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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장주의
김현우 저
나름북스 2026.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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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들어가며: 한국의, 한국만의 성장주의를 들여다보고 넘어서기

1부 한국의 성장주의, 역사와 특징
1-1. 한국의 성장주의 약사: 개화에서 선진국까지
1-2. 박정희 정권: 한강의 기적과 성장주의
1-3. 87년 민주화와 IMF 사태를 통한 성장주의의 변화와 지속
1-4. 한국의 성장주의 이데올로기와 결과들

2부 한국 성장주의의 조각들
2-1. 한국의 아파트와 성장주의
2-2. 한국의 자동차, 도로, 토건
2-3. 한국의 인구정책과 성장주의
2-4. 한국의 교육정책과 입시제도
2-5. 한국의 GDP와 주가
2-6. 한국의 성장주의와 삼성
2-7. 한국의 핵발전과 성장주의
2-8. 한국의 정치체제와 성장주의

3부 한국 성장주의 속의 사람들
3-1. 한국의 지배 엘리트와 성장연합
3-2.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와 성장주의
3-3. 한국의 노동계급과 성장주의
3-4. 한국의 사회운동과 성장주의
3-5. 한국의 MZ 세대와 성장주의

4부 한국의 탈성장
4-1. 한국 탈성장의 이론과 담론 자원: 한울님부터 녹색평론까지
4-2. 한국의 나우토피아들을 찾아서
4-3. 한국의 탈성장, 세 개의 계기
4-4. 정의로운 전환과 탈성장

마무리하며
참고문헌

저자 소개 1

탈성장과대안연구소 소장.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진보신당 정책연구원,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으로 활동하며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위한 연구와 실천을 이어왔다. 현재는 〈탈핵신문〉 이사장으로 신문 발간을 돕고, 기후위기 교육과 탈성장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쓴 책으로 『안토니오 그람시』, 『정의로운 전환』 등이 있으며, 함께 쓴 책으로 『인권으로 살펴본 기후 위기 이야기』, 『착한 에너지 나쁜 에너지 다른 에너지』, 『탈핵』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누가 탈성장을 두려워하랴』, 『블루 뉴딜』, 『적을수록 풍요롭다』, 『녹색 노동조합은 가능하다』, 『GDP의 정치학
탈성장과대안연구소 소장.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진보신당 정책연구원,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으로 활동하며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위한 연구와 실천을 이어왔다. 현재는 〈탈핵신문〉 이사장으로 신문 발간을 돕고, 기후위기 교육과 탈성장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쓴 책으로 『안토니오 그람시』, 『정의로운 전환』 등이 있으며, 함께 쓴 책으로 『인권으로 살펴본 기후 위기 이야기』, 『착한 에너지 나쁜 에너지 다른 에너지』, 『탈핵』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누가 탈성장을 두려워하랴』, 『블루 뉴딜』, 『적을수록 풍요롭다』, 『녹색 노동조합은 가능하다』, 『GDP의 정치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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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10월 12일
쪽수, 무게, 크기
328쪽 | 128*188*30mm
ISBN13
9791124613023

책 속으로

한국인에게 박정희와 한강의 기적은 거의 종교적 상징이 되었다. 구미시의 박정희 생가는 성역이 되었고, 어떤 이들은 실제로 박정희를 반인반신의 존재처럼 여긴다. 이런 숭배는 박근혜에 대한 숭배로 이어졌고, 이명박과 박근혜가 모두 수감된 이후에도 ‘박정희 신’의 부재를 한탄하는 목소리로 이어졌다. 박정희가 성장주의의 상징이라지만, 그의 오류와 부덕을 비판하는 것만으로 성장주의가 극복되는 것은 아니다. 박정희의 성장주의는 일정한 실체를 지닌 물질적 기반과 설득력을 갖춘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이다. 안토니오 그람시의 표현을 빌리면 ‘강제’와 ‘동의’라는 두 요소를 전형적으로 갖추고 있었다. 그렇다면 박정희를 단순한 찬반의 대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일정한 거리를 두고 그의 유산을 평가할 필요가 있다. 또한, 우리 사회에 뚜렷하게 또는 은밀하게 뿌리내린 성장주의의 모습과 작동 방식을 가감 없이 들여다보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박정희와 맞서 싸워온 사회운동에도 성장주의의 요소는 적지 않다.
--- p.53

