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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의 자궁에는 청토끼나무새가 산다
아픔과 희망을 기억하며
엄학섭
우인북스 2026.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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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배의 자궁에는 청토끼나무새가 산다
배의 자궁에는 청토끼나무새가 산다/눈/롬곡옾눞새/어머니/벗에게 바치는 편지/
늙은 바람의 사춘기/청산도 가면/가난한 가방 노점상/사라지는 것들의 문법/
보고 싶은 당신/가방 노점상/서울, 서울/여름 향기/노을아

빛고을 아리랑
빛고을 아리랑/도복깃에 새긴 붉은 맹세/전남고는 그날을 기억한다/제암산帝岩山/
올배쌀소녀가 운다/녹차녹차 보성녹차/적벽에서/지네 지네/하얀 혁명/개구리 울음소리

시로 쓴 판타지 동화 - 쑲꿈뽟과 앗삉깡꿍 오누이
쀍꽑꿩놩구 아래 피어난 약속/꿈책 속에서 만난 마음의 길/
달빛 연못의 요정이 된 아이/달빛 연못의 아이/사랑으로 여는 달빛의 문/
새로운 전설의 시작/하늘이 무너지는 밤, 숲을 지키는 약속/다시 피어난 별빛의 전설/
꽑꿹호가 찾아온 밤/검은 하늘이 남긴 상처/검은 폭풍 속에서 열린 길/
꽑꿹호의 마지막 항해/별빛 약속의 마지막 이야기/
폭풍에 가라앉은 꽑꿹호와 바닷속에서 깨어난 초록새/
꺼진 꼭구슬과 물속에 남겨진 길/
초록새가 알려준 비밀의 바닷길 /침몰선에 남은 마지막 항해자/
마지막 바다문이 열리는 순간/별빛이 돌아온 숲/

저자 소개 1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1999년부터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한국크리스찬문학》으로 등단하였으며,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시집은 『천둥오리 따라간 때까우』가 있다. 2012년 우당문학회 사무국장을 거쳐서 <생명과사랑의시> 동인으로 은혜와 축복의 나무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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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9월 11일
쪽수, 무게, 크기
272쪽 | 354g | 140*210*20mm
ISBN13
9791186563403

책 속으로

배의 자궁에는 청토끼나무새가 산다 새는 작두금 밟고 플라토닉 사랑을 꿈꾼다 사랑은 춤추는 목동의 나팔 속에 잠들고 꿈은 바람의 옷감을 경작하는 구원의 방패다 배는 봄귀당귀다 배가 말을 타고 산으로 올라가면 아닌 밤중에 홍두깨가 나타나 뇌신경세포에서 해가 뜨고 축색돌기 속으로 번개풀이 돋아난다 배는 카멜레오다 배는 배가 불러도 배가 고프고 배는 배가 잠겨도 배가 나오며 배는 배가 죽어도 배는 죽지 않고 살아난다 배는 대우새다 배는 해가 소주로 울면 막걸리로 웃고 과거로 울면 미래로 웃는다 배는 무당구리다 배는 달이 장끼발로 걸으면 오리발로 걷고 깐치발로 걸으면 까막발로 걷는다 배는 꿈술쟁이다 배는 마귀할멈이 선물한 꿈약을 묵고 맨발로 강을 건너다궁댕이가 반대로 갈라졌다 배는 신비주의다 배의 목구멍 속에서 신밧드가 잃어버린 보석을 싣고 난파된 아나콘타의 방구소리를 들었다 배의 자궁에는 바람이 없다배의 자궁에는 바람을 등지고 사막을 건너간 낙타의 발자국이 남아있다 천왕성에서 가출한 청토끼나무새는 낙타의 방울소리를 듣고 깃털 속으로 사랑을 숨켰다 사랑에 목마른 걸리버가 새의 옆구리를 발로 밟았다 상처로 깃털이 사라진 새는 발가벗고 하늘로 올라갔다 - 시 「배의 자궁에는 청토끼나무새가 산다」 全文
--- p.14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의 얼굴은 점점 짧아지고 말도 줄어들어 “이거요” “아니요” “다음에요” 같은 단절된 문장만 남게 되었으며 산에서는 안개가 완전히 내려와 나무와 골목의 경계를 지우고 있었고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더 빠르게 움직이며 이곳을 보지 않은 채 지나갔고 강 쪽에서는 바람이 더 차가워져 가방의 천을 안쪽에서부터 밀어 올리며 형태를 흐트러뜨렸고 조끼가 다시 나타나 “여기 안 됩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이미 가방은 접히고 있었고 비닐은 걷히고 있었고 사람은 이동하고 있었으며 그 이동은 사실 한 번이 아니라 계속된 반복으로 자리의 이름만 바꾸고 있었을 뿐 처음과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다시 시작되고 있었고 그 와중에도 새는 다시 울고 나무는 다시 흔들리고 산은 그대로 있고 강은 보이지 않지만 계속 흐르고 있었고 가방은 그 아래에서 팔리는 것도 버려지는 것도 아닌 채로 계속 놓였다가 들어갔다가 다시 펼쳐지는 과정을 반복하며 결국 하루라는 것은 어떤 결과가 아니라 밀려나는 순서 그 자체로 남아 있었고 그 순서 끝에서도 아무도 멈추지 않은 채 다음 날이 이미 안갯속에서 준비되고 있는 것처럼에서
--- p.38

