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한국어판 서문
서문: 보이지 않는 어머니에서 가상 어머니로 1부 젠더 폭력의 역사 1장 국가를 지켜라, 가족을 지켜라 2장 미혼모 시설, 가상 어머니의 출생지 2부 재연결: 가상 어머니되기 3장 텔레비전 엄마: 입양 재회 서사와 친생모의 출현 4장 가상 어머니수행, 가상 친족 형성하기 5장 엄마 아닌 엄마들: 가상 어머니되기의 역설 주 참고문헌 찾아보기 |
김호수의 다른 상품
강진경의 다른 상품
강진영의 다른 상품
|
우리는 종종 기록의 유실이 정의를 가로막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해외입양에서 기록이 불확실하다는 사실, 때로 그것을 끝내 확인할 길이 없다는 사실은 오히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남깁니다. ‘나는 어떻게 해외입양에 연루되어 있을까?’ 오랫동안 비밀에 부쳐져 있었기에 무엇도 알 수 없는 상태,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직간접적으로 얽혀 있을 수 있다는 이 모호함이야말로, 사법적 정의의 틀을 넘어서는 다양한 정의의 실천과 질문을 가능케 하는 조건일지도 모릅니다.
--- p.13 이 어머니들이 ‘고아’라는 단어가 강력히 연상시키는 바처럼 실제로 모두 사망한 것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누군가가 딸을 돌봐주고 지원해주고 기회를 열어줄 거라고 기대하며 기꺼이 죽음 뒤에 숨으려고 했던 내 어머니처럼, ‘이 어머니들도 죽음의 얼굴 뒤에서 어쩌면 살아 있을지 모른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여성들은 누구일까? 어떤 환경에 놓여 있었기에 자기 아이를 알지도 못하는 외국인에게 보내야 한다고 느꼈을까? 왜 이들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이 이다지도 적었을까? --- p.20 가상 어머니되기virtual mothering라는 개념은 규범적 가족의 영역을 넘어, 친생모의 모성이 지닌 수행적이고 일시적이며 파편화된, 그러면서도 기술적으로 매개된 특성을 가리키기 위해 제안된 용어다. (…) 이 책은 친생모의 가상 어머니수행을 기록하면서 입양 환경에 내재된 다층적인 폭력, 그리고 아이를 입양 보낸 후에 겪는 상실과 트라우마가 남긴 강렬한 흔적을 살핀다. --- p.25 나는 친생모가 입양을 결행함으로써 재생산을 규율하는 방식을 따랐으며, 시민으로서 모성의 미덕을 수행한 수백만 여성 집단에 합류했다고 주장한다. 친생모는 혼외 출생 아동이나 극심한 빈곤에 처한 아동을 포기함으로써 자립 가족의 이상과 경제발전을 연결하는 국가 안보 정책에 기여했다. 그렇게 친생모는 가족과 국가에 대한 정부의 이데올로기를 지탱했고, 이로써 미덕을 행사하는-혹은 어떤 의미에서는 미덕을 수행하는virtuous-어머니가 되었다. --- p.75 마치 빈곤가정 아동이 어째서, 어떻게, 잉여아동이 되는가에 대한 분명한 답은 가난뿐이라는 듯이, 이들의 입양 배경도 오로지 가난으로 묘사된다. 그렇지만 실제로 가난한 노동계급 어머니의 입양 이야기를 들어보면 주로 배우자의 방임과 폭력이 발단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이런 문제들은 안 그래도 힘들고 버거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가 하면, 도무지 감당할 수 없고 때로는 생명까지 위협하는 상태로 여성을 몰아넣는다. 