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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은 왜 샛별인가
좀비 손금 젖은 눈과 무적의 배꼽 드그다 읏따읏따 아무래짜 물먹은 편지 메께라 께라 해설 | 변신하는 마음 · 이소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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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그랬지? 좋은 연기는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표현하는 거라고. 세수하는 장면에선 얼굴이랑 목을 닦고 코까지 팽 푸는 거라고. [……] 우리 여기 남아서 좋은 연기를 하자. 너랑 나랑, 야옴-이랑.”
“이건 영화가 아냐. 우린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고.” “그럼 더 좋아. 결말이 정해져 있지 않은 거잖아.” ---「지하철은 왜 샛별인가」중에서 나는 엄마가 되어 엄마의 환희를 체험했다. 나오기만 하면 혼꾸멍을 내주겠다던 의사의 심정도 느꼈다. ‘고얀 녀석, 잘했다, 애썼어.’ 의사는 피에 젖은 손으로 내 몸을 만졌다. 아마도 갓 태어난 나는 내 마음에 머물지 못하고 이리저리 다른 이의 마음으로 옮겨 다녔던 것 같다. 태어난다는 것은 한 사람의 마음에 갇히는 일이니까, 죽을 고비에 처하면 잠시 그 마음에서 풀려나기도 한다. ---「좀비 손금」중에서 실제로 배꼽을 씻지 않아 빛이 더러워지는 건 아닌 듯했다. 배꼽빛은 몸 깊숙한 곳의 에너지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물질이랄까. 마음도 빛처럼 어딘가로 늘 향해 갔다. 음악이나 바람처럼 도통 멈출 줄 모르고 언제나 흐르고 있었다. 빛이 뻗어가듯 마음도 누군가에게 뻗어가며 때론 굴절되고 때론 반사되었다. ---「젖은 눈과 무적의 배꼽」중에서 살면서 자신이 토하고 배설한 악절들이 지옥의 폐수처럼 범람해 가담자이자 방관자인 양홍을 징벌했다. 별자리, 음자리, 우리가 노래 부르던 그 자리. 무대에 설 때면 찬나는 문득 양홍을 돌아보았다. 관객을 등진 채 뒤에 선 친구와 시선을 마주쳤다. ‘알지? 지금 너도 느끼지?’ 음악이 그들을 드높이 발사해주던 찰나, 아주 찰나. ---「드그다 읏따읏따」중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가상의 가로축과 세로축을 그려놓고 ’저 별은 최악의 결말, 저 별은 사서 하는 걱정‘ 그렇게 막막한 내면의 질서를 가늠해보는 것처럼. 못난 자책이나 비관은 먼 거리의 폭발인 것처럼. “뇌과학적으로 마음이란 건 없대. 그냥 정보처리 기술이래. 불안에서 초점을 돌리고 머리를 똑똑하게 하면 된대.” ---「아무래짜」중에서 풀과 흙 내음을 맡으며 개울물 소리와 함께 이응을 하면 발가벗고 빗속에 서 있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도시의 폐쇄된 공간에서 하는 이응과는 자극의 차원이 달라서 한 번 하고 나면 한동안 이응 생각이 안 날 만큼 에너지가 충전된다고. “당연하죠. 좋은 이응은 이응 생각을 잊게 해요.” ---「이응 이응」중에서 “왜? 팬티 입는 게 나빠?” 나는 땀과 물로 번들거리는 할머니를 보며 물었다. 사형집행이나 판결이란 말은 어려웠지만 팬티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게 재밌었다. 어렴풋하게 그 말에 담긴 뫼르소의 기분을 알 것 같기도 했다. “나쁘고 안 나쁘고를 떠나서 그게 사람이란 거야. 그게 이응이야.” ---「이응 이응」중에서 “볼 수는 있지만 만져선 안 돼. 서로의 몸에 손을 대선 안돼.” “왜 안 되는데?” 