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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엄마 일기 - 백일곱 번의 기차놀이
달팽이 기차/ 네잎클로버 날개/ 초록색 도깨비불/ 이 흐린 세상이 네 눈동자 속에서/ 동화나라 되듯/ 검정 돌멩이를 보며, “고래!”/ 새한테 물어볼래/ 별 먹을래, 작은 별/ 엄마가 집에 없으면/ 어떤 기분이야? 2부 현이 일기 - 기억의 순간들 우리는 추워서 꼭 끌어안았다 해바라기 꽃잎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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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네가 태어난 지 106일째. 슬프도록 파랗던 울진. 죽변의 바닷빛이 기억나니? 대나무숲을 스치던 바람 소리. 가로등을 적시던 빗소리 혹시 기억나니? 첫눈이 내리던 날, 아빠가 곱게 두 손에 보듬고 왔던 하얀 눈뭉치. 크리스마스 날, 아빠가 공주에서 보내왔던 붉은 장미꽃과 케이크도 기억나니?
---「기차놀이 1」중에서 현아, 창문을 여니 싸락눈이 모든 지붕이 낮게 가라앉은 소도시에 내리고 있어. 어제 『전혜린』을 읽어서일까. 뮌헨 슈바빙의 잿빛 안개와 레몬빛 가스등이 환상처럼 눈 속을 스쳐 가는구나. 여기는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 창문 여는 소리에 너도 살포시 깨어, 잠시 엄마와 함께 싸락눈을 바라봤어. 그리고 곧 다시 잠이 들었단다. 현아, 폭설이 몰아치는 날, 우리 태백행 기차를 타자. 혹은 네가 태어난 죽변, 바닷가에 가자. 가서 눈을 받아들이자. ---「기차놀이 3」중에서 어제는 봄비가 내렸어. 청량리역에 내리자 비가 올 듯해서, 엄마는 황급히 베이지색 우산을 샀어. 성대 7층에서 강의를 시작했을 때 폭포수 같은 봄비가 쏟아져 내렸어. 현아, 엄마는 비를 아주 사랑해. 레몬빛 가로등에 빗물이 모여들면, 엄마는 문득 떠나간 사람들이 그리워. 낯선 거리를 헤매 돌고 싶어지지. ---「기차놀이 7」중에서 현아! 아주 오랜만이야! 지금은 미나리밭 꽝꽝 어는 겨울날. 계절이 두 번 바뀌는 동안, 엄마는 우리 현이 때문에 부산했구나, 행복했구나. 여기는 산과 강이 내려다보이는 단양 초입. 오늘도 어제처럼 저녁눈이 내렸어. ---「기차놀이 17」중에서 바람 속에서 우린 강물을 바라보았지. 원주로 가는 길은 아름다웠어. 현이는 몸을 돌려 뒷좌석 사람들을 보고 웃고, 또 웃고, 아저씨들이 지나갈 때마다 손가락으로 ‘우우’ 가리켰어. 천안 호두과자 아저씨 손수레를 끌고 다니는 기차 아저씨. 원주역. 엄만 현이 안고 시내를 한 바퀴 돌았어. 갑자기 바람 거세지고, 현이 엄마 어깨에 고개 묻었다, 들었다, 묻었다, 들었다……. ---「기차놀이 21」중에서 봄날. 먼 기차 여행을 했어. 정선 장날에 현이 고무신을 샀지. 깊은 산속, 깊은 계곡에서 꿈같은 하룻밤을 묵었어(현이가 베란다로 아빠 구두 한쪽을 던졌었어). 아우라지 지나 구절리… 깊숙한 기차역. 스산했던 숲의 기억. 엄마 품에 안겨 행복한 미소를 지었지, 쓸쓸한 기찻길에서. ---「기차놀이 23」중에서 현아, 오늘 너 아빠와 운동장 두 바퀴나 돌았다며? 미끄럼틀, 그네, 사다리, 정글짐 부근에서 재밌게 놀았다며? 엄마 공부하는 도서관 1층에도 왔었다며…. 저녁엔 셋이서 곤충들을 봤어. 개미, 벌, 잠자리, 메뚜기, 거미, 무당벌레, 딱정벌레, 개구리, 사슴벌레…. 잎사귀에 떨어진 빗방울 무게에 눌려 몸을 뒤집던 딱정벌레 기억나? 개미 잡아먹던 새의 부리 기억나? 다른 곤충 잡아먹던 식충식물의 끈끈이. 좀 징그러웠던 것도? ---「기차놀이 30」중에서 모모는 책을 참 좋아해. 오늘은 둥지 속에 들어있는 세 마리 아가 새 그림을 봤어. “속에 들어가야 해. 