragen"을 포함한 그녀의 많은 가곡이 저명한 평론가에게 극찬을 받았다. 그리고 슈만은 그녀가 1940년 크리스마스에 자신에게 선물로 작곡해 준 "물가에서 Am Strande"를 그가 편집장으로 있던 『음악신보』에 소개할 부록 음악으로 골랐다.
두 사람이 함께 사는 동안 그녀는 레슨과 콘서트, 작곡으로 계속 돈을 벌었다. 그러면서 여덟 명의 아이를 낳았다. 결혼 후 10년이 지나 그들은 슈만이 처음으로 정규 급여를 받게되어 뒤셀도르프로 이주했다. 그가 마흔 살 때 일이다.

1853년 9월 슈만 부부는 예기치 못한 손님을 맞는다. 그는 요하네스 브람스라는 이름의 20세 청년으로 슈만 작품의 열렬한 찬미자였다. 그가 자신의 곡 몇을 그들 앞에게 연주하자 엄청난 열광과 흥분이 잇따랐다. 슈만의 자신의 일기에 그를 "천재"라고 썼고, 『음악신보』에 기고한 기사를 통해 "미의 여신과 영웅들이 그의 요람을 지켜보고 있는 청년"이라고 소개하며 출판업자들에게 편지를 냈다. 그리고 클라라는 슈만의 작품이 대중 앞에 선보이기 전 먼저 그를 이해하고 감상했듯이, 브람스의 음악에도 똑같은 이해로 다가갔으며, 그를 고무하고 용기를 주었고, 연주나 작곡 이력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중요한 친구들에게 소개했다.

여섯 달 뒤 정신 질환을 앓던 로베르트 슈만이 자살을 기도했고, 그는 남은 2년 반의 생애를 정신 병원에서 보낸다. 그때 이미 클라라에게 - 그보다 열세 살이 많았다 - 매료된 브람스는 뒤셀도르프로 가서 곤경에 처한 그녀를 도왔다. 의사는 클라라가 남편을 자극할 위험이 있으니 병원을 방문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브람스같은 친구가 슈만을 방문하고 그 상태를 클라라에게 전했다. 브람스는 클라라가 연주 여행을 떠나면 아이들을 데리고 집에 있었다. 그는 가계부를 정리했으며, 슈만의 서재에서 책과 악보를 봤다. 이를 통해 그는 로베르트와 클라라의 음악에 가까이 갈 수 있었다.

출판사에 작품을 보내기 전에 젊은 작곡가는 먼저 클라라에게 악보를 보내 조언과 비판, 재검증을 부탁하기 시작했다. 브람스는 이전에도 친구들에게 출판 전에 악보를 먼저 보냈지만, 이때부터는 그러지 않았다. 오직 클라라만이 - 그녀의 판단만이 그에게 신뢰를 주었다 - 죽을 때까지 그의 작품에 의견을 말하게 되었다.

친밀한 교분은 유지되었으나 해가 갈수록 그 모습도 바뀌었다. 클라라는 어머니이자, 누이이며, 재정 조언자이자, 음악적 동료였다. 그는 5년 간 사랑에 빠진 젊은이로 그녀 곁에 있었지만, 나이가 듦에 따라 그녀가 아이들, 특히 아들들과 문제가 있을 때 조언자로 역할을 했다. 또한 클라라가 자녀들과 손주들을 부양하느라 힘들 때 경제적인 도움도 주었고, 장성한 세 자녀가 죽었을 때 위로해 주었으며, 그녀가 슈만 전집의 출판을 준비하는 엄청난 일에 직면했을 때 조언자이자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 주었다. 비록 한 동안 의견을 달리 하던 - 때로는 극심하게 - 때도 있었지만 친밀한 우정은 그녀가 죽는 날까지 계속되었다.
로베르트가 죽은 직후에 쓴 일기의 앞부분에서 클라라 슈만은 브람스에 대해 자녀들에게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그는 진실한 친구로 내 슬픔을 함께 나눠주었다. 그는 상처받은 마음에 힘을 주었고, 내 마음을 추스르며, 영혼을 밝혀 주었다. 한 마디로 그는 가장 절친한 친구였다."

슈만의 음악 출판을 놓고 오랜 동안 논쟁을 한 끝에 브람스는 그녀의 일흔세 번째 생일에 이렇게 편지했다. "보잘것없는 사람으로서 얘기합니다만, 그는 언제나 존경심을 가지고 당신을 대했고,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 누구보다 그를 사랑했던 - 당신에게 사랑과 선의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나는 오늘 다시 한번 반복해서 말합니다. 당신 그리고 부군과 지낸 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험이었고, 가장 위대한 보물과 가장 숭고한 순간을 담고 있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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