결국, 계층 간 그리고 세대 간 이동 사다리가 막히고 경쟁이 심해지면서 청년 세대는 부모 세대가 축적한 자산에 더 의존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이들에게 성장주의 헤게모니도 강화되고 있다. 이는 기성세대에게는 부동산이 없으면 ‘아빠 찬스’라도 제공해야 한다는 인식으로, 청년 세대에게는 ‘공정 담론’에 대한 집착이라는 형태의 성장 강박으로 드러난다. 성장주의, 경쟁주의, 효율성 우선주의, 시장만능주의는 한 묶음으로 작동하며 사회복지의 재원과 혜택을 둘러싸고 계급과 세대, 집단과 지역 사이의 갈등을 유발한다. 1990년대까지 경제개발과 이후 세계화의 과실을 누릴 수 있었던 중간계급과 일부 노동계급은 성장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지지 집단이 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배제되어 더욱 열악한 처지에 놓인 하층 노동계급과 소외 지역의 사람들, 특히 청년들은 자신들에게도 성장의 기회를 제공해 달라는 요구에 매달리게 되었다.
--- pp.63-64

6가지 변수를 종합해 행복을 측정하는 유엔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의 세계행복보고서WHR에서도 2026년 한국의 등수는 67위에 머문다. 특히 사회적 지지(76위), 자유(99위)에서 순위가 낮고 시민의 긍정적 감정, 자비심, 불평등 정도 모두 최근 몇 년 새 악화하고 있다. 경제성장이 삶의 질을 높여주고 우리의 번영과 안전을 보장한다는 상식은 더는 유효하지 않다. 어떤 지표로 보더라도 한국은 OECD 국가 중 행복 최하위권에 속한다. 요컨대 한국인은 지표상 부유해졌고 살림살이가 나아졌지만, 행복해지지 않았고 진정한 삶의 질은 정체되었다. 행복은 성장순이 아니었다. 염려할 만한 일인데도 이를 심각히 여기는 언론이나 정치인은 드물다.
--- pp.89-90

앞으로의 환경 보전과 대응도 성장의 정언명령이 가로막는다. 성장을 계속하면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고 생태계를 보전하기 위해 더욱 기술주의에 매달리게 된다.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부터 문재인 정부의 ‘한국형 그린뉴딜’, 지금 이재명 정부의 ‘3대 메가프로젝트’까지, 정부 정책 역시 기업이 계속 이윤을 내고 수출을 늘리며 에너지를 저렴하게 공급받도록 지원하고 투자하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다. 하지만 기후위기를 진지하게 논의하는 외국의 기후과학자와 정책가들은 재생에너지 확충과 에너지 효율화 프로젝트로는 지구 행성 한계선을 지킬 수 없다고 보아 ‘지구의 절반’ 프로젝트 및 ‘재야생화’를 현실적 방안으로 내놓고 있다. 2022년 12월, UN의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채택된 쿤밍-몬트리올 프레임워크는 2030년까지 지구 육지와 해양 면적의 최소 30%를 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관리하자는 내용이다. 한국 정부도 이에 참여하기로 약속했지만, 지금 한국의 보호구역 면적은 육상 17% 내외, 해양은 3% 정도에 불과하고, 지정된 구역도 대개는 실질적 보호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신도시 아파트단지와 신공항, 반도체단지와 데이터센터를 늘리자는 성장주의의 기운에 맞서 한반도 대지와 바다의 절반 또는 30%를 자연으로 보전하자는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정치인과 언론은 멸종위기종이 되었다.
--- pp.100-101

1970년 정부 주도로 건설된 소형 아파트단지는 20여 군데였고, 모두 강북에 있었다. 당시 서울시에서 아파트는 전체 세대의 4%에 불과했다. 그러나 ‘서울은 만원’이라는 선언과 급격한 도시화에 따라 진행된 아파트단지 개발은 서울의 도시 경관을 충격적으로 변모시켰다. 강남 개발로 먼저 잠실과 반포에 초대형 아파트단지가 들어섰다. 1980년대에는 규제 완화와 부동산 투기가 맞물리면서 신시가지의 아파트 열풍이 불었고, 이어 민영 회사 주도로 초소형 단지들도 개발되었다. 1990년대에는 신도시 개발 붐이 일었다. “천당 아래 분당”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다음에는 재건축과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도시 구조의 거대한 외과 시술이 벌어졌고, 더욱 많은 아파트단지를 불러왔다.
--- p.106

