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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9
프롤로그 ─ 로마를 향한 아틸라의 진격 제1장 유라시아 스텝의 주민 정착 제2장 유라시아 스텝에서의 생존 제3장 스키트인과 페르시아의 대왕 제4장 알렉산드로스 대제: 곡과 마곡을 막는 장벽 제5장 묵돌 선우와 중국의 만리장성 제6장 흉노와 중국 황제들의 전쟁 제7장 천자들과 실크로드 제8장 파르티아인: 로마 제국의 유목민 적수 제9장 북위: 흉노의 후계자 제10장 에프탈: 이란의 훈족 제11장 훈족: 로마의 동맹이자 적 제12장 ‘신의 채찍’ 아틸라 제13장 아틸라의 후예들과 새 로마 제14장 돌궐 카간들과 당 황제들 제15장 튀르크인과 칼리파국 제16장 셀주크 튀르크와 그 술탄국 제17장 사제왕 요안네스 전설과 카타이의 구르한들 제18장 테무진에서 칭기스 칸으로 제19장 세계 정복자 칭기스 칸 제20장 바투와 악마의 기병대 제21장 몽골의 바그다드 약탈 제22장 쿠빌라이 칸과 중국의 통일 제23장 교황 사절, 선교사, 그리고 마르코 폴로 제24장 파괴의 군주 티무르 에필로그 ─ 유목민 정복자들: 업적과 유산 용어설명 옮긴이의 말 참고문헌 주 찾아보기 |
Kenneth W. Ha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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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을 길들이고 유라시아의 끝없는 초원을 활용하는 법을 깨달은 최초의 스텝 유목민에서부터 천하무적의 기마 궁수를 바탕으로 제국을 세운 마지막 정복자인 ‘파괴의 군주’ 티무르(재위 1370∼1405)에 이르기까지 4500년을 아우르는 방대한 서사를 집필하기로 했다. 나는 잘 알려지지 않은 쿠샨, 유연, 북위, 에프탈(백흉노), 서요에 관한 장들을 새롭게 추가했다. 중세 유럽인들의 상상력을 사로잡아 몽골인들에 대한 오해를 낳았던 ‘사제왕 요안네스’의 전설도 상세히 다루었다. 다른 장에서는 조반니 다 피안 델 카르피네, 빌럼 판 루브뢱, 마르코 폴로 같은 여행가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이들은 몽골 궁정에서 유라시아 유목민에 대한 대중적인 오해를 영원히 산산조각 내는 새로운 통찰과 정보를 가지고 돌아와, 궁극적으로 쿠빌라이 칸의 ‘카타이’에 도달하기 위한 유럽의 발견 여행을 촉발했다. 무엇보다 나는 중국을 단순히 정복한 것이 아니라 통합한 13세기의 가장 중요한 통치자 쿠빌라이 칸의 천재성을 새롭게 인식하게 됐다. 각 장에서 나는 이러한 유목 민족들이 당시 세계에 미친 영향과 그들의 유산이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하고자 노력했다.
