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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 고구려사
양장
마다정 등저 서길수
사계절 2006.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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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옮긴이의 해설
발간사
머리말

[이론편]

1장 고대 중국의 번속(藩屬)
1. 번(藩), 속(屬)의 개념에 대하여
2. 선진 시기의 5복제(五服制) 이론
3. 선진 시기의 "이하관(夷夏觀)"
4. 한당 시기 번속 관계의 건립과 유지

2장 고구려국의 귀속
1. 역대 왕조의 고구려 귀속에 대한 인식
2. 중국에 대한 고구려의 동일 인식
3. 고구려가 중국 강역 형성에 끼친 작용


[역사편_상]

1장 한사군 연구
1. 4군 설치 이전의 동북 변경
2. 한사군의 설치 및 연혁
3. 4군의 지위와 명망

2장 고대 중국 정권과 고구려의 상호 정책 연구
1. 한에서 당까지 각 왕조의 고구려에 대한 정책
2. 고구려의 한에서 당까지 각 왕조에 대한 정책

3장 고구려와 중원 지역의 경제 문화 교류 연구
1. 고구려와 중원 지역의 경제 교류
2. 고구려와 중원 지역의 문화 교류

4장 고구려 활동 영역의 변천 연구
1. 건국 초기의 활동 구역
2. 동한. 조위 시기의 활동 구역
3. 양진. 남북조 시기의 활동 구역
4. 수당 시기의 활동 구역

5장 고구려 문화 연구
1. 교육과 문학
2. 제사
3. 불교와 도교
4. 비석 석각
5. 벽화 예술
6. 음악과 춤


[역사편_하]

1장 구려(句麗) 고찰
1. 정사에 기록된 구려
2. 구려 명칭의 출현
3. 구려국에 대해서

2장 고구려 건국 시기 고찰
1. 고구려 건국 시기에 대한 몇 가지 견해
2. 고구려 건국 시기 고찰
3. 건국 전설에 나타난 한(漢)문화의 본체

3장 고구려 왕들의 재위 시기 고찰
1. 사서에 기록된 갈래
2. 고구려의 왕과 연대

4장 고구려의 국가 부흥 활동 고찰
1. 안순의 국가 부흥 활동과 실패
2. 보장의 국가 부흥 활동과 실패

5장 고구려 5부에 대한 고찰
1. 고구려 5부의 형성과 지역
2. 5부 지역의 문화 유적 조사
3. 만발발자 유적 발굴
4. 5부의 사회생활과 경제생활


[연구편]

1장 고구려 고고 연구 평론
1. 중국의 고고 조사와 발굴
2. 중국 학자의 고고 연구
3. 외국 학자의 고고 연구

2장 중국 학자들의 고구려 귀속 연구에 대한 평가와 분석
1. 고구려 귀속 연구는 이미 고구려 역사 연구 논쟁점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2. 고구려 귀속 연구는 더 깊어져야 한다
3. 강역 이론 연구를 강화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3장 오대(五代)에서 명(明)까지의 중국 정사에서 고구려가 왕씨 고구려전, 조선전에 포함되어 쓰인 원인에 대한 분석
1. 당(唐)이전 중국 정사에 나타난 고구려에 관한 기록
2. 오대에서 명까지의 중국 정사에서 고구려와 왕씨 고려의 관계에 대한 오기(誤記)의 변천 과정

4장『삼국사기』와 고구려 역사 기술
1. 김부식의 생애와 사학 사상
2.『삼국사기』의 편찬과 간행
3.『삼국사기』의 체제와 내용
5.『삼국사기』의 고구려 역사 기술

5장 조선 학자 손영종의 고구려사 연구에 대한 평론
1. 손영종 교수
2. 손영종의『고구려사』3권에 대한 평론
3. 손영종의 새로운 저서『고구려사의 제 문제』에 대한 평론
4. 조선 학계 고구려 연구에서 손영종이 차지하는 위치와 영향

