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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펴내며 | 자주파와 사대파의 대결로 본 우리 역사
01. 친당파 VS 반당파 ―신라의 배신일까? 신라의 생존일까? 02. 묘청 VS 김부식 ―전략적 사대주의인가? 맹목적 사대주의인가? 03. 최씨 무신 정권 VS 왕정복고파 ―사대냐? 평화냐? 04. 세종 VS 최만리 ―독자적 문자인가? 국제적 문자인가? 05. 이순신 VS 선조 ―조선 백성 덕분인가? 명나라 황제 덕분인가? 06. 광해군 VS 인조 ―상식적 친명주의인가? 비상식적 친명주의인가? 07. 친일파 VS 독립투사 ―‘가짜 일본인’인가? ‘진짜 조선인’인가? 08. 우리말전용 VS 영어공용화 ―영어공용화가 필요한가? 불필요한가? 09. 기독교 VS 반反기독교 ―누가 주인인가? 누가 손님인가? 10. 사드 배치, 찬성 VS 반대 ―북한에 대비하는 방어인가? 중국을 겨냥한 공격인가? 책을 닫으며 | 사대주의와 조선을 어떻게 볼 것인가? 참고 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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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목적, 광신적 사대주의에서 벗어나자
이 책의 저자가 문제 삼는 사대주의는 “뛰어난 상대의 장점을 배우고 안전을 보장받자”라는 식의 전략적 사대주의가 아니라 “내가 따르는 강한 나라를 위해서라면 우리나라가 손해 보고 망해도 좋다”라고 보는 식의 광신적 사대주의다. 이 때문에 조선 중기 이후 조선의 사대주의가 전략적 사대주의에서 광신적 사대주의로 변질되기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임진왜란을 통해 조선은 선조로 대표되는 사대파와 이순신으로 대표되는 자주파 두 세력의 갈등에 휩싸였다. 자주적인 힘으로 왜군을 물리쳤던 이순신은 임진왜란의 막바지에 노량해전에서 전사했고, 비슷한 시기에 권율과 곽재우 같은 전쟁 영웅들도 죽거나 관직에서 은퇴했다. 아쉽게도 임진왜란 이후,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준 명나라의 은혜를 잊을 수 없다는 시각을 가진 선조 같은 맹목적 사대파가 조선 사회를 장악한다. 국가의 최고 권력자인 왕이 나서서 임진왜란 극복은 오직 명나라 군사의 공 덕분이었다고 공언했으니, 명나라에 대한 사대주의가 생기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런 맹목적이고 광신적인 사대파의 권력 장악은, 이후 조선 역사에 크나큰 부담과 쓰라린 대가를 남기게 된다. 우선 명나라는 군대를 보내 조선을 도와준 일에 대한 대가로 조선에서 엄청난 이권을 닥치는 대로 챙겼다. 조선의 특산품인 인삼, 그리고 자기네 나라 화폐로 쓰이던 은을 조선으로부터 어마어마하게 빼앗아간 것이다. 조선의 국가 재정을 담당하는 호조 책임자인 판서 황신(黃愼)이 1년 동안 애써 모아놓은 3만 5000냥의 은을 유용과 염등 같은 명나라 사신을 접대하느라 열흘 만에 전부 써버렸다고 울상을 지을 정도였다. 인삼과 은 같은 재물이야 명나라가 조선을 도운 대가로 주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조선 백성의 목숨까지도 내놓아야 했을까? 만주에서 새로 일어난 후금을 막기 위해 명나라는 조선에 군대를 보내라고 요구했다. 조선은 임진왜란의 피해 복구조차 마치지 못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1만 명의 군사를 보낸다. 하지만 그중 절반이 후금군에게 죽임을 당하고 나머지 절반은 포로로 잡혀 고초를 겪었다. 이런 일을 당하고도 조선은 명나라에 대한 맹목적 사대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후금과의 적대 관계를 고집하다가 1637년 청나라의 공격을 받아 두 달 만에 임금이 직접 청군에 항복하는 삼전도의 굴욕을 겪고 만다. 이로써 청군에 의해 포로로 끌려가 노예가 된 조선 백성만 해도 60만 명에 달할 정도로 조선은 극심한 피해를 보았다. 임진왜란 때 도와준 명나라의 은혜를 갚기 위해서 한 일의 결과라고 하기엔 너무나 참담한 일이었다. 바로잡지 못한 역사는 반복된다 돌이켜보면 조선 중기 이후로 우리 역사에서는 3가지 큰 실패가 있었다. 첫째는 병자호란, 둘째는 경술국치, 셋째는 남북 분단이었다. 