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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전쟁
네 총대주교, 세 황후, 두 황제와 5세기 교회사
브니엘 2026.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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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옮긴이 머리말 : 기독교 역사를 영원히 바꾼 사건들
프롤로그 :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들어가면서 : 용어와 정의

1. 문제의 본질
예수 전쟁 / 만약 하나님이 우리 중 하나였다면?
살아계신 그리스도 / 세상의 절반을 잃다 / 다시 카타콤으로
새로운 세계의 획득 / 또 다른 세계를 상상하며 / 누구의 권위로?
교회의 정신 / 폭력적 신앙 / 폭력의 독점 / 기독교와 이슬람

PART 1. 하나님과 카이사르

2. 두 본성 전쟁
그리스도를 이해하기 : 대략 30년부터 300년까지
4세기 / 예수 전쟁의 선포 : 5세기

3. 네 기수: 교회의 총대주교들
총대주교와 교황 / 뜨는 별과 지는 별 / 로마 황제
로마의 후퇴 / 알렉산드리아의 파라오들
콘스탄티노플과 안티오키아 / 요안네스 크리소스토모스의 몰락

4. 황후, 장군, 그리고 황제
황제들을 넘어서서 / 국가로서의 교회, 교회로서의 국가
하나님의 전사들 / 거룩한 여성들 / 풀케리아 / 불관용의 시대
참된 그리스도인과 거짓 그리스도인 / 왜 증오했을까?

PART 2. 혼돈의 공의회

5. 하나님의 어머니가 아니라고?
총대주교 / 위기 / 하나님의 어머니 / 적들 / 이집트로부터
킬릴로스 대 네스토리오스 / 키릴로스의 십자군
에페소스의 뜨거운 여름 / 출구의 모색 / 콘스탄티노플로 / 여파

6. 하나님의 죽음
최후의 로마인들? / 에우티케스 / 밀어붙이기
세속의 전쟁 / 에우티케스의 반격 / 다시 에페소스로
로마인 레오 / 깡패들 / 동부 전선

7. 칼케돈
반혁명 / 공의회 / 신조의 결정 / 신앙의 선포
칼케돈 신앙 정식 / 새 로마와 옛 로마 / 칼케돈 이후
알렉산드리아의 비극 / 로마

PART 3. 잃어버린 세계

8. 교회는 어떻게 절반의 세계를 잃었을까
칼케돈의 적들 / 단성론 제국 / 칼케돈의 수호 / 대분열
유스티니아누스 / 5차 공의회 / 새로운 단성론 교회 / 탄압
동방에 닥친 위협 / 의지의 실패 / 성문 밖 이슬람

9. 무엇이 구원받았을까
끝없는 부활 / 오늘날의 그리스도 / 신조인가, 혼돈인가

주요 등장인물들
색인

저자 소개 2

필립 젠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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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Jenkins

글쓴이 필립 젠킨스는 케임브리지 대학 클레어 칼리지를 졸업하고 미국 베일러 대학 역사학 교수와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 인문학 석좌 명예교수로 있다. “미국 최고의 종교학자”(포브스)로 알려진 젠킨스의 주요 저서로는 「숨겨진 복음서: 예수 탐구는 어떻게 길을 잃었는가」, 「차세대 기독교 세계: 세계 기독교의 등장」, 「기독교의 잃어버린 역사」, 「그리스도의 다양한 얼굴」을 비롯해 35권이 있다. <더 월 스트릿 저널> <더 워싱턴 포스트> <크리스천 센추리>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디 애틀랜틱> 등에 오랫동안 글을 기고하고 있다.
『예수 전쟁』의 역자이다

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9월 11일
쪽수, 무게, 크기
456쪽 | 145*210*30mm
ISBN13
9791193092712

책 속으로

“지난 2천 년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위로부터의 그리스도론’과 ‘아래로부터의 그리스도론’ 사이에 존재하는 이 끝없는 긴장을 해결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하지만 5세기 공의회들만큼 이 논쟁이 기독교의 핵심 사안이었던 적은 결코 없었다. 수십 년 동안 교회는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믿음을 거의 포기하고 압도적으로 신적 존재로만 묘사하는 게 거역할 수 없는 흐름처럼 보일 정도였다. 이야기의 대략적인 윤곽은 비교적 간단하다. 모든 지적 논쟁 배후에는 교회를 대표하는 총대주교좌 간의 강력한 경쟁 관계가 자리 잡고 있었다. 한쪽에는 알렉산드리아, 또 다른 쪽에는 안티오키아(안디옥)가 있었고, 가장 치열한 싸움터는 콘스탄티노플이었다. 안티오키아는 그리스도의 인성이 지닌 실재성을 강조했고, 알렉산드리아는 신성과 인성을 분리하는 주장은 무엇이든 맞서 싸웠다. 420년대에는 수도사 네스토리오스(386?-451?)가 콘스탄티노플 대주교로 임명되면서 안티오키아의 교리를 도입했고, 그렇게 해서 재앙이 뒤따랐다. 1차 에페소스 공의회(431)에서 네스토리오스는 신성과 인성을 구분하는 양성 교리를 가르쳤다는 이유로 이단으로 정죄 받고 파문되었다.”
--- p.39