6장 한국 학계의 고구려 연구에 대한 평론
1. 백산학회의 연혁 및 주요 학술 활동
2. 백산학회의 최근 고구려사에 관한 주요 연구 성과
3. 고구려연구회의 연혁 및 주요 학술 활동
4. 고구려연구회 간행『고구려연구』1~11집에 수록된 주요 논문에 대한 논평

꼬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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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저자 : 마다정, 리다롱 외
마다정(馬大正)
1938년생. 현재 중국사회과학원 학술위원회 위원이며, 중국 변강사지연구중심 연구원이자 박사과정 지도교수이다. 저서로는 『변강과 민족―역사의 단면에 대한 연구와 고찰(邊疆與民族―歷史斷面硏考)』, 『이역에서 떠도는 민족(漂落異域的民族)』(공저), 『20세기 중국 변강 연구(二十世紀中國邊疆硏究)』(공저) 등이 있다.


리다롱(李大龍)
1964년생. 현재 중국 변강사지연구중심 편집부에서 일하고 있다. 주로 한당(漢唐) 변강 연구에 종사하고 있다. 저서로는 『양한 시기의 변경 정책과 변경 관리(兩漢時期的邊政與邊吏)』, 『당조와 변강 민족 사신의 왕래 연구(唐朝和邊疆民族使者往來硏究)』, 『고대 중국 고구려 역사 총론(古代中國高句麗歷史總論)』(공저)이 있다.


겅톄화(耿鐵華)
1947년생. 현재 통화사범학원 고구려연구소 부소장 겸 교수이다. 주요 저서로는 『광개토대왕비 신고(好太王碑新考)』, 『중국 고구려사(中國高句麗史)』, 『고구려 사적 회요(高句麗史籍匯要)』(공저), 『고구려 와당 연구(高句麗瓦當硏究)』(공저), 『광개토대왕비―1580년 제(好太王碑―一千五百八十年祭)』가 있다.


권혁수(權赫秀)
1962년생. 중국 조선족인 그는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문학 박사를 취득했다. 현재 동북사범대학 역사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세기의 대심판(世紀大審判)』, 『19세기말 한중관계사 연구(十九世紀末韓中關係史硏究)』, 『당대 한국 인문사회과학(當代韓國人文社會科學)』(공저), 『고대 중국 고구려 역사 총론(古代中國高句麗歷史總論)』(공저) 등이 있다.
역자 : 서길수
1944년 전남 화순 출생. 단국대 대학원에서 한국경제사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세계에스페란토협회 임원과 한국에스페란토협회 부회장, 경제사학회 부회장, 사단법인 고구려연구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고구려연구회 이사장, 서경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고구려 역사유적 답사』(사계절, 1998), 『대륙에 남은 고구려』(고구려연구회, 2003) 등이 있고 논문으로는 「송화강 유역의 고구려 산성 연구」(1999), 「고구려 축성법 연구(1∼5)」(1999∼2005), 「중국의 역사왜곡 현장에 관한 사례 분석」(2005) 등이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6년 02월 27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822쪽 | 1176g | 153*224*40mm
ISBN13
9788958281245

책 속으로

고구려사의 비전문가가 동북공정 주도 ― 동북공정을 주도한 두 사람(마다정, 리다롱)은 원래 동북지방의 역사, 특히 고구려사 전공자가 아니다. 마다정(1938년 생)은 산동대학 역사학과를 졸업하고 중국사회과학원에 들어가 줄곧 중국 변경의 역사를 연구하다 1995년 이후 고구려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리다롱은 서북대학 역사학과를 졸업하고 중국사회과학원 민족연구소에서 2000년까지 『민족연구』라는 잡지의 편집을 맡고 있었다. ‘중국 고구려사’를 처음 쓰면서 왜 기라성 같은 고구려 연구가들을 놔두고 시작한 지 몇 년 안 되는 초보자 두 사람에게 주도적인 역할을 맡겼을까? 이 대답은 대단히 간단하다. 이 책은 그동안 고구려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개연성 있는 서술을 한 것이 아니고 ‘동북공정’이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미리 짜 놓은 프로그램에 맞추어 만들어 낸 것이기 때문이다. ― 「옮긴이 해설」 9쪽

