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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속에 묻힌 여수·순천의 비극
‘손가락 괴물’로 깨어나다 1948년 10월 19일에 일어난 ‘여순사건’은 이념 갈등과 부당한 국가 권력 속에서 무고한 민간인들이 대규모로 희생당한 한국 현대사의 깊은 상처입니다. 부당한 명령에 맞선 군인들의 저항에서 시작된 이 비극은, 계엄령 선포와 대대적인 진압 과정 속에서 밀고와 무차별적 색출로 이어졌고, 수많은 평범한 시민과 어린아이들이 적법한 절차 없이 희생되었습니다. 홍미령 작가의 그림책 『손가락 괴물』은 이 참혹한 잔혹사를 ‘손가락 괴물’이라는 상징적인 존재로 형상화한 작품입니다. 손가락 하나로 누군가의 생사를 가르고, 진실을 불태우며, 살아남은 이들에게 수십 년간 연좌제와 차별이라는 침묵의 형벌을 강요했던 공포의 실체를 담담하게 그려 내고 있습니다. 역사의 어두운 그늘을 직면하게 만드는 이 책은, 억울하게 지워진 이름들과 땅속 깊은 곳에 묻혀 있던 아픔을 다시 불러냅니다. 빛과 어둠, 진실과 은폐 사이 사람들의 모습을 강렬한 색채 대비와 상징으로 구현하다 홍미령 작가는 비극적인 사건을 직접 노출하는 대신, 색채의 선명한 대비와 은유로 서사의 깊이를 완성합니다. 부드러운 은빛 바다, 온화한 달빛으로 묘사된 나비섬은 한없이 평화롭습니다. 그러나 붉은 눈을 번뜩이는 손가락 괴물이 등장하는 순간, 분위기는 오싹할 만큼 차갑게 반전됩니다. 모든 것을 삼켜 버린 검은 구덩이와 진실을 불태우는 붉은 불꽃은 당시의 참혹한 공포를 고스란히 전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수십 년의 침묵을 깨고 바위를 밀 때 점차 스며드는 미세한 빛, 나비섬 전체를 붉게 물들인 동백꽃은 끈질긴 희망, 그 자체입니다. 이처럼 작가는 무게감 있는 색채 대비와 시각적 연출을 통해 비극의 시작으로부터 희망의 회복까지 깔끔하고 힘 있게 구현해 냈습니다. 어둠을 찢고 나아가는 용기 어른과 아이가 함께 읽는 평화의 그림책 『손가락 괴물』은 단순히 과거의 비극과 슬픔을 되새기는 데 그치지 않고, 어둠을 밀어내고 빛을 향해 나아가는 공동체의 연대와 희망을 강하게 전달합니다. 여럿이 힘을 모아 거대한 바위를 밀며 빛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왜곡된 기억에 맞서 진실을 찾으려 투쟁한 과정을 상징합니다. 감수자이자 역사 연구자 주철희 박사가 ‘기억의 골짜기에 사라진 이들이 우리에게 돌아온 기억 투쟁의 유산’이라고 평가했듯, 이 책은 국가 권력의 존재 이유와 인권의 존엄성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손가락 괴물』은 어린이 독자에게는 평화와 인권, 그리고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역사적 감수성을 키워 주는 기회가 될 것이며, 어른 독자에게는 과거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 자체가 반인권적 폭력에 맞서는 가장 강력한 무기임을 일깨워 줄 것입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던지는 약속 책의 마지막 장면에서 작가는, 고요한 바다 밑에 여전히 잠들어 있는 ‘손가락 괴물의 그림자’를 살짝 노출하며 서늘한 경고를 남깁니다. 우리가 역사의 아픔을 잊고 진실을 외면하는 순간, 괴물은 언제든 다시 깨어날 수 있다는 메시지입니다. 그렇기에 『손가락 괴물』은 지워진 이야기를 끊임없이 전하고, 사라진 이름들을 불러 주겠다는 소중한 약속을 건넵니다. 2021년 특별법 제정 이후 여순사건의 진상규명과 명예 회복이 이어지고 있는 지금, 이 책은 왜곡된 과거를 바르게 세우고, 이념의 대립을 넘어 화합과 평화로 나아가기 위한 소중한 길잡이가 되어 줄 것입니다. 진실 앞에 선 사람들의 목소리가 모일 때 괴물이 비로소 힘을 잃는다는 이 명확한 진리는, 시대를 관통하는 거대한 울림으로 독자들의 마음에 깊은 여운을 남길 것입니다. 작가의 말 이 책은 단순히 과거의 아픔을 되새기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다시는 같은 상처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평화의 약속입니다. 여수의 바람이 이제는 총성이 아닌 노랫소리를 전하고, 운동장이 두려움이 아닌 웃음으로 가득 차길 바랍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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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령 작가의 《손가락 괴물》은 부당한 명령에 대한 저항의 대가로 치러야 했던 수많은 사람의 학살, 그리고 ‘반란의 땅’으로 낙인되어 침묵해야만 했던 질곡의 역사, 그렇지만 서로의 손을 잡고 기억하고 기록하며 다시금 빛을 찾는 나비 반도 사람의 용기와 희망을 담담하게 그렸습니다.
《손가락 괴물》은 1948년 무자년 이후 기억의 골짜기에 사라진 이들이 우리에게 돌아온 기억 투쟁의 유산입니다. - 주철희 (역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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