저 멀리 송정역의 철로가 검은 음계 몇 줄을 평야 위에 눕히고 열차 하나가 그 위를 미끄러져 간다. 사람들은 떠난다고 말하지만 몸 하나가 사라진 자리에서 억양과 망설임은 오히려 더 짙어진다. 기차가 멀어질수록 광주는 가까워진다.

철길은 두 장소를 잇는 선이 부재와 귀환 사이에 걸린 거대한 현이다. 누군가 건드릴 때마다 내 안쪽에서 오래 묵은 음 하나가 울린다.
--- p.51

“나는 반짝이여라. 네가 오늘 밥을 안 먹었다는 걸 잉어 할머니가 알려주셨당께.”/앗ㅤㅃㅢㅇ깡꿍은 고개를 저었지라./“배가 안 고프당께.”/그러자 반짝이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말했당께./“그랑께 더 먹어야 한당께. 마음이 배고플 때는/몸부터 챙겨야 하는 법이여라.”/그 말에 앗ㅤㅃㅢㅇ깡꿍은 처음으로 조금 웃었당께./다음 날부터 반짝이는 매일 앗ㅤㅃㅢㅇ깡꿍을 데리고/마을을 돌아다녔지라./“저기는 잉어 할머니 집이여라./저분은 물길을 백 년 넘게 지켜온 분이당께.”/“저기는 꾹저구들이 사는 밭이여라./물속에서도 농사는 지을 수 있당께.”/앗ㅤㅃㅢㅇ깡꿍은 신기한 듯 바라보았당께.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보성 제암산과 빛고을의 기억을 품은 엄학섭 제4시집
《배의 자궁에는 청토끼나무새가 산다》 출간
남도의 삶과 역사, 전라도 사투리로 펼쳐지는 판타지 세계

토끼이면서 나무이고, 다시 새가 되어 날아오르는 ‘청토끼나무새’. 그 낯선 존재는 현실과 환상, 인간과 자연, 시와 동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번 시집의 세계를 상징한다.

이번 시집은 보성 제암산과 어머니에 대한 기억, 광주와 전남이 품고 있는 시대의 아픔, 그리고 전라도 사투리로 풀어낸 ‘시로 쓴 판타지 동화’를 한 권에 담았다. 남도의 자연과 삶에서 출발해 기억과 역사, 환상의 세계로 이어지는 독특한 구성이 눈길을 끈다.

