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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1부 평등한 미적 권리의 논리 새로운 것에 관하여 큐레이터십에 관하여 생명정치 시대의 미술: 미술 작품에서 미술 기록물로 성상을 파괴하는 미술: 영화 속 성상 파괴 전략 이미지에서 이미지 파일로, 다시 이미지로: 디지털화 시대의 미술 다중 저자성 관광 복제 시대의 도시 비판적 성찰 2부 전쟁터의 미술 영웅의 신체: 아돌프 히틀러의 예술 이론 대중 교육: 사회주의 리얼리즘 예술 다양성 너머: 문화 연구와 그 포스트공산주의적 타자들 사유화 혹은 포스트공산주의의 인공 낙원 유럽과 그 타자들 수록문 출처 |
Boris Gro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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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이미지를 유포하기는 하지만, 그 자체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반대로 이데올로기의 힘은 결국 비전의 힘이다. 미술가는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이데올로기에 복무함으로써 결국 미술에 복무하게 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에 따라 미술가는 미술 시장보다도 이데올로기적 비전을 토대로 체제에 맞설 때 훨씬 더 효과적으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미술가는 이데올로기와 같은 영토에서 작업한다. 그렇기에 미술의 긍정적이고 비판적인 잠재력은 시장이라는 맥락보다 정치라는 맥락에서 더 강력하고 생산적으로 나타난다.
---p.22, 본문「여는 글」에서 모든 이미지를 제거하려는 열망은 오직 새로운 이미지를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 바로 이미지에 대한 비판을 다루는 이미지 말이다. 이 책에 실린 글의 직간접적 주제는 바로 이 근본적 형상, 즉 성상 파괴의 예술적 전유이며, 이는 우리가 현대 미술 작품이라 부르는 역설 대상을 생산해 낸다. ---p.25, 본문「여는 글」에서 미디어 시장에서 우리는 새로운 것이 사정없이 쏟아지는 동시에 똑같은 것이 돌아오는 모습을 영구히 목도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미술에서 새로운 것이란 없다는 친숙한 불평과, 미술은 끊임없이 새로워 보이려 노력한다는 정반대의 비난은 같은 뿌리를 공유한다. 미디어가 유일한 참조점인 이상, 관람자에게는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 같은 것과 다른 것을 효과적으로 구분할 수단을 제공해 줄 맥락, 비교 가능한 맥락이 없다. ---p.39, 본문「평등한 미적 권리의 논리」에서 미술관은 진부한 것 속에 숭고한 것을 도입할 가능성을 제공한다. 성경에는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유명한 표현이 나온다. 물론 사실이다. 그러나 미술관 안에는 태양이 없다. 이것이야말로 미술관이 언제나 혁신을 가능케 하는 유일한 장소였고, 여전히 그런 장소로 남아 있는 이유일 것이다. ---p.76, 본문「새로운 것에 관하여」에서 영화는 정신적인 것과 같은 지위에 있는 듯 보이기도 하는데, 두 가지 모두 시간 속에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의식(意識)이 일하는 방식과 유사하게 작동하며, 이를 통해 의식의 움직임을 대체할 능력이 있음을 증명해 보인다. 질 들뢰즈(Gille Deleuze)가 올바르게 관찰했듯 이 영화는 관람자를 정신적 자동기계로 변모시킨다. (중략) 한편으로 영화는 움직임을 찬미한다. 움직임은 영화가 다른 모든 매체보다 우월하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영화는 관객을 유례없는 물리적, 정신적 부동 상태로 만든다. 성상 파괴적 전략을 포함한 영화의 다양한 전략을 좌우하는 것은 바로 이런 양가성이다. ---p.123-124, 본문「성상을 파괴하는 미술: 영화 속 성상 파괴 전략」에서 오늘날 우리가 미술을 ‘동시대 미술’이라 부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미술은 현재 전시되고 있어야만 미술이라고 간주될 수 있다. 따라서 오늘날 미술의 기본 단위는 더 이상 오브제로서의 미술 작품이 아니라 오브제가 전시되는 미술 공간, 즉 전시 공간이자 설치 공간이다. 현재의 미술은 특정 사물들의 총합이 아니라 특정 장소들의 위상학이다. ---p.159, 본문「다중 저자성」에서 미술가에게 할 수 있는 말 중 변함없는 최악의 평가는 그의 미술이 ‘무해하다’는 것이다. ---p.205, 본문「전쟁터의 미술」에서 파시즘은 ‘신체의 시대’를 열었고, 우리는 여전히 그 시대를 살아간다. ---p.217, 본문「영웅의 신체: 아돌프 히틀러의 예술 이론」에서 스탈린 치하의 소비에트 문화는 인간이 변화할 수 있다는 아방가르드의 믿음을 물려받았으며, 그에 따라 인류가 변형될 수 있다는 확신으로 움직였다. 