내가 묻자 너는 고개를 들고 밤하늘을 바라봤어. 나도 따라 까만 하늘을 보았지. “별을 만질 수 있어?” “없지.” “나도 그래. 나한테 지금 너는 별이야.” ---「물먹은 편지」중에서 엄마는 동굴 입구를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가 아는 건 저 빛, 하양, 죽음뿐이라고. 그러니 어둠 속에서 뭐가 어떻게 될지 모른 채 떠오르는 빛을 맞이할 뿐이라고. ---「물먹은 편지」중에서 해가 진다, 꽃이 진다, 숨이 진다…… 엄마가 읽어주던 동화책에선 사람들의 숨이 졌다. 전에는 생각해보지 않았던 그 말이 중요하게 느껴졌다. 숨도 꽃이나 해처럼 지는 거라면 언젠가는 꽃처럼 피어나고 해처럼 다시 솟아날지 몰랐다. ---「메께라 께라」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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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별과 별처럼 멀어질 테지만
사람은 외떨어진 점만은 아니라는 걸” 존재를 잇는 막강한 사랑의 힘에 대하여 소설집의 문을 여는 「지하철은 왜 샛별인가」는 익숙한 지하철 풍경에 보이지 않는 존재들을 겹쳐놓는다.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품은 분노를 먹고 자”라는 ‘저퀴’와 “옴을 던지며 지하 세계의 질서를 바로잡”(p. 14)는 ‘잡귀’가 바로 이들이다. 장애인 이동권 시위가 벌어질 때면 저퀴가 객실을 뒤덮는데, 열차가 멈춘 까닭이 ‘한층 더 독해진 인간의 살기’ 때문임을 알지 못하는 승객들은 눈앞의 시위대를 비난한다. 잡귀 ‘시오’와 ‘초구’는 객실을 삼켜가는 저퀴들과 몰염치한 인간들에 맞서 함께 서울 지하철 4호선을 수호한다. 퀴어문학의 최전선에서, 경계를 꿰뚫기에 더욱더 강직한 사랑의 힘을 보여주었던 작가 김멜라답게, 시오와 초구의 사랑은 남녀를 연상시키는 ‘손[手]님’과 ‘발[足]님’이 아닌 ‘발님’과 ‘발님’의 그것이기에 오히려 지하철을 지키고 샛별로 향할 수 있는 위력을 갖는다. 김멜라에게 사랑이란 각자의 육체와 마음 안에 꽁꽁 갇힌 듯 보이는 우리가 서로에게 닿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이때 사랑은 연인 사이의 감정에만 머물지 않고 우정과 연민, 동경과 욕망, 타인의 고통을 알아보는 감각까지 아우른다. 「좀비 손금」 속 ‘나’는 기업의 몰락 후 세상을 경계하며 머리맡에 칼을 둔 채 지내면서도, 한순간 마음을 나누었던 아르바이트생 ‘휘경’의 문자 한 통에 그를 구하러 맨몸으로 빗길을 뒹군다. 「아무래짜」의 ‘천우’와 ‘신조’ 역시 타인의 아픔을 대신 겪을 수 없는 ‘1인용’ 몸의 한계 속에서, 응급 환자들 그리고 친구 배송이의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경험에 이른다. “마음도 빛처럼 어딘가로 늘 향해 갔다. 음악이나 바람처럼 도통 멈출 줄 모르고 언제나 흐르고 있었다” 마음, 그 오색찬란한 물질의 범람 감정은 고여 있는 웅덩이가 아니라 흐르는 물결에 가깝다. 이때 김멜라는 빛처럼 번져가고, 음악과 바람처럼 멈추지 않으며, 때로는 냄새와 온도를 머금은 채 타인에게 닿는 마음의 율동을 물질적으로 구현한다. 「드그다 읏따읏따」 속 작곡가 ‘양홍’은 메가 히트곡 「찰나찰나」의 저작권을 옛 동료 ‘찬나’의 딸 ‘이정’에게 물려주기 위해 그의 삶을 뒤쫓는다. 그러나 이정에게 접근할수록 양홍이 마주하게 되는 것은 자신이 오래도록 붙들고 있던 과거와 놓아주었기에 더욱 아름다웠던 찬나의 삶이다. “살면서 자신이 토하고 배설한 악절들이 지옥의 폐수처럼 범람”(p. 164)할 때, 양홍은 그들이 음악 한 소절처럼 아름다웠던 찰나, 그 찰나의 기억을 떠올린다. 「젖은 눈과 무적의 배꼽」은 마음에 적극적으로 물성을 부여하는 김멜라의 전략이 집약된 작품이다. 