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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9
제1부 … 13 대구역 ㆍ 성냥 공장 ㆍ 춘식 어멈 ㆍ 입학 ㆍ 멘스 ㆍ 장발의 시인 제2부 … 49 아버지 ㆍ 느티나무 아래 ㆍ 대신동 ㆍ 절 ㆍ 진희네 우유 ㆍ 소견서 ㆍ 펜팔 친구 제3부 … 101 무아 레스토랑 ㆍ 번데기의 추행 ㆍ 미연 언니 ㆍ 선플라워 ㆍ 화장 ㆍ 짝사랑 제4부 … 143 미란의 편지 ㆍ 숲의 비밀 ㆍ 손목시계 ㆍ 고집 ㆍ 밀려온 불행 ㆍ 공장장 오 씨 ㆍ 슬픔 ㆍ 엄마의 유언 제5부 … 173 수예 ㆍ 이복동생 ㆍ 차용증 ㆍ 미남 ㆍ 독살스런 분노 ㆍ 지옥 ㆍ 붉은사슴뿔버섯 ㆍ 가출 제6부 … 231 작은 집 ㆍ 결별 ㆍ 상범의 자취방 ㆍ 문학회 ㆍ 사고 ㆍ 세상 속으로 작가의 말 … 2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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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만 왜 나를 낳았어? 이렇게 병신으로 키울 거면서 왜 나를 낳았냐고! 빨리 나 할머니한테 보내줘. 학교 안 다니고 시골로 갈 거야. 나는 대구가 싫어!”
나는 골부림을 하며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밤새 울다가 지쳐 잠들다 깨고 잠들다 깼다. 눈을 감으면 고향 오포리의 논밭과 일렁거리는 바닷가의 전경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할머니 등에 업혀 바닷가에 갔던 일과 시골에서 행복했던 일이 떠오를 때마다 너무 그리워 애간장이 녹을 것 같았다. 늘 울어서 눈이 퉁퉁 붓고 짓물렀다. ---「제1부」중에서 대문도 없이 야트막한 슬레이트 지붕이 잇따라 있던 동네. 파리가 날리고 시끄럽고 탁한 수챗물이 흐르는 그 동네에 정순 언니와 동생들, 그리고 상범과 둘러앉아 밝게 웃던, 푸짐하고도 따뜻했던 그 풍경은 내 머릿속에 오랫동안 맴돌았다. ‘하나님. 정순 언니가 하늘나라에서 편히 잠들 수 있게 도와주세요. 거기에선 다리도 불편하지 않고 아름답고 건강한 숙녀로 살게 해주세요.’ ---「제2부」중에서 “와카노. 밥맛 없게. 난 중학교 일 학년 때부터 술 마시고 담배 폈다. 다 나쁜 짓 해감서 크는기라. 그래야, 세상맛도 알지. 이 세상이 평생 술 한 잔 안 묵고 살아갈 수 있을 만큼 만만해 보이더나?” 미연 언니가 턱을 약간 든 채 맑은 소주잔을 실눈으로 쳐다보면서 뇌작거렸다. 술을 자기가 손수 따라 안주도 없이 입안에 연거푸 톡 털어 넣었다. 우동은 면발이 굵어 밀가루 냄새가 났다. 나는 젓가락을 말없이 놓았다. ---「제3부」중에서 “세상은 왜 이렇게 불공평하죠? 신이 계시다면 이럴 순 없어.” 나는 큰 볼일이 있는 사람처럼 목발을 짚고 일어섰다. 상범도 따라 일어났다. 상범은 헤어지면서 전화 자주 하라는 말에 힘을 주었다. 엄마를 떠올리자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 북받쳤다. ---「제4부」중에서 밖에서 본 공장은 그 여느 때보다 우중충하고 불결해 보였다. 엊그제 가을비 내린 주변은 축축했고, 곳곳에 독버섯이 자라 있었다. 언뜻 보면 식용으로 먹을 수 있는 개암버섯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독버섯의 일종인 노란다발버섯이 꽃송이처럼 수북하게 자라 있었다. 그 옆엔 붉은사슴뿔버섯이 어김없이 발악하듯 오기로 자라 있었다. 죽고만 싶었다. 이런 수모를 당하면서 왜 죽지 못하고 사는지 나도 알 수 없었다. ---「제5부」중에서 “나 한 번만 안아줘. 아니, 나하고 자도 돼. 절대 책임지라고 안 할게. 발목 잡지도 않을게.” 애원하면서 그에게 몸을 바짝 들이댔다. 그가 흠칫 놀라는 얼굴로 몸을 뒤로 젖혔다. 나는 무엇이 씌어댄 것처럼 갑자기 두꺼운 재색 스웨터를 훌렁 벗었다. 빈대처럼 빈약한 가슴과 불균형적인 자세 때문에 체형이 일그러져 뭉특한 허리와 불룩한 아랫배가 드러났다. ---「제6부」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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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피어난 병든 욕망,