자국의 정사 부정하면서 견강부회의 논리 펴 ― 중국 학자들의 최대 고민은 바로 중국의 정사인 25사에 ‘고구려=고려’라고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송사』에서 “장흥 연간에 권지국사 왕건이 고씨 왕을 이어 왕위에 올랐다”는 구절은 중국 학자들을 가장 곤혹스럽게 하는 부분이다. 중국의 정사를 그대로 인정하면 고구려가 한국사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결국 중국 학자들은 자기 나라 정사를 부정하고 나선다. 중국 학자들은 『송사』의 착오를 그 뒤 사서들이 계속 따랐기 때문에 마치 ‘고구려=고려’라고 잘못 인식하게 되었고, 이어서 한국사에서 조선이 들어서면서 중국사였던 고조선(기자조선, 위만조선)도 조선의 선대인 것처럼 ‘자기 머리에 씌워 놓았다’는 것이다. 그 결과 현재를 사는 사람들에게 중국 고대 동북지역 지방정권의 연혁에 대한 인식에 여러 가지 잘못된 견해를 가져다주었다는 것이다.
― 「옮긴이 해설」 45쪽

“고구려가 한국사라는 주장은 비학술적이다” ― 한당(漢唐) 번속 이론의 형성과 실천을 통해 보면 고구려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변경 지방 민족 정권이었다. 이것은 원래 심각하게 토론해야 할 필요가 없는 문제였지만 일부 비학술적인 요소의 영향으로 국내 학계에서 일부 잘못된 인식이 생겨났고 외국의 일부 학자들은 이를 더욱 부풀림으로써 사람들의 인식에 더 큰 혼란이 생겼다. 이 때문에 고구려 귀속 문제에 대한 연구는 반드시 변화가 필요한 절박한 상황에 이르렀다. ― 본문 177쪽

“중국의 통일 대업에 고구려 백성이 큰 공헌을 했다” ― 고구려 멸망 뒤에는 많은 고구려 백성들이 중화 민족으로 융합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중국의 통일 대업을 완수하는 데 특별한 공헌을 하였는데, 이것 역시 고구려인이 중국과 같은 인식을 가졌다는 표현의 하나였다. … 만약 고선지 같은 선조가 중국에 대해 동질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상식적인 도리로 볼 때 그들은 자손들에게 당 왕조에 대한 커다란 원망을 심어주었을 것이며 그 자손에게 당 왕조에게 협력하라고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 본문 199쪽

고구려는 한반도의 중원진출을 막는 방파제였다? ― 고구려 정권의 존재는 일정한 정도 신라, 백제, 특히 신라가 북쪽으로 영토를 확장하려는 욕망을 저지시키고, 우리나라 전통 강역을 완전하게 보전하는 데 일조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당 왕조가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킨 뒤 신라는 당 왕조와의 밀접한 신속관계를 이용하여 북쪽으로 확장하고자 하던 바람을 결국 실현하게 된다. 고구려 정권 남부의 일부 영토를 자신의 통치 아래 받아들여 북부 변경이 지금의 대동강에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조성된 원인은 당 왕조가 고구려를 통일한 뒤 신라가 칭신납공하는 거짓에 미혹되어 중국으로 하여금 영원히 한사군의 일부 지역에 대한 직접 통치권을 잃어버리게 했기 때문이다. ― 본문 205쪽

