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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계思想界
2026 9·10월호 | 통권 214호, 재창간 9호 목차 흑표지(날개 안상수의 《사상계》 한글 타이포그라피) 권두언: 수화樹話야 용서하렴_조성환 사상계 옛글 갈무리_Y라는 부호_이정하 특집: 비인간과 인간의 평화 - 부암동 은행나무 사건을 중심으로 - 부암동 은행나무 독살시도 사건_김보미, 전범선, 최재천, 현경 대담 숲을 감각하기, 나를 희망하기_유기쁨, 후지몽 대담 방학동 은행나무에게_한윤정 나무가 죽으면 그늘도 죽는다_최진우 삶의 선이 끊어진 땅, 생명 매듭 다시 잇기_오은정 팽나무와 나의 이야기_허태임 사물에서 관계의 주체로_박태현 한살림 40주년: 살림의 말들_이승준, 조미성, 조성환 대담 생명살림선언_부암동 은행나무 살리미 일동 시사時思 [인터뷰] 허승규의 승리가 의미하는 것_허승규, 이소연, 장윤석 지워진 문장 앞에서, 참교육을 묻다_장승진 투표용지 부족 사태 이후 3개월_고은강 자유를 위해 스스로 불사른 목숨_동칭굴와겔로 중국 IPO 러시가 한국 경제에 던지는 질문_임선영 숨비소리 백표지(이철수 화백의 〈무문관無門關〉 판화) 특별기고 ACC, DDP, 그리고 한국건축의 기오스모시스적 지평_홍가이 분단시대의 통일철학 구성을 위해_이종철 영원한 아이: 그림자와 아니무스 그리고 행함에서 있음으로(2)_유영아 연재: 사상을 잇다 이 아무개의 예수선생전(4)_방아깨비에게 이빨이 있나?_이현주 무문관無門關(5) 무문관_이철수 다시 경계에서 말한다(4) - 제도를 떠받치는 것은 결국 사람입니다_우에노 지즈코 - 돌봄은 사회를 조직하는 최초의 정치였습니다_조한혜정 세대 간 마니또(4) - ‘이웃집 극우’의 세계에서 정의를 상상하기_장혜영 - ‘이웃의 얼굴‘에서 인간다움을 잃지 않기_박은정 S.O.S.(5)_‘수화樹話’, 그는 우리에게 와서 나무가 되었다_현경 문예: 자연을 짓다 [산문] 월세로 사는 삶_정호영 [단편소설] 에코와 에고 사이_박사랑 김혜나의 도시(4): 마니차가 있는 길_김혜나 [서평] 천성산에서 통합생태학을 사유하다_심규한 [서평] 내가 본 김철_이재봉 [책소개] ‘생태·기후·나무’ 도서 큐레이션 환경/생태 News&Olds 장미와 햄버거_마마두 마흐푸즈 디알로 숨비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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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두언
수화樹話야 용서하렴 조성환(본지 편집주간) 자연을 크게 쓰는 법 혜자가 장자에게 말했다: “내게 거대한 나무가 있는데, 몸통은 울퉁불퉁하여 먹줄로 쓸 수 없고, 가지는 구불구불하여 곱자로 쓸 수 없소. 그래서 목수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오. 선생의 말도 너무 거대해서 쓸모가 없구려[大而無用].” 장자가 답했다: “어째서 그것을 광활한 들판에 심어놓고 한가로이 주위를 거닐거나 그늘에 누워서 소요하지 않는 거요? 그러면 도끼에 찍혀 요절하거나 누구에게 해를 입을 일도 없을 거요.” - 「소요유」『장자』 내가 처음 ‘부암동 은행나무 사건’ 소식을 들었을 때 떠올랐던 대화이다. 혜자는 장자의 논객이었다. 논리적이고 현실적인 혜자는 장자의 언설이 허황되고 비현실적이라고 항상 놀려댔다. “선생의 말은 저 거목처럼 크기만 할 뿐 무용하구려[大而無用]”라는 말은 이를 두고 한 것이다. 이에 대해 장자는 ‘무용지대용無用之大用’이라는 말로 되받아친다. 인간의 차원에서 보면 쓸모없어無用 보일지 모르지만,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생각하면 인간에게도 커다란 이로움大用을 준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나무도 무용하다는 이유로 잘려 나가지 않고 장수할 수 있다. 이처럼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인간과 자연의 공생을 도모할 수 있다. 이것이 장자가 생각한 ‘자연을 크게 쓰는 법[大用萬物]’이다. 만약에 장자의 조언대로 부암동 은행나무를 인적이 드문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으로 옮겨 심을 생각만 했더라도 상황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약물 주입’이나 ‘제초제 테러’라는 슬픈 기사 대신에, 〈나무와의 공생을 추구한 환기미술관〉이라는 미담 기사가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 왜 가해자들은 이러한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자신에게 거추장스럽다고 생각하면 버리고 제거하는 데 익숙해져버렸다. 