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
프롤로그
개정판에 부치는 글 첫 번째 이야기 옥에 티, 말에 티 글본새 말본새 / 명사의 장래에 대한 불안한 예감 / 옥에 티, 말에 티 / 내가 부린 말 / 내가 부리는 말 두 번째 이야기 술 익자 체 장수 돌아가니 아니 먹고 어이리 물소리가 아름다운 까닭 / 나는 고백한다 / 늙은 시인의 눈물 / 술 익자 체 장수 돌아가니 아니 먹고 어이리 세 번째 이야기 스위치히터 잎만 아름다워도 꽃 대접을 받는다 / 스위치 히터 / 컨트롤 보드 시대 네 번째 이야기 우리가 어디까지 와 있는가 하면 촌스러움에 대하여 / 우리가 어디까지 와 있는가 하면 / 개인 거리의 에토스 / 참 좋은 조짐들 / 고자들이 늘고 있다 / 백인은 아직 죽지 않았으니 다섯 번째 이야기 내가 가는 제3의 길 선악의 해부 / 나비넥타이 / 맞수는 적이 아니다 / 임계 상태에 대한 생각 / 나는 천상 불출이로소이다 / 내가 가는 제3의 길 여섯 번째 이야기 모든 것은 ‘버그’로부터 시작되었다 거룩한 지혜의 전당에서 / 델포이의 세발솥 앞에서 / 그리스 까마귀 / 모든 것은 ‘버그’로부터 시작되었다 세계화된 두 한국인의 종횡무진 열혈 대담 |
Lee Yoon-ki,李潤基
|
나는, 신학대학에 다닌 경력이 있는데다가 예수님을 너무 좋아해서 불교도 동아리로부터는 ‘예수쟁이’로 몰리고, 불교 이야기를 자주 하고 다니는데다가 부처님을 너무 좋아해서 기독교도들로부터는 ‘절집 처사(處士)’로 몰린 적이 있는 특이한 경험의 소유자다. 나는, 경상도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전라도적 정서를 좋아해서 고향 친구들로부터 ‘족보가 의심스러운 사람’으로 손가락질당하고, 내가 사랑하는 전라도 친구들로부터는 ‘무신경한 경상도 사람’으로 낙인찍혀본, 참으로 억울한 경험의 소유자다. 번역을 생업으로 삼아온데다가 미국에서 너무 오래 머물렀던 탓에 나는 한글 순혈주의자들로부터는 ‘미국 놈 똥구멍 빨다 온 사람’으로 매도당해본 적이 있고, 영어 공용론자들의 손을 흔쾌히 들어주지 않아서 진보적인 어문학자들로부터는 ‘언어 국수주의자’로 몰려본 적이 있는, 자타가 공인하는 회색분자다. 다만, 그렇게 살면서 쓰고자 한다.
--- p.4 우리 고유 문화의 풍경을 정교하게 드러내는 명사들이 잊혀지거나 사라지는 현상이 수시로 목도된다. 전통의 싱싱한 기운이 듬뿍 실린 말이 퇴조하면서 생경한 말들이 살풍경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명사의 사막화 현상’이라고 부른다. --- p.22-24 매우 쑥스러운 고백을 하나 해야겠다. 문학청년이던 1970년대에 나는 머리카락을 길게 기르고 다녔다. 머리카락을 짧게 깎고 다니는 사람보다 길게 기르고 다니는 사람이 어쩐지 더 문화인다워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그랬다. 나는 당시 잡지사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잡지사를 출입하던 문화계 인사들은 모두 장발이었다. 나는 장발을 고집함으로써 그 문화계 인사들과 나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부끄러운 것은 감추고, 조금이라도 자랑거리가 될 만한 것은 드러내고 싶었던 것이 분명하다. 1980년대 중반부터는 장발 위에다 베레모를 쓰고 다녔다. 나는 베레모는 아무나 쓰는 물건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예술가인 양 보이고 싶었음이 분명하다. 나는 이제 베레모를 쓰지 않는다. 등산할 때 아니면 쓰지 않는다. 나는 이제 머리카락을 기르지 않는다. 이제 나는 예술가인 양 보이고 싶지 않다. 필경은 천박한 3류일 내 정체를 드러내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나는 고대 신화를 해석한 3부작 『뮈토스』를 써서 출간한 적이 있다. 개정증보판을 내기 위해 그 책을 다시 읽었다. 얼굴이 뜨거워서 읽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 책을 쓸 당시, 나는 쉬운 말로 표현할 수 있는데도 의도적으로 어려운 낱말을 찾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도망친다’라고 해도 좋을 것을 ‘도타한다’고 쓴 것을 반성한다. ‘자국을 지운다’고 하면 될 것을 부러 ‘엄적한다’고 쓴 것을, ‘놀아난다’고 하면 될 것을 ‘유탕한다’고 쓴 것을, ‘지나치다.’고 하면 될 것을 ‘참람하다’고 쓴 것을 반성한다. 