화자 ‘크리스마스’는 여자가 여자에게 쏘는 마음을 배꼽에서 나오는 빛으로 감지한다. 욕망을 닮아 단순히 반짝이지만은 않는 빛, 때로는 악취를 풍기거나 축축한 빛이다. 다종다양한 빛의 창살 속에서 외로이 지내오던 크리스마스에게 ‘두루미’의 케첩빛이 찾아온다. 그 빛은 “안구를 날카롭게” 찌르지만 아프지 않고 “오히려 이상한 황홀감이 가득 차 찢긴 동공에서 수천 개의 비전이 알처럼 쏟아“(p. 117)지게 하는, 그야말로 사랑의 형상을 띤다. 심연에 파고들기보다 마음을 물질화하여 그것이 변형되길 희망하는 김멜라의 전략은 유용할 뿐 아니라 정당해 보인다. [......] 마음이 외부를 향해 열려 있는 유동적인 몸 그 자체임을 인정할 때, 세계는 내면에 투영된 그림자에 불과한 것으로 축소되지 않고 대신 놀랍도록 풍요롭고 신비로운 가능성의 장으로 변모한다. 마음을 주체와 객체, 육체와 정신 같은 이분법으로부터 빼낸다면, 우리는 더 큰 자유와 환희를 얻을 수 있다. -이소 해설, 「변신하는 마음」에서 “돌아간 세리도 비처럼 다시 올 수 있을까. 구름은 어떻게 비가 되어 내리는 걸까” 끝내 돌아오는 목소리, 그치지 않는 편지 마음이 흐르기 시작하면 세계를 나누던 분계선이 번진다. 사랑과 욕망, 인간과 비인간, 삶과 죽음처럼 철저히 구분되어온 것들의 경계를 지울 수 있을까? 제15회 젊은작가상 대상을 받은 작품이자 이번 소설집의 표제작인 「이응 이응」은 그 질문을 가장 선명하게 밀어붙인다. 소설의 배경은 성적 쾌감을 주는 기계인 ‘이응’이 전국적으로 상용화된 근미래. ‘나’는 할머니와 강아지 ‘보리차차’의 죽음 이후 ‘잃어버린 화살’을 찾기 위해, 성적 욕망 없이 포옹을 나누는 모임 위옹에 참석한다. 그러나 “누군가를 힘껏 끌어안아도 이 열린 창문은 닫을 수 없”(p. 265)다는 애달픈 배움 끝에 “잃어버린 화살은 모두 내 안에 있었”(p. 273)음을 깨닫는다. 죽음은 삶 속에 존재하고, 상실의 여진은 끊임없이 우리 안에서 되풀이된다. 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곧 창문이 열린 채로 두는 일이다. 열린 창문으로는 사무치게 차가운 비와 눈이 들이치지만, 삶의 양분이 되는 햇빛과 새소리도 흘러들 것이다. 김멜라의 소설은 기쁨과 슬픔, 삶과 죽음처럼 대립 항으로 여겨졌던 개념이 서로를 품은 채 흐르고 있음을 포착한다. 나아가 욕망과 사랑을, 인간과 기계를, 주체와 객체를 구분하는 시선에도 물음표를 던지게 한다. 「이응 이응」이 제기한 질문은 경계 없는 세상에 대한 상상이 극단까지 도달한 「물먹은 편지」로 이어진다. 철도 칼도 존재하지 않던 고대 공동체, 동굴 벽에 암각화를 새기며 살아가는 ‘검저리’는 갑작스러운 공격으로 목숨을 잃는다. 이들의 세계에서 좋은 죽음, ‘잘 죽는 꿈’이란 늑대에게 잡아먹혀 다시금 자연의 일부가 되는 일이다. 그러나 검저리의 죽은 몸은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강물에 떠내려간다. 눈 코 입, 살과 뼈가 물에 쓸려 사라지는 와중에 “마음에 고인 이야기도 흘러나”와 남겨진 사람들에게 “그치지 않는 편지를”(p. 297) 쓴다. 몸과 마음 그리고 삶과 세계가 인간의 글자, 즉 ‘빛나는 끈’으로 엮여 하나로 거듭난다. 마지막 작품 「메께라 께라」는 그치지 않는 마음의 흐름을 순환과 연결의 세계로 이끈다. 첫 상실의 경험을 극복하는 청명한 마음을 건네는 이 소설은 일본 미에현에 사는 ‘소낭’의 목소리로 전해진다. 키우던 고양이 ‘세리’가 죽고 엄마가 동생을 가지자, 집을 떠나 제주도 오름 위 옴팡진 곳에 사는 할아버지 ‘꾸모’를 찾아간 소낭. 꾸모의 오름에서 ‘미소’와 ‘안나 여사’를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내며 소낭은 꼬리따기 노래처럼 이어지는 생명과 세상의 법칙을 배운다. “사라진 것 같아도 눈을 감고 다섯을 세면 보이지 않던 존재들이 돌아온다. 