가족이 그런 위기 상황에 놓이면 아동은 입양 보내지는 처지에 놓이곤 한다. --- p.114 미혼모 담론은 부실한 사회복지와 미혼모를 향한 사회적 낙인을 바꿀 수 없는 현상으로 받아들이며 ‘혼외자’는 한국에서 좋은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최초의 입양아 집단(즉 혼혈아동)을 뒷받침하던 근거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는 희망이 없다’라는 담론은 성적인 일탈을 한 미혼 임산부를 단죄하고, 미혼모가 자녀에게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단언하며, 그들이 어머니로서 부적격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 p.158 임신한 미혼 여성은 가족, 미혼모 시설, 의료진, 기타 복지 시설 등 사회제도와 상호작용하면서 바로 친생모로 등록되고 처리된다. 이러한 규제 메커니즘의 논리를 통해 가능한 한 가장 이른 시점에 스스로 규제하고 스스로 책임지는 친생모의 주체성이 형성된다. 따라서 친생모는 잠재적인 미혼모가 사회적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 등장하지만, 그 존재는 어디까지나 가상의 형태로만 성립한다. --- pp.170-171 이로써 조순옥은 프로그램 제작 기술과 분리될 수 없는 가족 찾기 및 재회 서사의 일부가 된 것이다. 이제 막 돌아온 딸에게 전화로 인사를 건네는 순간 그는 가상 어머니로 거듭났다. 텔레비전 기술과 특정한 스토리텔링 기법은 텔레비전으로 방송되는 친생모의 형상과 분리될 수 없다. 텔레비전 기술이 친생모(이 경우 조순옥)를 찾아내고, 친생모가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텔레비전에서 자녀의 가족을 향한 그리움에 반응함으로써 가상 어머니되기가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 p.190 입양의 역사에는 여성과 아동에 대한 다층적 폭력이 얽혀 있다. 가족 찾기 및 재회 서사는 그런 역사를 은폐하며, 한국이 오랫동안 해외입양을 잉여인구를 관리하는 생명정치의 장치로 활용해왔다는 사실을 가려버린다. 주류 입양 담론에서는 가정폭력, 가난, 배우자의 방임을 비롯해 기지촌 어머니, 미혼모, 가난한 노동계급 어머니가 겪는 어려움이 결코 언급되지 않는다. 한편 한국은 여전히 해외입양에 개입하고 있다는 점을 부인하고, 그 결과 가족 찾기 및 재회 서사는 1990년대 이후에 친생모들-거의 미혼모-을 감추는 또 하나의 메커니즘으로 기능한다. --- p.220 온라인에서의 말하기 및 다시 말하기라는 공유와 참여 덕분에 아이에 대한 개인적 기억은 입양 상실의 집단적 경험으로 기록된다. 친생모들은 집단적인 상실을 상호 인식하는 행위를 통해 잃어버린 자녀와 자기 경험에 대해 이야기할 정당한 권리가 있음을 느낀다. --- p.272 나는 (…) 그를 상실이 남긴 역동적이며 가변적인 존재로 바라본다. 그리고 친생모를 트라우마적 상실을 그저 감내하며 개입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상실에 대한 자신만의 기억을 재생산하고, 재해석하며, 재창조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으로 간주한다. 이런 인식 틀로 보면, 친생모는 구술사에 참여함으로써 그 자신의 상실을 창조적이면서도 중요한 여백으로 다룰 수 있는 장을 소환해낸다. (…) 이 구술사 모음은 친생모가 자신의 상실에 대해 기존에 생각하거나 생각하지 않았던 방식, 느끼거나 느끼지 않았던 방식으로 개입할 수 있는 새로운 플랫폼이 되어준다. --- p.296 아이를 입양 보낸 후의 삶을 돌아보면서 많은 친생모가 간접적으로 혹은 직접적으로 자신의 삶이 역설이라는 점을 제시했다. 죽을 것 같던, 삶을 짓누르던 그 모든 순간에도, 자신이 어떻게 삶을 이어나가고 살아남았는지 그들은 이해할 수 없다. --- p.329 친생모들의 구술사는 친생모의 상실이 만들어지고 지워지는 그 조건 및 과정에 주목하기 위해, 친생모의 존재와 상실의 경험을 인정하는 새로운 역량을 요청한다. --- p.347 |
|
‘가상의 어머니되기’
