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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들어가며 2006년 1월 빈집들 2006년 2월 봄눈 2006년 3월 올해도 농사짓자 2006년 4월 씨앗상자 2006년 5월 철조망 너머 2006년 6월 이장님을 석방하라 2006년 7월 들깻모 심기 2006년 8월 도두리 지킴이네 2006년 9월 사람이 살고 있다 2006년 10월 마지막 가을 2006년 11월(1) 벌써 울면 어떡해 2006년 11월(2) 김장 잔치 2006년 12월 마늘밭 2007년 1월 평화를 택한 사람들 2007년 2월 은사시나무 2007년 3월(1) 콩나물 2007년 3월(2) 할미꽃 피는 날 2007년 4월(1) 기억하기 위해 2007년 4월(2) 대추리의 봄을 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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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돋이를 보러 아침 일찍 문무인상 쪽으로 걸어갔다. 엷은 안개가 낀 어두운 들판, 논길 가에 선 허수아비들은 저마다 나에게 무슨 말인가를 걸어오는 듯했다. 앞서간 꽃마차에서 음악이 흘러나왔다. 사람들은 풍물을 울렸다. 원을 만들면서 손을 잡고 돌며 춤을 추었다. 소지 천에 새해 소원을 적어 문무인상에 묶었다.
--- p.12 오늘, 지킴이 일기장에 담희 어머니가 쓴 글을 옮긴다. 선선해진 바람이 마음까지 상쾌하게 한다. 철조망 안쪽의 벼들은 벌써 이삭이 굽어 가을을 알리는데 바깥쪽의 논들은 숲을 연상케 한다. 저넓은 농로길, 강가 이젠 가보고 싶어도 가보질 못한다. 어느 나라 국법이 자기 사는 곳도 못 다니게 하는가? 어언 3년 외부 사람들에겐 짧은 시간이라 생각될지 모르는 기간이 우리에겐 얼마나 고통스럽고 긴 세월인가~ 마음속엔 멍이 들고 타들어가 시커먼 재만 남았다. 그래도 우리의 소망-부모님껜 한이 서린 곳 이곳에 있는 그날이 빨리 오길 기다리며 고대한다. 팔월의 마지막을 보내며 구월을 기대한다. - 담희 겸희 엄마 --- p.209 한 시에 마을 총회가 시작되었다. 미군기지 확장 반대 싸움을 하자는 분은 손을 들라고 이장님이 말했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이후로는 이주단지를 어느 곳으로 할 것이냐를 두고 말들이 오갔다. 노와리 목장 쪽은 양계장에서 나는 냄새가 너무 심하고, 미군 훈련장 터는 지하에 벙커가 있어서 곤란하고, 공동묘지 땅은‘쫓겨나서 공동묘지로 갈 거면 뭣 하러 가냐’그러고, 서산 땅은 자식들하고 너무 멀리 떨어져야 하니까 안 되고. 회의는 쉽게 끝나지 않았다. 할머니들은 다시 모여 앉아서 화투를 치고, 몇 분은 세시 특전 미사에 가셨다. 나는 내일 김월순 할머니와 새 성당에서 주일미사를 드리기로 했다. 김효순 선생님이 파마 장비와 약을 갖고 와서 노인정 안방에서 노영희 할머니의 머리를 말고 있었다. 나는 옆에 앉아서 노영희 할머니와 한참 동안 얘기를 나누었다. --- p.365 사람들은 제를 올렸다. 제를 지내는 동안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모두 우셨다. 최양례 할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 문무인 상은 타서 철골만 남고, 제상이 놓인 자리는 눈물바다가 되었다. 제가 끝난 후, 할아버지들은 칼로 돼지 코를 잘라서 새우젓에 찍어 막걸리 안주로 드신다. 나도 편육을 몇 점 집어먹고 막걸리를 마셨다. 자욱하게 피어오른 연기가 들판에 퍼졌다. 불티는 들바람을 타고 사방으로 날린다. 쓰러진 문무인상이 길을 막았다. 