바닷물은 구름이 되고 구름은 빗방울로 떨어져 다시 바다로 흐르듯이”(p. 366)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어지는 것들이 있다. 그렇게 김멜라 소설집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우리는 예감하게 된다. 이 모든 이야기는 반드시 되돌아와, 어느 호젓한 밤 우리의 창문을 두드리리라고.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높은 벽을 허물다 사랑으로 경계를 흐리고 세계를 교란하는 김멜라식 포스트휴머니즘 첫 책을 내며 “신에게 엎드려 기도드린다”(작가의 말, 『적어도 두 번』, 자음과모음, 2014)고 읊조렸던 작가는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던 매 순간 “씨앗의 얼굴을 하고 낮게 엎드”(제11회 문지문학상 수상 소감)려 결의를 다졌다. 어느덧 한국문학에 ‘김멜라’라는 이름 석자를 알린 지금조차 들뜬 기색 없이 “첫 소설집을 펴내던 그때처럼” “엎드려 기도하”(작가의 말)는 작가가 나지막이 웅크린 자리에, 그 어느 곳보다 진한 울림이 퍼져나간다. 동그란 이응처럼 이어지는 그 동심원이 우리의 마음에 가만히 닿는다. 이윽고 ‘마음의 빗장’이 풀려 갇혀 있던 감정이 폭우처럼 쏟아질 때 김멜라는 우산을 집어 던지고 달리기를, 움츠렸던 몸을 열어 빗속에서 춤추기를 주문한다. 그 발끝에서 번지는 것은 구시대의 경계를 흩뜨리는 파문이자 동시대의 존재들을 잇는 해방의 물결이다.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이소의 표현대로, “창조적인 투쟁은 항상 양방향으로 진행되니, 한편으로는 분할과 배제의 선을 흐트러뜨려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수확을 기대하지 않는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러므로 퀴어한 김멜라의 소설은 지배자들의 역사에서 오랫동안 신성시된 경계석 위에 다채로운 꽃과 나무를 심고 생명을 가꾼다”. · 작가의 말 태어날 때 울지 않고 웃었다는 신화 속 한 사람을 생각합니다. 그 아이는 어떤 소리와 촉감에 웃음을 터뜨렸을까요. 코로 스며든 공기가 몸속을 간지럽혔을까요? 자신을 환영하는 목소리에 기뻐했을까요? 아니면 산다는 게 얼마나 터무니없고 부조리한 허구인지 알고, 마음의 짐을 풀듯 웃음을 쏟았을까요. 소설을 쓰는 동안 슬플 때마다 환하게 웃음 짓는 얼굴을 떠올렸습니다. ‘나는 슬퍼도 너는 울지 마’ 그렇게 말하는 미지의 누군가를 앞에 두고 허구의 순간들을 통과했습니다. 저에게 소설은 현실의 반대편이 아니라 삶으로 나아가는 길이었습니다. 그 길 어디쯤에서 세번째 소설집을 펴냅니다. 이 소설집에 실린 글을 쓰면서 넓고도 깊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 사랑은 어디선가 홀로 글을 쓰는 작가의 얼굴로, 끊임없이 원고를 살피는 출판인의 눈빛으로, 책을 인쇄하거나 진열대에 놓아두는 누군가의 손길로 저와 함께했습니다. 가만히 소설 속 문장을 따라가는 독자의 존재가 저의 길을 밝혀주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할수록 책과 글쓰기를 둘러싼 이 세계에 크나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비록 그 마음을 자주 말하지 않고, 화려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해도 이 책을 펼쳐보는 ‘한 사람’과 제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이어져 있음을 압니다. 그 신비로운 연결에 휩싸여 또 한 번 마음에 동심원을 그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