우리 조상들이 역사의 격변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에 외국 침략군에게 국토가 짓밟히고 외세에 주권을 빼앗기고 강대국들의 마음대로 국토가 분열되어 70년 넘은 지금까지도 남과 북이 서로 대치하고 싸우며 국력을 소모하고 있다. 자주파와 사대파의 대결로 점철된 역사에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우선 한국의 사대파, 즉 사대주의자들의 무지함을 파악할 수 있다. 조선 시대의 친명 사대주의자들은 명나라가, 일제강점기의 친일파들은 일본이 패권을 영원히 누릴 거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그들이 굳게 믿었던 명나라는 300년 만에, 일본은 그보다 훨씬 짧은 36년 만에 패권을 잃고 무너져버렸다. 오늘날 초강대국인 미국 역시 단일 패권을 빠르게 상실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오늘날 한국의 사대파는 미국의 영향력이 계속 이어지거나 최소 100년 동안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남을 것이라 장담한다. 또한 한국의 사대파는 스스로의 힘을 기르는 데는 관심이 없었고, 역사의 흐름을 헤쳐 나가는 데도 무능했다. 조선 시대의 친명 사대주의자들은 나라가 망하더라도 명나라를 돕자고 외쳤으나 그토록 숭배하던 명나라의 패망을 막지 못했다. 일제 말기 친일파들은 자신들의 재산을 털어 일제에 비행기를 바칠 정도로 충성을 바쳤으나 이들 또한 일제의 패망을 막지 못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종주국이 쇠퇴기에 접어들면 속국의 사대파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 과정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다. 해방 후 한반도 남쪽의 우리가 일본을 대신한 새로운 종주국인 미국의 그늘에서 지낸 세월이 벌써 70년이 되어간다. 하지만 오늘날 미국은 지나친 군비 지출과 부채 증가 및 재정 파탄으로 인해 패권을 잃어가고 있다. 반면 19세기 중엽 서구에게 패권을 빼앗기고 ‘동양의 환자’라는 조롱을 받던 중국은 눈부신 경제성장에 힘입어 2000년 동안 누려왔던 찬란한 중화제국의 위상을 되찾을 기세다. 이러 한 때에 미국은 자국이 누린 패권을 중국한테 넘겨주지 않으려 온갖 술책을 부리고 있으며, 그중 만만한 속국인 한국을 희생양으로 내세워 패권을 잃는 속도를 조금이나마 늦춰보려는 계획의 일환으로 사드 배치를 서두르고 있다. 이렇게 보면 명나라에 대한 맹목적 사대주의 이념이 세월이 흘러 한국전쟁 이후에 다시 부활했음을 알 수 있다. 대상이 명나라에서 미국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미국이 한국전쟁에 미군을 파견하여 약 5만 명의 사상자를 냈다고 해서, 우리가 그 은혜를 갚기 위해 동맹국으로 남아 미국이 요구하는 사항들을 모두 들어줘야 한다는 논리는 영락없이 현대판 ‘재조지은(再造之恩)’이 아닌가? 임진왜란 이후 명나라가 조선에 사신을 보내 전쟁비용을 회수하려 인삼과 은을 약탈해간 사건과 오늘날 경제난에 시달리는 미국이 한국에 높은 관세와 환율 인상, 사드 배치 등을 강요하며 막대한 돈을 뜯어내려는 모습은 과연 무엇이 다른가? 또한 미국이 요구하는 사드 배치로 인해 한국은 최대 시장이자 생산기지인 중국과 경제적으로 단절되어 치명적 타격을 받을 것이 분명함에도 한국 정부의 정책 담당자 중에 이를 거절해야 한다고 나서는 이가 없다. 사드 배치 문제는 그냥 넘어갈 만한 하찮은 일이 아니다. 국민의 이름으로 대통령이 파면되어 박근혜 정부가 유명무실해졌음에도, 한국의 기득권층은 광신적인 친미 사대주의에 빠져 사드 배치를 밀어붙이고 있다. 한편 중국과 러시아는 사드 배치를 좌시하지 않겠다고 벼르고 있다. 만약 이대로 한국 정부가 사드 배치를 강행한다면, 중국과 러시아는 경제와 군사 분야에서 보복을 단행할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중국의 경제 보복으로 어려움을 경험하지 않았는가. 자주와 사대 두 갈림길에서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 결정의 순간이 다가왔다. 과연 어느 쪽이 현명할까? 20조 달러라는 막대한 부채에 짓눌려 망해가는 미국의 패권을 연장해주기 위해서 사드를 배치하고 그 대가를 치를 것인가? 아니면 송나라와 요나라, 금나라 사이에서 현명한 등거리 외교를 펼쳐 강대국들의 입김에 놀아나지 않고 나라와 백성을 무사히 보존해야 했던 고려 시대 선조들의 지혜를 배워야 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