유럽이나 일본과 비교하면 한국의 자동차들은 유난히 ‘으르렁’거리며 도로를 질주한다. 굉음을 울리며 넓은 도로를 달리는 것이 과시적 행동으로 용인되고, 운전자들은 보행자와 자전거 이용자에게 함부로 경적을 울려 댄다. 한국에서 자동차를 타고 있는 이들과 자동차 바깥에 있는 이들 사이의 사회문화적 권력관계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서울시에서 런던시를 모델로 한 ‘혼잡통행세’ 도입을 십수 년간 논의하면서도 아무런 진전을 보이지 못한 일이나, 도로교통법상 차량인 자전거가 차도로 내려오지 못하고 인도에서 보행자와 씨름해야 하는 상황도 그렇다. 이는 한국에서 자동차와 도로가 성장의 수단이자 상징이라는 상식과도 무관하지 않다. 자동차와 도로는 성장을 위해 그만큼 대접받아야 하고, 성장을 위해서는 지역이든 개인이든 자동차와 도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 p.116

최근에는 성장을 뒷받침할 노동력을 위해 개인의 자발적 훈육이 전면화하는 것 같다. 각종 스펙 열풍부터 몸짱 만들기까지, 그 형태는 다양하고도 일상적이다. 입시의 터널을 지나 취업에 성공한 직장인들조차 하루 8시간의 노동을 마치고도 어학과 자격증 학원으로, 체육관으로 몰려간다. 국가가 시키지 않아도 개인 인적자본으로서 잠재력을 키우고, 경쟁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자신을 훈육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몸과 마음 그리고 무의식에까지 자리 잡은 성장주의는 이렇듯 강고하다. 큰 선거 때마다 서울대 해체와 지역 분산 공약이 몇 번이나 등장했고, 최근에는 지방에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이야기되고 있지만, 성장과 인적자본론이라는 마인드셋을 상대화할 탈출구는 요원해 보인다.
--- p.148

주식 투자자는 주가를 견인하는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자신의 대리인으로 여기며 응원하고, 경제성장을 자신의 성공과 동일시하게 된다. 유망주 기업들의 주가를 떠받치려면 반도체와 AI, 토건, 핵발전 프로젝트가 가로막혀서는 안 된다. 이런 사업과 투자가 인권과 노동,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따지는 것은 한가한 일이다. 민주노총 조합원이라고 해서 주식 투자를 덜 하지 않고, 퇴근 후 탄핵 촉구 집회에 모이는 직장인 중 적지 않은 수는 아침에 눈뜨자마자 주식 투자 앱을 들여다볼 것이다. 투자자는 성장주의의 강력한 지지 세력이 되고, 주식을 갖지 않은 한국인은 ‘국민주권 정부’의 구경꾼이 된다.
--- p.155

한국은 국가가 직접 핵발전 정책을 주도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사적 범죄조직인 ‘마피아’라는 개념은 상황을 설명하는 데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그렇다면 산업계의 이권 동맹 측면을 강조하는 ‘핵 카르텔’ 혹은 ‘핵 복합체’로, 중앙정부의 일방적 정책 결정과 집행 측면을 강조하려면 ‘핵 권위주의’나 ‘핵 독재’로, 학계와 전문가 집단의 폐쇄성 측면을 강조하려면 ‘핵 전문가주의’로 부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핵 마피아 또는 핵 이권 집단이 누구인지 밝히는 것만으로는 한국의 핵발전 체제를 다 설명할 수 없다. 핵 마피아의 내포와 외연이 분명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핵발전은 ‘강제’뿐 아니라 ‘동의’의 과정을 통해 한국에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 p.164

한국의 성장주의를 이끄는 구체적인 주체는 무엇보다 기업과 자본가 조직이다. 기업이 정부 주도 성장 전략에서 어떤 혜택을 입고 성장주의의 주축이 되었는지는 앞에서 삼성의 사례를 통해서도 살펴보았다. 일제와 전쟁이 남긴 자원과 기회를 정부와의 유착 속에서 나눠 가질 수 있었던 이들 ‘재벌’들은 1960년대부터 시작된 수출 경제와 중화학공업화 속에서 급속히 세를 키웠고, 이들의 성패가 국가의 성패이자 국민 개인의 성패라는 인식을 심는 데 성공했다. 한국에서 이 재벌들의 존재 자체가 성장주의의 물질적 실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p.183

