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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머리에
서론:경계에서 콘텐츠를 읽다 1. 한국 콘텐츠, 디지털 플랫폼을 만나다 2. 비교문학으로 대중문화를 읽는다는 것 3. 번역, 각색, 전유의 지형도 제1부 번역 1장 강호는 어떤 언어로 말하는가-무림 웹툰의 영어 번역 1. 오역이 만드는 균열 2. 음역의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3. 뜻을 살릴 것인가 소리를 옮길 것인가 4. 번역은 선택이다 2장 번역은 세계를 어떻게 다시 그리는가-애니메이션 〈나 혼자만 레벨업〉의 한일 자막 비교 1. 하나의 작품, 서로 다른 기대 2. 두 개의 원작, 두 개의 번역 3. 국적을 지우는 영어, 공유하는 카타르시스 4. ‘민속학자’는 왜 ‘성가대원’이 되었는가 5. 제주도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6. 상업적 성공과 서사적 비용 3장 번역되기 전에 이미 번역된 제목들-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의 한국어 제목 번역 1. 제목은 어떻게 번역되는가 2. 넷플릭스 오리지널 제목 번역의 궤적 3. 영어를 경유한 번역들 4. 도착어의 자율성이라는 환상 5. 다양성의 외관, 위계의 실체 제2부 장르 교섭과 각색 1장 게임의 규칙이 삶을 결정할 때-〈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1. 두 개의 유언, 두 개의 자아 2. ‘버그’는 어떻게 ‘그리스도’가 되는가 3. 시스템의 폭력과 순응하는 주체 4. 우연에 필연을 덧씌울 때 2장 같은 세계, 다른 문법-〈배드 본 블러드〉와 〈RF 온라인 넥스트〉의 분절된 성공 1. 게임을 위한 소설, 소설을 위한 소설 2. ‘비효율적 고뇌’와 ‘과정 없는 효율’ 3. 소설 독자와 게임 유저, 엇갈린 두 담론 4. 분리된 섬을 넘어 넓은 대륙으로 3장 누구의 눈으로 수이를 바라보는가-소설 「그 여름」과 애니메이션 〈그 여름〉 비교 1. ‘안전한 이야기’라는 물음 2. ‘성숙’한 이경의 목소리가 사라지면 3. 수이의 눈으로 본 이경 4. 재현 방식을 의심하기 4장 소위건은 어떻게 살아남았는가-웹툰 〈장씨세가 호위무사〉의 참여적 각색 1. 팬덤은 어떻게 서사에 개입하는가 2. 죽음에서 생존으로-웹툰 각색의 서사적 재구성 3. 주연보다 인기 있는 조연-댓글 데이터로 본 인기 지형도 4. 요구, 놀이, 논쟁-참여 문화로서의 댓글창 5. 참여적 각색의 가능성과 비용 제3부 기원과 전유 1장 만들어진 전통의 기원을 묻다-〈Erev Shel Shoshanim〉이 〈청산별곡〉이 되기까지 1. 이스라엘 사랑 노래, 한국의 이별 노래가 되다 2. 왜 ‘이스라엘 민요’인가-흐릿해진 기원과 이스라엘 노래 수용 3. 왜 〈청산별곡〉이었는가-1970년대 전통담론의 양면성과 〈청산별곡〉 재창작 4. 〈청산별곡〉,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세계로 가다 5. 기원을 물어야 하는 이유 2장 민속학자는 왜 음양사가 되었는가-〈파묘〉가 역사적 트라우마를 ‘파묘’하는 방식 1. 핏줄과 쇠말뚝-〈파묘〉가 구성하는 한국인 2. 음양사가 된 ‘관료/학자’-과학적 식민지화에서 주술적 지배로 3. 오니와 대화하지 않는 무속의 선택적 공감 4. 무엇을 ‘파묘’해야 하는가 3장 내 세계가 무너져야 너를 만난다-〈페이스 오프〉가 일으킨 균열, BTS가 만난 ‘나’와 ‘너’ 1. ‘나는 나’라는 재귀적 선언의 균열-〈IDOL〉 2. 목소리 없는 팬, 박제된 타자-〈Intro:Persona〉 3. 내가 선 땅이 무너질 때, 타자와 만난다-〈Louder than bombs〉 4. 창조적 전유-BTS가 세계를 건너는 방식 결론:경계에서 ‘너’를 만나다 1. 번역, 각색, 기원의 문제 2. 대중문화 콘텐츠의 비교문학적 독해 · 발표지 목록 · 참고문헌 ·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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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배우 변요한이 시장 한복판에서 부르는 노래 〈청산별곡〉은 넷플릭스와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유튜브 채널에서 유통되는 해당 영상의 댓글에는 고려 시대 민중의 노래에 대한 각국 시청자들의 공감이 나타났다. 그런데 실제 이 노래의 선율은 1957년 이스라엘 가수 야파 야르코니가 발표한 사랑 노래 〈에레브 쉘 쇼샤님(Erev Shel Shoshanim)〉에서 왔다. 20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이스라엘 노래가 고려 시대 가사와 결합하고 기원이 지워진 채 여말선초의 ‘전통 노래’로 유통된 것이다.