엄마 아닌 엄마들 ‘가상’은 ‘가상嘉尙하다’라는 말에서처럼 기특한 것을 칭찬할 때 쓰이면서도,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인터넷 카페 등 기술을 매개하여 만들어진 시공간과 상태인 ‘가상假想’을 지칭하기도 한다. 영어로는 virtual로 번역되며 이때도 도덕적 자질, 즉 미덕을 갖춘 존재bieng virtuous를 나타냄과 동시에 무언가를 만들어내거나 만들 수 있는 능력, 실재하지만 실재하지 않기도 하며 점멸하는 주변성을 뜻하기도 한다. 두 갈래의 의미가 결합해 ‘가상의 어머니’ ‘엄마 아닌 엄마’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가상의 어머니되기virtual mothering’로 개념화된다. 친생모들이 행하는 가상의 어머니되기는 “역사적 우발성과 지정학적·문화적·물질적·기술적 조건” 위에 형성되어왔으며 현재에도 그 조건들은 계속되고 있다. 가상한 어머니: 어머니되기를 포기함으로써 자애로운 어머니가 되는 역설 세계 지정학적 판도가 냉전 체제하에 재편되고 제3세계 국가의 인구 과잉이 진보의 위협으로 규정될 때, 한국의 인구 성장률은 관리돼야 할 것이었다. 한국 정부는 공산주의를 몰아내려는 방책으로 자본주의 경제 발전을 추구하는 흐름 위에서 적정 인구수를 강조했고, 공격적일 만큼 구체적인 가족계획 목표를 설정했다. 그 결과 국가주의 가부장제가 규정하는 자립 가족이 대두되었으며, 여러 아이를 양육하느라 빈곤한 가정은 가족계획을 제대로 세우지 않은 것이므로 책임을 스스로 떠맡아야 했다. 규범적인 가족상이 강화되는 가운데 가난한 노동계급 어머니, 미혼모, 기지촌 성노동자 여성과 그들의 자녀는 정상가족에 속하지 않는 ‘잉여’인구에 지나지 않았고, 복지제도가 그들을 외면하는 사이 해외 원조로 세워진 입양기관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열악한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기보다 창창한 미래가 보장된 서구 가정으로 아이를 보내는 것은 어머니 된 도리로 일컬어졌다. 이혼했거나 미군 ‘위안부’ 여성이거나 가난한 여성들은 부도덕할뿐더러 어머니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고 비난받으며 양육의 권리를 빼앗겼다. 이런 식으로 해외입양에 연루된 이들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집단은 미혼모였다. 미혼모는 대체로 결혼하기 전 젊은 남자친구와의 관계에서 임신한 젊고 미숙한 여성으로 그려지지만, 관련 연구와 사적 진술은 다른 서사를 제시한다. 저자가 친생모와의 구술사 연구를 통해 마주한 친생모 상은 기혼 남성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았으나 결혼하지 않았기에 미혼모로 분류된 여성, 이혼했거나 사별한 여성, 미군 친생부가 떠나며 아이와 남겨진 여성 등으로 넓어지며, 그들이 입양에 연루된 사정 또한 친생부의 부재 외에도 취약한 여성의 생존을 위협하는 갖은 폭력을 포함한다. 친생부가 부재하거나, 가정폭력에 내몰렸거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경제 활동이 가로막혔거나, 호주제 등 차별적인 법 제도가 아이를 혼외자로 명기하여 배제하였거나…… 이 같은 상황은 아이를 포기하는 것을 아이와 미혼모 여성 모두에게 최선의 선택지로 만든다. 이로써 친생모는 해외입양을 선택하고, “자발적·비자발적으로 근대의 정상가족 개념을 보호하는 데 이바지”하게 된다. 해외입양 관행이 가족계획 정책의 발현이자 과잉 출산을 통제하는 수단이기도 했다는 점을 다시 주지하면, 이들은 해외입양을 선택함으로써 “국가적 안보 의제에 동참”하는 “미덕을 갖춘 어머니 주체”, 가상한 어머니가 된다. 가상의 어머니: 실재하지 않는 시공간에서 구현되는 가상의 정체성 1990년대에 들어 국제사회에서 해외입양이 비판적으로 검토되자 한국 또한 이를 의식하듯 과거사를 트라우마로 위치 지으며 “과거 청산과 화해라는 국가적 과제를 채택”한다. 