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한 마디로 ‘늑골에 새긴 말(言)’이다.
‘혜주 씨는 잘할 수 있을 겁니다!’ 라던 그 말 한마디를 불빛 삼아, 상실과 어둠을 견디며 산 자의 뒤늦은 모놀로그다.
주인공인 ‘나’는 재해석되고 기록됨으로써 가면을 쓰고 무던히 살아내려 애썼던, 그러면서 ‘진짜 나’를 드러내고자 했던 모순 속에서 규명되지 못했던 과거의 나를 불러내어 애도하는 의식을 치른다.
화자(話者)에 의해 ‘거기’라 불리는 곳, 지금도 사람들이 사는 좌천동 증산 부근. 오랜 시간의 흔적이 켜와 겹을 이루며 단단한 지층이 되어 있는 공간을 작가는 섬세한 시선으로 어루만진다. ‘거기’라는 장소의 혼과 그곳을 스쳐 간 사람들을 기억하고 애도하고 연결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