경계를 넘을 때 바뀌는 것은 기원만이 아니다. 애니메이션 〈나 혼자만 레벨업〉을 넷플릭스에서 찾아 재생하면, 어느 나라에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한국에서 접속하면 주인공은 한국인 성진우이고, 제주도가 중요한 배경으로 등장한다. 일본에서 접속하면 주인공의 이름이 미즈시노 슌으로 바뀌고, 제주도는 카난섬이 된다. 한국 웹소설과 웹툰에서 출발해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사를 거쳐 세계로 유통된 이 작품은 실제 국경과 디지털 국경에 따라 서로 다른 세계관을 지닌 작품이 된다. 콘텐츠가 경계를 넘는 순간, 무언가가 바뀐다. 지명이 바뀌고, 기원이 흐릿해지고, 도착지의 문법과 플랫폼의 논리에 따라 맥락이 다시 설정된다. ---p.15 1부에서 다룬 세 ‘번역’ 사례는 번역의 목표가 타자의 이해에 있음을 상기시킨다. ‘무림 웹툰’의 장르적 정체성이 정립되지 않고 번역 기준도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 낯선 장르를 접한 독자들은 혼란을 겪게 된다. 장르적 정체성과 관습에 대한 공통의 이해가 마련될 때, 번역은 비로소 이 낯선 장르를 가로지르는 상호 이해의 통로가 될 것이다. 애니메이션 〈나 혼자만 레벨업〉의 두 ‘번역’은 자국화와 이국화 사이에서 원작의 지정학적 맥락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의 문제를 보여준다. 한국과 일본의 갈등, 그리고 일본 캐릭터의 부정적 형상화는 한국 콘텐츠 시장 안에서 소구력을 갖는다. 하지만 콘텐츠가 국경을 넘어갈 때, 그것은 오히려 작품의 수용에 방해가 된다. ‘번역’을 전제로 작품을 창작하고 감상하기, 다시 말해 콘텐츠 속 타자의 입장에서 작품 서사를 바라볼 때, 우리 안의 고정관념과 마스터플롯이 가진 문제를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제목 번역에 나타난 영어 중심성은 구조적인 과제를 제기한다. 각 문화권이 ‘영어’를 경유하여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은 곧 영어 혹은 영어권 국가의 자리에서 세계와 문화를 바라본다는 의미이다. 글로벌 플랫폼은 다양성의 외관 아래 이러한 영어 중심성을 강화한다. 효율성이란 틀을 벗어나서 출발어권의 문화와 맥락을 직접 마주하고, 이를 도착어에 전달하기 위해 고민하는 번역 생태계는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을까. ---p.113 이야기의 시대다. 유튜브와 넷플릭스, 웹소설과 웹툰 플랫폼 등에서 다양한 장르 문법이 섞이고, 새로운 장르가 탄생한다. 글로벌 플랫폼의 확장 속에서 IP는 끊임없이 세계를 확장해 간다. 장르와 장르가, 매체와 매체가 만나는 경계에서 지금도 흥미로운 현상들이 발생하고 있다. 경계를 넘나드는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서사 자체를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를 얻고,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에 따라 나와 타자의 관계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p.229 (BTS의 〈IDOL〉) 노랫말 속에 오우삼(吳宇森) 감독의 영화 〈페이스 오프(FACE/OFF)〉와 일본 애니메이션 〈앙팡맨(Anpanman)〉이 등장한다. 이 두 작품은 중심인물들의 얼굴이 바뀐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며, 각 작품의 주제는 BTS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연관된다. 