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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의 책『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2』출간에 부쳐
책을 펴내며 1. 소나무 아래 산중호걸 김홍도의 <송하맹호도> -옛 그림의 표구 2. 화폭에 가득 번진 봄빛 김홍도의 <마상청앵도> -문인화, 옛 선비 그림의 아정한 세계 3. 겨레를 기린 영원의 노래 정선의 <금강전도> 4. 딸에게 준 유배객의 마음 정약용의 <매화쌍조도> 5. 부리뽑힌 조국의 비애 민영익의 <노근묵란도> -조선과 이조 6. 한 선비의 단아한 삶 <이채 초상> |
吳柱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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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 가지의 배치는 대체로 자연스럽고 공간 분할에 무리가 없다. 특히 위에서 아래로 향한 구도 덕분에 그림과 글씨가 서로 잘 연결된 느낌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마치 아동화兒童畵 같은 천진함이 느껴진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것은 우선 공간감이 다소 부족한 데서 오는데, 가지의 전후 관계는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나 공간 속에서 들어가고 도드라진 깊이감은 덜 느껴진다. 평면적이기 때문이다. 새도 그렇다. 말하자면 몸을 편 왼쪽 새가 사위이고, 다소곳이 뒤에 앉은 새가 딸이 아닐까? 그러나 앞뒤만 느껴지지 입체감은 적다. 작품의 중심이 되는 이 한 쌍의 새, 곧 다산의 어여쁜 딸과 사위는 직각이 되게 나란히 겹쳐놓았는데, 그것도 화면의 한가운데에 고지식하게 앉혀놓았다. 흔히 화조화花鳥畵에서 새를 그릴 때는 어느 한편으로 슬쩍 치우치는 것이 더욱 세련된 구성이 된다. 이 역시 능숙한 화가라기보다 아마추어 문인화가였던 선생의 약점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아니 그렇기 때문에 다산 선생의 딸자식을 향한 속사랑이 그대로 화면 위에 배어 나온다. 더구나 이 두 마리 새는 너무나 작다! 활짝 핀 매화 송이보다 약간 더 크다 할 정도다. 세상에 어쩌면 이렇게 조그만 새가 있을까? 이것은 아마도 실재한다기보다 자식을 앳되게만 바라보는 아버지의 마음속에나 존재하는 새가 아닐까? 또 저 새들을 바짝 다가가서 보라. 뒤쪽 새의 눈동자가 오른편으로 쏠려 마치 뒤를 돌아보는 듯, 혹은 정답게 눈길을 흘기는 듯싶다. 소박한 동심이 엿보인다. 여기서도 시나브로 웃음이 번져 나오게 하는 서투름이 감지되지만, 그 서투름에는 어디까지나 부정父情의 진실함에서 오는 따사로움이 느껴진다. 그런 천진스러움은 매화에서도 발견된다. 하나같이 그저 동글동글해서 너무나 사랑스럽게 그려진 매화 봉오리와 꽃잎들, 그리고 이제는 햇가지와 꽃의 채색이 흐려져서 상대적으로 너무 짙어 보이게 된 매화 꽃받침의 앙증맞은 붓질이 그러하다. --- 「4. 딸에게 준 유배객의 마음, 정약용의 <매화쌍조도>」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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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이 책은 오주석 선생이 2004년에 펴내려 한 것이다. 그러나 원고를 준비하던 동안에 병마가 찾아들어 저자가 타계하였기에, 몇 해 동안 미완인 채로 남아 있게 되었다. 이런 점을 감안하여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2』의 체재는 생전에 저자가 잡아놓은 틀을 토대로 하였다. 그 가운데서 목차에는 들어 있으나 저자가 완결 짓지 못한―예로, <일월오봉병日月五峰屛>에 대한―글들은 빠졌다.