1차 베이비붐 세대는 주로 기계 조립, 조작과 관련된 업종에 종사하며 1980년대 수출산업 호조기에 사회에 진출했고, 88 올림픽 특수와 1990년대 초반 건설경기 호조까지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을 경험했다. 그리고 가족을 위한 아파트를 사고 자가용을 장만하고 주식을 모을 수 있었다. 하지만 베이비붐 세대의 삶은 여전히 위태롭다. 한창 일할 나이인 30대와 40대에 IMF 사태와 2008년 금융위기를 맞이해 정리해고나 명예퇴직을 선택한 베이비붐 세대는 대거 자영업 시장으로 몰려들었다. 거리마다 넘쳐나던 치킨 가게와 카페는 창업 이후 절반도 성공하기 힘들었고 1년을 못 넘기고 문을 닫는 경우가 허다했다. 부동산 자산이라도 없다면 개인사업에 실패한 베이비붐 세대는 기댈 곳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 p.200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계급의식 역전 현상은 노동계급 형성 과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경제위기 이전에는 정규직 중심의 핵심 부문 노동자가 계급 형성을 주도했으나, 경제위기 이후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양분되면서 계급 형성의 주체가 불분명해졌다. 과거 민주노조운동의 중심 세력으로 노동계급 형성을 이끌었던 정규직 생존자와 정규직 재취업자가 여전히 민주노조운동의 핵심을 이루고 있으나, 계급 내부의 지도력은 크게 훼손됐다. 따라서 민주노조운동 핵심의 지도력 약화는 고용 형태의 균열과 함께 조직적 형성과 이데올로기적 형성의 불일치로 이어졌고, 이는 계급 형성의 정체와 약화를 가져왔다. 비정규직은 계급 적대의식과 반신자유주의 의식 수준은 높지만 노동조합 조직률이 낮고, 정규직은 노동조합 조직률은 높지만 의식 수준이 낮다.
--- p.218

문제는 단지 자본주의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후정의 운동의 적지 않은 이들은 GDP 중심의 성장주의를 하나의 원인으로 지적하며 ‘탈성장’ 이론과 운동에서 해답을 찾고자 한다. 이에 대해 좌파 일각에서는 환영과 공명의 태도를 보이지만, 탈성장론과 운동이 기존 좌파 운동의 호소력을 약화하거나 과제를 흐릴 수 있다는 경계심도 감지된다. 탈성장은 대중적 대안 프로그램이 되지 못하는 소수의 이상론이라거나, 성장이 더 정체되거나 역성장이 되면 사회 취약 집단과 제삼세계가 더욱 큰 고통과 혼란을 겪게 되리라는 논리다. 이런 논리와 주장들은 대체로 탈성장에 대한 편견 어린 해석 또는 수용 거부의 태도와 무관하지 않지만, 앞으로 진지하고 폭넓은 토론이 필요하다.
--- p.233

한국의 MZ 세대는 물질적 조건뿐 아니라 세대의 집단적 경험에서도 성장주의를 반성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중요한 계기들을 경험했다. 여러 형태의 기후재난뿐 아니라 세월호 참사, 코로나19, 이태원 참사 등을 연이어 겪었기 때문이다. 또한, 1인 가구 비중이 높아 안전과 재난에 취약하고, 이러한 위협과 대안에 관한 정보를 매체를 통해 활발히 교류하는 환경 역시 영향을 미친다.
--- p.242

앞에서 언급한 김종철, 천규석, 김민기 모두 지난 몇 해 사이에 우리 곁을 떠났다. 그러나 한국의 성장주의 비판과 탈성장 모색이 이들만의 것은 아니었으며, 같고도 다른 뿌리와 가지를 통해 한국의 탈성장은 깊이와 넓이를 더하고 있다. 몇 명만 들자면, 우선 경영학자로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넘어 탈성장의 이론화 작업과 마을 이장으로서의 활동까지 펼치고 있는 강수돌 교수가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을 역임했던 정태인은 주류 경제학 비판에서 출발해 ‘사회적 경제’와 ‘생태경제학’의 이론화를 위해 노력했다. 그도 2022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김병권, 홍기빈 등이 그의 문제의식을 이어가고 있다.
--- p.268