공동체의 붕괴와 사회적 차별 속에서 살아가는 어느 장애 소녀의 이야기 1962년부터 제4차에 걸쳐 진행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1차산업에 의존하던 우리나라의 경제지도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그 시기 전국 곳곳에 도로가 뚫리고, 발전소가 세워지고, 공장이 들어서고, 현대식 주택이 지어지면서 사람들의 삶은 점점 편리하고 윤택해졌다. 하지만 세상이 밝아진 만큼 어둠도 존재했다. 배금주의가 널리 퍼지면서 사람들 머릿속엔 돈이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의식이 팽배해졌고, 가난하거나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발전의 걸림돌처럼 여기는 시선도 생겨났다. 소아마비로 인해 두 다리를 못 쓰게 된 이 소설의 주인공 ‘윤희’도 바로 그런 ‘쓸모없는’ 존재였다. 대천의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서 살던 윤희네 가족은 산업화로 인해 마을이 파괴되자 대구로 이사를 간다. 아버지는 대도시에서 돈을 모아 성냥 공장을 시작하고, 소아마비로 걷지 못하던 윤희도 비로소 목발을 짚고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된다. 시골 소녀이던 윤희는 나날이 변해가는 도시를 몸소 체험하며 세상의 차가운 차별 앞에 선다. 날마다 돌을 던지며 놀리는 친구들 때문에 학교 가기가 죽기보다 싫었던 윤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서히 세상사에 눈을 뜬다. 음악 레스토랑을 다니며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미연 언니를 만나기도 하고, 펜팔로 사귄 정순 언니네 집을 방문해 자신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서 생활하는 소외된 사람들도 만난다. 한편 윤희의 눈에는 병든 욕망으로 상처 입고 타락한 어른들의 모습도 비친다. 돈이면 뭐든 되는 세상을 살아가는 어른들의 욕망. 가지지 못한 자와 힘없는 자를 함부로 소외시키면서도 죄의식이 없던 시절의 야만적인 욕망은 윤희의 시선을 통해 섬세하게 재현된다. 그러나 그것이 단지 지난 시절의 이야기일 뿐일까? 이 소설이 오늘날에도 유효한 까닭은 시대적 배경만을 갈아 끼운 듯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망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 괴물 같은 욕망에 맞서는, 약하고 연하지만 분명 초록빛의 싹을 틔우는 소외된 사람들의 몸짓 또한 그렇듯 지금과 닮아 있다. “내 마음속 시커먼 웅덩이에는 탁한 물이 고였고 그곳에서 독버섯이, 그 어떤 분노가 자라났다.” 비록 두 다리를 못 쓰는 장애인이지만, 몸이 성장함에 따라 윤희도 서서히 어른들의 세계로 진입한다. 그곳은 성적 욕망과 분노, 그리고 복수심이 도사린 세계였다. 이성에 눈을 뜨게 된 윤희는 상범이라는 남학생에게 끌리는 마음을 어쩌지 못해 속을 끓인다. 그러던 어느 날, 어린 여공 출신인 미란 언니가 늙은 아버지의 아이를 안고 집으로 쳐들어온다. 윤희네 일을 돌봐주던 공장장과 그의 아내 춘식 어멈은 당장이라도 미란을 쫓아낼 듯 눈을 부라리지만, 실상은 그들도 윤희네 돈을 뜯기 위해 옆을 배회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던 중 화병을 얻은 엄마가 결국 암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미란은 윤희의 새어머니가 된다. 안방을 차지한 미란은 늙은 아버지와 시시콜콜 불화하며 조용하던 집 안을 시끄럽게 만든다. 그러나 아버지는 미란을 내치지 못한다. 아들을 낳아주었기 때문이다. 