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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톨이 역을 떠나며
에너지 위기·지방소멸·기후변화를 넘는 길을 찾다
전현우
민음사 2026.07.17.
베스트
사회 정치 90위 사회비평/비판 top100 3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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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들어가며

1부 한국 도시의 죽음과 삶

1장 포항, 외톨이 역 현상
2장 광주, 조각난 도시
3장 경주, 무덤 속의 기차
4장 호남선의 밑 빠진 독 문제

2부 에너지 전환기의 전기차, 버스, 철도

5장 전기차냐, 철도냐
6장 인구 감소 시대의 버스
7장 전국 대중교통망의 방향

3부 비행기와 철새의 지정학

8장 바다를 건너는 길
9장 이동 시스템의 미래

부록 규칙 시각표를 향하여
I 전국망 그리기
II 도시와 철도를 연결하기

감사의 말
용어 설명
참고 문헌

저자 소개 1

986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서강대학교 철학과에서 분석철학을 공부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자연종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첫 책 『거대도시 서울 철도』(2020)는 한국출판문화상 학술 저술상을 수상했으며, 『납치된 도시에서 길찾기』(2022)는 ‘올해의 환경책’으로 선정되었다. 『오송역』(2023)을 쓰고 기후위기 속 에너지 전환을 다루는 『그리드』, 『모든 것을 전기화하라』를 함께 옮겼으며, 『과학적 실재론』 등 과학철학의 쟁점을 다룬 여러 책을 옮겼다.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 회원이며, 현재 서울시립대학교 자연과학연구소 연구원이다. 이 책 『외톨이 역을
986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서강대학교 철학과에서 분석철학을 공부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자연종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첫 책 『거대도시 서울 철도』(2020)는 한국출판문화상 학술 저술상을 수상했으며, 『납치된 도시에서 길찾기』(2022)는 ‘올해의 환경책’으로 선정되었다. 『오송역』(2023)을 쓰고 기후위기 속 에너지 전환을 다루는 『그리드』, 『모든 것을 전기화하라』를 함께 옮겼으며, 『과학적 실재론』 등 과학철학의 쟁점을 다룬 여러 책을 옮겼다.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 회원이며, 현재 서울시립대학교 자연과학연구소 연구원이다. 이 책 『외톨이 역을 떠나며』는 기후변화 시대 교통과 모빌리티의 오늘과 미래를 다룬 철도 3부작의 마지막 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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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7월 17일
쪽수, 무게, 크기
512쪽 | 142*225*35mm
ISBN13
9788937448805

책 속으로

21세기 들어 옛 도심을 벗어나 외곽 어딘가에 지어 놓은 역이 늘어났다. 확실히 기차는 빨라졌다. 하지만 선로를 똑바로 펴면서 중간 경유지로 떨어진 도시, 도심에 있는 역이 시끄럽고 먼지 날리며 길을 막아 불편하다고 역을 옮긴 도시, 문화유산을 이유로 선로를 들어 옮기는 김에 역도 없앤 도시, 아예 새로운 개발 공간을 일으키기 위해 역을 옮기는 도시가 계속 생겨났다. 포항, 경주, 군산, 진주, 원주, 남원, 안동과 같은 도시에서 역은 외톨이처럼 떨어져 있다. 외톨이 역은 시민과 외지인이 섞이는 만남 공간이 되지 못하고, 잠깐 머물다 자가용, 택시를 타고 가능한 한 빨리 벗어나야만 하는 공간이다.
‘3보 이상 승차’가 외톨이 역의 현실이다. 근육에 힘을 실어 역전 광장을 벗어나 봐야 주차장이 나오고, 곧 산길을 넘어야 한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도 다를 바 없게 되었다. 경주역은 2000년 동안 사람이 모여들었던 도심을 버리고, 사람이 별로 없는 근교로 일부러 찾아 들어갔다. 이렇게 외톨이 역을 가진 도시마다 자동차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커진다.
--- p.10