---「머리말」중에서 서기전 2000년부터 서기전 300년 사이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른바 ‘타림 미라’들은 중앙아시아 역사에 대한 기존의 통념을 산산이 깨뜨렸다. 이 미라들에 대한 DNA 분석 결과 타림분지 도시들의 최초 거주민은 튀르크인도, 중국인도 아니었음이 드러났다. 위구르 민족주의자나 중국 민족주의자 모두에게 실망스러운 일이었다.2 대신에 2008년 이후의 분석은 초기 주민들이 오늘날의 유럽인들과 DNA를 공유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며, 이후 서아시아와 북인도에서 이주민들이 들어와 이 토착민들과 통혼했음을 확인해준다. 몽골계 특징을 지닌 개인들의 미라는 서기전 제1천년기 말에 이르러서야 나타난다. 이러한 과학적 발견은 오늘날 신장 혹은 위구르스탄을 자신들의 고향으로 주장하기 위해 역사적 정당화를 찾는 중국이나 위구르 민족주의자들에게 거의 위안이 되지 않는다. ---「제1장 유라시아 스텝의 주민 정착」중에서 오늘날 우크라이나 남부 돈강 인근의 스텝에서, 당대에 집결된 것 가운데 가장 막강한 군대를 이끌고 있던 페르시아의 대왕 다리우스 1세는 스키트 왕 이단티르소스가 보내온 기이한 전갈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했다. 사신은 새 한 마리, 쥐 한 마리, 개구리 한 마리, 그리고 화살 다섯 개를 전한 뒤 아무 설명도 없이 떠났다. 다리우스는 즉시 이 전갈을 스키트인들의 복종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다리우스의 고위 참모이자 매부인 고브리아스는 그 의미를 간파했다. “너희 페르시아인들이 새가 돼서 하늘로 날아오르거나, 쥐가 돼서 땅속으로 굴을 파고들거나, 개구리가 돼서 호수로 뛰어들지 않는 한, 너희는 결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 땅에서 스키트인의 화살에 맞아 쓰러질 것이다.” 이 일화는 유라시아 스텝에서 교묘히 움직이는 유목민 기마 궁수들을 상대로 전쟁을 벌일 때의 전략적 한계를 잘 보여준다. 다리우스는 스키트 유목민을 결정적 전투로 끌어내지 못했고, 결국 서기전 512년 가을에 승리를 선언한 뒤 철수했다. ---「제3장 스키트인과 페르시아의 대왕」중에서 카니슈카는 인간 형상으로 표현된 붓다의 가장 이른 사례 가운데 하나인 주화를 주조했다. 파탈리푸트라에서 주조된 이 희귀한 의례용 금화에는 후광을 두르고 서 있는 붓다의 모습이, 그리스 문자로 적힌 그의 박트리아어 이름 및 황제 자신의 씨족 문장(탐가)과 함께 새겨져 있다. 불교 저술가들은 이 화폐가 암시할 뿐인 사실, 즉 카니슈카의 개종에 대해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그들은 카니슈카를, 가우타마 싯다르타의 가르침을 받아들인 최초의 위대한 통치자였던 마우리아 황제 아소카 다음가는 인물로 찬미했다. 아소카가 불교를 자신의 제국에서 우대받는 종교로 격상시켰다면, 카니슈카는 불교를 인도의 신앙에서 세계종교로 탈바꿈시켰다. 오늘날 불교는 전 세계 인구의 약 10퍼센트, 즉 5억 3500만 명이 넘는 신자를 거느리고 있다. 다른 모든 쿠샨 황제들과 마찬가지로 카니슈카는 실크로드의 전략적 중심 구간이 만나는 연결 지점에 질서를 부여했다. 이 길들을 따라 불교 포교자들이 그의 제국에서 한나라 중국으로 갔다. ---「제7장 천자들과 실크로드」중에서 스텝 제국들은 모두 카리스마 있는 통치자 계보가 끝나면 지속되지 못했다. 역대 제국 연합은 내전으로 분열했다. 몽골 칸들조차 세 세대 이후까지 단일 제국을 유지할 수 없었다. 비록 유목민들은 많은 도시를 세우지 않았고 기록을 많이 남기지도 않았지만, 그들은 우리에게 말, 살바퀴 달린 탈것, 안장과 등자, 복합궁, 승마 바지, 남성용 혁대와 장화, 요구르트와 아이란을 남겼다. 그들은 유라시아 일대에서 지식, 종교, 상품, 기술을 한 문명에서 다른 문명으로 전달하는 데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들은 성향상 단일신 숭배자로서, 무엇보다도 영원한 푸른 하늘을 숭배했다. 