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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죽음’에서 ‘죽어감’으로 1장 생의 말기에 대한 인류학적 탐구 1. 죽음, 그 오래된 주제 2. 연명의료기술이 만들어낸 새로운 선택과 시간 3. 말기와 공간, 그리고 그 사이의 이동 4. 우리가 모르는 말기돌봄 5. 말기를 인류학적으로 연구하기: Z병원 호스피스 · 완화의료팀과 함께 2장 시간: 말기를 ‘활성화’하기 1. 잠재적인 말기: “결국 다 돌아가시잖아요” 2. 말기의 활성화: “더 이상 케어 플랜이 없습니다” 3. 말기돌봄의 시간성: 늘리거나 줄이지 않고 ‘좋은 죽음’을 위해 3장 공간: 말기의 이동 경로와 돌봄의 한 형태로서의 전원 1. 환자가 모이는 곳, “서울의 큰 병원” 2. 왜 머물지 못하는가: 말기를 위한 병상은 없다 3. 경로-장소들의 의미 4. 돌봄의 한 형태로서의 전원 4장 관계: 생애 말기의 관계-생성적 돌봄 1. 신체적 돌봄: 쇠하는 몸에 응답하기 2. 환자·가족과 “친해지기”: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 3. 매듭풀기를 통해 환자를 관계-시키기 4. 병원에서의 ‘가족’ 되기 5. 말기돌봄의 궁극적인 지향점: 관계-생성적 돌봄 맺는 글_ ‘좋은 죽음’을 넘어서 감사의 글_ 먼저 떠난 이들에게 뒤늦은 인사를 전하며 덧붙이는 글_ 죽음을 연구하고 싶은 이들에게 주석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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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게 보면 이 책은 죽음에 관한 것이다. 사람들은 죽음이란 단어에서 숨이 멎고 심장이 멈추며 생명 활동이 정지하는 짧은 순간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우리의 연상과 달리 오늘날 많은 이들에게 죽음은 단시간에 일어나는 ‘사건’이라기보다는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되는 ‘과정’에 가깝다.
--- p.15 서울의 Z병원에서 호스피스/완화의료팀 구성원들이 무엇을 하는지 따라가면서 이 책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병원 체계는 어떻게 ‘좋은 죽음’ 혹은 ‘나쁜 죽음’을 생산하는가? ‘괜찮은 죽음’이란 무엇이고 이를 위해서는 어떠한 실천들이 필요한가? 말기란 무엇을 의미하며, 이러한 말기성은 어떤 말과 행위와 사물을 통해 우리에게 인식되는가? 궁극적으로 우리는 왜 죽어가는 이를 돌보며, 이러한 돌봄은 인간인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 p.25 나는 기존의 논의들이 말기를 선험적이고 주어진 것처럼 전제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연명의료를 받지 않기로 결정하고 나면 그 이후에는 어떤 시간이 펼쳐지는가? 무엇보다도 연명의료를 받을 것인가 말 것인가는 말기라는 다면(多面)에서 작은 점 하나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 p.53 병원의 구조는 죽음의 궤도를 단지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말기를 보내게 되는지 적극적으로 주조한다. 이곳에서 죽음은 일종의 혼돈이므로 이 혼돈을 질서에 편입시키기 위해 여러 대응전략이 필요하다. 혼돈은 가급적 일어나지 않으면 좋을 것이므로 죽음을 최대한 피하고 늦추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는데, 그것이 바로 연명의료기술이다. --- p.58 병원을 현장으로 삼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류학의 궁극적인 목표가 이론, 규칙, 법이 현실에서 잘 적용되는지를 검토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현실에서 실제로 무엇을, 왜 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책은 연명의료결정법이나 의학 교과서가 병원에서 제대로 적용되는지 평가하지 않는다. … 병원에서 쓰이는 언어를 ‘과학적 지식’으로 처리하기보다 하나의 낯선 문화에서 쓰이는 고유한 말과 관습으로 받아들였고, 그 세계를 외부에서 비판하거나 해석하기보다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행위를 어떻게 이해하는지 배우고자 했다. --- p.79 말기암 병동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혹자는 죽음에 대한 대화가 다른 장소보다는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장소일 것이라 추정하겠지만, 정반대로 상급종합병원의 말기암 병동은 누가, 누구에게, 언제 한 개인의 유한성에 대해 발화할 수 있는지 매우 주의 깊게 정해져 있었다. --- p.91 서류 작성을 돌봄이라 부를 수 있을까? 말기돌봄 문서의 작성은 분명 표면적으로는 병원의 관료적 시스템이 요구하는 업무이자 일종의 법적 절차였다. 그러나 완화의료팀 멤버들이 생각하는, 중환자실에서 “고생만 하다 가시는” 형태의 죽음을 환자가 겪지 않도록 하는 절차적 수단이기도 했다. --- p.120 중환자실에서 환자를 데리고 나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애초에 그곳으로 환자를 보내지 않는 것이다. 