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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ori Ekuni,えくに かおり,江國 香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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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나를 사랑한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다. 나는 그를 사랑한다. 그는 그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종점. 그곳은 거친 벌판이다. --- p.61
비 내리는 날의 일터에서는, 물감 냄새가 한결 짙어진다. 나는 지금 조그만 그림을 그리고 있다. 파란 그림이다. 색을 덧칠한 캔버스의 축축한 표면을 페인팅 나이프로 긁어, 첼로 하나를 그리고 있다. 긁어낸 자국은 상처처럼 애처롭게 캔버스의 하얀 살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 p.87 만나러 와주는 것도 애인이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도 애인이다. 목욕탕의 곰팡이를 제거해주는 것도, 햄을 썰어주는 것도. --- p.99 나는 애인을 위해 그림을 그리는 것은 아니지만, 애인을 위해 하루하루를 살고 있으니까. 내게 그림을 그리는 것과 살아 있다는 것은 비슷한 일이다. 그러니까 결국은 애인을 위해서 그림을 그리는 셈이다. 언어는 아무 소용이 없다. 언어로 사고하려 하면, 늘 같은 자리를 맴돌고 만다. --- p.114 "당신이 곁에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말했다. "그때 당신이 있어 주었으면, 나 그렇게 고독하지 않았을 텐데." 갑자기 외로워지고, 애인의 미소도 그 외로움을 치유해주지 못한다. 외로움은, 불쑥 찾아와 입을 쩍 벌린다. 그런 때마다 나는 걸려 넘어져 송두리째 삼켜져버린다. --- p.116 나는 애인 덕분에 이 세상에 겨우 발을 붙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것은 기묘한 감각이다. 애인이 전부라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애인과 함께 있는 내가 전부라고 느낀다. 나는 그것을, 외롭다고 해야 하는지 충족돼 있다고 해야 하는지 몰라 혼란스럽다. 옳다고 생각해야 하는지 옳지 않다고 생각해야 하는지 몰라, 그만 생각을 포기한다. --- p.14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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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니 가오리에 대해 얘기하면서 현실의 본질적인 고독과 결핍, 그리고 소수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에 대해 빼놓을 수 없다. 대표작 『냉정과 열정사이』로 에쿠니 가오리는 '사랑'이라는 보편적 감수성을 흔들어놓으며 독자들에게 어필되었지만, 같은 '사랑'이라는 소재임에도 호모 남편과 알코올 중독자 아내, 그리고 남편의 애인이라는 상식 너머에 있는 세 사람의 사랑과 우정을 그린 『반짝반짝 빛나는』이나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기묘한 우정을 키운 리카와 하나코가 등장하는 『낙하하는 저녁』 같은 작품 등이 존재하게 때문이다.
이번 『웨하스 의자』에서도 에쿠니 가오리는 사회적 표면으로 떠오르진 않았지만 주변에서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상황, 사람들이 미처 모른 체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 살며시 표면으로 드러내 보이며 그 본질에 대해 독자들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예를 들어, 작품 속에서 다음과 같은 부분, 동생이 대학원생과 헤어졌다고 한다. (…중략…) 대학원생에게 4년이나 사귄 여자가 있단다. "그게 이유야?""(…중략…) 동생은 분개하고 있다. (…중략…) 4년을 사귀었다면, 아마도 그는 그녀를 좋아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그렇다고 동생을 좋아하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다. "네가 그 남자를 좋아하는 감정, 그리고 그 남자가 너를 좋아하는 감정은 어떻게 되는데?" "몰라, 다 끝났어.? 동생이 말한다. "나는 언니하고 달라. 그런 거 꼬치꼬치 안 따져." (본문 96~97page) 처럼, 흔히, 불륜이라고 말할 수 있는 관계(부인이 있는 남자를 사랑하는 한 여자, 가정을 가진 남자가 사랑하는 여인. 그리고 그들의 사랑)에 대해 문학의 사회학적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고 본다. 물론, 저자는 그들의 관계가 지극히 합리적이라거나 행복한 결말이 기다린다는 식의 청사진을 내놓지 않는다. 단지, 어쩔 수 없이 사랑한 사람이 '부인이 있는 남자'였을 뿐인 한 여자가 있고, 그녀의 사랑과 주변에 대해 고운 시선으로 바라봐줄 뿐이다. 고통과 슬픔이 예정돼 있다 해도 소중하게 다가온 사랑을 정직하고 충실하게 맞이한 사람들에 대해서 말이다. 한 개인으로써 누구나가 지켜야 할 법이 있고, 사회적 규범과 개인적 도덕이 있다는 것을 무시하면서 살 수는 없지만, 그런 것들을 위해 사람들은 또한 얼마나 많은 것들을 흘려보내며 놓치고 있는지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또한 평범한 사람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이러한 관계는 어찌보면, 결국 소외된 사랑의 한 전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