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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로 인한 배송의 건
추석연휴로 인하여 10/2부터 10/12일의 주문건은 10/13일에 발송됨을 알려드립니다.
택배사의 휴무이므로 양해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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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 사이의 시간, 이어지는 대화
1부. 묻다: 불편함에서 시작하는 질문들 박용우|언제든 유연하게 바꿀 수 있다면 경지은|자원을 모으고 선택지를 늘려 가는 일 신윤지|주장하지 않아도 이해받을 때까지 한윤미|누가, 언제, 어디서 이반지하|왜냐하면 우리는 결국 ‘나’이니까 2부. 흔들다: 균열을 일으키는 감각 김홍남|절대로 잊어버리면 안 되는 것 라소영|비록 잘 모르더라도 이지민|이야기를 결말짓는다는 것 김국희|더 자연스럽고 더 건강하게 날씨|의미 있는 행위가 적어도 한 번은 3부. 살피다: 무대 너머를 함께 살아가는 법 손상규|이 일은 재미없을 가능성이 없는 일이니까 배서현|연극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다 연극인이 되어버리면 권은혜|갑작스럽게 변하는 일은 드물겠지만, 조금씩 조금씩 박진아|과하게 챙긴다고 해서 문제가 되는 일은 아니라고 이래은|타인의 시간을 기꺼이 기다리는 일이 4부. 잇다: 끝이 아니라 계속되는 창작 유은숙|내가 잘 모르는 것까지 말하게 될까 봐 김재훈|반주하는 태도로 양대은|어디로 갈지 모르는 대화 강수연|마르기 전에 반짝반짝거리는 순간 우미화&이청|오늘은 어제의 미래였으니까 주 색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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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우_연기를 처음 시작했을 땐 악역을 정말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거의 안 해 봤죠. 주로 굉장히 평범한 인물을 연기했는데, 그게 콤플렉스일 때도 있었어요. 배우로서 너무 모범생, 바른 청년 이미지인 것 같기도 하고, 어릴 땐 평범한 것은 매력이 없다고도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평범함도 매력일 수 있고, 그런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다행히 이후에는 여러 유형의 인물들을 해 보게 됐고, 악역도 해 봤어요. 그러다 이번에 〈엔젤스 인 아메리카〉를 하며, 악역 혹은 자기 욕망에 충실한 인간들의 매력과 존재감만이 관객을 사로잡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아주 선한 인물의 선함 또 한 엄청난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요. 이전엔 어떤 개성이나 강렬함이 있어야 관객들의 시선을 받는다고 생각했는데, 관객들은 사실 다 알아본다는 것을 느꼈어요.
--- p.34, 「박용우|언제든 유연하게 바꿀 수 있다면」 중에서 성수연_이 만남을 어떻게 소개할지 고민했습니다. 그냥 ‘이반지하와의 대화 기록’으로 할지, 현대미술가, 작가, 음악가, 다매체 예술가 같은 역할들을 다 나열할지. 이반지하_그렇게 나열하면 오히려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이더라고요(웃음). 시대별로 혹은 정권별로 예술계에서 많이 쓰는 용어가 있는데, 박근혜 정부 땐 ‘융복합’이었어요. 그때 모든 지원 사업에서 융복합 이야기를 하는데, ‘진짜 다 하는 융복합 예술가’는 좋아하지도 않고, 믿지도 않더라고요. 요즘은 보통 현대미술가, 작가 정도로 말해요. 아주 정직하게는, 저는 제가 장르라고 생각해요. (중략) 여러 매체에서 활동하는 방식은 자본주의적 속도로 보면 어리석고 오래 걸리는 방식이지만, 저는 일부러 계속 그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예를 들어 퀴어에 대해서도 많은 사람이 제가 한마디로 정리해서 설명해 주길 원하거든요. 그런데 저는 계속 복잡하게, 천천히 습자지에 물들이듯 얘기해요. 사실 얼마나 어려운 길인가요. 사람들은 정답을 원하는데. “트랜스가 뭐야? 남자에서 여자가 되는 거야?” 이럴 때, “응. 그런 거야.” 하면 쉽겠죠. 성별에 대한 기존 관념이 어쩌고저쩌고하면 듣는 사람이 너무 피곤하잖아요. 그러니 유통이 더딜 수밖에 없죠. --- p.138~139, 「이반지하|왜냐하면 우리는 결국 ‘나’이니까」 중에서 성수연_너는 어떤 결정을 할 때, 그 결정이 바뀔 여지를 많이 열어 두는 편이야? 날씨_어떤 소리가 있다고 할 때, 그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은 누구일까? 너일까? 소리일까? 성수연_어떤 배역을 연기할 때, 내가 그 배역을 연기하는 것일까, 그 배역이 나를 연기하는 것일까? 