20세기 초 자동차와 비행기가 태동한 시절에는 도시주의의 꿈이 많은 이들의 머릿속을 지배했다. 도시주의라는 말을 던진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는 중세부터 이어진 꼬불꼬불한 구도심의 길을 ‘당나귀의 길’이라고 부른다. 이런 길은 그때그때 되는대로, 힘이 덜 드는 길로 움직이는 게으른 동물과 그에 순응하는 인간의 합작품이다. 이렇게 느린 도시에서는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근현대의 삶이 자리 잡을 수 없다. 의식을 가지고 목적지로 똑바로 가려면, 길도 똑바로 펼쳐진 인간의 길로 만들어 내야만 한다. 그 위로 달리는 것은 가속도 붙은 승용차다. 근육의 속도에서 만족하지 않고, 가속을 지향하며, 시민들이 목표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릴 수 있는 공간으로 도시를 재편하는 것. 이것이 바로 현대 도시화의 길이다. “마모된 엔진”으로 전락한 구도심을 쭉쭉 뻗은 자동차 도로를 중심으로 완전히 재개발하는 것이 르 코르뷔지에와 그 수많은 후계자들의 꿈이었다.
오늘날 사람들은 구도심을 채우고 있는 당나귀의 길이 가진 힘을 재발견하고 있다. 잘 가꿔진 당나귀의 길이 모인 구도심은 기꺼이 걷고, 또 멈춰서 모이게 한다. 시민들은 재미없는 곳, 위험해 보이고 불친절한 곳에서는 걷지도 모이지도 않는다. 때로 목적 없이 걷다가 멈춰서 주변을 깊이 살펴볼 이유와 여유가 있는 장소, 여러 종류의 목적이 얽혀 어떤 의도도 지배하지 못하는 공간.
--- pp.42-43

옛 철길은 많은 이들의 향수를 자극한다. 서부경전선은 50년 전의 철도 여행을 체험할 수 있는 이색 여행지로 추천된다. 하지만 나는 이 구간에서 미학보다는 안타까움을 느낀다.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편리를 제공해야 할 철도의 사회적 기능이 무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
이 철길이 이렇게까지 활용되지 못하는 것은, 다시 말해 아직까지 부산과 광주 사이 KTX가 없는 것은 단지 중앙 정부가 무관심해서는 아니다. 창원중앙~순천 사이 지리산맥과 섬진강을 넘는 구간은 2011~2016년 완공되었다. 문제는 인접 도시 간 교통량이 집중되는 부산~창원, 광주~순천 구간이다. 부산 방면에서는 다 건설된 터널 구조물이 지반 조건 때문에 깨졌다. 광주~순천은 이제야 보성을 거쳐 광주송정으로 빙 돌아 오는 노선이 2030년대 초 개통을 목표로 사업 중이다. 문제는 관이 아니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 p.50

『삼국유사』가 전하기를, 신라인은 황룡사 터가 수백만 년 전 가섭불이 좌선했던 자리라고 믿었다. 신라 이래 수백 년에 걸쳐, 수많은 사람들이 불교 체계가 제안하는 그 광대무변한 시공간 속에 무엇이 존재할지에 대해 열린 자세로 사변을 진행했다. 그렇다면 황룡사 터는 한반도 주민들도 무한에 대한 사변에 참여하고, 억겁의 시간을 상상하는 데 힘을 보태게 되었다는 증거가 아닌가.
그런데 21세기에 이르러서는 주차장에서 만나는 차량 행렬이 이 절집의 첫인상이자 마지막 인상이다. 황룡사에 딸린 주차장은 면적만 해도 회랑으로 둘러싸인 황룡사 면적과 거의 같다(약 3만 제곱미터). 박물관부터 월지를 거쳐 황룡사까지 주차장은 끝이 없다. 발굴과 이후 활용의 유연성을 감안한 조치라고는 하지만, 이미 확보된 주차 공간을 축소하는 일은 여간해서는 벌어지기 어려운 일이다. (……)
무한에 대한 사변이 이루어지던 절터에서 오늘날 마주하게 되는 것은 무한히 많아 보이는 자동차 행렬이다. 수백만 년 전 가섭불이 참선했고 1400년 전에는 신라 국가가 부처를 모셨던 이곳에 이제는 자동차 행렬이 수평으로 퍼져 있다. 21세기 무한은 자동차의 얼굴을 하고 온다. 앞으로도 수백 년에 걸쳐 우리의 이동은 자동차가 책임질 것이다. 이보다 명쾌한 21세기 자동차 지배의 한 초상이 있을까?
--- pp.92-93