〈페이스 오프〉에서 FBI 요원인 숀 아처와 테러리스트 캐스터 트로이는 서로 얼굴이 바뀌게 되며, 이후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겪게 된다. ‘호빵맨(앙팡맨)’의 얼굴은 단팥빵(앙팡/アンパン)으로, 그는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자기 얼굴을 떼어준다. 그리고 얼굴이 손상되는 상황이나 싸우는 적의 특성에 따라 얼굴을 바꾼다. ---p.2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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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풍의 가상 공간을 배경으로 한 한국의 대중문화 콘텐츠인 무림 웹툰들이 영어권으로 진출하면서 번역에 대한 논의가 벌어진다. 일본인이 적으로 등장하는 한국 웹툰이 일본어로 번역되면서 등장인물들의 국적이 모호해진다. 소설이나 웹소설이 애니메이션이나 웹툰으로 각색될 때 팬덤의 참여가 스토리를 바꾸는 일도 벌어진다. 현대 이스라엘의 대중가요가 그 기원이 지워진 채 우리나라에 수입되어 고려시대의 전통가요로 변신하기도 한다.
이 책은 디지털 플랫폼을 타고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웹툰·웹소설·애니메이션·K-pop·영화·드라마 등 한국 대중문화의 현장을 번역, 각색, 전유와 같은 비교문학의 열쇳말로 읽어낸다. 웹툰 〈나 혼자만 레벨업〉, 〈장씨세가 호위무사〉,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육룡이 나르샤〉, 애니메이션 〈그 여름〉, BTS의 노래들, 국경을 넘어 번역되고 매체를 넘어 각색되며 자유롭게 경계를 넘어다니는 한국의 대중문화 콘텐츠를 비교문학으로 독해하는 것이다. 콘텐츠는 나와 세계를 이해하는 틀이다. 어떤 작품을 어떤 언어로, 누구의 시각으로 읽고 보느냐에 따라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그 콘텐츠가 번역되고, 각색되고, 유통될 때 콘텐츠를 통해 세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둘러싼 갈등 속에서 다양한 변화가 일어난다. 이 책은 디지털 플랫폼을 타고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K-콘텐츠의 현장을 통해 나와 타자가 상호 이해하고 교류하는 서사의 힘을 확인하게 한다. ‘책머리에’ 중에서 몇 해 전 한 학술행사에서 사회자가 나를 이렇게 소개했다. 한국 현대문학을 연구하던 사람이 요즘 드라마 논문을 발표하는 모습을 보며 ‘이 사람 왜 이러고 있나’ 싶었다고. 좌중이 웃었고 나도 웃었다. 하지만 그 농담은 오래 남았다. 나 역시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왔기 때문이다. 첫 단행본을 한국 현대소설이나 비교문학이 아니라 대중문화콘텐츠 연구로 내는 지금, 이 질문에 답하며 책을 열려 한다. 대중서사는 늘 내 곁에 있었다. 중학교 시절 김용의 『영웅문 삼부작』(사조삼부곡)으로 무협지에 입문했다. 미즈노 료의 『마계마인전(로도스도 전기)』 시리즈와 다나카 요시키의 『은하영웅전설』에 열광했다. 내 책장에는 이른바 본격문학과 대중서사가 언제나 나란히 꽂혔다. 처음부터 대중문화콘텐츠를 연구하지는 않았다. 긴 호흡으로 연구할 생각도 없었다. 우연이 겹쳤다.