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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부 어떤 아이를 낳을 것인가 1 수어가 제1언어인 결혼식 2 아이를 가질 결심 3 할머니, 엄마, 나의 몸을 횡단하여 4 “그러니까 장애아를 왜 낳았어” 5 우생보호법과 나 6 데프보이스, 법정에 울려 퍼지다 7 기억해주길 바라는 장면 2부 하프가 아니라 더블 8 아이는 어디서 낳아요? 9 출산 가방과 카메라 10 할머니가 지어줄 수어 이름 11 아기를 만난 순간 일본어와 한국어로 인사했다 12 찬란하고도 낯선, 젖 13 수유할 권리 14 예의 없고 날선 말들 사이에서 15 어떤 어린이집에 보낼 것인가 16 하프가 아니라 더블, 트리플 3부 이토록 반짝이는 세계 17 엄마됨과 예술가 18 베이비시터와 함께한 강연 자리 19 해외 출장 분투기 20 기저귀와 프로페셔널 21 오늘은 또 어디를 가볼까? 22 수어가 제1언어인 또다른 결혼식 23 농인 아이를 낳고 싶어 에필로그 |
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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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갖고 싶었다, 내 정체성과 언어를 공유할 수 있는 가족구성원을. 농인 부모에게서 수어를 배우고 자라서는 음성언어를 습득하고 이제는 일본인 파트너와 영어로 소통하는 나의 다문화적 정체성과 언어,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이는 몇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하나 더 있다면, 혹은 비슷하게나마 이런 세계를 공유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어떨까 생각했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은 정말이지 놀라운 경험이라고 말하는 수경과 그의 남편, 아름의 존재를 보며 새로운 바람이 생겼다. 아이를 갖고 싶다고.
_33~34쪽, 「아이를 가질 결심」 엄마는 그렇게 자신의 몸에서 벌어진 일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성원권을 획득하기 위해 아들을 낳아야 했던 할머니, 장애인이어서 재생산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던 엄마, 내 몸과 가족에게 벌어진 일을 알고 싶고 말하고 싶은 나. 우리의 몸을 횡단하는 이야기들이 내 앞에 펼쳐졌다. 영화〈아워 보디스〉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_50쪽,「할머니, 엄마, 나의 몸을 횡단하여」 변론이 끊임없이 이어지던 어느 날, 판사가 물었다. 피해 사실을 알았음에도 바로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냐고. 아사쿠라는 말했다. “농인은 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청인의 말을 따르라고만, 견디라고만 배웠습니다. 국가를 상대로 재판하는 일이 장애인인 주제에 너무 건방진 것은 아닐까 걱정했습니다.” 그 말이 꼭 농인인 우리 부모님의 말 같았다. “농인이니까 참았어.” “장애인이니까 어쩔 수 없어.” “들을 수 없으니까 포기해야지.” 우생주의에 의한 차별과 불의를 일상적으로 경험한 이들의 태도와 말. 인간으로서 권리를 침해받은, 그렇기에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혹은 알더라도 언어와 문화가 달라 표현하기 어려운 소수자의 말. _69쪽,「우생보호법과 나」 가즈코를 만나고, 노리코의 소송과 관련된 이야기를 알게 되었을 때만 해도 그것은 나의 농인 부모를 둘러싼 이야기라고 여겼다. 이를 온전히 내 문제로 받아들이게 된 건 임신을 확인하고 나서부터다. 이제부터 달라질 삶을 받아들이기도 전에 ‘기형아검사’와 같은, 장애아를 선별하여 제거해야 한다는 말들이 쏟아졌다. 장애아를 낳을 확률이 높다면 하루라도 빨리 임신을 중지해야 한다고 했다. 반면 일본의 병원에서는 한국에서는 필수적으로 받는 검사를 권하지 않았다. 장애아를 출산할 확률을 줄이기보다 출생 이후에 어떻게 함께 살 것인지에 방점을 두는 분위기였다. (...) 한국과 일본의 산부인과를 오가며 생각한다. 우생사상은 사라지지 않았다고. 