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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하는 글 _ ‘돌봄감수성’이 선사하는 새로운 인문학적 비전 · 5
머리말 _ 돌봄은 감수성이다 · 10 제1부 사막에서 나를 짓다 - 자기 돌봄의 재건 제1장 상처를 자산으로 벼리다 _ 자기존중 · 17 제2장 유혹 앞에 경계를 긋다 _ 자기통제 · 43 제3장 침묵에서 목소리를 건지다 _ 자기성찰 · 73 제2부 심연 곁을 지키다 - 타인 돌봄의 수호 제4장 취약함 앞에 멈춰서다 _ 타인존중 · 95 제5장 말없이 현존을 나누다 _ 공감과 경계 · 114 제6장 상대를 있는 그대로 안다 _ 소통 · 133 제3부 침묵 너무 우리를 잇다 - 공동체 돌봄의 연대 제7장 침묵의 카르텔에 균열을 내다 _ 온정 · 153 제8장 혈연 너머로 손을 내밀다 _ 상호부조 · 173 제9장 시스템의 틈에서 온기를 지피다 _ 연대 · 209 맺음말 _ 돌봄감수성이 세상을 바꾼다 · 234 부록 _ 돌봄을 다룬 이야기 · 237 참고문헌 · 2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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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스스로를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존재로 상상하기를 즐긴다. 그러나 철학자 에바 페더 키테이가 일찍이 지적했듯, 이 상상은 현실을 왜곡한 허구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생을 마감할 때까지 끊임없이 타인의 돌봄에 의존하며 존재한다. 돌봄은 예외적 상황에서 발동되는 선의가 아니라, 인간 실존을 지탱하는 가장 근원적인 조건이다.
---「머리말: 돌봄은 감수성이다」중에서 쥐스킨트의 이 짧은 이야기가 오늘날 우리에게 여전히 서늘한 울림을 주는 이유는 우리가 수많은 ‘외부 비평가’들에 둘러싸여 살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비평가가 신문지면의 평론가였다면, 오늘날의 비평가는 SNS의 좋아요, 알고리즘의 선택, 타인의 평판이라는 이름의 익명적 권위들이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나는 충분히 깊지 못하다’거나 ‘나는 사회적 성취의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내면의 비평에 시달리는가? ---「제1장 상처를 자산으로 벼리다-자기존중」중에서 자기 돌봄의 원칙은 거창하지 않다. 불안할수록 사소하고 반복적인 행동을 통해 삶의 통제권을 쥐는 것, 무리한 소통보다 안전한 고독을 선택하는 것, 나보다 연약한 존재를 돌보며 존재 가치를 확보하는 것 그리고 완벽한 치유를 기다리기보다 상처와 함께 걷는 법을 익히는 것이다. ---「제1장 상처를 자산으로 벼리다-자기존중」중에서 돌봄의 현장에서 마주하는 환자와 보호자들 역시 예상치 못한 불행 앞에서 이와 유사한 심리 기제인 부정과 퇴행을 경험한다. 그러나 진정한 자기 돌봄은 나를 안전한 무풍지대로 피신시키는 것이 아니라, 마주하기 두려운 삶의 책임 앞에 나를 당당히 세우는 일에서 시작된다. 버드의 내면 갈등과 회복을 통해, 타인을 향한 돌봄이 어떻게 궁극적으로 나 자신을 구원하는 숭고한 윤리적 행위가 되는지 집중해 본다. ---「제2장 유혹 앞에 경계를 긋다-자기통제」중에서 돌봄은 타인의 영혼을 나의 감옥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그 영혼이 자유롭게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안전한 대지가 되어주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가면을 쓰고 상대의 숨을 조이고 있지는 않은지, 혹은 돌봄이라는 명목으로 누군가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지는 않은지 끊임없이 성찰해야 한다. 나라는 존재를 온전하게 지키는 것이 모든 건강한 관계의 시작이다. 험버트가 롤리타를 영원히 가둘 수 없었듯, 인간은 결코 인간을 소유할 수 없다. 우리는 오직 서로의 삶이 꽃피울 수 있도록 곁을 지키는 존재여야 한다. ---「제2장 유혹 앞에 경계를 긋다-자기통제」중에서 『책 읽어주는 남자』는 우리에게 자기 돌봄의 진정한 의미를 묻는다. 