중국집 철가방을 짐칸에 실은 오토바이는 길 가운데 멈춰 섰다. --- p.5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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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이 지난 시간이지만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확장 반대 투쟁은 많은 사람들에게 뜨겁고 안타까웠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동시에 20년의 시간은 또 어떤 사람에게는 그런 사건이 있었는지조차 모르는 역사의 공백으로 남아있다. 그만큼 적지 않는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시간이 흘렀지만 우리는 왜 싸우고 지키고 절규했는지 그 기억을 후세대에게 남기는 것은 의무이기도 하다. 역사는 승리한 자의 전유물이 아니라 기억하고 기록하는 이들의 몫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2005년 말부터 2007년 봄까지 미군기지 확장 반대 투쟁 현장인 평택 팽성읍 대추리, 도두리에서 지킴이로 활동한 작가의 기록이다. 잔잔하면서도 사람들의 숨결과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기록이다. 지킴이 활동 당시 ‘마리아’라는 세례명으로 불렸던 작가의 활동 기록이 역사의 작은 거름이 되기를 바란다. 〈작가의 말〉 평택 대추분교 행정대집행으로부터 20년이 흘렀다. 그리고 가을을 맞았다. 이맘때 배추모종과 무싹을 보면, 둥근 나팔꽃과 왕달맞이꽃, 초록이 옅어지는 논을 보면 어느새 숨을 고르게 된다. 보이지 않게 운다는 게 어쩌면 그런 것일 테다. 2006년 가을, 우리는 빈 땅에 배추 모종을 심고 무씨를 뿌렸다. 철조망 이쪽저쪽 할 것 없이 벼에는 누르스름한 빛이 번지고 잠자리와 나비들이 떼를 지어 날았다. 황새울에서 맞이한 마지막 가을의 생명은 아름다웠다. 2018년 이른 가을 노와리 이주단지를 찾았을 때 노인정에 계신 어르신들은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셨다. 나는 한 분도 빠짐없이 기억나는데 백발의 당신들은 나를 잊으셨다. 그 후 그곳을 찾지 않았다. 대추리, 도두리가 생각이 나면 일지를 읽었다. 산 자 죽은 자의 목소리가 안개처럼 흩어졌다 모이곤 했다. 잠시 안개였다가 어둠이었다가 다만 목소리였다가 현실로 돌아오곤 했다. 2006년과 2007년, 평택미군기지 확장 반대 투쟁을 하며 틈틈이 기록한 글을 20년이 지나 책으로 엮었다. 함께 울어줄 이가, 함께 분노할 이가 그리웠는지 모른다. 생명이었고 사랑이었던 황새울의 시간이 계속 흐르길, 철조망을 찢고 날아오르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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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도 기록도, 흐르는 시간 속에 낡고 바스라진다. 하지만 어떤 기억과 기록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뼈대와 살을 얻는다. 뒤늦게야 그것에 대해 말할 용기를 준다. 어떤 이들에게‘여명의 황새울’은‘화려한 휴가’만큼이나 아프고 시린 상처였다.‘어떤 이들’은 대체 누구였을까.
시간이 흐를 만큼 흘렀으니 치유와 화해에 대해 말해야 하나. 우리사회는 국가가 할퀸 그 깊은 상처가 무엇이었는지 보기를 외면해 왔다, 말하길 피해 왔다. 고향을 세 번이나 빼앗긴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대추리에서 태어나지 않고도, 대추리를 고향인 듯 아꼈던 사람들, 질 거라는 걸 알면서도 지는 사람들의 곁을 지키고 싶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 책 안에 있다. 대추리에 살 때 나는 김연주의 이름을 몰랐다. 마리아라고 하니까, 그런 줄만 알았지. 간절하게 기도하는 사람인 줄만 알았지. 그의 기도문이 이 기록이었음을 이제야 안다. - 노순택 (사진가, 대추리에서‘황새울 사진관’을 열었던 사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