구 우생보호법을 만들고 지속시켜온 우생주의는 지금 나의 몸과 깊숙이 연결된 채 작동하고 있다고. _76~79쪽,「우생보호법과 나」 장애가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임신중지수술을 허용하고, 중증장애인이 살아가기 힘든 사회이기 때문에 그를 살해할 권리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과연 옳을까? 설령 그들이 장애인 당사자를 평생 돌보아온 가족이라고 해도? 마음이 복잡해졌다. 우리 가족의 경우라면 어떨지 가정 해보았다. 비장애인인 우리 할머니가 청각장애인인 아버지를 죽이고자 한다면? 나는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장애아를 낳고 키워야 했던 할머니를 이해하고 연민한다. 그러나 차별적인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착한 장애인’으로서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았고 자신과는 다른 존재인 나를 키워낸 농인 아버지는? 아버지에게 칼을 겨눈 할머니를 두고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빠진다. _94쪽,「기억해주길 바라는 장면」 젖을 물리면서 여러 상황을 상상한다. 가슴을 드러낸 채 아기를 안고 앉아 있는 나와 눈을 감고 먹는 데만 집중하고 있는 아기에게 고함이나 고성이 쏟아진다면 어쩌지? 혀를 차는 소리랄지 한숨소리 같은 것이 들린다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지? 취약함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으면서 아기와 나를 보호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지? 상황과 상황 사이를 머릿속으로 오가며 두 손 모아 빈다.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옆에 앉기를, 가능하다면 출산과 육아를 경험해본 사람이 앉아 나를 딱히 여기고 이해해주기를 간곡하게 빈다. _155쪽,「수유할 권리」 육아와 작업을 병행한다는 게 바로 이런 것이구나, 프로페셔널한 엄마/감독은 수상할 때도 아이를 안고 있어야 하고 설령 오줌을 싸 옷이 흥건하게 젖은 순간이어도 웃어야 하는구나, 하고 수없이 되뇌며 말이다. 물론 사람들은 몰랐다고, 전혀 그래 보이지 않았다며 축하의 말을 건넸지만 나는 영화감독과 엄마 사이에서 무엇이 되어야 할지 혹은 둘 다 된 것인지 아니면 둘 다 되지 못한 것인지 가늠하며 서 있었다. _243~244쪽,「기저귀와 프로페셔널」 레이레와 샬럿은 커뮤니티 사람들과 고민을 나누며 결정했다. 아이의 잔존청력 여부와 상관없이 수어와 농문화를 중심으로 아이를 키울 거라고. 자신들이 퀴어로서 그랬듯 결국 아이의 정체성은 소리를 들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아이 자신의 결정으로 정해지는 것이라고. 농인이나 코다로서의 정체성이 그렇듯 말이다. 청력과 상관없이 아이가 집과 교육기관에서 수어를 사용하고 수어로 교육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둘은 말했다. _301쪽,「에필로그」 레이레와 샬럿의 용감하고 대담한 결정과 둘을 둘러싼 다정하고 끈끈한 커뮤니티를 카메라에 담으며 생각했다. 이곳이 우리 집이자 가족이라고. 이들이 대안적인 가족을 만들고 커뮤니티를 만들어가는 방식이 내가 찾아왔던 집의 모양과 닮아있다고. 음성언어·비장애인 중심 사회는 끊임없이 소리를 들을 수 있느냐 없느냐, 장애가 있느냐 없느냐에만 집중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문화와 어떤 언어를 아이에게 어떻게 물려줄 것인지 고민하고 그에 필요한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라고. 그것이 우리에게는 농문화이자 수어이며 그로 인해 차별받지 않으면서 더욱더 풍성하고 다채로워지는 세상이라고. 이를 지향하는 이들과 함께라면 아이를 더 잘 키워볼 수 있겠다고. _301~302쪽,「에필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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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미나 강력 추천***
