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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어느 행복한 날의 기억 41917년 ~ 1942년 내 이름은 딜쿠샤 81945년 ~ 2000년 창문 너머로 바라본 서울 282006년 ~ 2016년 언제나 그 자리에 44에필로그 언젠가는 돌아올 곳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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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다섯 살 집 딜쿠샤가 들려주는 서울의 근현대사1923년 행촌동 언덕 위에 서양식 건물이 들어섭니다. 이 집의 이름은 딜쿠샤. 처음 지어졌을 때부터 지금까지 딜쿠샤는 늘 그 자리에서 서울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빼앗긴 주권을 찾으려 애쓰는 한국인들의 모습, 1945년 8월 15일 무자비한 일제에게서 벗어나 광복을 맞이한 모습, 1960년 여름, 남한과 북한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 거리가 잿더미로 변한 모습, 1960년대 전쟁의 흔적을 지우고 빠르게 개발되는 모습 등. 이 많은 일들 속에서 딜쿠샤는 살아남았습니다. 이제 아흔다섯 살이 된 할머니 집 딜쿠샤는 자신이 보고 겪은 것들을 독자들에게 찬찬히 들려줍니다. 1945년 8월 15일.나는 거대한 함성 소리에 잠을 깼단다.“대한 독립 만세!”브루스가 태어난 다음 날 거리를 가득 메웠다던 만세의 함성을 직접 듣게 된 거지. _본문 28쪽 중전쟁에서 살아남은 나는 남산이 보이는 이 언덕 위에서전쟁의 흔적을 지워 가는 서울을 지켜볼 수 있었어.폐허가 되었던 도시는 빠르게 복구되기 시작했지.거리는 파헤쳐졌다 덮어지기를 반복했고높은 건물들이 서울을 뒤덮기 시작했단다. _본문 35쪽 중초가집과 기와집이 있는 풍경, 광복 때의 환희, 66년 만에 찾아온 반가운 사람들의 뒷모습 등 딜쿠샤가 창문을 통해 본 장면을 표현한 그림들은 독자들이 좀 더 딜쿠샤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줍니다. 각 장의 시작 페이지에서는 딜쿠샤의 전경을 보여 주어 인왕산 언덕 높은 곳에서 서울을 내려다보던 딜쿠샤가 점점 고층 건물들에 둘러싸여 갇혀 버리게 된 모습과 그 근방에서 제일 좋은 서양 집이었던 딜쿠샤가 점점 낡아 가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딜쿠샤와 서울의 변화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한국과 딜쿠샤를 너무나 사랑한 테일러 가족“우린 추방당한 다음에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살았어.매일 한국으로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렸지.앨버트는 태평양 너머에 자기 나라가 있고, 자기 집이 있다고 늘 얘기했단다.그러면서 만약 자기가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 죽거든자기의 재를 한국 땅에 묻어 달라고 부탁했지.” _본문 31쪽 중테일러 가족의 한국과 딜쿠샤 사랑은 특별했습니다. 기자이자 사업가였던 앨버트는 한국의 독립에 무척 관심이 많았고, 한국의 독립에 관한 기사를 많이 썼습니다. 갓 태어난 아들 브루스 밑에 감춰져 있던 3.1 독립 선언서를 발견하고, 그것을 전 세계에 알리기도 했습니다. 미국으로 추방된 뒤에도 매일 한국으로 돌아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던 앨버트는 갑작스럽게 심장마비로 죽게 되었고, 유언한 대로 서울 양화진 묘지에 묻힙니다. 메리도 한국과 딜쿠샤에서 지냈던 날들을 늘 그리워했습니다. 그때의 일기들을 모아 『호박 목걸이』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지요. 딜쿠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브루스는 딜쿠샤를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집이라 여기며 돌아갈 날을 늘 꿈꿨습니다. 그러다 2006년 여든일곱 살의 할아버지가 되어서야 딜쿠샤로 돌아오게 됩니다. 브루스의 방문으로 이름도 잊힌 채 ‘귀신이 나오는 집’으로 불리던 딜쿠샤는 이름을 찾게 되었고, 역사적 중요성도 함께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2017년 8월 8일 서울시와 문화재청은 딜쿠샤를 등록문화재 제687호로 지정하였고, 3.1 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인 2019년에 기념관으로 만들어 시민들에게 개방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늘 한국과 딜쿠샤를 그리워하던 앨버트, 메리, 브루스 덕분에 잊혀졌던 역사와 문화재를 알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브루스야, 네가 어디를 가더라도언젠가는 꼭 돌아와야 할 너의 집은 바로 이곳이란다.” _본문 20쪽, 54쪽 중자신의 몸을 희생하며 모두를 품어 준 희망의 안식처, 딜쿠샤“어머니는 이 집이 우리 가족의 희망의 궁전이 되길 바랐던 것처럼오래도록 한국인들의 희망의 안식처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고 말씀하셨지.” _본문 46쪽 중테일러 가족이 자신들의 희망의 궁전이 되길 바라며 만든 딜쿠샤는 약 100년간 테일러 가족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희망의 안식처가 되어 주었습니다. 광복 후와 한국 전쟁 때 거처를 잃어버린 피난민들에게 포근한 쉼터가 되어 주었고, 자신을 지탱하고 있던 나무와 파이프를 내어 주며 그들을 도와주었지요. 또 갈 곳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머물 수 있도록 넓은 집을 나누는 고통도 감수하였습니다. 태풍과 화재로 큰 고통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아픔들을 겪으며 딜쿠샤는 오랜 시간 동안 점점 낡고 병들어 갔지만 자신의 몸을 희생하며 많은 사람들을 품어 주었습니다. 등록문화재로 지정되고, 기념관으로 만들기로 결정되면서 약 100년간 같은 자리에서 우리를 품어 주던 딜쿠샤는 이제야 자신의 몸을 고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딜쿠샤의 추억』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딜쿠샤를 기억하고, 아껴 주고, 품어 주어 이제는 서울이 딜쿠샤에게 희망의 안식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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