이를 아는 미란은 말도 안 되는 꼬투리를 잡아 윤희 자매를 괴롭히고, 급기야 윤희는 아버지에게 대들다 짐을 싸서 밖으로 나오게 된다. 윤희에게 “집은 곧 꿈이 없는 무덤”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아버지와 미란을 향한 증오와 원망은 곧 자책과 죄의식이라는 화살이 되어 그녀에게 돌아온다. 더 이상 엄마가 돌보지 않는 마당에는 붉디붉은 독버섯이 섬뜩하리만치 아름답게 피어오르고, 윤희는 조금만 먹어도 치사량에 이른다는 붉은사슴뿔버섯을 먹고 그만 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마저 품게 된다. “나 한 번만 안아줘. 아니, 나하고 자도 돼. 절대 책임지라고 안 할게. 발목 잡지도 않을게.” 윤희는 오랫동안 상범을 좋아했다. 상범은 윤희를 장애인이 아닌 일반인으로, 또 친구로 대해준 거의 유일한 남자다. 그의 친절은 너무도 달콤하고 부드러워서 윤희는 상범이 자기를 먼저 좋아한 건 아닐까 착각하기도 했다. 그런 상범이 자기를 밀어냈을 때 윤희는 상범을 원망하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속상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얼마 뒤, 상범으로부터 도저히 믿고 싶지 않은 소식이 들려온다. 윤희는 마치 자신이 상범을 좋아해서 불행이 전염된 것만 같다는 죄책감을 느끼며, 자신을 둘러싼 모든 욕망으로부터 벗어나 새 인생을 살겠다고 다짐한다. 이 책은 서순희 소설가가 2012년 펴낸 『순비기꽃 언덕에서』의 뒷이야기다. 서순희 소설가는 시골의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서 할머니 등에 업혀 목격했던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과 산업화로 인해 파괴되는 마을 공동체를 이 책에서 섬세한 필체로 그려내며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그리고 그 작은 소녀가 보금자리를 잃고 대구라는 대도시로 건너와 붉고 검은 욕망들 사이에서 성장하는 이야기가 『붉은사슴뿔버섯』이다. 힘과 자본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가장 먼저 소외된, 작은 장애 소녀 윤희. 붉고 검은 욕망들 사이에서 다리에 힘을 주지 못하고 이리저리 휘청이던, 상체만 커져 버린 장애 소녀 윤희. 그리고 마침내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 일어서 더 가난하고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보듬어 안아주는, 윤희. 그런 윤희가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어쩌면 우리는 이미 나아가야 할 길을 찾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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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작가 스스로의 자전 서사이자 한 시대에 대한 비판적 축도로 다가온다. 다양한 인물들이 들려주는 사랑과 우정, 욕망과 탈윤리, 분노와 자책의 양상들이 한 장애 소녀의 사실적 관찰과 묘사를 통해 섬세하게 재현된다. 특별히 소녀가 나무 사이에서 발견한 ‘붉은사슴뿔버섯’은 이러한 삶의 모습들을 암시하는 놀라운 은유적 상관물로 그려진다. 이문구 선생 제자답게 독자적인 문체로 뭇사람들의 언어를 담아낸 공력도 눈부시다.
성장소설은 대체로 미성숙한 아이가 성숙한 성인이 되어가는 순차적 과정을 담아내지만, 이 소설은 오히려 성년 이전의 순수성을 소중하게 안으면서 성년을 향한 순응과 거부의 양면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이 점, 고전적 성장소설의 문법을 충족하면서도 넘어서는 서순희 작가만의 아름다운 문학적 성취일 것이다. - 유성호 (문학평론가, 한양대학교 국문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