“이길보라는 존엄한 삶의 영역을 온몸으로 확장하고 있다. 한국사회는 이길보라 있음에 깊이 감사해야 한다. 우리 모두 그에게 빚지고 있다.” ***『반짝이는 박수 소리』 이길보라 감독, 3년 만의 신작*** 코다이자 엄마, 외국인의 자리에서 펼쳐지는 다른 삶 “벅차고도 애달픈, 놀랍고도 지난한 여정!” 경계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일의 특별함에 관하여 『반짝이는 박수 소리』『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의 저자이자 다큐멘터리 감독 이길보라의 에세이가 출간되었다. 3년 만의 신작인 이 책은 여전히 코다CODA(Children of Deaf Adults, 농인의 자녀)이자 창작자로서 고민을 담았다는 점에서 그간의 작업과 연장선상에 있지만, 어느 때보다 급격한 삶의 변화를 바탕으로 하는 책이기도 하다. 몇 해 전 일본인 파트너와 결혼한 뒤 후쿠오카로 이주한 그가 임신과 출산을 거치면서 어느새 일상의 큰 자리를 돌봄이 차지하게 된 것이다. 부모에게 장애가 있는 그가 아이를 갖기로 결심했을 때, 자신과 주위의 질문-가령 아이에게 장애가 있다면 낳을 건지 말 건지, 어떤 장애아가 태어나더라도 그 삶을 수용할 수 있을지 등-을 피할 수 없었고, 출산 뒤에도 부모에게 물려받은 농문화를 아이와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매 순간 이를 접할 수 있는 환경을 선택해야 했다. 농인들의 삶을 카메라에 담아온 그였지만 지금껏 아이를 갖는 것, 장애아가 태어나는 것은 부모 세대의 문제일 따름이었다. 하지만 이제 임신·출산·육아가 온전히 자신의 문제가 되면서 그 또한 양가적인 마음과 갈등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여느 육아서와 달리, 장애를 가진 이들의 재생산 권리에 관한 싸움을 포개어 다루고 있으며, 아이가 다른 몸을 가진 이들 사이에서 고유한 방식으로 성장하는 다채로운 경험으로 가득하다. 동시에, 일하는 엄마, 다큐멘터리 감독, 일본사회의 외국인으로서 이길보라는 장애와 비장애뿐 아니라 엄마이자 예술가, 한국과 일본이라는 겹겹의 세계를 경험하며, 우리 사회가 중심에 두는 여러 가치에 대한 반문을 멈추지 않는다. 그가 발 딛고 선 ‘경계’는 어느 한 곳에 속하지 못한다는 불안감을 안겨주기보다 비장애 중심, 성인 중심, 생산성 중심, 남성 중심, 자국인 중심 등 기존의 가치가 밀어내는 이들을 예민하게 자각하게 하고 이로써 “존엄한 삶의 영역을 확장”(하미나)하게 하는 자리인 것이다. 일하며 아이를 키우는 녹록지 않은 하루하루 속에서도 소수자로서의 경험을 닻 삼아 씩씩하게 다른 삶을 탐험해가는 이길보라표 성장기에 독자들을 초대한다. 이 책 『경계에서 자란다』는 내 삶의 엄청난 변화, 바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임신·출산·육아를 경험하는 과정을 담았다. 이번에는 ‘어떤 세계에서 아이를 키울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 던져졌다. 코다이자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어온 내가 우연히 일본 국적 파트너를 만나 아이를 갖기로 결심하고 낳고 키우면서 들어선 세계는 발견으로 가득했다. 제목 그대로, 이 책은 나를 둘러싼 겹겹의 세계와 경계를 통과하며 성장하는 이야기다. _13쪽, 「프롤로그」 ‘어떤 아이를 낳을 것인가, 어떤 세계에서 아이를 키울 것인가?’ 태어날 수 있었던 수많은 이들의 삶이 사라지지 않는 사회를 향하여 이길보라 감독이 아이를 갖고 싶다는 마음을 먹은 데는 그만의 이유가 있었다. 코다 커플인 한 친구가 아이에게 수어를 가르쳐, 수어로 소통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에게도 코다 정체성과 언어를 공유할 가족구성원이 생기길 바란 것이다. 하지만 농인의 자녀가 아이를 갖겠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는 우려가 잇따랐고 임신 사실을 확인한 뒤에는 ‘기형아검사’ 등 장애 유무를 확인하는 세세한 절차를 권유받았다. 직접적이진 않더라도 한국의 의료제도는 장애아를 낳을 확률이 높다면 하루빨리 임신 중지를 해야 한다고, 장애아를 낳지 않는 방향을 가리키는 듯하다. 한국이 장애아를 잘 키울 방법보다 장애아를 낳지 않을 방법을 마련하는 데 더 집중하는 사회임을 부정할 수 있을까. 이렇듯 장애를 ‘질병’으로 정의하고 장애가 있는 이들을 통제 대상으로 여기는 관점은 우생주의의 단면으로 비장애 중심적 사회의 근간을 이루며, 장애 당사자의 자기 결정권, 특히 재생산 권리를 빼앗는 흐름을 낳았다. 우생주의에 따른 차별은 저자 가족의 역사에도 고스란히 스며 있다. 이길보라 감독의 할머니는 농인을 낳았다는 이유로 ‘멀쩡한’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고, 농인인 엄마는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아이를 낳지 않기를 종용당했다. 