압록강 이남까지 중국 영역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 서기 935년 왕건이 세운 고려가 신라를 대신하고 1932년에는 고려의 권신이었던 이성계가 왕씨 고려의 통치권을 찬탈하여 1939년 명조에 청하여 조선 왕으로 봉해지면서 강역은 북쪽으로 다시 확장되어 마침내 압록강이 명 왕조와의 국경이 되었다. 고구려 정권이 수세기 동안 지켜온 지금의 압록강 이남의 넓은 국토는 이렇게 한반도 남부에서 일어난 지금 조선의 고대 왕조가 차지하게 되었던 것이다. ― 본문 372쪽

주몽 전설과 중화 전설의 유사함 내세워 혈연관계의 증거로 주장 ― 모든 주몽 또는 추모 전설은 아주 치밀하게 개조된 중화(中華) 전설이다. 왕충의 『논형』에서부터 『위략』에 이르기까지, 나아가 여러 사서의 「고구려전」이 각 사가들의 손을 거치면서 만 번을 변한다고 하여도 그 근본을 떠날 수 없는 것으로 한 문화의 본체는 변하지 않았다. 호태왕비 비문을 보면 고구려인은 은상 전설의 주요 부분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지만 주나라 사람의 전설에 대해서는 생략된 부분이 나타난다. 이는 고구려인과 은상 씨족의 혈연관계를 더욱 분명하게 증명해주는 것이다. ― 본문 491쪽

한반도 대부분이 중국 영토였다는 주장도 있어 ― 두루 알다시피 유구한 역사 시기 안에서 한반도 대부분, 특히 현재의 한강 이북 지역은 줄곧 고대 중국의 영토였다. 서기전 3세기 말, 주 왕조는 제후국의 하나인 연나라, 즉 지금의 요하 유역에서 한반도 북부에 이르는 지역에 정식으로 요동군을 설치하고 군 치소를 양평(襄平: 지금은 요양 부근)에 두었다. … 한 무제는 위씨조선을 멸망시킨 뒤 반도에 진번, 임둔, 낙랑, 현도 4군을 설치하는데 반도 대부분은 한 왕조가 직접 관할하는 군현 지역이었다. 당이 고구려를 멸한 뒤에는 반도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하고 그 아래 도독부·주·현을 관할하였다. ― 본문 618쪽

안에서는 지방 정권, 밖으로 나가면 할거 정권. 고구려는 어디있든 자기네 정권? ― 고구려가 어느 국가의 강역 안에서 건립되었는가 하는 점에 있어서, 어떤 사람은 지금의 국경선을 이용하여 나누어 구별하면서 전기는 중국 국경선 안에, 후기는 두 나라의 국토에 가로 놓여 있다거나 후기는 주로 조선에 있었다고 하였다. …이것은 역사상 오랜 시간 동안의 국경선의 변화 및 역사, 오늘날의 국경선 등의 상황을 종합하여 확정한 것이다. 이처럼 전통 강역 내에서 복속되었을 때는 지방 자치 정권에 속하고 반역하였을 때는 지방 할거 정권에 속한다. 전통 국경선 밖에서 신하로 복종하였을 때는 우리나라의 이민(移民) 정권에 속하며 반역했을 경우에는 독립 국가에 속한다. ― 본문 633쪽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 기획의도

* 동아시아 역사논쟁과 동북공정

한·중·일 간의 역사논쟁은 미국의 패권적 지배력이 축소되는 상황에서 새로운 동아시아의 세력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전초전이라고 할 수 있다. 한·일과 중·일간의 역사논쟁은 과거 식민지 지배기간에 따른 배상과 사과를 중심으로 한다. 이는 식민지 지배 종식 이후 당연히 거쳐야 할 과제라고 볼 수 있다 . 그러나 2003년 여름부터 시작된 한·중 간의 역사논쟁은 시간적으로도 먼 고대사에 관한 것이고 목적도 ‘과거사를 정리’하는 것이기 보다는 미래에 대한 정치적 포석에 가깝다. 그 갈등을 촉발시킨 것은 바로 ‘동북공정’이라는 중국의 역사서술 프로젝트에 의해서였다.