역 주변에서 시간을 죽여야 했던 시절로부터 20년이 지나 나는 서대전역 토론회에서 발제를 하기로 했다. 토론회를 연 것은 대전 지역 시민단체였는데, 나로서는 특정 지역 편만 들 수야 없으니 전국 망을 모두 염두에 두고 설명해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말은 계속 길어졌다. 참다 못한 한 참석자가 질문을 던졌다.
“왜 이 역을 계속 활용해야 하죠?”
나는 대답했다. “기후위기 때문이죠. 기후가 아니라면 서대전역 다시 살려 쓰자는 이야기가 탄력을 받을 수 없습니다.”
현장에서는 그런 큰 이야기는 접어 두고 좀 더 구체적인 답을 해 달라는 논평이 이어졌다. 하늘에 떠 있는 기후 이야기가 땅에 뿌리를 내리게 하려면 결국 역을 사용해야 한다는 취지였지만, 진짜로 뿌리를 박기 위한 화학적 결합이 부족했다. 대체 이 역만이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게 무엇일까? 대전뿐만 아니라 호남선을 공유하는 한국 서남 지역 전체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말이다.
--- p.128

“그래서 철도입니까, 전기차입니까?”
강연과 북토크에서, 발표에서 사석에서 듣는 질문 가운데 가장 지긋지긋한 질문을 꼽자면 바로 이것이다. (……)
내가 택한 답은 이렇다. 개인의 측면에서, 나는 여전히 무면허자로 차량 소유와 거리를 두고 있다. 이동 시스템의 측면에서, 지금 2 : 1인 승용차 대 대중교통의 비중을 1 : 2로 뒤집어야 한다. 지금까지 나온 모든 대안 가운데 가장 과격한 대안이다. 곧바로 현재의 규모와 시스템의 관성에 관한 지적이 나온다. 자동차를 적극적으로 억제하는 정책이 없다면 그런 비중 변화는 불가능하다는 게 학계의 합의다. 현재 승용차 교통량이 대중교통 교통량보다 두 배나 더 많다면, 애초에 대중교통으로는 역부족이 아니냐는 비판이 들어온다. 생활인의 감각에서 대중교통의 한계를 토로하기도 한다. 철도는 “고객 맞춤과는 거리가 먼 교통수단”이다. 왜 내 삶의 리듬을 시끄럽고, 개별성을 대중으로 뭉뚱그리고, 가족 단위에게는 싸지도 않은 수단에 맞춰야 하는가? 이는 더 어려운 데다 더 근본적인 질문이다. 왜 집단주의적 수단에 내 삶을 맞춰야 하는지에 대해 대답하지 못하면, 자동차를 억제하는 정책 또한 좌초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p.167

