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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의 시련』 중판에 부쳐
잘려진 가지에 새 순이 제1장: 질곡 속의 한국 제2장: 볼셰비키 체제의 확산 제3장: 함정의 연속 제4장: 고난 속의 일체감 제5장: 수용소 생활 제6장: 죽음의 행진 제7장: 암흑의 밤 제8장: 별 제9장: 일대 전환 제10장: 회고와 개관 제11장: 북한에서의 선교활동이 절멸하다 제12장: 남한에서의 새로운 희망 포로들의 건축활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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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원 수도원 성당에서 공동 성무일도 소리가 끊긴 지 48년이 지났다. 1949년 5월 9일, 북한 공산 정권에 의해 수도원의 모든 거주자들은 추방당했고, 수도원은 무력으로 강점당했다. 선교사들은 감옥으로 끌려갔다가 수용소로 이송당해 강제노동을 하던 끝에, 결국 1954년 독일 본국으로 추방당했다.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이 더 이상 허락되지 않는 나라에서 수도원은 이제 그 존립권을 상실하게 되었다
---p.5 우리는 기도를 잊지는 않았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충분했다. 모두들 혼자서 거의 온종일 나직히 기도를 올렸다. 우리는 때때로 아주 나직히 속삭이는 소리로 다함께 십자가의 길과 묵주기도를 드렸다. 누군가 자신의 셔츠나 옷가지를 찢어서 그것으로 봉오리 열 개를 만들면 영락없이 로사리오가 되었다 ---p.99 1950년 12우러 25일 성탄절이었다. 그날도 우리는 그곳 어두운 참호 속에 앉아 있었다. […] 우리는 불가에 둘러앉아 “고요한 밤, 거룩한 밤”과 다른 캐롤 송을 불렀다. 수녀원장은 성탄 시 몇 편을 낭송했다. 부엌일을 하는 수녀들은 밥을 지을 때 솥 바닥에 붙어 있던 누릉지를 몰래 긁어 가지고 왔다. 그래서 우리는 크리스마스 과자까지 먹는 셈이 되었다. 그지없이 곤궁하고 가난하면서도 참으로 정겹고 아름다운 크리스마스였다 ---p.149 형제들은 비록 육체적으로는 매우 약해졌을지라도 항상 쾌활한 기분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들의 태도는 감시인들로 하여금 그들이 일반적인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했다. 특히 원장신부가 형제들을 대하는 인내와 아랫사람들이 원장신부에게 보여준 존경으로 교도관 한 명이 개종했으며, 그는 전 가족과 함께 세례를 받았다. 아직도 그는 원장신부를 다시 만나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p.26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