* 동북공정의 배경

중국은 한족을 비롯하여 56개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국가이다. 이는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에 의해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사회주의 국가체제를 이루고 있다. 1980년대에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하면서 소수민족의 이탈 가능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1983년 사회과학원 직속기관으로 ‘중국변강사지 연구중심’이라는 연구소를 설립하여 변경의 역사·지리·영토 문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91년 소수민족의 분리독립으로 소련이 해체되고 소련과 경계를 이룬 중국 서북부 변강지역의 동요가 감지되자 중국은 변경 지역에 대한 연구를 본격화한다. 그 결과 티벳을 중심으로 한 1기 서북공정과 운남성을 대상으로 2기 서남공정이 이루어졌다. 동북공정은 그 3기 프로젝트로서 한·중·미·일의 동아시아 역학관계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동북변강지역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새삼 부각되는 와중에 이루어진 것이다. 서북과 서남지역은 현재 그 역사적 모국이 독립된 주권국가가 아니지만 동북지역은 엄연히 한국과 북한이 강력한 역사적 연고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반발이 매우 거셌다.


* 동북공정 이후 2년 반… 결과물에 맞는 대응을 해야

동북공정이 우리에게 최초로 알려진 것은 2003년 7월 14일 중앙일보 보도에 의해서였다. 「고구려사를 중국사의 일부로」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간 후 언론에서는 연일 중국의 패권주의를 질타하였고 정치권도 덩달아 역사왜곡중단촉구 결의안을 냈다. 학자들의 반응도 다양했다. 당시 한국사회의 대응은 매우 감정적이고 일시적었으며 지금까지도 정리된 입장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당시 언론은 종합적인 자료를 가지고 보도한 것이 아니라 일부 논문이나 소식통을 인용한 것이 대부분이었고 학계도 조속한 대응을 요구하는 여론에 밀려 개별 사안에 대한 논문으로 반박하는데 그쳤다. 게다가 일부 네티즌 사이에서는 ‘고토회복’이 불거져 무책임한 국수주의적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동북공정은 그 의도가 아무리 비학술적이고 정치적인 것이라 해도 결과물은 일단 책이다. 막대한 연구비와 인력을 투입하여 한국 고대사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작업을 벌였고 그 성과를 통해 동북지역의 역사적 주권을 가지려는 것이다. 그러한 작업에 대해 한국사회는 여론에 편승한 애국주의와 민족주의로만 대응했던 것이다. 이는 학술결과에 대한 대응은 오로지 학술행위로서만 반박할 수 있다는 평범한 사실에 대해 한국사회의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내년이면 동북공정이 종료되고 그 결과물인 『동북공정 고구려사』(원제: 『古代中國高句麗歷史續論』)는 그것을 넘어서는 저술이 나오지 않는 한 어떤 방식으로든 동아시아 역사 분쟁의 씨앗으로 남을 것이다.

* 학술적 대응의 새로운 출발

한국사회가 그동안 동북공정에 대해 이처럼 ‘목소리’만 키울 수밖에 없었던 것은 무엇보다 동북공정의 구체적 내용이 담긴 원자료가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북공정의 공식 결과물인 “동북공정 고구려사”는 중국에서 나온 지 2년이 지난 이제야 그것도 국가의 지원을 받고 있는 고구려연구재단이 아닌 고구려 연구자 한 개인의 손을 거쳐 비로소 번역되었다. 고구려연구에만 15년 넘게 매달려온 고구려연구회 이사장 서길수 교수가 한국 역사학계의 정확하고 구체적 대응을 촉구하면서 소개하는 이 책은 동북공정에 대한 한국 사회와 역사학계의 대응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다시금 학계는 온 힘을 다해 학술적 논리 개발에 힘써야 할 것이며, 국가 역시 국가 안보와 국경문제라는 측면에서 중국과 설득력 있는 외교 정책을 적극 펼쳐 나가야 할 것이다.