그래서 여러 단일신 신앙에 쉽게 적응하고 전파할 수 있었다. 그들은 이례적인 관용과 실용주의를 보여주었다. 여성은 중요한 사회적·영적·정치적, 심지어 군사적 역할까지 맡았다. ---「에필로그」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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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성벽을 쌓은 자가 아니라
그 벽을 넘어선 자들에 의해 변혁되었다 흑해에서 몽골고원까지, 세계사를 뒤흔든 초원의 4500년사 아틸라, 칭기스 칸, 티무르. 그리고 스키트와 흉노, 훈족과 돌궐, 몽골. 세계사를 뒤흔든 이 이름들은 모두 한곳에서 나왔다. 바로 흑해 북안에서 몽골고원까지 8천 킬로미터에 걸쳐 펼쳐진 유라시아의 대초원(스텝)이다. 이들은 저마다 다른 시대, 다른 지역에 출몰한 정복자로 기억되지만, 사실 이들은 같은 무대를 배경으로 4500년 동안 거듭 이어져온 하나의 흐름에서 탄생했다. 말을 길들이고 기마 궁수를 활용해 무적의 전술을 완성한 초원의 유목민은 전차와 기병의 발명으로 두 차례의 군사 혁명을 일으켰고, 페르시아와 중국, 로마 등 당대 최강의 제국들을 상대로 전장을 지배했다. 저명한 역사학자이자 고전학자인 케네스 W. 할은 각각의 무용담에 흩어져 있던 이 이름들을, 세계사를 움직인 하나의 축으로 꿰어낸다. 이들은 척박한 초원에서 살아남기 위해 실용적이면서도 관용적인 태도를 갖췄고, 문자도 도시도 거의 남기지 않았지만 기술과 종교, 상품과 지식을 한 문명에서 다른 문명으로 실어 날랐다. 실크로드를 통해 최초의 대륙 규모 교역을 이끌었고, 세계 곳곳에 제국의 질서를 세웠으며, 제지술과 인쇄술, 화약을 서방에 전하며 근대 세계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문명은 성벽 안에서 홀로 자라나는 것이 아니라 끝없는 만남과 충돌, 교류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오래된 진실을 이 책은 일깨운다. 말안장 위에서 시작해 세상을 지배하다 초원 제국은 어떻게 탄생하고 무너졌는가 이 책은 먼저 유목민의 힘을 낳은 자연환경과 생활방식을 살핀다. 혹독한 겨울과 가뭄, 물과 목초지의 부족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가족과 가축은 끊임없이 이동해야 했다. 초원의 사람들은 지리를 읽고 날씨의 변화를 예측했으며, 낯선 집단을 상대로 통행권과 방목지를 협상하고 여러 언어를 익혔다. 이렇게 축적된 장거리 이동 능력과 지리 감각이 전차·기마술·복합궁과 결합해 유목민은 기동력을 내세운 압도적인 군사력을 갖추게 되었다. 바퀴살이 달린 전차와 기병이라는 두 차례의 군사 혁명, 복합궁과 안장·등자의 발전으로 초원의 전사들은 페르시아·중국·로마·동로마와 같은 제국의 군대에 비해 군사적·전술적 우위를 점했다. 유목 기병과 맞선 제국들은 군사 체제와 국경 방어, 외교 정책을 전면 수정해야 했다. 그러나 뛰어난 기마 전술만으로 초원 제국이 탄생한 것은 아니었다. 흩어진 전사들을 하나의 군대로 묶고, 정복으로 얻은 부와 교역을 통치의 자원으로 전환할 수 있는 뛰어난 군주가 필요했다. 흉노의 묵돌 선우는 혈연과 부족에 따라 움직이던 전사들을 십진법에 따라 군대로 재편하고 명확한 지휘 체계를 세웠다. 중국에서 들어온 공물과 교역품을 활용하고, 문자와 관료제를 받아들여 최초의 대규모 초원 제국을 건설했으며, 그가 마련한 군사·통치 방식은 돌궐과 몽골로 이어졌다. 칭기스 칸 역시 부족보다 능력과 충성을 앞세워 군대를 재조직하고, 정복지의 서기와 기술자, 행정가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유라시아 전역을 뒤덮는 제국을 세웠다. 그만큼 초원 제국은 뛰어난 군주의 역량에 크게 의존했고, 이는 동시에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 되었다. 