잘게 쪼개진 현실을 넘어서려면 기찻길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대체 어디까지 하나로 묶는가가 쟁점이 된다. 기준은 수도권이다. 막 한국 인구의 절반을 집어삼켰고, 충청 북부와 영서 지방까지 모두 그 중력장 안에 거느리고 있으며,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도 여전히 인구 1000만 명이 넘는 괴물 같은 규모. 이 권역에 대적할 만한 규모가 필요하다. 거제와 울산을 연구하는 양승훈이 구상하는 부산·울산·경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삼남(三南) 전체를 놓고 망을 그려야 그다음이 있다.
삼남이 문제다. 수도권이야 다중 위기 속에서도 메가시티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철도 말고 다른 방향은 없다. 하지만 삼남은 대중교통이 중요하다는 합의 자체가 부족하다. 이미 자동차가 연결을 지배하는 부울경에서도 철도망으로 광역을 묶자는 양승훈의 의견은 소수파였다. 서울 중심 구심력이 강력한 수도권과는 달리, 삼남은 일종의 지역 군집 같은 상태이기 때문일까. 승용차로는 연결이 촘촘하지만, 철도에는 중앙 정부만 바라보며 누구도 돈을 쓰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 지금까지의 모습이다. 부산~울산만 해도 전철 하나 놓는 데 30년이 걸렸다.
--- pp.217-218

마치 사물의 의회가 열린 양 이야기해 보자. 힘센 정복자에게 항의하며, 자신의 존재양식을 존중해 달라고 요청하는 선주민의 변론이 이어지는 협상의 장 말이다. 철새들은 따져 물을 것이다. 자신들의 활동은 해안을 파괴하지 않는다. 오히려 바닷가와 농경지의 포식자로서, 그리고 비료 생산자로서 생태계를 풍부화하는 역할을 한다. 인간은 물이 몰려오는 상황에서도, 해안을 단단한 평지로 변화시켜 그 위에 토목 시설을 구축하고 건물을 만들어 내고 있다. 대체 왜 백 년도 기약할 수 없는 행동을 하면서 우리의 터전을 공격해 들어오는가?
의회에서 변론하는 약자들에게 상대적 강자가 먹고살기 어렵다고 항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인구가 거의 없던 시절부터 한반도를 이용해 온 선주민더러 ‘철새같이’ 이주를 한다고 반론하는 건 정주민으로 살아온 인간의 편견이다. 철새들은 무엇이 정주할 수 있게 만드는지 보여 주는 거울이다. 겨울의 초입, 봄의 초입에 어김없이 안행진(雁行陣)을 이루며 하늘을 가르는 기러기 떼는 대지를 지배하는 계절의 흐름과 그 배경이 되는 한반도가 속한 북서태평양 연안 지역 전체의 연결을 인간에게 증언해 준다. (……) 인간은 이를 망각한 채 땅을 나누어 다투고, 바다를 메워 마른 땅으로 만들면서 이대로 수백 년은 갈 것이라고 믿고 있지만 말이다.
--- p.263

기후 문제에 맞서 해야 할 일을 ‘환경을 지키기’가 아니라 ‘대지를 지키기’라고 바꿔 부르자는 라투르의 제안을 이렇게 번역할 수 있다. 20세기 말에서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서로 나뉘어 싸웠던 로컬과 글로벌이 통약 불가능한 상태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새로운 동맹이 필요하다. (……)
로컬로 고립된 상태에서 우리는 전기조차 누릴 수 없다. 재생에너지를 본격적으로 쓰려면 오히려 더 넓은 공급망을 건설해야만 한다. 간헐적으로 전기가 끊길 때도 전기를 쓰려면 그만큼의 에너지 저장 매체 또는 여유 전력을 전송할 망이 필요하고, 이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지리적 연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연결망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충분한 이동 역량이 필수다. 이러한 이동 역량을 제공하는 수단이 파괴되어 교류가 끊긴 채 전근대처럼 단절된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 pp.296-297

출판사 리뷰

『거대도시 서울 철도』·『납치된 도시에서 길찾기』를 잇는
교통철학자 전현우의 ‘철도 3부작’ 최종편

기차에서 내리자 갈 곳이 없는 외톨이 역,
그곳에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

첫 번째 삽화, 당신은 천년의 고도 경주를 찾았다. KTX를 타고 경주역에 내리자 사방이 산이다. 여기가 그 경주인가? 유적지로 가려면 버스나 택시를 타고 몇십 분을 들어가야 한다.