시민 참여와 윤리적 의식은 근육과 같아서, 단련하지 않으면 무지와 나태라는 이름으로 굳어진다. 한나가 문맹을 탈피하고 나서야 자신의 죄를 마주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세상을 읽는 능력과 역사를 직시하는 용기는 자기 돌봄의 필수적인 요소다. ---「제3장 침묵에서 목소리를 건지다-자기성찰」중에서 간호사 립 라이트가 보여준 다층적인 돌봄-세밀한 관찰에서 시작해, 깊은 경청을 거쳐, 마침내 돌봄자를 위해 세상을 바꾸는 옹호자가 되는 과정-은 모든 돌봄 제공자가 지향해야 할 북극성과 같다. 타인의 숨겨진 상처를 응시하고 그가 다시 숨 쉴 수 있는 새로운 이름을 불러줄 준비가 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돌봄을 행한다고 말할 수 있다. “너의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 한마디가 그 어떤 종교적 기적보다 위대한 이유를 영화는 립의 강인한 두 팔을 통해 증명한다. ---「제4장 취약함 앞에 멈춰서다-타인존중」중에서 타인을 돌본다는 것은 그 사람을 고난에서 단번에 건져 올리는 영웅적 행위가 아니다. 그가 스스로 머리카락을 자를 용기를 낼 때까지 곁에서 묵묵히 거울을 들어주는 일이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신이 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종찬처럼 곁을 지키는 사람은 될 수 있다. 기독교 신학적 관점에서 종찬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종의 도를 실천하는 인물이다. 그는 교리나 신학을 설파하지 않고, 그저 고통받는 이의 곁을 지키는 현존의 은혜를 보여준다. ---「제4장 취약함 앞에 멈춰서다-타인존중」중에서 간호 임상에서도 완벽한 돌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이며, 고통의 양상은 개별적이기 때문이다. 완벽한 매뉴얼을 따르는 로봇 같은 처치보다는, 불완전하더라도 상대와 눈을 맞추고 그 사람의 고유한 리듬에 나의 발걸음을 맞추려는 진심이 더 큰 치유를 일으킨다. 벤은 트레버를 통해 아들을 잃은 상실감을 극복하고 다시 글을 쓸 용기를 얻었으며, 트레버는 벤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배웠다. ---「제5장 말없이 현존을 나누다-공감과 경계」중에서 돌봄의 과정에서 스스로를 소진해 가며 인혜는 하나의 사실을 깨닫는다. 돌봄은 시혜적인 구원이 아니라, 상대방의 고통과 유한함을 함께 짊어지고 견디는 연대라는 사실을. 병실 창밖의 나무들을 보며 자신도 영혜와 다르지 않은 절망 속에 있음을 깨닫는 순간, 인혜의 돌봄은 교정에서 공감으로 나아간다. ---「제6장 상대를 있는 그대로 안다-소통」중에서 사랑하기 때문에 곁을 지키지만, 그 사랑이 도리어 서로를 할퀴는 칼날이 되어버리는 것. 이것이 돌봄의 역설이다. 조르주에게는 휴식 지원과 심리적 지지가 절실히 필요했지만, 그는 아내와의 약속이라는 도덕적 굴레 때문에 그 모든 통로를 스스로 차단해 버렸다. 조르주는 아내를 돌보며 동시에 아내와 함께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제6장 상대를 있는 그대로 안다-소통」중에서 진정한 돌봄은 타인의 불행을 나의 불편함으로 받아들이는 정서적 연대에서 출발한다. 펄롱이 결국 소녀의 손을 잡고 수녀원 정문을 나서는 행위는, 전문적인 상담이나 경제적 지원 이전에 인간 대 인간으로서 건네는 가장 근원적인 돌봄의 몸짓이다. ---「제7장 침묵의 카르텔에 균열을 내다-온정」중에서 현대사회의 돌봄 위기는 자원의 부족이 아니라 환대의 실종에서 기인한다. 우리는 기술적으로 고도화된 복지 시스템을 가졌지만, 정작 장발장이나 마지막 장에서 다룰 다니엘 블레이크처럼 시스템에서 소외된 이들의 영혼을 돌보는 데는 인색하다. 『레 미제라블』이 제시하는 대안은 명확하다. ---「제7장 침묵의 카르텔에 균열을 내다-온정」중에서 우리는 모두 잠재적 돌봄 대상자다. 질병과 노화는 평등하게 찾아오며, 우리가 믿었던 울타리는 생각보다 쉽게 허물어진다. 작가는 엄마의 목소리를 빌려 “누구에게나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은 최소한의 자리가 있다”라고 말한다. 