날씨_아직 이해하지 못했지만, 언젠가 꼭 이해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니? --- p.305, 「날씨|의미 있는 행위가 적어도 한 번은」 중에서 배서현_요즘 돌이켜 보면, 관객으로서 살아온 시간을 인정받고 싶었던 일종의 투쟁이었던 것 같아요. (중략) 저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관객’이라는 정체성이 가장 큰데, 제가 어디 가서 “안녕하세요. 관객 배서현입니다.”라고 하면 “뭔 소리야?” 하겠죠(웃음). 그게 약간 서운한 마음이 있었어요. 또 흔히 하는 “오늘 공연의 주인공은 관객 여러분입니다.” 같은 말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한 번도 객석에서 나를 주인공이라고 느껴 본 적 없거든요. 그렇다면 ‘관객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며 무대에서 발화하는 게 가능할까?’ 또 ‘배우는 연기로 말하고, 디자이너는 디자인으로 말하는 부분이 있겠지, 그러면 관객은 무엇으로 말할 수 있지?’ 이런 질문이 떠올랐어요. 저는 사실 후기를 잘 쓰는 관객도 아니거든요. 물론 연극의 영향을 받아 일상이나 생각의 변화가 일어났을 수도 있겠지만, 그땐 유치하게도 그냥 무대에 직접 올라야만 관객으로서의 말을 하는 기분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공연이 끝나고 나니 제가 연극이랑 결혼식 한 것 같다는 생각이…. (중략) 저는 이제 풀타임 5년 차 관객인데, 연극이 너무 좋을 때도 있었고, 사명감으로 봤던 때도 있었고, 뭘 봐도 감흥이 없을 때도 있었어요. 일종의 권태기가 왔다 가기도 했죠. 어떤 공연 놓치면 큰일 날 것 같을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집착도 줄었어요. 그렇게 놓친 공연을 재공연하는 경우가 많아지기도 했고요. 연극이 동반자 같다는 생각을 요즘 들어 해요. --- p.350~351, 「배서현|연극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다 연극인이 되어버리면」 중에서 이래은_저는 청소년들이 극장에 가서 움직이는 배우들의 몸, 시간을 많이 들여서 벼린 순간들을 많이 만났으면 좋겠거든요. 그게 제가 연극으로 해야 할 일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고요. 많은 청소년이 학교에서 가만히 앉아 있는 상황에 내몰리잖아요. 요즘은 일상에서도 몸이 멈춰 있고요. 자신의 감각으로 세상을 만나는 경험을 통해 고유한 세계를 만드는 일은, 결국 다 같이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만들어 가는 일이기도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자원이 필요한데, 청소년들이 접할 수 있는 자원이 대부분 화면 안에만 있잖아요. 타인의 시간을 손가락으로 스킵하는 것이 손쉬운 곳이요. 그런데 그 시간을 기꺼이 기다리는 일이 만들어 주는 근육이 있잖아요. (중략) 극장에서 연극을 보면서는 스킵을 할 수 없으니까, 그 자체가 타인에 대한 감각이라고 생각해요. --- p.444~445, 「이래은|타인의 시간을 기꺼이 기다리는 일이」 중에서 성수연_작가님은 요즘 먹으로 레이어를 쌓아 올린다고 하셨죠. 물론 그런 그림을 그려 달라고 하면 AI도 잘 그리겠죠. 하지만 작가님 그림엔 도화지 한 장에 먹이 말라 가고 다시 덧입혀지는 과정과 시간이 담겨 있잖아요. 그게 정말 아름다웠거든요. 그렇다면 그 시간성을 더 드러낼 수 있는 새로운 형식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이런 다른 생각의 길이 계속 열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중략) 저는 아직 일상에서는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고, 작업에 기술을 적용할 때 그 기술이 작업 안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예를 들어 AR(증강현실)로 어떤 작업을 할 때, ‘실제 공간엔 없지만 화면 속 공간에는 있는 뭔가가 왜 드러나야 하지? 그 맥락을 어떻게 만들어 낼 수 있지?’를 계속 묻게 돼요. 아직까지는 새로운 기술들을 반기는 편인 것 같고요. GPT-3이 쓴 희곡을 연기한 적이 있었는데 재미있었어요. 생각해 보면 제가 좋아하는 작가나 배우에게는 뭔가가 있어요. 적어도 저에게는요. 모든 존재에겐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고유성이 있는 것 같고, 어쩌면 AI의 작업물도 인간의 작업물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것 중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인간과 AI를 굳이 구분해서 생각하기보다요. --- p.566~569, 「강수연|마르기 전에 반짝반짝거리는 순간」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