‘도전과 응전’이라는 비유는 대체로 진부하지만, 한국의 탈성장은 세 개의 중요한 계기를 맞이하고 있다. 비록 사회의 다수는 외면하고 싶더라도, 성장주의의 한계와 위태로움을 드러내는 계기다. 이러한 계기들 앞에서 성장주의는 AI와 반도체, 핵융합, 지구공학, 이주 노동자 수입, 경영 혁신과 구조조정, 비트코인 등 새로운 성장 도구와 장치들을 통해 GDP 증가세를 회복하고 인간과 지구 모두에 파괴적이고 착취적인 동학을 계속 이어가려 한다. 그러나 이 계기들은 객관적이고 분명하며, 부인할 수 없고 불가역적인 경향 속에서 다가온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중요한 분기점을 맞이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계기들을 상상력을 해방하는 죽비로 받아들이고 다른 행복과 번영의 길로 나아갈 수도 있고, 성장이라는 시시포스의 바위를 다시 굴릴 수도 있다.
--- p.286

출판사 리뷰

경제는 커졌는데, 왜 내 삶은 여전히 불안할까
‘조금만 더 성장하면’이라는 약속에 갇힌 한국 사회

어릴 때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공부하고, 대학에 가서는 취업을 준비한다. 직장을 얻으면 더 안정적인 일자리와 더 높은 임금을 원하고, 대출을 받아 집을 마련한 뒤에는 집값과 금리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자녀 교육과 노후 준비까지 생각하면 지금 가진 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더 나아지기 위해 시작한 경쟁이 어느새 뒤처지지 않기 위한 경쟁이 된다. 한국 사회에서 성장은 경제지표에 관한 말이기에 앞서, 생애의 매 단계에서 우리를 움직이는 명령이다.

『한국의 성장주의』는 이 익숙한 삶의 경로에 대해 질문한다. 경제가 성장하는 동안 우리는 무엇을 얻었으며, 무엇을 성장에 맡겨버렸을까? 불평등과 불안정 노동, 돌봄의 공백과 기후위기를 겪으면서도 왜 해결책은 늘 더 많은 생산과 소비, 투자와 개발로 돌아가는가?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양적 팽창을 정상적인 상태로 간주하고, 다른 사회적 가치까지 경제성장에 종속시키는 ‘성장주의’다. 이는 특정 정부의 정책 기조에 그치지 않는다. 국가 운영의 틀이자 사회 제도의 원리이며, 개인이 자신의 능력과 삶의 성패를 판단하는 기준이기도 하다.

이 책은 성장의 공과를 따지는 데서 더 나아가, 우리가 성장을 필요로 하게 된 조건을 살핀다. 집과 일자리, 교육과 노후가 경쟁의 결과에 크게 좌우되는 사회에서 성장에 대한 기대를 버리기는 쉽지 않다. 성장을 비판하면서도 내가 가진 자산은 오르기를 바라고, 개발의 문제를 알면서도 우리 지역에는 큰 사업이 들어오기를 기대한다. 이러한 모순을 개인의 욕심이나 위선으로 돌려서는 성장주의를 이해할 수 없다. 책은 역사와 제도, 이해관계와 감정을 함께 읽으며, 성장주의가 어떻게 한국 사회의 상식이 되었는지 해명한다.

독재는 끝났는데, 성장의 명령은 왜 끝나지 않았을까
개화와 개발독재에서 민주화와 외환위기까지, 달라진 체제와 지속된 믿음

한국인의 성장 집착은 어디서부터 비롯됐을까? 저자는 그 출발점을 개화기의 문명과 진보에 관한 인식에서 찾는다. 서구 열강의 힘을 기준으로 나라의 앞섬과 뒤처짐을 가르는 관점은 식민지 경험과 전쟁, 냉전과 분단을 통과하면서 더욱 절박한 따라잡기의 논리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전쟁 직후부터 오늘날과 같은 성장 체제가 완성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복구와 안정을 우선하던 사회가 수출과 중화학공업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국가가 자원과 노동을 동원하는 과정에는 구체적인 선택과 권력의 개입이 있었다.