돌봄은 이제 집안일이나 시혜적인 복지의 차원을 넘어, 인간 존엄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사회적 연대가 되어야 한다. ---「제8장 혈연 너머로 손을 내밀다-상호부조」중에서 시어머니 살해 기도 장면은 우리 사회에 뼈아픈 질문을 던진다. “나 죽으면 저 불쌍한 노인네를 누가 거두나”라는 인희의 절규는 국가와 사회적 돌봄 시스템이 미흡할 때 개인이 마주하는 막다른 골목을 보여준다. 이 장면은 돌봄이 한 개인의 도덕적 헌신에만 의존할 때 발생하는 동반 자살이나 간병 살인의 사회적 전조 증상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제8장 혈연 너머로 손을 내밀다-상호부조」중에서 돌봄은 거창한 의료적 처치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대상자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 정서적 안녕을 도모하는 포괄적 행위다. 영화는 돌봄의 본질을 좁은 방에 둘러앉아 고로케를 나눠 먹고 옥수수를 삶아 먹는 식탁의 풍경을 통해 묘사한다. ---「제9장 시스템의 틈에서 온기를 지피다-연대」중에서 다니엘의 사례는 사회적 처방이 부재한 의료 시스템의 파산을 의미한다. 영화 속 질병 급여 심사 과정은 인간의 신체 기능을 분절화하여 점수로 매긴다. 다니엘의 심장은 노동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망가졌지만, 시스템은 그가 팔을 들어 올릴 수 있는지, 버튼을 누를 수 있는지와 같은 지엽적인 기능만을 묻는다. 삶의 맥락은 심사표 어디에도 들어갈 자리가 없다. ---「제9장 시스템의 틈에서 온기를 지피다-연대」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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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돌봄감수성은
돌봄. 관심을 가지고 보살핀다는 뜻의 이 말은 어느덧 우리에게 보살펴 부양하거나 수발하다는 뜻으로 인식된다. 그래서일까. 어느새 초고령사회에 들어선 한국에서는 돌봄을 비생산적 노동으로, 의존은 결핍의 징표로 간주한다. 그 결과 돌봄 제공자는 자신을 소진하면서도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돌봄 대상자는 자율적 주체의 범주에서 밀려난다. 이렇게 우리 사회에서는 돌봄 피로와 돌봄 혐오가 반복된다. 그러나 돌봄은 당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따뜻한 단어이고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말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돌봐야 하고(자기 돌봄), 갓 태어난 아기에서부터 배우자와 부모, 주변 사람을 돌봐야 하며(타인 돌봄), 나와 전혀 무관해 보이는 어떤 사람에서부터 우리가 속해 있는 사회에까지 손을 내밀고 온기를 지펴야 한다(공동체 돌봄). 그렇게 우리가 길러낸 돌봄감수성이 끝내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마지막 원동력이 될 것이다. 문학이라는 은유를 통해 우리의 돌봄감수성을 새롭게 한다 『문학으로 읽는 나의 돌봄감수성』은 뒤라스의 『연인』(1장)으로 문을 연다. 『연인』에서 시작한 소설은 한강의 『채식주의자』(6장)에 이르며, 영화로는 하네케의 〈아무르〉(6장)에서부터 켄 로치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9장), 여기에 더하여 수많은 드라마 시리즈물까지 돌봄이라는 주제로 관찰하고 사유한다. 특히 돌봄을 한시적이고 방법적인 행위가 아니라, 인간 실존을 떠받치는 근원적인 조건으로 바라본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 책에서는 우리에게 돌봄의 중요성을 강조하거나, 돌봄을 설명하지 않는다. 책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서사에 드러난 돌봄의 구조를 보여주고 그 의미를 은유적으로 설명할 뿐이다. 지은이는 돌봄감수성은 완성되는 목적지가 아니라, 일상 속에서 단련해 가는 과정이라고 언급한다. 그래서 이 책에서 언급하는 수많은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다정하면서도 은밀한 길잡이가 되어 준다. 