이렇게 가족의 몸을 횡단하는 비장애 중심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은 그가 일본 구舊 우생보호법의 피해자이자 국가배상 청구 소송을 이어갔던 농인들의 곁에서 재판 과정을 촬영하며 깊어졌다(이 내용은 현재 제작중인 영화〈아워 보디스Our Bodies[가제]에 일부 담겨 있다). 일본은 ‘불량한 자손의 출생을 막는다’는 목적으로 1948~96년 우생보호법을 시행했고 그로 인해 장애인, 부랑아, 한센병자 등이 강제 불임 및 낙태수술을 받아 드러난 피해자만 8만 4천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1970년대 일본 장애인운동은 산전검사와 그 결과에 따른 선별적 낙태는 장애인 차별이며 우생사상의 실천이라고 비판해왔고, 긴 국가배상 소송 끝에 2024년 일본 대법원으로부터 위헌판결을 얻어냈다. 당시 피해자였던 아사쿠라 노리코(가명) 등을 카메라에 담으며 저자는 복잡한 마음으로 자문한다. 나는 농인의 자녀로 태어나 손으로 말하고 사랑하고 슬픔을 표현하는 법을 배웠고, 그것이 특별한 것도 불쌍한 것도 아니라는 걸 안다. 그러나 비장애인 중심 사회가 장애인을 어떻게 배제하는지 경험한 내가 또다시 그걸 감당할 수 있을까. 그건 어떤 모습의 돌봄이 될까. _53쪽, 「“그러니까 장애아를 왜 낳았어”」 실상 이러한 차별은 한국사회와도 무관하지 않다. 1973년에 제정된 모자보건법(제8조)에 따르면 장애가 의심되는 태아의 경우 낙태를 허용할 뿐 아니라 장애인 당사자의 경우 배우자 등의 타인이 재생산 권리를 빼앗을 수 있다. 그나마 일본사회는 당사자들의 운동을 통해 실태 조사와 피해 보상, 사법부의 사과가 이뤄졌지만 한국에서는 장애인들의 재생산 권리가 주목받지 못한 채 장애아 출산 확률을 낮추는 의료 기술이 권장될 따름이다. 한국과 일본의 산부인과를 오가며 생각한다. 우생사상은 사라지지 않았다고. 구 우생보호법을 만들고 지속시켜온 우생주의는 지금 나의 몸과 깊숙이 연결된 채 작동하고 있다고. _76~79쪽, 「우생보호법과 나」 이길보라 감독에게 우생보호법에 맞선 싸움의 기록은 우리 사회가 규정한 정상성-누가 아이를 낳을 수 있는지, 어떤 아이를 키울 것인지-을 묻는 과정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부모를 이해하고 뿌리를 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나아가 스스로의 혼란을 직면하는 과정이기도 한데, 어떤 장애를 가진 아이든 환영할 수 있을지를 두고 양가적인 마음을 솔직하게 토로하는 장면은 우리 안의 비장애 중심주의를 돌아보게 한다. 농인 부모가 물려준 다채로운 세계, 그 세계는 나를 거쳐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작은 존재로 향하고 있다! 돌보면서 자라는 사람의 다른 몸, 다른 가족, 다른 세계 2부「하프가 아니라 더블」은 임신과 출산, 육아를 경험하며 마주한 엄마로서의 삶과 낯설게 다가오는 사회에 대한 질문, 일본에서 살아가며 갖게 된 다문화 정체성 이야기가 중심을 이룬다. “아기라는 존재와 함께 내가 속한 사회를 바라보았”을 때 비장애인 성인을 중심으로 설계된 세상의 문턱은 취약한 존재들에게 한없이 높았다. 말끔한 수유실이 갖춰지지 않은 시설, 수유하는 여성들을 향한 불편한 시선, 배려 없이 쏟아지는 간섭에 가까운 말들… 하지만 한편으로 일본사회에서 살아가며 외국인으로서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이 존중받는다고 느끼는 순간이 많았고, 특히 장애아동 보육에 열려 있는 후쿠오카 어린이집의 안내문은 눈길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안내문은) 장애아동 보육이 너무나도 당연하고 당사자에게 꼭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정부로부터 인가받은 어린이집이어서 어쩔 수 없이 장애아동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아동의 성장과 발달을 위해 어린이집에 꼭 다닐 필요가 있다는 논조가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장애아동을 키우는 학부모가 이곳에 우리 아이가 다닐 수 있는지를 특별히 묻지 않아도,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안내문에 위와 같은 정보를 미리 명시해둔다는 점이 좋았다. 