그것과 공생하는 방법을 찾으려 하기보다는 존재 자체를 없애는 것이 편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근시안적 생각이라는 사실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지구온난화가 말해주고 있다. 나무를 인간의 차원에서만 생각하면 ‘무용無用’할지 모르지만, 지구와의 관계에서 생각하면 ‘대용大用’하다는 생각을 상실한 대가이다. 1986년에 시작된 한살림운동은 이러한 근대적 사유를 넘어서고자 하는 공생운동이었다. 그리고 올해로 40주년을 맞이하였다. “모든 것을 살리자”는 취지로 시작된 한살림 40주년에 일어난 ‘은행나무 독살시도’ 사건은 아직 우리가 갈 길이 멀었음을 말해준다. 그래서 이번 특집은 ‘은행나무와 한살림’으로 꾸몄다. 특집 제안과 기획은 본지 편집부주간인 장윤석님이 맡아주었다. 지구법과 지구민주주의 이번 사건은 ‘지구학’을 제창한 토마스 베리Thomas Berry 신부의 ‘지구공동체’ 의미를 환기시켰다. 토마스 베리는 오늘날의 생태위기는 만물을 대상으로 간주하는 근대적 사유에서 비롯되었다고 진단하면서, 인간 이외의 존재도 주체로 대하는 ‘지구공동체’의 비전을 제시하였다(『지구의 꿈』, 1988). 그리고 이러한 ‘지구공동체의 꿈’을 법적 차원에서 실현하는 방법으로 ‘지구법’을 제안하였고(2001), 지구법이 구현된 정치체제를 민주주의를 넘어서 ‘생명주의biocracy’라고 표현하였다. 베리의 생명주의는 정치인 김대중의 개념으로 표현하면 ‘지구민주주의global democracy’로 바꿀 수 있다. 김대중은 1982년에 감옥에서 쓴 편지에서 “민족·국가는 물론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서 모든 존재들의 생존과 번영을 보장하는 새로운 민주주의” 김이경, 〈정치 혐오의 시대, 김대중을 기억하다〉, 《시사IN》, 2024.03.02. 구상을 밝혔고, 1994년에는 그것을 ‘지구민주주의’로 개념화하였다(「Is Culture Destiny?」). 지구법과 생명주의, 그리고 지구민주주의는 인간이 인간 이외의 존재를 대하는 방식과 관계 맺는 방식이 근대와는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일치하고 있다. 이번 특집 대담과 글도 이 문제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첫 번째 대담 〈부암동 은행나무 독살시도 사건〉에서 생태학자 최재천은 “나무를 쉽게 베어 버려도 아무렇지 않은 것은 그 나무와 관계 맺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리라는 생각을 아예 안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변호사 김보미도 안도현시인의 “인간의 영혼과 관계를 맺은 나무는 죽지 않아”(관계)라는 말을 떠올리면서, 인도의 ‘나무와 의형제 맺기 법’을 소개하였다. 나아가서 이러한 법을 제정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상상력’이 요청된다고 하였다. ‘인간’이라는 세계에 갇힌 근대인들이 인간을 넘어서는 상상력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물해방물결의 전범선이사장은 “해방의 범위를 동물에서 ‘식물’로 확장해야 한다”(현경)는 말에 공감하면서, 장차 만물해방으로 나아가야겠다는 고민을 털어 놓았다. 마지막으로 살림이스트 현경교수는 “이 사건이 우리 모두가 나무와의 대화를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제안하였다. 토마스 베리 신부의 개념을 빌리면, 나무와도 친교communion를 맺는 세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경교수의 제안에 화답한 것이 녹색연합 한윤정공동대표의 〈방학동 은행나무에게〉이다. 서울시 도봉구 방학동에는 육백 살 된 은행나무가 살고 있다. 한윤정대표는 이 나무의 웅장한 역사와 그를 지키려고 평생을 바친 차준엽(1949~2017)의 인생을, 마치 은행나무에 편지를 보내는 형식으로 우리에게 전해준다. 역사학자 디페시 차크라바르티Dipesh Chakrabarty의 표현을 빌리면, “인간의 역사와 자연의 역사가 하나로 수렴되는” 인류세 이야기이다. 특히 1991년에 도시개발로 은행나무가 고사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들은 차준엽이 “은행나무야 용서하렴”이라는 현수막을 붙이고 무기한 단식농성을 벌였다는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환경법 연구자 박태현교수는 이러한 세계관을 신애니미즘new animism의 관점에서 소개한다. 인간과 관계 맺는 모든 존재들, 가령 동물 식물 바위 산 강 등을 사물이 아닌 ‘인격체person’로 간주하는 신애니미즘의 세계관을 소개하고, 이러한 비非이원론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강과 산에 법인격을 부여한 뉴질랜드 등의 사례를 들면서, “자연을 사물로만 취급하는 법질서가 과연 기후위기와 생태위기 시대에도 유의미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던진다. 