▶ 주요 내용

* 한국 고대사 총망라하여 결국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권이라고 주장

이 책은 824쪽의 방대한 분량인데 핵심논리를 제시하는 ‘이론편’, 한국의 고대사 전반을 서술하면서 그것이 모두 중국에서 발현하였음을 주장하는 ‘역사편’, 한국의 고구려사 연구성과를 총망라하여 평가하는 ‘연구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고대사의 이론과 역사를 거의 모두 망라하는 포괄적인 구성이다. 그러나 그 결론은 오직 고구려사가 중국의 지방정권이라는 데 모아져 있다.

* 이론편 - 현대판 화이사상(華夷思想)인 ‘통일적 다민족국가론’
본문의 서두를 이루는 「이론편」에서 “몇 백년이라고 해도 좋고 몇 천년이라고 해도 좋다. 이 범위(청나라 영토)에서 활동한 민족은 모두 중국 역사상의 정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시 말해 소수민족들의 역사는 모두 중국의 역사이며, 소수민족과 연관된 주변 국가의 역사도 중국 역사가 되는 상황에 놓이는 것이다. 이에 고구려 역사도 중국에 귀속된다는 결론을 낸다. 다음 「역사편」에서 고구려 귀속문제를 언급하면서 첫째로 고구려의 연원을 중국 상인(商人)으로 보고, 둘째로 중국의 강역 형성에 고구려가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는 평을 한다. 셋째로 중국은 고구려를 일방적으로 예속시킨 것이 아니라 고구려인들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중국에 두었다고 주장한다. 옮긴이는 이런 말들이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를 해치는 힘의 논리에 바탕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 역사편(상·하) - 기존 연구 무시한 채 정치 논리에 따라 한국 고대사 재단
옮긴이에 따르면 「역사편」은 이 책의 모든 연구와 마찬가지로 남북한과 일본 등 외국의 연구성과를 전혀 참고하고 있지 않다. 이는 학문적 ‘화이사상’으로서 이 책의 저자들 역시 대부분의 다른 중국 학자들처럼 주변국의 연구성과에 대한 공부가 전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고조선에서 고구려 멸망까지의 시기를 다루면서, 고구려의 건국이 이미 고조선이 멸망하고 들어선 한사군의 현도 땅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 귀속문제는 자명하다는 논리를 편다. 옮긴이는 이러한 내용이 사료에 대한 자의적 해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평한다. 주몽이 고구려를 세운 서기전 37년 홀본 땅은 한나라 현도가 아니라 이미 부여의 영역이었으며, 예속관계였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고구려가 존속한 705년 동안 중국이 35개 나라로 이합집산한 것을 볼 때 고구려가 대체 어느 나라의 지방정권이었느냐고 반문한다.

* 연구편 - 한·중·일 3국의 기존 연구 결과를 분석
이 부분 역시 고구려 귀속문제에 대한 논리를 강화하기 위해 기존의 학설을 선별·취합한 것이다. 자국의 연구를 정리하면서 고조선부터 부여까지 북방지역의 모든 역사를 조사해야 함을 강조하고 고조선도 선진 시기 분봉제 아래의 지방정권이라고 규정한다. 더불어 강역(疆域) 이론을 강화해야 한다고 하면서 “중화인민공화국 국토 범위는 물론, 이 범위 내에서 활동한 민족은 모두 중국사의 민족이며 이 범위 내에서 건립된 정권은 모두 중국 역사상의 정권으로 여겨야 한다”는 1980년대의 주장을 소개하는데, 옮긴이는 이 논리가 바로 소수민족 역사에 대한 중국의 입장이며 고구려사 침탈까지 이어져온 정치적 학술행위의 근본 인식이라고 진단한다. 더불어 백산학회와 고구려연구회의 저서, 학회활동내역, 주요 인사에 대한 조사가 자세히 덧붙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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