“칼케돈 공의회까지 계속된 논쟁의 상당 부분은 기독교의 두 심장부이자 지성의 중심지였던 알렉산드리아와 안티오키아 간의 수십 년에 걸친 전쟁이 포함되었다. 두 도시 모두 가장 오래된 신앙의 중심지였고,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5세기 전반에 걸쳐 두 도시의 권력과 위상은 크게 성장했다. 서방에서 야만족이 갈리아와 에스파냐, 아프리카를 강하게 몰아칠수록, 위축된 제국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시리아와 이집트, 그러니까 안티오키아와 알렉산드리아에 한층 더 의지했다. 게다가 두 도시는 본성 논쟁에서 특정 해석을 대변하게 되었다. 알렉산드리아는 단일 본성 교리를 고수했고 안티오키아는 두 본성 사상에 개방적이었다. 네스토리오스부터 철저히 안티오키아의 산물이었고, 알렉산드리아 사람들은 그의 가장 강력한 적이었다. 알렉산드리아의 고유한 신학 유산은 3세기 초반 학자 오리게네스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장차 그리스도론을 형성하게 될 수많은 이론과 용어(우시아와 휘포스타시스까지)를 만들어냈다. 게다가 오리게네스는 알렉산드리아의 신학을 상당히 철학적인 방향으로 강력하게 이끌었고, 성경을 상징이나 영적으로 해석하는 방법을 개척해 이후로 이집트 신학자들의 특징으로 알려졌다.”
--- p.113

“5세기 초에 이르러 교회들은 도시마다 확고한 권위를 갖춘 세력으로 자리 잡았는데, 세속 권력의 상징들과 맞먹거나 오히려 그것을 압도할 때도 많았다. 제국은 사제들 별도의 사법제도를 인정하고, 그들이 자신들만의 특별 법정에서 재판받을 권리를 부여해 교회의 존엄성과 독립성을 인정했다. 동방에서는 이 권리가 주교에게만 주어졌지만, 서방에서는 계급과 상관없이 모든 사제에게 적용되었다. 주교는 이제 정부의 중요한 통로가 되었고, 종교적 역할뿐 아니라 정치 경제적 업무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서방에서 로마 제국이 붕괴하자 도시와 지역 권력이 지방 장관과 주교 간 동맹으로 넘어갔고, 이런 방식은 아주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제도화된 기독교는 동방과 서방을 막론하고 교회 건물과 수도원이라는 물리적 존재를 통해 권위를 강력하게 드러냈고, 제국과 세속 유력자들의 후원을 받아 대대적으로 건축을 진행했다. 마침내 교회는 거대한 신전과 경쟁했고, 심지어 그 높이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신전 건축에 필요한 석재가 교회 건축에 사용되기도 했다.”
--- p.186

“첼레스티노는 키릴로스의 고발건에 조사를 명령했다. 책임자는 그의 부제 레오였다. 430년 8월, 지역 공의회를 소집하고 난 뒤에 교황은 네스토리오스에게 구체적으로 기한을 명시한 최후통첩을 보냈다. 네스토리오스는 열흘 이내에 ‘성경이 결합한 것을 분리하려고 하는 그 불신앙적인 새로운 교설을 서면으로 공개적으로 취소하고,’로마와 알렉산드리아 교회가 고백하고 있고, 그가 총대주교가 되기 이전에 콘스탄티노플이 그랬듯이 그리스도에 관한 교리를 가르치겠다고 동의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파문될 수 있었다. 그해 11월, 로마를 확고한 우군으로 확보한 키릴로스는 네스토리오스에게 세 번째 편지를 보냈다. 어느 때보다 공격적이고 극단적인 말투로 자신의 견해를 제시했다. 키릴로스는 사실상 전쟁을 선포한 것과 다름없었다. ‘심판 날에 누가 우리를 도울 수 있겠는가? 또는 그대가 그리스도를 모독한 일에 대해 우리가 이토록 오랫동안 침묵을 지켜 온 것을 어찌 변명할 수 있겠는가? 만일 당신이 그것들을 가르치고 주장해서 당신에게만 해를 입혔더라면, 그 일은 덜 중요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당신은 전체 교회에 엄청난 충격을 안겼고, 사람들 가운데 이상하고 새로운 이단이라는 누룩을 던져 넣었다.’ 자주 인용되는 이 세 번째 편지에서 키릴로스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인간성과 신성의 어떤 분리도 거부하는 위격적 연합의 교리를 받아들이도록 요구했다.”
--- p.243

“457년, 마르키아누스가 세상을 뜨자 알렉산드리아 시민들은 프로테리오스에게 반기를 들었다. ‘경건한 백성들이 다시 숨을 돌리고 구세주 그리스도께 감사드렸다.’ 그들은 주교들을 모아 ‘족제비’ 티모테오스를 총대주교로 선포했다. 군대는 질서를 유지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제국군은 반대파의 본거지였던 교회를 습격해 ‘다수의 평신도와 수도사, 수녀를 살해했다.’ 분노한 군중은 순교의 열정에 사로잡혀 매일 군대와 맞섰고, 도시는 사실상 내전과 같은 유혈 사태에 빠졌다. 이번에는 군대도 프로테리오스가 신성한 순교의 선물을 받는 것을 막지 못했다. ‘알렉산드리아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티모테오스의 선동을 받아 성스러운 세례당으로 도망친 프로테리오스를 발견하자 그의 배를 칼로 찔러 죽였다. 그들은 시체를 밧줄에 매달아 테트라필론이라 불리는 구역에 전시하고 이 자가 프로테리오스다!, 라고 조롱하며 외쳤다. 그러고는 시신을 도시 전체로 끌고 다닌 뒤 불태웠고, 심지어 맹수처럼 그의 내장을 맛보는 것조차 주저하지 않았다.’ 다른 기록에 따르면 ‘그들은 그를 길 위에 돼지나 개처럼 내버려 두었다. 그의 성품과 잔혹함이 그것들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 p.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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