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1 문자를 보내다
2 증산공원에 가다 3 윤재와 동물원에 가던 날 4 윤재와 다시 동물원에 가던 날 5 우리가 살던 집을 내려다보며 6 여고 시절의 우리 7 어머니의 죽음 8 예가체프 커피를 마시며 9 아버지의 이름 10 영천경찰서 11 늑골에 새긴 말 12 그는 왜 내 곁을 떠났을까? 13 윤재의 연락 14 온천천변을 걸으며 15 전화 오다 16 만남 해설 | 자기를 찾는 기억의 풍경-구모룡 작가의 말 |
박영해의 다른 상품
|
▶ 말할 곳을 찾지 못한 언어가 자기만의 목소리를 되찾기까지
말할 곳을 찾지 못한 여성의 언어는 대개 안으로 향한다. 가족과 친구, 친척들 앞에서 저마다 다른 가면을 쓰고 지내야 했던 혜주에게 스스로를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자리는 일기와 윤재였다. 그녀는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것들을 자기만 알아보는 언어로 종이에 새기며 힘겨웠던 산동네 시절을 견뎌냈다. 그러나 아이를 키우는 동안에는 책 한 줄에도 몰입하지 못했다. 아내로, 엄마로, 교사로 채워진 세월 동안 자신의 이야기는 뒤로 밀어두어야 했다. 남편을 먼저 보내고, 아이들을 독립시키고, 마지막으로 어머니마저 떠나보낸 뒤에야 혜주는 오랫동안 미뤄둔 목소리를 다시 꺼내고 윤재에게 말을 건다. 혜주는 윤재를 만나 지난날 건네지 못한 질문을 하고, 그 앞에서 온전할 수 있었던 자기 자신을 되찾으려 한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었던 유일한 존재였던 그를 통해, 혜주는 스스로 살아온 삶을 매듭짓고자 한다. 누구의 아내도 엄마도 아닌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언어를 되찾고 스스로를 돌보는 이 행위는 오랫동안 침묵 속에서 살아온 여성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발화의 자리를 만들어가는 과정과 맞닿아 있다. ▶ 산동네, 부산진성, 그리고 동물 우리에 살던 사람들 중학교 입학 직후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 나면서 혜주의 가족은 유복했던 시절을 보낸 부산 초량동과 좌천동 은행 곁의 집을 떠나 부산 좌천동 산동네로 밀려난다. 이곳은 조선시대 부산진성이 있던 자리이자 임진왜란 당시 첫 격전지였고, 훗날 방치된 공동묘지를 밀어내고 짓다 만 동물원이 흉물처럼 남아 있던 장소이다. 무덤을 파내고 주검을 태우던 이장(移葬)의 풍경, 이순신 장군과 부산포해전, 일제강점기 강제징용과 우키시마호 폭발 사고까지, 동네 아주머니들에게서 전해 들은 구전 이야기들은 이 가난한 동네가 그저 낙후된 변두리가 아니라 전쟁과 죽음, 이산의 역사가 겹겹이 쌓인 장소임을 말해준다. 한편 짓다 만 동물원의 우리에는 갈 곳 없는 사람들이 스며들듯 들어와 살기도 했다. 사슴이나 여우의 팻말이 붙은 철창 안에서 밥을 짓던 이들, 담요 한 장으로 아기를 감싸안고 있던 여자를 목격한 소녀 혜주는 자신의 가난보다 더 깊은 밑바닥이 있다는 사실에 말을 잃는다. 이처럼 소설이 그리는 증산에서 온천천이 흐르는 안락동까지 이어지는 부산의 지도는 단지 배경에 머무르지 않는다. 부산진성 전투에서 일제강점기, 산업화 시기의 판자촌 형성과 재개발에 이르기까지 한 동네에 쌓인 시간들을 한 여성의 사적인 기억을 통해 되짚는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좌천동이라는 구체적 장소의 도시사를 기록한 미시사로도 읽힌다. 역사의 흐름은 흔히 국가와 자본이 남긴 큰 사건과 그 이름으로만 기억되지만 박영해의 소설은 그 흐름이 한 소녀의 밥상과 우물가 이야기, 동물 우리에서 살아가던 이웃들의 얼굴에 어떻게 내려앉았는지를 세밀하게 되살린다. 『우리, 다음 생에 만날까요?』는 개인의 사랑과 상실을 그리면서 동시에 공식 역사에서 지워지기 쉬운 변두리 동네와 그곳 사람들의 삶을 되살려낸다. |
|
이 소설은 한 마디로 ‘늑골에 새긴 말(言)’이다.
‘혜주 씨는 잘할 수 있을 겁니다!’ 라던 그 말 한마디를 불빛 삼아, 상실과 어둠을 견디며 산 자의 뒤늦은 모놀로그다. 주인공인 ‘나’는 재해석되고 기록됨으로써 가면을 쓰고 무던히 살아내려 애썼던, 그러면서 ‘진짜 나’를 드러내고자 했던 모순 속에서 규명되지 못했던 과거의 나를 불러내어 애도하는 의식을 치른다. 화자(話者)에 의해 ‘거기’라 불리는 곳, 지금도 사람들이 사는 좌천동 증산 부근. 오랜 시간의 흔적이 켜와 겹을 이루며 단단한 지층이 되어 있는 공간을 작가는 섬세한 시선으로 어루만진다. ‘거기’라는 장소의 혼과 그곳을 스쳐 간 사람들을 기억하고 애도하고 연결하며…. - 배이유 (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