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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izabeth La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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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림은 침대 끝에 앉아 있었다. 벽면을 모두 채우다시피 한 축구 포스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흰 종이 한 장을 손으로 만지작거리고 있는 카림의 표정은 자못 심각해 보였다.
내 인생의 10가지 목표 작성자: 카림 아부디, 팔레스타인 라말라 야파 아파트 15호 카림은 자신이 종이에 써놓은 그 문구에 조심스럽게 밑줄을 그었다. 그런 다음 아래 쪽 빈 칸에 정성껏 뭔가를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01.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절대 포기할 수 없는 나의 꿈). 02. 멋지고, 인기 있고, 잘생긴 190센티미터의 남자(적어도 자말 형보다는 커야함). 03. 팔레스타인을 해방시키는 민족의 영웅. 04. 유명한 TV 사회자 또는 배우(꼭 유명해야 함). 05. 불후의 명성을 쌓는 컴퓨터 게임 개발자. 06. 부모님과 형, 선생님의 도움 없이도 원하는 일을 척척 해낼 수 있는 사람. 07. 이스라엘 탱크와 헬리콥터의 소재가 되는 강화 강철을 녹여 버릴 수 있는 화학 공식 수립 자. 08. 조니와 다른 친구들에 비해 힘이 셀 것. 거기까지 써내려간 카림은 갑자기 생각이 막히는 바람에 볼펜 끝을 씹기 시작했다. 멀리서 들리는 앰뷸런스 소리가 오후의 대기 속에서 메아리쳤다. 카림은 고개를 들어 창밖을 내다보았다. 크고 맑은 눈동자가 곧고 검은 머리칼 아래서 반짝였고, 햇볕에 탄 갸름한 얼굴은 아이답게 천진했다. 카림이 다시 뭔가 생각난 듯 볼펜을 놀리기 시작했다. 09. 살아남기. 혹시 총에 맞더라도 치료가 가능한 부위여야 함. 절대 머리나 척추가 아니기를, 인샬라. 10. 그러나 열 번째 항목에서 또 다시 생각이 막혔다. 카림은 나중에 묘안이 떠오를 경우에 대비해 열 번째 항목을 빈 칸으로 남겨두기로 마음먹었다. 카림은 자신이 정성스럽게 작성한 항목을 차례로 읽어 내려가며 잠시 앉아 있었다. 줄무늬 운동복 깃에 볼펜을 두드리던 카림은 다시 새 종이를 꺼내 들었다. 이번에는 더 빨리 무언가를 써내려갔다. 절대로 되고 싶지 않은 10가지 01. 아빠 같은 가게 주인. 02. 엄마가 매일 내 미래의 직업 일순위로 추천하는 의사(왜? 엄마도 내가 피를 싫 어한다는 걸 아신다). 03. 키 작은 남자. 04. 파라 같은 여자와 결혼하는 것. 05. 학교에서 본 아이처럼 등에 총을 맞아 평생 휠체어 신세를 지는 것. 06. 자말 형 같은 여드름 박사. 07. 이스라엘 탱크가 우리 집을 짓밟아 이가 들끓는 난민촌 텐트 생활을 하는 것. 08. 학교에 가는 것. 09. 점령당해 사는 것. 이스라엘 군인들이 항상 통행금지를 시키는 것. 두려움에 떨며 집안 에만 틀어박혀 있는 것. 10. 죽는 것. 카림은 자신이 써놓은 항목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썩 완벽하지 못하고, 뭔가 중요한 항목이 빠진 듯한 느낌이었다. --- p.1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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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들은 초록색 돌을 한 줄로 배열했다. 그리고 그 옆으로 흰색 돌을 놓았다. 검정색 비닐봉투로 세 번째 줄을 만드는 데 필요한 돌을 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빨간색 돌들을 국기의 한 쪽 끝에 삼각형으로 배열했다.
마침내 팔레스타인 국기가 완성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작품을 만족한 얼굴로 감상했다.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애초에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훌륭한 작품이었다. 그들은 국기 주위를 걸으면서 각자 탄복을 거듭했다. “국기를 훨씬 더 크게 만들 수도 있었는데.” 카림이 비뚤어진 흰색 돌 하나를 똑바로 맞추며 말했다.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좋은 것 같은데.” “살림 형이 출소하면 이걸 보여줄 거야.” 메뚜기가 말했다. 카림은 축구를 하지 못해 울적했던 기분이 완전히 풀렸다. 국기를 보노라니 자부심이 한껏 고조되었다. 그들은 비로소 한 뙈기의 땅에서 뭔가 뜻있는 일을 한 것이다. 그들은 이제 이 한 뙈기의 땅을 진정한 자신들의 공간으로 만들어 갈 생각이었다. --- p.163~1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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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 갇힌 듯한 나날이 계속되지만 팔레스타인 아이들의 꿈은 자란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카림의 꿈은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공을 찰 수 있는 땅도 없고 시간도 주어지지 않는다. 통행금지가 풀리면 아파트 벽에 대고 공을 차는 것을 특별한 즐거움으로 여길 만큼 카림의 일상은 암울하기 짝이 없다. 카림은 이스라엘 탱크와 헬리콥터의 소재가 되는 강화강철을 녹일 수 있는 화학공식을 수립하겠다는 야무진 꿈도 갖고 있다.
카림의 형인 자말은 틈만 나면 친구들과 어울려 이스라엘 탱크를 돌로 공격한다. 카림은 걱정이 되는 한편 은근히 형의 행위를 동경할 만큼 이스라엘 군에 대한 적개심을 품고 있다. 팔레스타인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자살폭탄테러범을 ‘순교자’라 부르며 존경심을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이스라엘 군들이 그들의 자유를 빼앗고, 가족과 친척, 이웃들을 가두고 죽이기 때문이다. 카림에게 가장 절박한 문제는 맘껏 축구를 할 수 있는 운동장을 마련하는 것이다. 폭격으로부터 부서진 건물의 잔해와 쓰레기들이 널린 공터를 운동장으로 만들기 위한 카림과 조니, 메뚜기의 분투가 눈물겹게 펼쳐진다. 통행금지가 해제되면 공터로 나와 쓰레기와 돌을 치우는 아이들, 마침내 축구를 할 수 있는 ‘한 뙈기의 땅’을 만들지만 그곳은 다시 이스라엘 탱크의 무한궤도 아래 짓밟혀 폐허가 된다. 카림은 통행금지를 어기고 쓰레기 더미에 숨어 있다가 다리에 총을 맞는다. 가까스로 형 자말의 도움을 받아 탈출한 카림에게는 또 다른 슬픔이 기다리고 있다. 단짝 친구 조니가 요르단의 암만으로 이주하게 된 것. 조니의 가족처럼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기회만 되면 어디로든 떠나고 싶어 한다. 풀 한 포기마저도 자유로울 수 없는 팔레스타인의 현실이 사람들의 이주 결심을 부채질한다. 그러나 카림은 끝내 팔레스타인 땅에 남아 아이들과 놀 수 있는 ‘한 뙈기의 땅’을 만들겠다는 각오를 다진다. 카림과 그의 친구들은 역경에 굴하지 않고, 꿈을 향해 한 발씩 앞으로 나아간다. 카림과 그의 친구들의 처지를 이해한다는 것은 곧 자유와 평화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분노로 얼룩진 팔레스타인 땅에 언제쯤 평화가 정착될 수 있을까? 그 간절한 여망을 담은 이 소설은 팔레스타인이 처한 진실과 함께 자유와 평화의 소중한 의미를 새삼 깨닫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