두 번째 삽화, 군산에서 개최하는 북페어를 찾은 당신. 역에 내리자 주차된 차만 보인다. 택시 줄이 금세 길어진다. 당신은 앱으로 호출한 차량을 기다리며 땀 흘리기 시작한다.

이것이 외톨이 역이다. 잠깐 머물다 가능한 한 빨리 차량을 타고 벗어나야 하는 공간. 모든 역이 이렇지는 않다. 기차에서 내리면 한눈에 들어오는 도시의 풍경, 역 광장에서 섞여 드는 사람들의 활기…… 역은 오래된 만남 공간이다.

그런데 2026년 한국에는 포항, 경주, 군산, 진주, 원주, 남원, 안동 등등 외톨이 역이 많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교통철학자이자 철도 전문가인 전현우는 외톨이 역에서 출발한다. 역 설계도를 들여다보고 지도를 새로 그리며 도심의 심장부로 걸어 들어간다. 그곳에 잊힌 채 버려진 대안이 있다.

“광주에서 부산 가는 KTX는 왜 없나요?”
포항에서 광주까지, 경주에서 호남선까지
현장을 발로 걷고 사람들과 대화하며
철도라는 버려진 대안을 발굴하고
지역에 피가 통하게 하는 망을 구상하다

“서울 가는 기차가 왜 이렇게 부족하죠?” “광주~부산 간 고속열차가 없는 이유는?” “어째서 서대전역을 거쳐야 하죠?” 철도 전문가에게 쏟아지는 질문들. 시민들이 느끼는 불편에는 오늘날 이동 시스템의 딜레마가 들어 있다. 더 많이 돈을 쓸수록 더 멀어지는 길.

전현우는 단순한 질문에 가장 복잡하게 대답하는 사람이다. 『거대도시 서울 철도』로 세계 도시의 철도개발지수를 매기고, 『납치된 도시에서 길찾기』에서 확장된 걷기 공간이라는 해법을 제시했던 그가 마침내 오래된 문제 앞에 섰다. 경상과 전라 사이 연결의 부재, 소외된 삼남(三南)의 현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동의 불편을 안겨 온 문제에는 미시적으로는 열차 배선에서 거시적으로는 도시의 역사까지 층층이 얽혀 있다.

경주역은 문화유산을 지킨다는 이유로 철도가 근교로 빙 둘러 가게 된 외톨이 역이다. 1980~90년대 경부고속철도의 경주 경유를 둘러싼 논쟁은 철도를 소음, 지역 간 단절, 환경 파괴의 주범으로 몰았다. 그 결과는 절보다 넓은 주차장으로 둘러싸인 황룡사 절. 우리가 보는 것은 황리단길에서 불국사까지 뒤덮은 자동차들이다.

“천년 뒤의 후손까지 생각하며 이 도시를 보존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분명 아름다웠다. 그렇지만 이는 경주를 인근 산업 도시 사이에서 섬처럼 생각하는 데 만족했다.”(110쪽) 저자는 이 도시가 울산, 포항, 대구와 연결되도록 광역 통행을 재건할 길을 찾는다. 문화유산 보호 구역 내 철도가 함께하는 유럽을 참고하되, 경주에 고유한 가능성을 복원한다. 그것은 황룡사에 9층 목탑을 세워 무한한 우주를 상상했던 고대인과 다시 연결되는 길이기도 하다.

