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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 고래 7
물비늘 1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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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한 선들은 만나지 않는다. 원래는 그것이 원칙이다.
한 점에서 뻗어 나온 선은, 평행할 수 없다. 원래는 그것이 원칙이다. 원래는 그러하다. 그렇지만, 예술과 사랑과 인생에는 한계와 불가능이 없다.” --- p.100 “주인이 없다고 목줄은 풀어지지 않는다. 잡아당기는 사람이 없으니, 목이 아프지 않은 것뿐이다.” --- p.45 “누군가를 이렇게 애타게 찾아본 적이 있던가? 이건 무슨 감정이라 해야 하나? 그리움이라기엔 우리가 나눈 시간이 너무 짧고, 사랑이라기엔 우리가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없다. 그렇지만 이 걱정이 사랑이 아니라면 무엇인가?” --- p.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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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다른 시대를 살고, 다른 이름으로 불리며,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정말 우리는 서로에게서 완전히 독립된 존재일까.
차재이의 첫 소설집 《범, 고래》는 시대와 세대를 건너 반복되는 기억과 상처, 사랑과 생존의 흔적을 좇는다. 한국전쟁의 소용돌이를 지나온 사람들부터 오늘을 살아가는 여성들까지, 언뜻 아무런 관계가 없어 보이는 삶은 소설 속에서 조금씩 서로를 향해 뻗어나간다. 평행한 선처럼 영원히 만나지 않을 것 같았던 이들의 삶은 어느 순간 하나의 점을 공유하고, 과거의 기억은 현재의 삶 속에서 뜻밖의 모습으로 되살아난다. 작품은 역사적 사실에 머무르지 않는다. 한국의 무속신앙과 사주, 방울 소리와 신줏단지 같은 토착적 이미지가 현실적인 인물들의 삶 사이로 스며들면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흐린다. 무엇이 우연이고 무엇이 운명인지,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은 온전히 나의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에게서 물려받은 것인지 쉽게 단정할 수 없게 만든다. “정방향에 앉던, 역방향에 앉던, 기차는 종착지를 향해서 간다”는 문장은 이러한 작품의 세계관을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그 중심에는 시대의 가장자리로 밀려난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을 관통하는 것은 거창한 영웅성이 아니라 어떻게든 살아남고, 사랑하고, 다음 사람을 지켜내려는 끈질김이다. 상복 대신 결혼식 날의 흰 한복을 꺼내 입고 “울지 않고 떳떳하게 맞서리라”고 다짐하는 옥순의 모습처럼, 이 소설의 여성들은 상처받으면서도 자신의 방식으로 삶에 맞선다. 그래서 제목은 ‘범고래’가 아니라 《범, 고래》다. 강인한 범과 따뜻한 고래, 서로 다른 두 존재의 맞섬과 화합은 곧 이 소설 속 인물들의 모습과 닮아 있다. 작가는 소외된 사람들을 이야기하면서도 그 끝에 사랑과 생명, 그리고 다음 세대에 대한 희망을 남긴다. 《범, 고래》는 결국 묻는다. 당신은 어떤 기억을 물려받았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