창건자가 사라진 뒤 후계자들이 군대와 부족의 충성을 하나로 묶지 못하면 제국은 곧 분열했다. 이 책은 기마 전술과 기동력뿐 아니라 군사 조직, 공물과 교역, 관료제의 수용, 카리스마를 갖춘 군주의 통치와 후계 분쟁을 함께 살피며 초원 제국이 어떻게 탄생하고 성장하고 무너졌는지를 보여준다. 정복의 역사 뒤에 숨은 진실 유라시아를 하나로 묶은 유목민의 유산 초원의 유목민들이 세계사에 남긴 것은 정복과 파괴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실크로드의 주요 구간을 장악하고 상인과 선교사, 장인과 외교관이 이동할 수 있는 질서를 세웠다. 유목민의 후예가 세운 쿠샨 제국은 중앙아시아와 북인도를 연결하고 불교가 인도의 신앙에서 동아시아의 세계 종교로 확산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선비족이 세운 북위는 중국 북부를 통일하고 불교 사원과 석굴을 세웠으며, 이들이 유지한 초원의 군사 문화와 생활 방식은 훗날 중국을 재통일한 수·당 왕조의 성격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몽골 제국 아래에서는 상품뿐 아니라 천문학과 수학, 지도와 의학, 제지술과 인쇄술, 화약과 각종 군사기술이 전례 없는 규모로 유라시아를 오갔다. 저자는 이러한 몽골의 유산이 지식의 확산과 화약 혁명을 촉진하고, 장기적으로 근대 세계경제의 형성에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한다. 그렇다고 이 책은 유목민을 낭만적으로 미화하지 않는다. 정복 과정에서 벌어진 학살과 파괴, 초원의 가혹한 전쟁 규칙도 숨김없이 다룬다. 동시에 그들의 역사를 적과 피해자의 기록만으로 판단해온 ‘야만인의 침입’이라는 오래된 편견을 극복하며, 유목민이 정착 문명의 군사·외교·경제·종교를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보여준다. 이로써 이 책은 로마사와 중국사, 페르시아사와 이슬람사를 잇는 큰 흐름을 스텝이라는 새로운 공간을 통해 제시한다. 유라시아를 하나의 역사 공간으로 바라볼 때, 문명은 성벽 안에서 홀로 성장한 것이 아니라 끝없는 이동과 만남, 충돌과 교류 속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선명해진다. 결정적 장면과 잊힌 제국들 4500년을 한 호흡으로 읽게 하는 서사 저자는 4500년에 이르는 초원사를 사실과 연대를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물과 사건이 살아 움직이는 듯 생생하게 전한다. 로마로 진군하는 아틸라, 스키트 왕이 보내온 수수께끼 같은 선물을 해석하는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바미얀의 거대한 불상 앞에 선 고승 현장, 파르티아 기마 궁수에게 포위된 로마 장군 크라수스의 마지막 순간 같은 흥미로운 에피소드로 각 장이 시작된다. 독자는 이어지는 전투와 궁정, 사절단과 대상 행렬을 따라가며 한 시대의 결정적 순간에 들어선 뒤, 그 사건이 유라시아 전체의 정치와 교역, 종교와 문화에 일으킨 파장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더 나아가 저자는 쿠샨과 유연, 북위와 에프탈, 카라키타이처럼 일반적인 세계사에서 몇 줄로 지나치거나 아예 다루지 않는 세력에도 합당한 자리를 부여한다. 이들을 포함해 스텝 유목민의 역사를 차례로 살펴보면 하나의 초원 제국이 사라질 때마다 역사가 단절된 것이 아니라, 군사 조직과 통치 방식, 교역망과 종교적 관용, 정착 문명을 활용하는 방법이 다음 세력으로 계승되고 변형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스키트에서 흉노로, 흉노에서 훈과 돌궐로, 다시 몽골과 티무르로 이어지는 흐름을 통해 이들의 정복은 세계사를 움직인 하나의 축으로 다시 읽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