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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꽃, 심지 않아도 8
쓸모의 시간 38 눈의 종유 64 아이는 울지 않았다 84 스피커 104 하다만 씨의 하다 만, 이야기 130 [해설] 말, 소리 그리고 이야기(임철우 소설가) 156 |
金東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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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사님, 저 무덤이 보이십니까?”
“예.” “저기에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야기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말씀드렸지요. 그런데 처사님. 이야기가 무덤 안에 있습니까?” “….” “아니면.” 성천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무덤이 이야기 안에 있습니까?” 나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성천도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 p.36~37 울음이 곡이고, 곡이 울음이라. 오래된 예언의 구절이 동굴 안쪽에서 메아리처럼 들려오는 듯했다. 그 후의 이야기는 무엇이었더라. 박 단장은 이야기의 끝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차라리 발굴을 시작하지 않았으면 좋았을까. 그랬다면 동굴 암석이 등을 날카롭게 찌르는 아픔도 없었을까. --- p.79~80 소개(疏開)하라. 소개하라. 소리를 들은 자들은 해안으로 떠났고 듣지 못한 자들은 남았다. 소리를 잡은 자는 삶을 얻었고 소리를 잃은 자는 죽었다. 산 자들은 말을 아꼈다. 말에는 피눈물이 맺혔고 말이 섞일수록 피 냄새가 더욱 진해졌다. 사람들은 피 냄새에 진저리를 쳤다. 오로지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만이 냄새가 없었다. 섬은 사람의 말이 아니라 소리가 지배하는 세상이 되어 갔다. 그 혼돈의 피 냄새를 걷히게 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또 다른 소리였다. 작전 완료를 선언합니다. 입산 금지가 해제되던 해였다. --- p.105 그 단단한 대오의 한 구석을 버텨낼 자신이 없었습니다. 살고 싶었습니다. 살아서 아내의 품을 싱싱한 내 두 팔로 안고 싶었습니다. 조심스럽게 어둠을 더듬었습니다. 폐자재를 쌓아놓은 바리케이드만 넘으면 담이었습니다. 꾸벅꾸벅 졸고 있는 사람들을 피해 천천히 바리케이드로 갔습니다. 바리케이드는 차가웠습니다. 면장갑을 낀 손으로 그것을 밀었습니다. 끼이익- 소리를 담을 수 있는 포대가 있다면 그 소리를 얼른 담아 버리고 싶었습니다. 캄캄한 어둠의 한쪽에 던져버리고 싶었습니다. --- p.1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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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의 ‘기억 서사’, 그 다음 장면
최근 한국문학은 역사적 폭력을 정면이 아니라 ‘몸의 감각’으로 끌어올리는 강력한 흐름을 만들어왔다. 광주와 제주를 통증과 호흡으로 되살린 작업들, 증언과 애도, 전이된 트라우마의 윤리를 갱신해온 일군의 작가들의 자리가 그것이다. 『오래된 숨』은 이 흐름과 나란히 서되, 질문을 한 칸 더 밀어붙인다. ‘기억을 어떻게 애도할 것인가’가 아니라, ‘애도가 제도화된 이후에도 여전히 말해지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묻는 것이다. 국가가 기억을 공인한 자리에서 오히려 더 깊이 침묵하게 된 존재들 - 그 침묵을 이 소설집은 흙냄새 같은 신체 감각, 방언으로 흘러나오는 말, 찢기고 불태워진 종이의 물질성으로 번역한다. 사건은 좀처럼 정면으로 서술되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 그 ‘말하지 않음’을 통해, 4·3은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지금도 작동하는 권력의 문법으로 되살아난다. ‘증언의 문학’에서 ‘증언 이후의 문학’으로 현기영·김석범으로 대표되는 제주 4·3 문학이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증언하는 데 힘을 쏟았다면, 『오래된 숨』은 한 걸음 더 들어간다. 기억은 언어 이전에 몸에 새겨진다 이 일관된 문제의식 위에서, 죽음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산 자의 몸 안으로 옮겨온다. ‘안전한 희생자’ 바깥을 응시하다 4·3의 제도화는 ‘무고한 양민’이라는 합의된 희생자를 만들어내고, 그 바깥의 존재들 - 입산자, 떳떳하지 못한 생존자, 외면한 방관자,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를 잃은 자 - 을 매끄럽게 지운다. 『오래된 숨』은 바로 그 지워진 자리를 응시한다. 「쓸모의 시간」의 화자는 피해자도 영웅도 아닌, 발포의 현장에서 도망친 아들이다. 소설은 손쉬운 애도를 허락하는 대신, 종결되지 않는 죄책감과 견딤에 머문다. 4·3을 ‘말하지 않음’으로써 말하다 이 소설집의 가장 날카로운 카드는, 4·3을 단 한 번도 명시하지 않는 소설들이다. 노동 진압의 현장을 ‘무덤이 된 공장’으로 그린 「하다만 씨의 하다 만, 이야기」, 토벌의 스피커와 오늘날의 마을 방송을 ‘소리=권력’의 알레고리로 포갠 「스피커」는 4·3을 과거의 비극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작동하는 권력의 문법으로 읽어낸다. 학교 폭력과 성폭력의 기억이 4·3의 학살과 겹쳐지는 「아이는 울지 않았다」, 신화와 발굴의 시간 속에서 반복되는 폭력의 원형을 환상적으로 그린 「눈의 종유」 또한 마찬가지다. 폭력은 한 번 일어나고 끝나는 사건이 아니라, 몸에서 몸으로, 시대에서 시대로 전이되는 구조라는 것 - 그것이 이 소설집이 도달한 인식이다. ■ 작가의 말 ‘견디다’라는 말을 오래 곱씹었다. 쓰는 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흘러들어왔다. 오래 붙들고 있었던 이야기들이다. 세상의 길들에서 때론 헤매고 넘어지더라도, 이야기들은 각자의 길을 걸어갈 것이라고 믿는다. 말해지지 않은 것들은 침묵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다. 숨도 멈추지 않는다. 죽은 자들의 숨도, 말하지 못해 막혀 버린 숨도. 단단하게 굳어진 그것들은, 문득, 다시 피어오른다. 심지 않아도 피어나는 것들이 있는 것처럼. 오랫동안 나는 다른 이의 이야기를 읽고 쓰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이야기들이 나에게 찾아왔다. 읽고 쓰는 일이 결국은 살게 만드는 숨이었다. 이야기가 무덤 안에 있는지, 무덤이 이야기 안에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끝내 알 수 없을지라도, 들을 수 없고, 들리지 않는 모든 것들에게 다가가야만 했다. 물음은 답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물음으로 함께 앉아 견디는 것만이 물음의 목적이었다. 많은 것들이 나를 지치지 않게 해주었다. 혼자의 시간을 견디게 해준 숱한 문장들과 나의 가수 이승환. 내가 삼킨 문장들이 나의 스승이었다. 내 살과 뼈를 닮은 기훈과 재이에게 이 이야기가 위안이 되었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