한살림과 숲본주의 두 번째 대담의 주인공인 한국의 생태학자 유기쁨과 일본의 전 시의원 후지이 요시히로도 ‘인간과 세계의 관계 회복’을 오랫동안 고민한 실천가들이다. 자본주의가 아닌 ‘숲본주의’를 지향하는 후지이 요시히로藤井芳廣에게 유기쁨이 물었다: “일본에서는 나무를 어떻게 대하는가?” 이에 대해 후지이는 “나무를 베기 전에 ‘기도’를 드린다. 여기에는 일본의 애니미즘적 세계관이 깔려 있다”고 답하였다(대담 〈숲을 감각하기, 나를 희망하기〉). 이러한 세계관을 하나의 ‘학學’으로 체계화한 것이 19세기 말의 ‘동학’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문명전환의 사상자원으로 부활시킨 것이 20세기 말의 ‘한살림’이었다. 한살림의 창시자인 장일순과 김지하 등은 해월 최시형(1827~1898)의 밥[食] 사상을 ‘생태철학’으로 재해석하고, 자신들의 세계관을 〈한살림선언〉(1989)에 담았다. 세 번째 대담에서는 한 살림의 ‘모심과살림연구소’ 조미성소장과 ‘생태적지혜연구소’ 이승준이사장, 그리고 내가 한살림 40주년을 맞아서 〈한살림선언〉의 의미와 과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먼저 이승준이사장은 “양자택일이 강요되는 냉전시대에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성장주의’의 다른 표현으로 보고, 그것과는 다른 목소리를 내려고 했다”고 평가하면서, “전국 각지 한살림 조합원들의 다양한 생각을 담아내는 확장된 선언”을 제안하였다. 이어서 나는 “〈한살림선언〉은 지금으로 말하면 ‘K-철학’의 선구”라고 평가하면서, “최시형의 동학과 최한기의 기학氣學을 합친 〈인류세의 한살림선언〉을 대망한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조미성소장은 “무위당 장일순이 실천으로 보여주었듯이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게, ‘선언’이 아닌 형식으로 다시 쓰자”고 제안하였다. ◇ 편집후기 장윤석(본지 편집부주간) 이사 온 오대산의 추위를 견디지 못했는지 애지중지 길러 온 머루나무가 죽었습니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 왔는데도 새잎이 돋아나지 않더군요. 겨우내 따뜻한 실내에만 두면 약해진다는 말을 듣고 베란다에 내놓으면서도 노파심에 흘깃흘깃 쳐다보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무와 대화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습니다. 수화 김환기화백께서도 그런 간절함을 담아 호를 지으셨겠지요. 그러던 참에 환기미술관의 부암동 은행나무 독살시도 사건이 났습니다. 어느 늦은 밤 “이게 생태학살이 아니면 뭐가 생태학살이겠냐”는 다급한 전화 한 통을 받았고요. 다음날, 오랜만에 찾아간 부암동에서 죽어가는 은행나무, 수화님을 뵈었습니다. 미처 알지 못했는데, 이전에 사직동에 살던 시절 안면이 있었던 그 나무님이었습니다. 그날의 굿판, 이 비극에 슬퍼하는 이들이 모여 수화님을 살리고자 열린 그 시공간에서 시루떡을 입에 물고 나무를 안다가 묘한 대화의 느낌에 휩싸였습니다. 수많은 생명의 죽임에 발 딛고 서 있는 근대문명에서 태어나 자란 우리에게 나무와 대화할 수 있는 소통기관은 이미 퇴화했겠지만, 무언가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태어나기 전에도, 환기미술관이 지어지기 전에도, 심지어 《사상계》가 창간하기 전에도 수화님은 그 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합니다. 수화님의 멀고 먼 친척 중에는 히로시마의 폭심지 옆에서 살아남은 분도 있고, 베트남전쟁에서 고엽제를 맞으며 학살의 터에 자리한 분도, 그해의 오월 옛 전남도청 상무관 앞에서 모든 걸 지켜본 분도 있다 합니다. 그 모든 시간을 통과해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 모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사상계》 이번 호 특집 주제는 원래 모색하던 기후‧생태를 이어 은행나무가 되었습니다. 편집부에서는 수화님이 일러준 이야기들을 헤아리고 헤아려 독자님들께 들릴 수 있게 매만져 보았습니다. 모셔 온 글들을 편집하다 사람과 나무가 서로의 생명을 살리는 이야기가 퍼져 나가면 그것이 문명전환의 이야기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누군가 누구를 죽였다는 이야기보다 누군가 누구를 살려냈다는 미담이 더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이번 호가 두엄이 되어 수화님을 푸르고 노랗게 살리는 데 보탬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