이 책에서 오주석 선생이 깊이 읽어내는 옛 그림은 김홍도의 <송하맹호도>, <마상청앵도>, 정선의 <금강전도>, 정약용의 <매화쌍조도>, 민영익의 <노근묵란도>, 작가 미상의 <이채 초상> 등 모두 여섯 작품이다. 이 가운데 저자의 독화기讀畵記를 몇 가지 읽어보면 이렇다. 김홍도의 <송하맹호도>가 천하명품인 이유는 아주 세밀하게 호랑이를 그려 그 생명력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균형감 있고 조화롭게 여백을 분할해 놓은 덕분이다. 한편, 호랑이 위 소나무는 표암 강세황의 그림이 아닌데, 소나무 옆에 쓴 글씨가 졸필인데다 제자의 그림에 스승이 ‘내가 그렸다’며 제자 대신 글을 쓸 리 없기 때문이다. 술을 몹시 좋아한 김홍도의 다른 작품 <마상청앵도>에는 말을 타고 길을 가다 문득 멈춰선 선비와 말구종 아이가 등장한다. 이들이 보고 있는 것은 그저 꾀꼬리 한 쌍일 뿐이다. 그럼에도 <마상청앵도>가 운치 있는 건 ‘침묵의 몇 초 같은 여백’을 바탕으로 버드나무 가지, 제시題詩, 그리고 ‘꾀꼬리와 두 사람 사이를 오가는 시선視線’이 모두 비스듬한 구도 선으로 어울려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마상청앵도>는 ‘시선’을 주제로 한 그림이다. 주역의 대가 정선은 금강산 일만 이천 봉우리를 과감하게 한데 묶어 한 개의 동그란 원을 만들었다. 그게 바로 <금강전도>인데, 이 그림에는 주역의 철리와 태극의 구도가 그대로 담겨 있다. 그러므로 금강산의 전경全景에서는 태극을, 제시에서는 주역의 근본 이치와 우주 만물의 생성 원리를 낱낱이 읽어낼 수 있는 것이다. 국권 상실기를 산 민영익의 <노근묵란도>에서 난초는 흙 한 줌 움키지 못하고, 뿌리를 처참하게 드러내고 있다. 본래 ‘뿌리 뽑힌 난’은 정사초의 그림에서 유래하였는데, 그는 남송南宋, 즉 국토를 빼앗겨 뿌리 없는 난을 그렸다고 전한다. <노근묵란도>는 그와 같은 맥락 위에 있고, 예사 난초 그림이 아니라 나라 잃은 망명객의 한이 깊숙이 서려 있는 작품이다. 이처럼 저자는 ‘조선의 땅에서 살아온 조선의 화가들, 문인들, 그리고 그들의 작품에 깊은 애정의 눈길을’ 보낸다. 그러고 나서 ‘글씨든 그림이든 오랫동안 관찰하며 작품세계에’ 빠져들고, ‘깊고 넓은 통찰력으로 그림 한 점 한 점을 아름다운 운율로’ 드러낸다. 그 결에 저자가 읽은 ‘모든 조선 그림’이 옛 모습 그대로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여기에 곁들여 오주석 선생은 해당 작가는 물론, 그림과 관련된 <지장기마도>(김홍도), <묵죽도>(민영익), <전 이재 초상>(작가 미상)을 비롯하여 꽤 여러 작품까지 종횡으로 엮어낸다. 그 덕분에 내용이 더 알차지고, 책의 얼개 또한 더욱더 꽉 짜이고 있다. 그 바탕 위에서 옛 그림의 어느 한 구석도 소홀히 하지 않은, 생전의 모습과 다름없는, 참된 미술사학자의 감식안이 빛을 발한다. 이 책은 ‘그야말로’ 그냥 봐서는 알 수도 없고, 지나칠 수밖에 없는 ‘옛 그림의 화의畵意를 등불처럼 환하게 밝히는 책’이다. 출간에 부쳐 글을 쓴 미술사학자 강우방의 말이 더더욱 와 닿는다. ‘제 모습을 보지 못하였던 조선 그림의 세계를, 뒤에 오는 그 누군가가 그 정신을 이어받아 펼쳐나가기를 마음 깊이 바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