위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환자가 중환자실로 들어가는 것은 현대 병원의 기본 절차이므로, 이를 따르지 않기 위해서는 사전에 환자가 말기돌봄 문서(AD, POLST, DNR)에 서명을 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서명을 받는 것이 단지 절차에 포함된 서류작업이 아니라 죽기에 바람직하지 않은 장소로 환자가 이동하는 것을 막는 실천이었던 것이다. --- p.168 돌봄의 진실성의 원칙 중 하나로 ‘관심을 기울이기(attentiveness)’가 꼽히는데, 이때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은 단지 특정한 상황에서 특정한 개인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뿐 아니라 그 돌봄 요구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문화적 배경까지 인식하는 것으로 확장된다. --- p.181 환자를 돌보는 노동은 전문지식이나 기술이 필요없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로 간주되고, 그것이 돌봄노동의 대가를 낮게 책정하는 정당화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신체적 돌봄에는 체현된 지식이 필요하고, 그 지식이 돌봄 제공자의 몸에 축적되기까지 오랜 시행착오와 배움이 필요하다. 돌봄은 실로 표준화하기 힘든 작업이기 때문이다. --- p.194 말기에 진입한 취약한 몸을 대신해서 모세혈관적 돌봄을 수행하고 생명 활동 유지를 돕는다는 실용성이 완화의료팀이 추구하는 전부는 아니었다. 또, 그 실용성이 독자적으로 신체적 돌봄을 가능하게 만들어주지도 않았다. 그 이전에 관계가 필요했다. --- p.205 죽음은 분명 필연적 사건이지만 우리는 당장 가까운 미래에는 죽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이러한 무의식적 자기기만은 필멸의 두려움을 접어두고 인류가 매일매일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도왔을 것이다. 이 책은 결국 더 이상 인간의 자기기만이 작동하지 않는 공간에서 그 필멸은 어떤 방식으로 이해되는가에 관한 것이다. … 다들 ‘존엄한 죽음’을 이야기하며 말기를 선이나 점처럼 전제할 때, 나는 바로 이 말기의 시공간을 면으로 펼쳐 그 속에서 새로운 관계를 생성하는 사람들과 그 사회적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존엄한 죽음의 논의에 필요한 것은 바로 말기란 도대체 무엇인가 먼저 묻는 것이다. --- p.2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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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연명의료결정법 입법 10주년, ‘좋은 죽음’의 의미를 새롭게 묻다
2026년, 연명의료결정법 입법 10주년을 맞이한 지금, 사람들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쓰고 연명의료는 받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죽음은 근본적으로 불확실성의 영역에 속한다. 현실은 언제나 우발적이라 사람이 죽어가는 과정에는 서로 다른 목적과 역량을 지닌 의료기관들, 계속 변화하는 의료기술과 지식체계, 그리고 그 사람을 둘러싼 다양한 돌봄의 관계망이 얽혀 있다. 그러므로 저자에 따르면 ‘좋은 죽음’은 연명의료를 받느냐, 받지 않느냐의 이분법을 훌쩍 뛰어넘는다. ‘죽어감’의 과정에 얽혀 있는 법이나 규칙, 매뉴얼은 이 복잡한 얽힘을 모두 포착할 수 없으므로 삶과 죽음을 세세하게 규제하는 장치이기보다, 예외와 특수성, 관계의 복잡성에 열려 있는 틀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생애 말기를 인류학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현장’에 들어간 저자가 끈질기게 포착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말기’는 의사가 선언하는 순간 완성되지 않는다 책에서 Z병원으로 언급되는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은 최첨단 의료기술과 치료 역량이 집중된 공간이지만, 동시에 말기 환자가 오래 머물기 어려운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환자들은 암을 치료하거나 진행을 늦추기 위해 입원하지만, 더는 시도할 치료가 없다고 판단되는 순간 ‘말기 환자’로 재분류된다. 그러나 저자는 말기가 의사의 선언만으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의료진 내부의 판단, 환자와 가족을 대상으로 한 호스피스 상담, 연명의료에 관한 대화, 환자 명단의 ‘항암’에서 ‘완화’로의 분류 변화가 함께 이루어질 때 비로소 말기는 현실에서 활성화된다. 말기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환자와 가족은 치료를 포기하는 것으로 받아들일까 두려워하고, 의료진은 언제 어떻게 사실을 설명해야 할지 망설인다. 이 책은 그러한 침묵과 갈등을 특정 개인의 무지나 이기심으로 환원하지 않고, 병원 조직과 의료문화, 법과 제도, 가족관계가 얽힌 현실로 분석한다. 한편 저자가 들여다보는 말기는 입체적이다. 즉, 말기가 의료전문가에 의해 생산되는 시간이라면, 그 시간은 어떤 말과 행위와 사물에 의해 실현되는가? 말기라는 시간은 그것이 생산되는 공간과 어떻게 조응하는가? 말기에 진입한 존재와 그들을 돌보는 이들은 어디에 머물다가 어디로 떠나는가? 