또한 글로벌 신자유주의 정권은 한인 입양인을 재외동포로 분류하고 “동서양을 잇는 잠재적 가교”로 재평가함으로써 불운한 처지 때문에 가련한 피해자가 되었다고 여겨지던 한인 입양인을 “국가의 정치적·경제적 의제를 발전시킬 수 있는 문화 자본을 갖춘 경쟁력 있는 세계시민”으로 부상시킨다. 이때 입양인을 품어야 할 존재로 호출되는 것은 다름 아닌 친생모다. 생방송 가족 찾기 프로그램이 성행하는 가운데, 친생모들은 과거를 후회하고, 눈물 흘리고, 고개 숙이는 모습으로 출연하여 국가를 대신해 고국을 찾은 입양인을 환대했다. 친생모가 꺼내 보인 수치심이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진행되며 화해와 용서를 거쳐 이윽고 입양 가정에서 잘 자란 자녀를 맞이하는 자부심으로 건너갈 때, 친생모 뒤에 숨은 국가 또한 상실을 봉합하고 수치스러운 과거를 회복한다. 저자는 2005년에 방영된 「아침마당」 ‘그 사람이 보고 싶다’ 코너에 친생모 조순옥과 입양인 니나 더브라윈의 재회를 보조하는 통역사로 관여한 경험을 통해 텔레비전 기술이 만들어내는 친생모 형상을 관찰한다. 조명이 켜진 무대, 연출자의 각본, 사회자의 추임새, 삽입되는 음악, 긴장 속에 공개되는 DNA 검사 결과 등 기술을 매개한 시공간에서 친생모는 가상의 어머니로 거듭난다. 다만, 가상의 시공간에서 어머니되기가 매번 이처럼 국가주도적 의제와 하나 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친생모들의 인터넷 카페 ‘아이를 입양보낸 엄마들의 슬픈 사랑이야기’는 친생모들이 입양 사실을 고백하고 아이 사진을 올리거나 서로 댓글을 달며 상실을 주도적으로 해석하는 공간이다. 그들 서로간에는 진짜 가족은 아니지만 가상의 친족 관계가 형성되고, 그들이 주고받는 위안과 돌봄은 해외입양을 다루던 주류 서사에 대항해 다른 서사를 쓴다. 그곳에서 친생모들은 실제로는 수행할 수 없었던 어머니 수행을 표현하며 가상의 어머니가 된다. 살아 있는 아카이브 친생모의 지식-생산 구술사가 증언하는 상실의 영속성 절대적 모성 신화 속에서 가난 때문에 아이를 포기했던 희생적인 어머니, 미숙하고 방탕하며 무책임한 미혼모로 그려지던 어머니. 이처럼 대결적이고 대칭적인 서사의 그물망 속에 떨어지던 친생모들은 그들이 직접 발화하는 기록과 구술로써 역동적이면서 가변적인 존재로 인식 가능해진다. 저자는 구술이라는 퍼포먼스가 지식을 생산해낸다는 점에 주목하며, 이 책에 실린 목소리의 주인공들을 살아 있는 아카이브라고 부른다. 친생모들은 “트라우마적 상실을 그저 감내하며 개입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상실에 대한 자신만의 기억을 재생산하고, 재해석하며, 재창조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으로 자리매김된다. 그들은 입양으로 인해 상실된 것을 인식하고 인정하면서도 그렇다고 자녀와의 재회가 곧장 모든 고통과 상실을 해결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반복되는 역설로 가득 차 있다. “내가 버린 건 아니지만 내가 버린 거나 마찬가지지” “살아도 산 게 아니었어요” “나는 엄마지만, 엄마가 아니에요”라는 말로 함축되는 경험의 역설은 회복되지 않은 상실을 암시하며 납작하거나 추상적으로 다뤄지던 친생모의 삶을 구체화한다. 해외입양에 관한 통념을 뒤흔드는 그 모든 이야기는 우리에게 새로운 인식의 윤리를 요청한다. 취약한 존재가 겪은 상실에 우리 역시 함께 취약해지고 영향을 받자는 제안은 인간의 삶에 끼치는 폭력적이고 배제적인 틀을 갈아 끼우자는 요청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작업에 동참함으로써 지워지고 잊힌 것들에 자리를 찾아줄 수 있으며, 그 작업은 반드시 새로운 애도의 공간, 다음을 위한 자리를 세우는 일로 연결될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인식 작업의 가장 앞에서 부유하는 존재를 잡아채어 정박시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