소비에트 문화는 아직 창조되지 않은 대중을 위한 문화였다. 이 문화는 스스로를 경제적으로 증명할 필요, 다시 말해 수익을 창출할 필요가 없었다. 소련에서는 시장이 폐지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회주의 리얼리즘에서 대중의 실제 취향이란 예술 실천과 완전히 무관한 것, 심지어 아방가르드에서보다도 더 무관한 것이었다. ---p.246, 본문「대중 교육: 사회주의 리얼리즘 예술」에서 문화적 현실은 파편화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세계화된 시장에 의해 보이지 않게 연결되어 있다. 보편성과 다양성 사이 선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유형이 다른 두 가지 보편성 사이의 선택만이 있을 뿐이다. 특정한 정치 이념의 보편 타당성, 동시대 시장을 통해 획득할 수 있는 보편적 접근성 말이다. ---p.253-254, 본문「다양성 너머: 문화 연구와 그 포스트공산주의적 타자들」에서 우리가 역사의 종언에 대해, 즉 반(反)유토피아와 유토피아의 동일성에 대해, 지옥과 낙원에 대해, 저주와 구원에 대해 말하는 것은 미래가 아닌 현재를 선택할 때다. 우리는 과거에 이미 본 것 이상으로 새로운 무언가가 미래에 더는 나타나지 않으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믿음은 비교할 수 없을 만치 급진적이어서 기껏해야 반복할 수 있을 뿐 뛰어넘을 수는 없는 이미지나 사건을 목격하는 경우에 생겨난다. 이 이미지는 십자가 위 그리스도일 수도, 나무 아래의 붓다일 수도 있으며, 헤겔의 경우라면 말에 탄 나폴레옹일 수도 있다. 또한 스탈린주의 국가에 관한 경험이 될 수도 있다. ---p.280, 본문「사유화 혹은 포스트공산주의의 인공 낙원」에서 어떤 사물이 미술 작품으로 선언되는 이유는 그것이 아름답기 때문일 수도 있고, 가끔은 특별히 추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때로는 미적 특질이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 어떤 것은 그것이 속한 시대에 비해 독창적이거나, 반대로 그 시대를 전형적으로 반영하기 때문에 미술관에 전시된다. 어떤 것은 중요한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을 기록하기 때문에, 또 어떤 것은 그러한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묘사를 거부했기 때문에 미술로 간주된다. 대중의 취향에 부합하기 때문에, 혹은 대중의 취향을 거부했기 때문에 미술로 여겨지기도 한다. 애초부터 미술 작품으로 간주된 것도 있고, 미술관에 놓이면서부터 미술로 간주된 것도 있다. 어떤 것은 특히 비싸서, 또 어떤 것은 특히 싸서 미술이 되기도 한다. 어떤 미술 작품은 단지 우연히 미술관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이유로, 또 현재 큐레이터가 이를 처리할 권리도 의지도 없다는 이유로 미술관 소장품에 속하게 된 경우도 많다. 이 모든 것들, 심지어는 더 많은 것들이 오늘날 우리에게는 미술이다. 그러니 우리가 어떤 것을 미술로 인식하는 이유는 하나의 개념으로 환원될 수 없다. ---p.293, 본문「유럽과 그 타자들」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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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의 힘』은 미술계에서 오가는 대화의 이면에 어른거리면서 인정이나 검토의 대상이 되지 못한 채 억눌려 있던 관계들을 파고든다. 이를 통해 범주들을 재조합하고 전제를 재구성하며, 종국에는 미술 글쓰기의 가능성을 다시 상상해 낸다. - 북포럼(Bookforum)
『미술의 힘』이 다루는 주제의 폭은 인상적이다. [...] 이미 다른 곳에서도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졌지만, 그 예기치 못한 결말을 그로이스만큼 예리한 눈으로 포착한 경우는 드물다. - 프리즈(Frieze) ‘역사의 종언’ 이후, 새로운 차이를 생산하는 미술의 힘 『미술의 힘』 1부는 현대와 동시대 미술에서 일어난 변화를 분석한다. 「평등한 미적 권리의 논리」는 현대 미술이 미적 가치 판단을 거부하고 모든 형식, 대상, 매체의 평등을 가정하면서 자율성을 상실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장받게 되었다고 보며, 예술과 정치가 인정 투쟁의 장으로서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것에 관하여」는 미술관이 미술사를 그저 재현하는 장소가 아니라 공간적 경계와 미술의 물질적 차원을 통해 새로운 차이를 만들어 내고 현재를 생산하는 장소라고 보며, 예술의 종말에 관한 헤겔과 단토의 주장에 맞서 새로운 것이라는 개념을 여전히 유지할 수 있게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관광 복제 시대의 도시」는 세계화가 지역적 차이를 복제하며 각 도시의 유토피아적 비전을 대체해버린 오늘날의 상황을 통해 동시대 미술의 탈정치화된 조건을 진단한다. 