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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현장(現場) ─ 죽음을 손으로 만지다
12 시신 해체 21 무연고 묘의 주인 34 묘지관리인 48 개의 비용 61 무덤가에 살다 72 폭설─타향에 묻히다 80 죽음을 수습하는 사람 2부 조우(遭遇) ─ 죽은 것들과 만나다 94 죽은 것 104 죽은 것 2 ─ 죽은 자는 죽은 자의 길을 116 뼈, 인 그리고 도깨비불 130 남은 것 139 대감마님 무덤 148 내시들의 묘 155 산 자의 묘 164 칼눈 3부 진혼(鎭魂) ─ 인간에겐 헤어질 시간이 필요하다 182 목이 잘릴 때 슬펐다면 눈을 끔벅여주게 190 임사(臨死) 200 시체 때리기 206 꽃의 죽음 ─ 풍장 212 수목장 220 인간에겐 헤어질 시간이 필요하다 228 망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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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연고 묘 묘적부는 맨 뒷장. 죽음에도 차별이 있다. 양지바른 남향 1묘지는 강남 아파트, 동향2묘지는 천당 아래 분당 아파트 이런 식이다. 죽은 자들의 아파트를 표시한 지도가 묘적부인 셈이다.
---p.28 무연고 묘지는 주로 노숙자나 행려병자들을 화장해 그 유골을 묻어둔 곳이다. 그러니 봉분도 없고 상석도 비석도 없다. 나무토막에 페인트 글씨로 번호만 써두었을 뿐이다. 찾아오는 사람도 거의 없다. 살아 있을 때도 어느 파란만장하고 버거웠을 어느 한 순간 버려진 사람들이다. 중요할 리가 없다. ---p.28 하지만 잔디와 토끼풀 같은 인간관계는 나도 어쩔 수 없지. 그건 말이야 나 혼자서도 어쩔 수 없고,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거든. 자네 주위에 토끼풀같이 질긴 놈이 있나 잘 봐. ---p.39 사람들의 기이한 행동에 대해 이곳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의견을 내놓았다. 그들은 묘지에 개가 버려지는 것이 경기 탓이라고 했다. 정치가 엉망이니 경기가 나쁘고, 경기가 나쁘니 혼자 사는 사람들이 개를 버리고 간다는 식이다. 그러나 내가 알기로 이곳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혼자 사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곳에 한때나마 알고 지내던 사람을 묻은 보통 사람들이었고, 대부분 아이와 개와 자동차를 가지고 있었고, 개를 버리고 가는 사람들도 바로 그들이었다. ---p.52 그는 마치 자살하는데도 사람이 야무져야 한다는 듯 말했다. ---p.86 명당이란 달리 있는 게 아니고 관과 시신이 다 삭아 시신이 놓였던 자리 테두리에 검은 흙 선만 남아 있는 경우를 우리는 그렇게 불렀다. ---p.134 이렇게 버려지는 묘만해도 전국으로 치면 다 셀 수도 없을 것이다. 죽음 앞에서는 계급도 사라진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죽은 뒤에 인간을 기억하게 하는 것은 계급도 돈도 아닌 관계다. ---p.145 얇은 종잇장같이 삶과 죽음이 앞면과 뒷면으로 나뉘어 젖혀지고 목숨이 실낱같이 희미하게 이어 붙여지는 것이라면, 그 수많은 갈림길에서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것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p.174 바야흐로 봄기운이 사방에 충만하다. 봄꽃들이 다투어 피어날 시기이다. 산수유가 그렇고 벚꽃이 그러하다. 봄꽃이 애절한 건 다투어 피어 쉬이 지기 때문이다. 여간 섭섭한 게 아니다. 바람에 실려, 바람에 불려 가는 게 봄꽃들이다. 그래서 매화의 죽음을 풍장이라고도 한다. ---p.2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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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에는 죽은 사람만 묻혀 있는 것이 아니다