기후변화 시대의 에너지 공급
인구 감소기의 대중교통망 확충
철새의 생존과 비행기를 타려는 욕망……
서로 화해할 수 없는 문제들을 연결하는
버려진 대안, 철도

곳곳에서 철도가 버려졌다.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철도지하화’ 주장, 막대한 예산에 대한 회의, 전기차라는 장밋빛 대안까지. 현실적인 사정을 거론하는 이들은 현상 유지에 머무른다. 하지만 그처럼 고립된 시야로는 오늘의 위기를 넘을 수 없다.

전쟁이 일어나는 세계에서 에너지는 문제로 다시 떠오른다. 현대인의 삶은 에너지 집중을 필요로 한다. 특히 제조업 국가이자 정보 기술에 사활을 건 한국에서 공공 전력망은 지켜야 할 최전선이다. 전기차 전환은 역송전(V2G)을 통한 재생에너지 전력망의 배터리 기능을 할 것이 기대된다. 이때 정부는 내연기관차 증대를 억제하도록 도로 공급을 제한해야 한다.

그게 가능하다고? 요점은 중첩된 위기들 사이에서 ‘좁은 회랑’을 찾는 일이다. 기후변화를 둘러싸고도 기존 체제를 유지하려는 세력과 급진적 변화를 요구하는 세력이 대치 중이다. 저자가 도입하는 것은 오래된 생각 도구, 철학이다. ‘통약 불가능한’ 두 세력의 접점을 찾는 마지막 장은 인공지능 시대 인간 사유의 한 정점을 보여 준다. 하나의 힌트는 경제적으로 ‘저렴한 세계’와 환경상 ‘적정한 세계’의 접점은 존재하며, 그 예가 철도라는 점이다.

구상에서 집필까지 5년이 걸린 『외톨이 역을 떠나며』는 치밀한 데이터 분석과 각계 전문가와의 토론이 마치 현장에서 전해 듣는 이야기처럼 흥미진진하게 엮여 있다. 130여 개의 지도, 인포그래픽을 쉽게 볼 수 있도록 사철제본을 택했으며, 부록에는 전국 철도망을 ‘규칙 시간표’에 따라 재편하는 계획을 최초 공개로 수록했다. 매일의 이동과 도시 생활에 관심이 있는 당신을 위한 단 한 권의 책이다.

추천평

“전현우, 그가 또 책을 썼다. 이번에는 삶의 공간과 격리된 ‘외톨이 역’이다. 철도 노선을 전국 단위로 연결하는 망 계획을 세우기 위해, 그는 한국의 중소도시를 직접 발로 뛴 현장성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철학적 성찰을 더한다. 지역 곳곳에서 열리는 학회와 세미나에서 유럽의 철도를 탐사하는 출장길, 미국 대륙횡단열차까지 종횡무진하는 이 책은 맨 앞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놓칠 수가 없다. 한국에 사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매일의 이동을 새롭게 보는 관점을, 교통·공간·도시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깊은 과제를 남긴다. 나 또한 죽기 전에 ‘규칙 시각표’대로 돌아가는 열차를 타 보고 싶다.” - 김태승 (인하대 물류전문대학원 교수)
“보행자·비운전자·대중교통 승객으로서 느끼는 울분이 있다. 차 굴리는 삶이 더 나은 삶이라는 걸 당연시하는 대화들. 기후위기 앞에서 자동차와 비행기 이동을 줄여야 한다는 말은 겨우 자기 차례가 온 사람에게 기회를 빼앗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도대체 어디에서 이야기를 시작할 것인가? 전현우는 ‘조망’이 아닌 시야로 우리를 데려간다. 땅에 두 발을 딛고 서서 지도와 개념을 만지고 외톨이 역, 철새, 대지 같은 비인간 존재로 의태한다. 인간 종으로서 우리가 어떤 모습의 이동의 미래를 만들 것인가를 탐구하는 이 열차에 올라타 보기를 권한다. 각오가 필요한 여정이지만, 나는 그가 데려간 자리로 가서 그와 함께 문제를 보게 되었다.” - 안은별 (모빌리티 연구자, 교토여자대학 전임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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