박정희 체제는 경제성장을 정권의 정당성과 결합하고, 남북 체제 경쟁 속에서 개발을 국민적 과제로 만들었다. 이 과정에는 억압과 희생이 있었지만, 생활수준의 향상과 계층 상승의 경험도 있었다. 더 많이 일하면 자녀를 공부시키고 집을 마련할 수 있다는 기대는 성장 체제에 대한 동의의 기반이 되었다. 책은 개발독재의 폭력만으로도, ‘한강의 기적’이라는 성공담만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이 결합을 분석한다. 민주화 이후까지 이어지는 박정희 향수 현상 역시 과거에 대한 기억뿐 아니라 이후 사회가 충족시키지 못한 기대 속에서 이유를 찾는다.

1987년 민주화와 노동자 대투쟁은 정치적 권리와 노동조건을 바꾸었지만, 성장의 우선권 자체를 무너뜨리지는 못했다. 외환위기는 고용과 생계의 불안을 키우고, 위험을 개인과 가족이 떠안는 흐름을 강화했다. 성장의 과실로 자산을 축적한 사람에게도, 기회를 얻지 못한 사람에게도 다시 성장이 필요해졌다. 전자에게는 가진 것을 지키고 늘리기 위해, 후자에게는 아직 잡지 못한 기회를 얻기 위해서다. 국가가 잘살면 나도 잘살 수 있다는 기대는 끊임없이 자신을 계발하고 경쟁력을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으로 이어졌다. 책은 정치체제의 변화 속에서 성장주의가 어떻게 새 언어와 새로운 불안을 얻었는지 추적한다.

집값은 내려야 하지만, 내 집값은 올라야 한다
아파트·입시·출산에 스며든 성장의 논리, 욕망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선택들

아파트는 한국의 성장주의를 들여다보는 중요한 창이다. 살기 편한 주거 공간이자 재산을 불리는 수단이고, 자녀의 교육 기회와 노후의 안전판이며,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표지이기도 하다. 저자는 아파트 중심의 주거 문화를 좁은 국토와 많은 인구가 낳은 당연한 결과로 보지 않는다. 국가의 주택정책과 강남 개발, 신도시 건설과 재개발, 가격 상승을 경험한 사람들의 선택이 축적되면서 형성된 역사라는 것이다. 주거의 안정과 자산의 증식이 한 채의 집에 묶여 있는 한, 집값을 둘러싼 모순은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더 좋은 교육을 원하는 마음은 학교와 대학의 서열, 취업과 임금의 격차를 겪으면서 앞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으로 바뀐다. 경쟁이 치열할수록 공정한 선발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커지지만, 선발 뒤에 주어지는 큰 격차는 당연한 보상으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시험을 공정하게 치르는 것만으로 삶의 불평등까지 정당화할 수 있을까? 이 책은 교육을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로 바라보는 관점이 어떻게 개인에게 끝없는 자기계발을 요구하고, 가족에게 교육의 책임과 부담을 집중시키는지 짚는다.

인구정책에서는 방향이 정반대로 바뀌어도 지속되는 논리가 드러난다. 한때는 경제발전을 위해 적게 낳아야 한다고 했고, 이제는 경제와 지역을 유지하기 위해 더 낳아야 한다고 한다. 그 사이 출산과 양육을 담당하는 사람들의 삶은 얼마나 나아졌을까? 저자는 인구를 노동력과 성장 잠재력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접근을 비판하며, 여성에게 출산과 경제활동을 동시에 요구하는 사회의 모순을 지적한다. 아파트와 입시, 저출생을 따로 떨어진 현안으로 보지 않고 연결해 생각하면, 각자의 합리적인 선택이 왜 사회 전체의 불안과 경쟁을 확대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수출이 늘고 주가가 오르면, 모두 잘사는 나라일까
도로와 재벌, 핵발전과 선거를 잇는 성장 체제의 작동 방식

경제가 얼마나 성장했는지는 숫자로 발표되지만, 그 숫자만으로 우리의 생활을 알 수는 없다. GDP는 시장에서 거래되는 생산의 규모를 보여주지만, 돈으로 주고받지 않는 돌봄의 가치나 생산 과정에서 훼손되는 생태계, 삶의 만족까지 충분히 담아내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성장률과 주가는 경제의 건강을 넘어 사회 전체의 성공을 판단하는 기준처럼 쓰인다. 책은 무엇을 측정하고 무엇을 놓치는지 묻는 데서 나아가, 숫자의 증가를 곧바로 공동의 번영으로 받아들이는 인식을 돌아본다.