죽음을 앞둔 사람을 돌보는 것은 여타 간병과 어떤 차이가 있고 그 의미는 무엇인가? 이 책은 이런 질문을 파고들며 말기를 의료인류학의 시선으로 탐구한다. 병원 밖으로 보내는 일이 돌봄이 될 때 책의 3장은 말기 환자의 ‘이동’에 주목한다. 병원과 관련된 여러 행위 중 환자의 이동은 학계의 관심을 적게 받은 주제이기도 하다. 상급종합병원에서 환자가 갈 수 있는 곳은 집, 호스피스, 요양병원, 중환자실 등 다양하지만, 각각의 장소가 환자와 가족에게 갖는 의미는 다르다. 집은 익숙하고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장소이지만, 산소호흡기나 석션(suction) 등 의료기술을 관리할 가족의 역량과 돌봄 부담이 요구된다. 호스피스는 병원의 장점을 일부 유지하면서도 보다 편안하고 관계 중심적인 돌봄을 제공할 수 있지만, 병상 부족과 때로는 환자 및 가족의 심리적 저항이라는 현실적 장벽이 존재한다. 반대로 중환자실은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강력한 의료기술이 집중된 공간이지만, 말기 환자에게는 고통스러운 처치와 가족과의 단절을 초래할 수 있다. 저자는 환자를 다른 기관으로 보내는 ‘전원’이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이 책의 주인공 가운데 하나인 완화의료팀은 환자의 신체 상태, 가족의 돌봄 능력, 경제적 조건, 지역과 종교, 환자와 가족의 바람을 세심하게 조율해 다음 장소를 찾는다. 때로는 병원 규칙에 따라 환자를 빨리 내보내는 대신, 환자가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을 때까지 병원에 머물도록 돕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전원은 환자를 밀어내는 행정이 아니라, 환자에게 마지막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괜찮은 장소’를 마련하는 돌봄으로 재구성된다. 말기돌봄의 궁극적인 지향점, ‘관계-생성적 돌봄’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말기돌봄을 제도나 관념의 차원에만 머물게 하지 않고, 체화된 몸의 경험과 일상의 행위 속에서 포착한다는 데 있다. 저자는 완화의료팀과 함께 환자의 머리를 감기고, 목욕과 족욕을 돕고, 면도와 마사지, 환복을 지원했다. 환자에게 차를 권하고, 병실을 방문해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들어주며, 가족에게 감사와 사랑의 말을 전할 기회를 마련했다. 이러한 행위는 겉으로는 작고 사소해 보이지만, 쇠약해진 몸의 요청에 응답하고, 소진된 가족의 부담을 덜며, 환자와 가족이 병원에서 고립되지 않도록 하는 구체적인 돌봄이었다. 이러한 ‘관계맺기’는 간호사나 봉사자 개개인과의 관계가 아니라 환자 및 가족-완화의료팀이라는 집합적 관계의 속성을 띤다. 관계의 목적이 개인적 친교가 아니라 말기돌봄이기 때문이다. 특히 저자는 말기돌봄의 궁극적인 지향을 ‘관계-생성적 돌봄’이라는 개념으로 제시한다. 말기돌봄은 단지 통증을 줄이거나 치료를 중단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환자가 자신과 관계를 맺고, 가족과 못다 한 말을 나누며, 돌봄 제공자와 연결되고, 사별 이후에는 다른 유가족과 새로운 관계망을 만들어가도록 돕는 실천이다. 따라서 말기돌봄의 중요한 본질은 그것이 관계를 생성하고, 잇고, 확장한다는 것이고, 이 관계됨 자체가 바로 돌봄의 목표라는 것이 저자의 핵심 주장이다. ‘좋은 죽음’을 넘어 말기돌봄을 상상하기 이 책은 ‘좋은 죽음’이라는 이상을 무비판적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고통 없이, 평온하게, 가족과 함께, 자신의 의사를 밝힌 채 죽음을 맞이하는 이상은 중요하지만, 모든 환자와 가족에게 동일하게 적용할 수는 없다. 환자의 몸 상태와 가족관계, 경제적 여건, 의료 인프라와 법적 조건에 따라 가능한 선택은 달라진다. 따라서 저자는 ‘좋은 죽음’의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말기라는 시간을 어떻게 함께 구성할 것인지 묻는다. 연명의료를 받을 것인지 중단할 것인지의 이분법을 넘어, 어디에서 누구의 돌봄을 받으며 무엇을 이야기하고 어떤 관계를 남길 것인지가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돌봄은 고통과 통증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지, 고통 없는 세상을 꿈꾸는 것이 아니며, 특히 말기돌봄은 환자 개개인에게 가장 적합한 것을 찾아내기 위한 아주 작고 미세한 실천들의 조합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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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누구도 쉽게 심판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모두가 최선을 다하지만, 그 최선은 때로 서로 엇갈리고 충돌한다. 저자는 그 복잡성을 성급한 결론으로 봉합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과 제도, 돌봄과 책임이 교차하는 현장을 끝까지 붙들며,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근원적으로 묻는다.” - 이현정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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