20여 년 전 용미리 서울시립묘지에서 3년간 무덤을 파고 주검을 수습했던 한 묘지관리인의 기록 죽은 사람에게는 더 이상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시간이 필요한 것은 남겨진 사람들이다. 누군가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함께했던 시간을 정리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묘를 만들고 돌보는 일 역시 어쩌면 죽은 사람을 위한 의식인 동시에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음을 받아들이기 위해 마련한 시간인지도 모른다. 『산역—주검을 돌보다』는 시인 성윤석이 20여 년 전 3년 동안 용미리 서울시립묘지의 용역관리 업체에서 일하며 묘지를 관리하고 주검을 수습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때로는 사실적으로, 때로는 상상을 더해 이야기를 풀어냈다. 책은 ‘현장—죽음을 손으로 만지다’, ‘조우—죽은 것들과 만나다’, ‘진혼—인간에겐 헤어질 시간이 필요하다’의 세 부분으로 나뉜다. 무연고 묘를 열어 유골을 수습했던 일, 35년 만에 아버지의 무덤을 찾아온 사람, 묘지에 버려진 개들, 공동묘지에서 겪은 기묘한 일들까지 저자는 묘지에서 마주한 구체적인 장면들을 따라가며 죽음과 기억, 망각과 이별에 관한 생각을 펼친다. 죽은 다음 인간을 기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저자가 묘지에서 마주하는 것은 관념적인 죽음이 아니라 죽은 사람의 몸이다. 수십 년 동안 아무도 찾지 않은 무덤을 열고, 썩은 관 안에서 유골을 수습한다. 무연고 묘를 개장하기도 한다. 이름과 사연이 사라진 무덤 앞에서 저자는 죽음 이후 인간에게 무엇이 남는지를 생각한다. 책에는 스웨덴으로 입양된 뒤 35년 만에 한국을 찾은 카리나가 등장한다. 자신의 생부가 묻힌 곳을 찾아 묘지를 방문한 그녀는 무덤 앞에 무릎을 꿇고 아버지를 부른다. 오랫동안 찾지 못했던 사람의 흔적이 눈앞에 나타나는 순간, 무덤은 더 이상 죽은 사람만을 위한 장소가 아니다. 그곳은 살아 있는 사람이 자신의 기억과 마주하는 장소가 된다. 누군가는 가족에게 잊히고, 누군가는 수십 년이 지나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는다. 누군가는 후손이 없어 무연고 묘가 되고, 누군가는 도시 개발 때문에 묘를 옮겨야 하는 순간에도 여러 가족이 찾아와 조상의 유골을 직접 모신다. 죽은 뒤 한 사람을 기억하게 만드는 것은 계급이나 돈이 아니라 결국 그 사람과 맺었던 관계다. 이 생각은 책 곳곳에서 반복된다. 묘를 쓰고, 벌초하고, 돌보는 행위가 미래에는 어떤 의미로 남게 될까. 결국 묘를 관리하는 일은 죽은 사람에게 무언가를 해주는 행위라기보다, 산 사람이 죽은 사람과 맺었던 관계를 계속 확인하는 행위인지도 모른다. 묘지에 남겨지는 것은 죽은 사람만이 아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이 버리고 간 존재들도 있다. 저자는 묘지에 개를 버리고 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버린다는 것과 돌본다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죽은 사람의 무덤을 관리하는 장소에서 살아 있는 개들을 돌보는 일이 동시에 벌어진다. 누군가의 죽음을 수습하는 일, 무덤을 정리하는 일, 잊힌 사람의 흔적을 찾아주는 일도 일종의 돌봄이다. 인간에겐 헤어질 시간이 필요하다 장례는 죽은 사람을 떠나보내는 절차이지만 동시에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시간이다.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 우리는 곧바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 누군가의 부재를 이해하고, 그 사람이 없는 세계에 적응하고, 함께했던 시간을 기억하고, 마침내 보내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저자가 말하는 ‘진혼’은 망자의 영혼을 달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살아남은 사람이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기 위한 과정이다. 사람은 죽은 뒤 무엇으로 남는가. 우리는 죽은 사람을 어떻게 기억하는가. 망자를 보내는 일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리고 사랑했던 사람과 헤어지는 데에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가. 20여 년 전 묘지에서 죽음을 손으로 만졌던 저자는 여전히 그 질문들을 품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