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1. 일본을 다시 생각한다
분단 50년의 길목에 서서 - 민족사의 현주소를 묻는다 40년 사이클의 정치역학 - 아시아를 배반하고 마침내 백인에게 배반당한 일본의 현대사 2. 북한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금창리, 대포동 그리고 '괴선박' 소동 - 엿보이는 희망의 조짐 새로운 역사의 여명 - 북미, 북일 관계 정상화를 향한 움직임 대포동 이후의 북미, 북일 관계 3. 통일의 길목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논한다 - 지금까지의 일, 앞으로의 일 질풍노도의 시대를 살면서 - 남북 공동성명과 북미 공동 코뮈니케 |
정경모의 다른 상품
|
북한이 핵개발을 시도한다든지, 장거리 미사일을 갖는 것이 사악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쪽은 항상 옳고 상대방은 언제나 옳지 못하다는 '신앙'에 근거를 둔 사고방식인데, 종교의 세계에서라면 몰라도 어떻게 이런 일이 제대로 된 국제관계의 마당에서 통할 수 있겠는가?
--- p.198 |
|
고집스럽게 미사일설에 매달려 있는 일본을 제쳐놓고, 미국은 전혀 다른 안목으로 사태의 심각성을 보아오고 있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얘기가 약간 거스러 올라가지만, 북한이 1993년 5월에 시험 발사한 노동 1호 미사일의 사정거리는 500킬로미터였으며, 마지막 추진체가 낙하한 곳도 동해상이었다고 일반 매스컴에서 보도되었지요. 그러나 미국이 적외선 첩보위성으로 미사일의 궤적을 정밀 조사한 결과, 실제 사정거리는 1,300킬로미터였고 마지막 추진체도 일본열도를 훨씬 지나 태평양 한가운데 떨어졌다고 합니다. 최근 발사한 대포동 얘기가 아니고 1993년에 발사한 노동호 이야기입니다. 미국은 이 사실을 숨겨오다 1997년 12월이 돼서야 비로소 한국 정부에 통보했습니다. 이 사실을 <조선일보>가 보도한 것이 대포동을 발사한 지 2개월이 지난 1998년 10월 23일인데, 과문한 탓인지 나는 일본 매스컴이 이것을 보도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습니다. 아무튼 대포동을 발사한 1998년 8월은 노동 1호 발사에서 5년이란 세월이 흐른 시점이었고, 이 5년 동안 북한이 필사적으로 노동 1호의 개량을 서둘러, 이것을 인공위성으로 꾸미는 데 성공했다고 하더라고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닐 겁니다.
---pp.96~97 |
|
조국 밖에서 조국과 함께 한 30년의 망명생활 그가 통일의 길목에서 미국과 일본을 다시 본다!
30년이 넘는 일본 망명생활, 박정희 정권에 대한 신랄한 비판, 그리고 1989년 문익환 목사와 함께 방북.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정경모 선생이다. 물론 90년대 초 『찢겨진 산하』는 국내에도 소개되어 베스트셀러가 된 바 있다. 김구, 여운형, 장준하 선생이 구름 위에서 나누는 정담은 그야말로 한국현대사 중에서 가장 중요했던 해방공간의 역사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정경모 선생은 1924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중학을 졸업하고 일본 게이오 대학 의학부, 서울대 의대를 다니다가 미국 에모리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했다. 1970년 일본으로 건너가 문필활동으로서 민주화, 통일운동을 지원하였다. 일본에서 1981년 한국문제 전문지 <씨알의 힘>을 발행하였고, 1991년에는 일본의 평화와 조선의 통일을 생각하는 '씨알의 힘' 모임을 발족하여 기관지 <씨알>을 현재 35호까지 발행하였다. 이 책은 <씨알> 28호에서 34호까지를 편집해 펴낸 것이다. '가시돋치 민족주의자'. 이 짧은 문구가 인간 정경모 선생의 삶을 요약하는 정의다. 한민족의 비애를 깨닫기 시작한 뒤로 30년 동안 줄곧 그는 날카로운 가시를 온몸에 달고 다녔다. 자신의 주장을 저버린 자. 불의 앞에서 눈을 감은 자. 부정한 권력과 타협한 자는 그의 가시에 여지없이 찔리고 말았다. 그는 현재 정상적으로 귀국할 수 없는 신분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