책의 첫 번째 축은 생활의 현장에서 길어 올린 삶의 이야기와 어머니, 고향에 대한 기억이다. 「가난한 가방 노점상」, 「가방 노점상」 등에는 거리에서 삶의 무게를 견디는 생활인의 모습이 담겨 있으며, 「어머니」와 「제암산」에서는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했던 고향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시인에게 전남 보성의 제암산은 단순한 고향의 산이 아니다. 어린 날 마른 나뭇가지를 주워 안고 어머니의 손을 잡으며 넘었던 제암산의 능선은 “내 인생의 등뼈이자 언제나 되돌아가는 태초의 자리”다. 어머니의 목소리와 고향 풍경은 시집 전체를 흐르는 정서적 뿌리가 된다.

두 번째 축은 남도의 자연과 역사, 시대의 상처다. 「빛고을 아리랑」, 「도복깃에 새긴 붉은 맹세」, 「전남고는 그날을 기억한다」 등에는 5·18의 아픔과 광주의 기억이 담겨 있고, 「녹차녹차 보성녹차」, 「적벽에서」 등에는 남도의 자연과 삶이 펼쳐진다. 시인은 고향의 아름다움만을 노래하지 않는다. 광주와 전남이 지나온 역사, 그 시간을 견뎌온 사람들의 삶과 기억을 시 속에 함께 담아낸다. 개인의 추억과 지역의 역사가 자연스럽게 포개지면서 남도라는 공간은 단순한 배경을 넘어 시집의 중요한 서사적 뿌리가 된다.

한편 「서울, 서울」에서는 북한산과 남산타워, 지하철과 도심의 풍경을 바라보며 또 다른 삶의 결을 읽어낸다. 고향의 숲과 거대한 도시라는 서로 다른 두 세계는 결국 한 사람의 삶 속에서 기억과 그리움으로 이어진다.

이 시집에서 가장 독특한 부분은 마지막에 수록된 ‘시로 쓴 판타지 동화’ 「쑲꿈뽟과 앗삉깡꿍 오누이」다. 두 오누이가 신비로운 세계를 여행하며 마음속의 빛인 ‘꼭구슬’을 찾아가는 긴 이야기로, 시적 언어와 동화적 서사가 결합되어 있다.

뜻보다 먼저 소리로 다가오는 ‘쑲꿈뽟’과 ‘앗삉깡꿍’이라는 이름에는 남도의 말맛과 어린아이의 상상력이 함께 살아 있다. 마치 오래된 주문처럼 낯설고 정겨운 이 이름들은 현실의 언어를 벗어나 판타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첫 관문이 된다.

특히 작품 전반에는 전라도 사투리의 말맛과 리듬이 적극적으로 살아 있다. 사투리를 단순히 고향의 정취를 되살리는 장치로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익살스럽고 정겨우면서도 때로는 신비로운 리듬을 만들어내며 현실에는 없는 새로운 세계를 탄생시키는 창조적 언어로 확장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리고 그 세계의 한가운데 ‘청토끼나무새’가 있다. 토끼이면서 나무이고, 다시 새가 되어 날아오르는 이 낯선 존재는 현실과 환상, 인간과 자연, 시와 동화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이번 시집의 성격을 상징한다. 동시에 우리가 오래전에 잊어버린 순수한 마음의 한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고향과 도시, 과거와 현재, 역사와 개인, 현실과 꿈. 엄학섭의 시는 이 서로 다른 세계 사이에 길을 놓는다. 《배의 자궁에는 청토끼나무새가 산다》는 삶의 무게를 견뎌온 사람들의 이야기이자, 어머니와 고향을 향한 기억이며, 남도의 역사적 아픔을 품은 서사이고, 잃어버린 순수와 상상력을 찾아가는 긴 꿈의 여행이다.

“우리는 아직 마음속의 불씨를 간직하고 있는가. 누군가의 손을 잡고 다시 길을 떠날 수 있는가.” 《배의 자궁에는 청토끼나무새가 산다》는 그렇게 우리에게 조용히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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