엄마가 맛있는 것 준대!” 나의 아가 새여. 엄마 새는 둥지 속의 아가 새에게 맛있는 것을 물어다 준다. ---「기차놀이 51」중에서 양평역 부근. 모모는 나에게 물을 달라고 했어. 역 앞, 작은 화단. 이름 없는 꽃들에게 물을 준다는 것. 근처 슈퍼에서 나는 작은 생수를 샀고, 모모는 꽃들에게 물을 줬지. ---「기차놀이 57」중에서 아늑하다. 하늘, 바람, 구름, 기차 소리, 전봇대, 옥수수잎, 호박잎 풍경, 이 작은 길모퉁이. 너의 웃음 때문에 엄마는 산다. 살고 싶다. ---「기차놀이 67」중에서 모모, 빗속에서 했던 말. “비에 젖어. 물고기도 젖어. 바다도 젖어. 엄마도 젖어. 아빠도 젖어. 현이도 젖어!” ---「기차놀이 79」중에서 모모, 침대 위에 일렬로 장난감들을 눕혔다. 장수풍뎅이, 쇠똥구리, 수달. 노란 수건을 이불로 덮어주고, 자장가를 부른다. 톡톡 다독이기까지 한다. “잘 자라, 우리 아가. 나는 곤충 아빠니까.” 하면서 제법이다. 그리곤 스르르 잠이 든다. ---「기차놀이 90」중에서 “엄마가 집에 없으면 어떤 기분이야?” “집에 뱀이 있는 것 같아.” “엄마가 집에 있으면?” “집에 별이 있어!” ---「기차놀이 92」중에서 창가에 서서 여름 풍경을 쫓던 너의 눈망울. 노을은 맨드라미 꽃판처럼 붉었었지. 정읍에서 고창까지 밤버스를 타고 달렸다. 너는 장수풍뎅이 냄새가 난다며 아우성! 행복은 첫날 밤에 찾아왔다. ---「기차놀이 104」중에서 모모! 오랜만에 불러보는 애틋한 이름. 지금은 새벽 두 시. 깊은 적막 속에 엄마는 깨어 있다. 물을 끓인다. 커피를 마신다. 지금쯤 너는 꿈길을 걷고 있겠지…. 꿈속에서 우리 모모는 누구를 만났을까? 사슴벌레, 갈참나무 숲, 아니면, 죽변 오징어잡이배 불빛. 혹은 단양. 벚꽃잎 만났을까, 폭설을 만났을까, 장미터널 길 지렁이를 만났을까, 도깨비를 만났을까, 여우를 만났을까 엄마는 자꾸 그려본다. ---「기차놀이 106」중에서 나는 반달이 싫다. 왜냐하면 곤충을 못 잡기 때문이다. 등화 채집은 반달이 있으면 아예 안된다. 곤충 한 마리도 못 잡는다. 그러나 반달을 아기에게 신겨주는 것, 물 긷는 것, 머리 빗겨주는 것이 정성스럽다. ---「기적 하나」중에서 나는 오늘 아침으로 과일을 먹고 지하철을 타고, 국립 고고학 박물관에 갔다. 우리는 가방을 같이 놓고, 고고학 박물관을 보았다. 변태스러운 동상도 몇몇 개 있었다. ---「기적 둘」중에서 나는 ‘해가 바다 어디로 가라앉을까’ 궁금했다. 다음은 이야마을. 나는 아빠와 절벽 아래로 내려갔다. 거기에 고양이도 있었다. 바다가 참 푸르렀다. 이야마을 집들은 하얀 벽에 파랑 지붕이었다. 이야마을 일몰은 참 멋있었다. 그런데 하필 아빠가 캠코더를 잊어버렸다. 그래도 엄마와 나는 일몰 풍경을 잘 보았다. 우리는 추워서 꼭 끌어안았다. ---「기적 넷」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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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해바라기 꽃잎편지 모모 안녕? 엄마야. 봄날, 작은 운동화에 벚꽃잎이 쏟아졌었잖아. 등 뒤로 바람이 불어오고. 그때 우리의 웃음이 해바라기 씨앗이었었나 봐. 네가 멧새 되어 네 별로 날아간 지 어느덧 일 년이네. 엄마는 짙은 안개 속에서 장미길을 떠올렸는데 그때마다 모모는 작은 장난감북을 들고 웃었어. 명파 잔물결처럼 아련했던 기타 선율. 평생 시를 쓰고 싶다던 너. 맨발의 노숙자에게 신발을 사 줬던… 너의 생은 온통 연민이 가득 찬 숲그늘. 네가 무럭무럭 자라는 동안 엄마도 하루하루 엄마가 됐지. 모모. 그곳에도 바람 불고 꽃 피겠지. 저 설원 시베리안 허스키처럼 자유롭길. 새 울음소리 들으며 행복하길. 눈부신 시인이길! -엄마 박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