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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위에는 무엇이 있을까? 저기 저 위 말이야. 모두가 오르려 하는 그곳.
누군가 도달했을까? 아마도. 혹은 그랬으면 좋겠어. 저 아래에는 무엇이 있을까? 저기 저 아래 말이야. 모두가 벗어나고 싶어 하는 그곳. 누군가 벗어났을까? 아마도. 혹은 그랬으면 좋겠어. 저 위와 저 아래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누군가 거기 있을까? 아마도. 혹은 그랬으면 좋겠어. 올려다보는 것과 내려다보는 것은 어떤 게 다를까? 오르려는 사람과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이브에 굳이, 굳이, 내려와서 온 세상에 선물하는 산타는 또 어떤 게 다를까? 있잖아, 그런데 그거 알아? 눈을 뒤집으면 아름다운 곡이 돼. 위로 오르는 곡과 아래로 내리는 눈. 동글동글한 눈송이가 하얗게 내리는 날이었어. 누군가 노랗게 물든 봄날의 희망을 잘라 잔뜩 쌓더니 내리는 눈으로 콩콩 못질하기 시작했어. 그러곤 한발 한발 오르기 시작했지. 그러다 재료가 모자라면 여름의 따끈한 열망을 베어다가 붙이기도 했어. 가을은 어디에 쓰였냐고? 글쎄. 가을은 풀들도 서로에게 어깨를 기대고 눕는 계절이라서. 안녕. 나는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해.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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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글동글한 눈송이가 하얗게 내리는 날이었어.
누군가 노랗게 물든 봄날의 희망을 잘라 잔뜩 쌓더니 내리는 눈으로 콩콩 못질하기 시작했어. 그러곤 한발 한발 오르기 시작했지. 우리가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은 어디일까요? ‘사다리’를 타고 높이 높이 올라가던 친구들은 꽁꽁 얼어붙고, 산타 할아버지는 그만 감기에 걸려 재채기가 〈에이치〉 하고 납니다. 사다리는 우르르 무너지겠지요. 무너진 사다리는 사라질까요? 무너진 사다리는 너와 나를 이어주는 ‘다리’가 됩니다. 다리 위에는 산타가 가져다준 선물이 있고,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도 있습니다. 사다리에서 출발한 그 다리는 우리들의 기적을 상징합니다. 크리스마스는 12월에만 존재하지 않고 1월에도, 2월에도, 3월에도, 8월에도 계속 이어집니다. 동글동글한 눈송이는 편지를 타고 아름다운 것들을 향해 1년 내내 날아가거든요. 여름의 따끈한 열기와 가을의 풀들에게도 날아가고, 다시 12월이 오면 내 앞에 놓인 다리를 통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지금 외로운가요? 우리는 모두 각자만의 사다리를 가지고 있어요. 재채기를 한번 해보세요. 여러분의 다리 위로 친구가 찾아올 거예요. 수학적이고도 철학적인 사고력으로 연장되는 그림책 《사다리》를 펼쳐 만나보세요. 저 위에는 무엇이 있을까? 저 아래에는 무엇이 있을까? 저 위와 아래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누구를 위한 사다리인가요?” 강남 학원가에서 시작된 조기 사교육 열풍은 이제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대형 학원 입학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학원을 다니고 과외를 하는 어린이들의 연령은 7세가 가장 많다고 합니다. 공포감과 불안감 조성을 위한 문턱 좁히기 마케팅은 결국 ‘7세 고시’라는 사회적 기현상을 낳았습니다. 만 5세 어린이들은 추상적 사고에서 구체적 사고로 비로소 넘어가며 인지적 학습의 바탕을 세워 가는 발달과업을 이룰 때입니다. 유아기에 충분한 상상 놀이를 경험하지 못한다면 한 인간의 삶은 전 인간적으로 발달할 수 없으며 그만큼 행복할 기회를 박탈하게 되는 것입니다. 개개인의 창의성과 예술성은 바로 이러한 무한한 상상과 꿈, 비현실과 판타지에서 비롯됩니다. 부모님들이 유치하더라도 크리스마스를 기념해 선물을 준비하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지요. 환상을 품고 이야기를 짓는 경험을 가진 인간만이 훗날 충분히 창의로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산타를 믿지 않는 어린이, 산타 따위는 초대할 시간과 마음의 여유도 없이 경쟁에 내몰려야 하는 어린이가 진짜 가져야 할 능력은 서로 연대하고 공감하는 능력입니다. 그것이 바로 AI가 갖지 못한 우리의 지능입니다. 물론 적절한 경쟁이 불가피하다고 하더라도, 경쟁에서 낙오되었을 때 내 곁에 누군가가 있다는 걸 알려줄 한 권의 그림책이 있다면 어떨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