교육기관이나 지원 기관의 웹사이트에 적혀 있는 장애인·성소수자 등 다양성을 가진 구성원을 환영하는 메시지나 수유 및 착유를 하는 어머니들을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안내한 항공사 홈페이지를 발견했을 때와 같은 기분이었다. _183~184쪽, 「어떤 어린이집에 보낼 것인가」 3부「이토록 반짝이는 세계」에서는 여전히 코다로서, 창작자로서 작업을 이어가면서도, ‘아이와 함께’라는 달라진 조건에서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풍성한 경험을 통해 그의 세계가 확장되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다. 10여 년 전, 자신의 영화 상영을 계기로 찾았던 야마가타국제영화제, 누군가는 고생길이라고 할지 모르는 ‘아기와 함께 영화제 가기’ 프로젝트를 강행한 것은 이 영화제가 그가 아끼는 영화 축제인데다가 좋아하고 보고 싶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이다. 아이 친화적이고, 휠체어 사용자의 접근성을 보장하며,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이들과 함께하는 축제를 지향한다는 사실을 곳곳에 명시해둔 점도 그곳에 발걸음을 하게 한 이유다. 영화제뿐 아니라 야마가타시에는 어린이도서관, 보육시설, 커뮤니티 카페 등 다양한 아이 친화적인 공간이 많은데, 장애 유무에 관계없이 모두에게 열린 놀이터로 설계된 인클루시브 놀이터 ‘코팔’도 주목할 만하다. 이 외에도 핀란드 헬싱키 타넬리 어린이집 등 이 책에서는 아무도 배제하지 않는 포용적 감수성으로 운영되는 공간들을 만날 수 있다. 근교 온천에 들렀다가 숙소로 돌아가던 중 특이한 모양의 건물이 있기에 방문해본 코팔에서 이런 장면을 마주했다. 한 아이가 휠체어를 탄 아버지를 바라보며 뛰고, 그의 아버지는 문턱도 없고 계단도 없는 언덕을 종횡무진하는 모습을. 그때 깨달았다. 아기와 함께한다는 것은 이런 꿈만 같고 멋진 공간을 만나는 계기가 된다는 것을. 너와 함께이기에 이전에는 몰랐던 또 하나의 세상이 아주 크게 열린다는 것을. _259~260쪽,「오늘은 또 어디를 가볼까?」 “어쩌면 ‘진짜’라고 할 만한 일이 일어날지도 몰라” 아이와 함께 수어로 말하며 오늘은 또 어디를 가볼까?” 오늘도 엄지와 검지를 펴서 뿔 모양을 만든 후 머리 양쪽에 대고는 ‘소’라는 수어를 하며 “송아지, 송아지, 얼룩송아지, 엄마 닮았네”라고 노래를 데프보이스(농인의 목소리)로 부르는 농인 할머니, 자신의 이름을 수어로 말해주는 스페인에서 만난 농인 아기 밀로, 그리고 엄마가 속한 농인 커뮤니티 사람들… 그 곁에서 아이는 시각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법을 몸으로 익혀가는 중이다. 어린 시절의 이길보라는 청각장애 부모의 삶 속에서 혼란을 느끼며,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분투했지만 이제 그에게 다른 정체성, 경계라는 자리는 더이상 결핍이 아니다. “놀라움, 기쁨, 충만함이라는 감정과 함께 농사회와 청사회, 한국사회와 일본사회, 시각언어와 음성언어라는 겹겹의 경계”를 기꺼이 넘나든다. 아이와 함께한 여정에서 그가 만난 것은 오래도록 찾아왔던 “집의 모양”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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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선 늘 많은 일이 일어난다. 어쩌면 ‘진짜’라고 할 만한 일이 일어나는 곳은 오로지 경계뿐일지도 모른다. 수많은 시인과 예술가들이 자신의 삶을 걸면서까지 경계의 윤곽을 따라 걷는 것도 이 때문일 테다. 한편 경계에 선다는 건 배로 힘든 삶을 택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쪽 세계로도, 저쪽 세계로도 넘어가지 않고 중간 지대에 머무는 것은 인지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피로한 일이다. 판단을 유보한 채, 소속되기를 유보한 채 상반된 세계 이쪽저쪽을 목격하고 증언할 힘이 필요하므로.
단순하고 씩씩한 문장 너머로 이길보라가 일생에 걸쳐 감당해왔을 노고가 내게 전해졌다.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에서, 보이는 언어와 들리는 언어의 경계, 국가와 국가의 경계까지 이길보라는 존엄한 삶의 영역을 온몸으로 확장하고 있다. 한국사회는 이길보라 있음에 깊이 감사해야 한다. 우리 모두 그에게 빚지고 있다. - 하미나 (『나를 갈라 나를 꺼내기』 저자) |