나는 이 책을 교열하면서 수백 개의 한자말을 내 책에서 몰아냈다. 부러 꼬고 비틀어 어렵게 만든 표현을 나는 쉬운 표현으로 바꾸었다. 이로써 말살이 글살이에서도 나는 베레모를 벗는다. 나는 이제까지 부리던 말을 버린다. 나는 이제부터 새로운 말을 부리고자 한다. 그러나 이 ‘말’은 한자와 한문에 배타적이지 않다. 이 글 ‘내가 부린 말’은 ‘내가 부리는 말’로 이어질 것이다. --- p.46 유랑극단 춤꾼 소녀의 비애를 그린 미소라 히바리의 노래. ‘오늘도 오늘대로 단장한테 / 재간이 서툴다고 꾸중을 듣고 / 북채로 얻어맞고 하늘을 보니 / 나처럼 울고 있는 듯한 낮달.’ 나는 이 대목을, 눈물 없이는 통역할 수 없었다. --- p.60 이 시대 각 분야는 좌타와 우타를 겸하는 ‘스위치히터’를 요구하고 있다. 내가, 여러 가지 상황에 대응하지 못하는 꽉 막힌 맹꽁이 전화기를 버린 까닭이 여기에 있다. --- p.100 우리는 불출을 만나면 어떻게 하는가? 따돌린다. 왜 따돌리는가? 내가 속해 있는 동아리와 무늬가 같지 않기 때문이다. 농경 정주민에게 ‘다름’은 곧 ‘틀림’ 이다. 모나서도 안 된다. 모나면 정을 맞는다. 이제 그 익숙한 것들과 결별해야 할 때가 왔다. --- p.184 |
|
체험에서 우러난 진솔한 문화 담론
『장미의 이름』,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꽃아 꽃아 문 열어라』의 작가 이윤기가 『잎만 아름다워도 꽃 대접을 받는다』(동아일보사)를 펴냈다. 이번 산문집은 2004년에 출간되었던 같은 제목의 책을 다시 다듬고 내용을 첨가, 28편의 글을 묶은 개정판이다. 언어의 고수, 영원한 청년이라는 별칭이 따라붙는 저자는 이 책에서 삶의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우리 삶의 구체적인 풍경을 예리하게 해부한다. 그러나 그의 글이 오래도록 아름다운 이유는 넥타이를 매지 않고 자신의 경험을, 속내를 가리지 않고 고스란히 드러내기 때문이며, 특유의 유머가 따뜻하게 스며있기 때문이다. 전통문화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에 이르기까지 그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연말 즐거운 마음으로 독서삼매경에 몰입할 수 있는 산문집이다. 다양한 내용의 글을 한 줄로 꿴다면, 제목처럼 잎만 아름다워도 꽃 대접을 받는 시대에 어울리는 삶의 철학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저자가 진단하는 이 시대는 화려한 꽃을 피워야만 꽃 대접을 받는 것은 아니다. 잎도 싱싱하고 곱다면 꽃 이상으로 쳐주는 시대라는 것이다. 저자는 개정판 서문에서 “이 책은 사회의 주류에 편입하지 못하고 주변적 삶을 고달파하는 독자를 위한 것이며 이것은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라면서 초빙, 객원, 명예의 멍에에 시달리는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완전히 거꾸로 사는 인생, 꽃 대접 받기는 애초에 틀린 인생이라고 비관하다 마무리는 경쾌하다. “나는 꽃이 아닌 것이 거의 확실하다. 그러나 꽃 대접 비슷한 걸 더러 받는 걸 보면, 잎이라도 예쁘게 피워 올리려고 무진 애를 쓰기는 한 모양이다. 그러면 되었지 뭐.” 이윤기식 유머와 글 읽는 맛의 묘미에 빠져들면 책을 쉽게 내려놓지 못하고 나를 돌아보게 된다. 우리 삶의 풍경에서 찾는 아름다운 잎 우리 사회는 아직도 해결해야 할 문제점들이 많다. 다양성을 거부하는 보수적 사회, 지역감정 앞에 맥못추는 나라, 연줄과 패거리로 얽힌 사회, 허례허식과 전근대적 권위주의, 여성차별이 횡행하는 곳이다. 저자는 이런 면들을 꼬집으면서도 한 방향 고찰을 거부한다. 더 균형 있는 시선으로 우리 사회를 진단하면서 독자들의 구미를 당기는 구체적 이야기로 상상력을 자극한다. 우리 사회에는 걸핏하면 사회현상이나 문화 현상을 남의 나라 잣대로 재고 우리 사회의 모든 현상을 중증의 병으로 진단하는 시각과, 그런 시각에 저항하는 시각 사이를 흐르는 난기류가 있다(‘우리가 어디까지 와 있는가 하면’). 이렇게 진단하면서도 긍정적인 요소를 모르쇠하지 않는다. 전화 걸어 메모를 남기라고 할 때 상대편에서 “네, 잇자(李字), 윤자(潤字), 깃자(基字)이시라고요?”라고 하는 사람을 자주 대하게 된다면서 이제 발걸음을 조금만 재촉하면 머지않아 좋은 수가 생기지 않을까 하고 낙관한다. 그처럼 전화 받는 사람의 태도에서 아름다운 잎을 떠올리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