성장에 맞추어 만들어진 사회는 더 많은 자동차와 도로, 건설과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도로를 넓히고 이동을 빠르게 하는 일이 우선될 때, 자동차를 이용하지 않는 사람의 권리와 생활환경은 뒤로 밀린다. 대규모 산업 생산과 전력 공급을 중심으로 짜인 체제에서는 에너지 수요를 줄이는 문제보다 공급을 늘리는 문제가 먼저 제기된다. 핵발전에 대한 논의 역시 기술의 효율만이 아니라, 누가 전기를 쓰고, 누가 위험과 부담을 떠안으며, 누가 결정하는지의 질문으로 확장된다. 저자는 이처럼 성장이 기반시설과 정책의 선택 속에서 구체적인 모습을 얻는 과정을 분석한다.

삼성 등 재벌을 바라보는 양가적인 태도도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기업의 특혜와 권력은 비판하면서도 수출과 일자리, 투자 수익을 생각하면 기업의 성공을 국가와 자신의 성공에 겹쳐 놓게 된다. 기업과 관료, 언론 등이 맺는 성장연합은 특정한 개발과 투자의 이익을 사회 전체의 이익으로 제시한다. 선거에서는 장기적인 생태적 전환보다 당장 눈에 보이는 개발사업과 예산 확보가 성과로 인정받기 쉽다. 책은 각 영역의 문제를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성장의 성과는 약속하면서 그 비용과 위험은 불균등하게 나누는 체제의 연결 구조를 보여 준다.

성장의 과실을 나누면, 성장주의도 넘어설 수 있을까
노동운동과 진보, 베이비붐과 MZ 세대에 던지는 불편하지만 필요한 질문

성장주의의 주체는 지배 엘리트만이 아니다. 노동자는 성장 체제 아래에서 억압받고 저항했지만, 동시에 성장의 성과를 나누어 가지려 싸웠다. 임금을 높이고 고용을 지키는 요구는 삶을 개선하는 중요한 투쟁이었다. 그러나 기업과 산업이 계속 팽창해야 노동자의 몫도 지킬 수 있다는 전제는, 생태적 한계와 산업 전환 앞에서 새로운 딜레마를 낳는다. 생산을 늘리는 것이 일자리의 안전을 보장하는 길일 때, 생산 자체를 줄이거나 바꾸어야 한다는 요구에 어떻게 응답할 수 있을까?

책은 노동운동과 진보 진영 내부에도 성장주의가 자리해 왔음을 짚는다. 경제적 종속이나 불평등한 분배에 대한 비판이 언제나 성장 중심의 생산과 소비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성장의 주도권을 바꾸고 과실을 더 공정하게 배분하는 문제와, 무엇을 얼마나 생산해야 하는가를 묻는 문제는 함께 다루어져야 한다. 이는 노동자의 희생을 전제로 환경을 지키자는 주장이 아니다. 노동의 권리를 지키면서도 성장에 대한 의존을 줄일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는 요청이다.

세대를 바라볼 때도 단순한 구분을 경계한다. 베이비붐 세대에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경험, 계층 상승과 자산 축적의 기회뿐 아니라 불안한 노후가 함께 있다. 이른바 MZ 세대 안에도 공정한 경쟁과 투자에 몰두하는 흐름, 과도한 노동과 소비에서 거리를 두려는 흐름이 공존한다. 같은 세대라는 이름이 계층과 성별에 따른 차이까지 지우지는 못한다. 저자는 어느 세대를 성장주의의 가해자나 탈성장의 주역으로 미리 정해놓는 대신, 서로 다른 위치의 사람들이 왜 성장에 의지하며 어디에서 다른 삶의 가능성을 찾는지 살펴본다.

탈성장은 정말 한국에 없던 생각일까
동학과 한살림에서 두물머리와 밀양까지, 다시 읽는 사상과 실천

성장주의를 넘어서는 논의는 한국의 현실과 동떨어진 수입 담론일까? 책의 후반부는 한국 사회 안에 축적된 사상과 실천을 찾아 나선다. 동학의 생명에 대한 인식, 함석헌의 씨알 사상, 장일순의 생명운동과 한살림, 김종철과 『녹색평론』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 자립과 자치, 생산과 소비의 방식을 다시 생각할 자원을 제공한다. 서로 다른 역사적 맥락을 지닌 이들을 하나의 완성된 탈성장 이론으로 묶기보다, 오늘의 문제에 비추어 재발견하고 재해석하며 연결하는 작업이다.