「큐레이터십에 관하여」는 큐레이터의 역할이 작품과 관객을 단순히 중개하는 데에 그치지 않으며, 작품을 물신화하는 미술 시장에 맞서 이를 새로운 서사에 연루시키며 일종의 성상 파괴를 수행할 수 있다고 논한다. 나아가 「다중 저자성」은 미술가 또한 작품을 직접 제작하는 장인에서 모든 종류의 오브제를 선별해 설치하는 큐레이터로 변모하며 저자성의 새로운 체제를 수립한다는 사실에도 주목한다. 「비판적 성찰」에 따르면, 미술 비평가 역시 이들과 함께 새롭고 흥미로운 차이를 창조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미술 제도뿐 아니라 미술의 새로운 매체와 형식 또한 논의의 대상이 된다. 「생명정치 시대의 미술: 미술 작품에서 미술 기록물로」가 논하듯, 동시대 미술에서 우리는 완결된 '미술 작품'보다 '미술 기록물(art documentation)'을 점점 더 자주 마주친다. 이는 생명정치 시대라는 조건 아래서만 나타날 수 있는 형식으로서, 삶을 묘사하는 대신 삶 자체가 되려는 미술의 열망을 보여 준다. 이때 기록물은 설치 미술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그로이스는 벤야민의 아우라 개념을 통해 설치가 인공적이고 복제된 것에서 살아 있고 원본적인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저항적 전략이 될 수 있음을 논한다. 나아가 「성상을 파괴하는 미술: 영화 속 성상 파괴 전략」은 영화가 전통적 예술 매체를 향한 아방가르드의 성상 파괴 전략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매체라고 보며, 「이미지에서 이미지 파일로, 다시 이미지로: 디지털화」는 미술 제도 안으로 들어온 디지털 이미지가 원본성 개념을 파괴하는 대신 디지털화의 물적 토대를 반성하는 계기를 제공한다고 평가한다. 저항하는 미술, 선전하는 미술 2부는 과거와 현재에 걸친 사례를 통해 미술과 정치의 관계를 논한다. 「전쟁터의 미술」은 테러리스트 세력이 생산한 이미지가 대중 매체에 유통되면서, 고유의 성상을 만들어 내며 사회적 서사를 서술하는 역할을 두고 예술과 테러리즘이 경쟁 관계에 놓이게 되었다고 본다. 「영웅의 신체: 아돌프 히틀러의 예술 이론」은 국가를 하나의 총체예술 작품으로 만들고자 했던 히틀러의 시도가 어떻게 실패했는지 논한다. 「대중 교육: 사회주의 리얼리즘 예술」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진정한 대중 예술이 아니라 아방가르드 자체의 내적 논리를 통해 도달한 엘리트의 기획이었음을 주장한다. 「다양성을 넘어서: 문화 연구와 그 포스트공산주의적 타자들」은 서구 문화연구의 기반인 자유주의와 계몽주의의 맹점을 지적하며, 다양성과 차이에 대한 담론 역시 특정한 미적 선호를 전제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사유화 혹은 포스트공산주의의 인공 낙원」은 구 공산권 국가들이 포스트공산주의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미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서술하면서, 유토피아적 비전을 제시하는 예술적 아방가르드와 정치적 아방가르드 공통의 역량을 논한다. 「유럽과 그 타자들」은 인본주의를 유럽 고유의 가치로 주장하는 정치 담론을 비판하고, 오히려 비인간성과 위반을 탐색한 문학 전통에서 이 가치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책을 닫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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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동시대 미술, 그 미적 전략과 제도, 추동력을 탁월하게 조망하면서 모더니즘 혁명, 도시화, 신기술, 포스트공산주의 시대라는 더 깊은 맥락 속에 위치시킨다. 그로이스는 통찰력 있는 분석과 오늘날 문화 생산의 핵심을 파고드는 철학적 질문을 결합한다.
- 이보나 블래즈윅(Iwona Blazwick) (사우디 알울라 왕립위원회 수석 큐레이터, 전 화이트채플 갤러리 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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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이스는 시각예술이 동시대 미술계의 제도에 미치는 영향을 예리하기 그지없는 눈으로 관찰해 내는 인물이다. 예술가와 수집가, 큐레이터, 그리고 관객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미학적, 정치적 권력의 균형에 관심을 둔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로이스의 이 정교한 글을 읽어야 한다. - 그레그 호로비츠(Gregg Horowitz) (프랫 인스티튜트 철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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