우리의 돌봄감수성이 조금씩 단련되어 갈 수 있도록.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마지막 징표, 돌봄감수성 시나브로 AI 시대다. 이 책에서도 8장에 사람을 돌보는 로봇 이야기, 〈로봇 앤 프랭크〉가 인용된다. 그런데 로봇은 사람 사이의 서사를 읽어낼 수 있을까. 물리적인 체온을 나눌 수 있나. 효율적인 돌봄과 인문적인 돌봄이 꼭 같은 방향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돌봄감수성이 더 소중하다. 기계가, 시스템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낼 수 없다면, 마침내 곁에 남는 것은 사람일 것이기에. 책장을 덮으며 끝내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마지막 징표는 돌봄감수성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 책은 어떠한 강요나 주장도 없이, 은유만으로 당신이 돌봄감수성을 키울 수 있도록 해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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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 나타난 인물, 배경, 서사를 탐색하면서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간호 관련 사유를 진행한 저자가, 이번에는 문학과 영화로 장르적 지평을 넓혀 ‘돌봄감수성’이라는 개념을 구축하여 세련화하고 거기에 미학적 역사성을 부여하였다. 우리가 느끼고 있는 것처럼, ‘돌봄’이란 인간의 질병이나 실제적 고통에 동참하는 것뿐만 아니라 궁극적 존엄에 바탕을 둔 인권을 옹호하는 행위다. 인간 고통은 문학과 영화의 오랜 대상이 되어왔고, 이 모두는 근원적 치유를 요청한다. 결국 문학과 영화는 인간을 향한 예술이며, 고통에서 출발하여 치유를 지향한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조금 낯설게 느껴질 문학과 영화를 따라감으로써 돌봄감수성이 적용되는 과정과 그 필연적 이유 그리고 시야의 확장성을 함께 경험할 수 있다. - 유성호 (문학평론가,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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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읽는 나의 돌봄감수성》은 문학과 영화를 하나의 자리에서 읽어 나간다. 우리는 자신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타인의 삶을 어떤 마음으로 마주할 것인가. 저자는 작품 속 인물의 선택과 관계를 따라가며 그 질문에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돌봄은 특별한 덕목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는 방식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책을 읽다 보면 익숙한 작품이 새롭게 다가오고, 낯설었던 작품도 자신의 경험과 이어진다. 작품을 사랑하는 독자에게도, 사람을 이해하는 인문학을 만나고 싶은 독자에게도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 양진호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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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문학과 영화 속 인물들의 삶을 따라가며, 돌봄의 본질을 따뜻하면서도 깊이 있게 성찰한다. 저자는 자기 돌봄에서 타인 돌봄, 공동체 돌봄에 이르는 여정을 통해 돌봄이 단순한 헌신이나 기술이 아니라, 타인의 삶에 민감하게 응답하는 인간적 역량임을 일깨운다. 돌봄의 현장에서 소진과 책임 사이를 오가는 이들에게 자신의 삶과 실천을 성찰하게 하고 용기를 건넨다. - 김숙영 (서울여자간호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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