한살림의 생산자와 소비자는 가격과 상품만으로 관계 맺는 대신 먹거리와 생명을 함께 돌보려 했다. 두물머리에서는 4대강 사업에 맞선 농민들과 연대자들이 농사와 예술, 공동생활을 통해 개발과 다른 방식으로 땅을 사용하는 경험을 쌓았다. 밀양의 송전탑 반대 투쟁은 대도시와 산업의 전력 소비를 위해 지역 주민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구조를 드러냈다. 이러한 실천의 의미는 사업을 최종적으로 막았는지,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는지로 판단할 수만은 없다. 투쟁과 협동의 과정에서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와 누구와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감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저자는 지금 여기에서 다른 삶을 시도하는 ‘나우토피아’의 관점으로 공동체와 협동조합, 지역화폐와 수리의 실천 등을 제시한다. 이곳들은 모순이 사라진 이상향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와 생활방식을 시험하는 현장이다. 버리는 대신 고치고, 혼자 구매하는 대신 함께 돌보며, 지역에서 필요한 일을 스스로 조직하는 경험은 성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필요에 응답한다. 작은 실험을 곧바로 사회 전체의 대안으로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이미 존재하는 실천에서 전환의 출발점을 찾는 것이 이 책의 중요한 시도다.

덜 일하고 덜 생산해도, 삶은 더 나아질 수 있을까
노동시간 단축과 정의로운 전환으로 여는 성장 이후의 논의

저성장과 인구 감소, 기후위기는 기존의 방식으로 사회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신호다. 책은 이 세 가지를 한국에서 탈성장 논의를 구체화할 계기로 본다. 인구가 줄어드는 지역에 더 큰 개발사업을 약속하는 대신, 지금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계속 살아갈 조건을 먼저 물을 수는 없을까? 성장률을 높이는 정책에 모든 기대를 걸기보다 돌봄과 교육, 주거와 노동을 재편하는 데 힘을 쏟을 수는 없을까? 경제 규모의 축소가 저절로 좋은 삶을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저자는 변화의 부담이 취약한 사람에게 전가되지 않도록 제도와 권리를 함께 바꾸는 정의로운 전환을 강조한다.

노동시간 단축은 생계와 생태를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의제다. 일하는 시간을 줄이는 일은 여가를 늘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고용과 소득을 어떻게 나누고 과도한 생산과 에너지 사용을 어떻게 줄일지 묻게 한다. 저자가 제안한 ‘에너지 휴가제’도 그런 시도다. 여름철에 유급휴가를 확대하고 분산해 전력 수요를 낮추되, 중소기업 등에 대한 지원을 함께 마련하자는 구상이다. 노동자가 임금과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우려를 건너뛰지 않고, 전환에 필요한 공적 지원과 사회적 논의를 요구한다.

저자가 참여한 노동자 교육에서 자신의 일터를 도넛 모양으로 그려보는 활동은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한쪽에는 에너지 사용과 탄소 배출 등 생태적 부담을, 다른 쪽에는 임금과 노동시간, 안전과 교섭력 등 일터의 조건을 놓는다. 그러면 환경을 위해 생산을 줄이는 일이 누구의 고용을 먼저 위협하는지, 좋은 노동조건과 생태적 한계를 함께 지키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질문할 수 있다. 탈성장은 개인에게 적게 소비하고 견디라고 권하는 생활 지침을 넘어, 생산과 재생산의 조건을 함께 결정하는 문제로 확장된다.

『한국의 성장주의』는 성장의 역사적 성과를 부정하거나 모든 문제를 해결할 단일한 청사진을 제시하지 않는다. 성장에 적절한 때와 방식이 있다면, 성장만을 해법으로 삼는 사회 역시 바뀔 수 있다고 말한다. 무엇을 줄이고 무엇을 더 돌볼 것인가, 그 변화의 비용과 권한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이 책은 성장 이후의 삶을 막연히 상상하는 데서 한 걸음 나아가, 한국 사회가 이미 가진 경험과 자원 위에서 그 논의를 시작하도록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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