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재미있게 보다가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아 논문을 썼다. 이후 몇 번의 부탁받은 발표와 특강 원고가 논문이 되었다. 부담이 없지는 않았다. 먼저 전문성의 문제였다. 나는 영화나 음악, 웹툰을 전공하지 않았다. 문학 연구 방법으로 다른 매체를 무리하게 분석하는 셈은 아닐까. 영화 전공자들의 심사평에서 이 지적을 거듭 마주쳤다. 다음은 정체성의 문제였다. 전통 문학 연구자라는 자리가 흔들렸다. 소설도 콘텐츠도 아닌, 어정쩡한 논의로 끝나지 않을까 두려웠다. 그러다 최근에야 내 입장이 정리되었고 확신이 섰다. 내 관심은 결국 서사다. 서사를 통해 나와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는 일, 그것이 중요했다. 한국 현대소설·비교문학 연구와 대중문화콘텐츠 연구 사이의 구분을 의식하기보다, 내 관심사에 집중하기로 했다. 마침 지금 한국 대중문화에서는 흥미진진한 일들이 벌어진다. 주류 언어가 아닌 한국어로 만들어진 콘텐츠가 글로벌 플랫폼을 타고 세계로 퍼져나간다. 유튜브나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영상 플랫폼을 갖지 못한 처지에서, 한국 기업들은 웹소설·웹툰 플랫폼과 위버스 같은 아티스트-팬 소통 플랫폼으로 콘텐츠 제작과 유통의 길을 넓혀간다. 한국 웹툰의 번역과 글로벌 유통, 〈나 혼자만 레벨업〉이 보여주는 활발한 IP 확장, 게임과 웹소설의 장르 교섭, 소설의 애니메이션 각색, 웹툰 플랫폼에서 벌어지는 참여적 각색, 기원이 다양한 콘텐츠의 세계적 유행. 이 사건들을 분석하고 그 의의를 밝혀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겼다. 이 책은 번역, 각색, 전유라는 열쇳말로 그 현장을 읽는다. 이 작업은 강의실과도 깊이 얽힌다. 학생들이 어떻게 서사와 문학에 관심을 갖게 할까. 이 고민이 내 연구를 밀고 가는 힘 가운데 하나다. 콘텐츠를 연구하며 강의안을 구상했고, 강의안에서 출발한 논문도 나왔다. 학생들이 아끼는 콘텐츠로 수업할 때 나도 학생도 즐거웠다. 그렇게 쌓인 논문 열 편을 묶으려니 물음이 하나 남았다. 이 책으로 무엇을 말하려 했는가. 애초에 단행본 출판을 염두에 두고 쓴 글들이 아니었다. 오늘날 한국 대중문화에서 벌어지는 콘텐츠의 생산과 각색, 유통을 다룬다는 공통점 너머에, 열 편을 하나로 꿰는 실이 필요했다. 그때 아내의 말이 떠올랐다. 왜 당신 논문에는 ‘나’, ‘너’, ‘타자’가 그렇게 많으냐고. 돌아보니 내 연구는 늘 한 가지 물음과 붙어 다녔다. ‘나’는 누구이고, ‘너’와 더불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책의 각 장이 ‘나’와 ‘너’, 그리고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으로 향하는 까닭도 여기에서 비롯한다. ‘너’와의 관계 속에서 ‘나’가 만들어진다. 책 전체에서 반복되는 이 명제는 내 삶을 이해하고 만들어 가는 기본 원리이기도 하다. (중략) 우리가 이야기를 읽고 공부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나’와 ‘너’와 ‘세계’를 낯설게 바라보기 위해서가 아닐까. 내가 선 땅이 무너지는 경험은 솔직히 불쾌하고 무섭다. 하지만 그 땅이 무너져야 ‘너’를 만나고, 사랑이 시작된다. 언어와 매체와 국경을 건너며 무너지고 다시 세워지는 콘텐츠의 경계를 살피는 일도, 내게는 이 물음의 연장이었다. 콘텐츠가 세계를 건너는 자리마다 ‘나’와 ‘너’가 새로 만들어지는 사건이 벌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